5가지 사랑의 언어: 3. 살리는 말

마틴 루터 킹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 분이 암살당하기 두달 전에 그가 설교를 합니다. 제목이 The Drum Major Instinct 군악대장의 본능입니다.  설교에서 그는 “내 장례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 나는 긴 장례식을 원치 않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나의 추도사를 한다면, 너무 길게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가끔씩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생각해 봅니다.  내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해주세요.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또 3~400개의 다른 상들을 받았다고 말하지도 말아달라고 해주세요.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학교 다녔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해 주세요.

그 날에 마틴 루터 킹은 자기 목숨을 내 주어 다른 사람을 섬기려 했다고 말해 주십시오.

그 날에 마틴 루터 킹은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했다고 말해 주십시오

두달 후에 킹 목사는 암살을 당하고, 그 장래식이 TV를 통해 전국으로 방영될 때 그가 한 말, “마틴 루터 킹은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했다고 말해주십시오”라는 인용구가 방영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말을 합니다.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내가 한 말을 인용한다면, 무슨 말을 인용하겠습니까?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말 한마디가 우리의 삶을 바꿔놓습니다.
사랑하는 젊은 남녀를 생각해 보세요.
둘이 좋으면 수많은 사랑의 행위를 해요. 손 잡고, 선물을 주고 받고, 함께 시간을 지내고, 서로를 섬기고…  그런다고 둘이 하나가 됩니까?  아니에요.
심지어 요새는 동거도 많이 해요. 그렇다고 하나가 됩니까?  아니에요.
언제 하나가 됩니까?
요새는 청혼들 많이 하잖아요. 남자가 무릎꿇고 “나랑 결혼해 주세요” 할 때, 여자가 “네”라고 대답하면 되요
결혼식장에서 주례자가 “신랑은 이 사람을 아내로 맞아 한평생 사랑하겠습니까?”할 때, “네”하고 대답해야 해요.

말이 우리의 인생을 몰고가요.  그 말이 길 필요도 없어요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십니까? 어제 한 말, 혹은 한 주간 한 말을 떠올려 봅시다.  어떤 말을 하셨습니까?

  • 격려의 말이었습니까? 상처의 말이었습니까?
  • 살리는 말이었습니까? 죽이는 말이었습니까?

죽이는 말

오늘 본문에서 대표적으로 죽이는 말하는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이세벨이에요.

  •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 가장 화려한 곳, 왕궁에서 사는 자, 가장 부유한 자입니다.
  • 그 정도면 빠질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한가지 큰 문제가 있어요: 말이 살벌해요.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죽이는 말이에요.

  • 그가 하는 말이, 듣는 사람에게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빼앗아가요.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보세요.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 그리고 기도합니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지난 삼년동안 기도하고, 자기 목숨을 걸고 해온 일이 있어요. 그 의미와 가치를 빼앗아 가버려요.

가만히 이세벨이라는 여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가장 불쌍한 여인입니다.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알지 못합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인격이 망가졌는가 싶습니다.

그녀가 행복했을까요?  오늘 본문이 열왕기상 19장입니다.  그 앞에 17장-18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3년이나 가뭄이 듭니다. 그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살 소망을 잃어버려요.

왜 가뭄이 들었을까?  최고 지도자의 입에서 오고 가는 말이 죽이는 말인데, 그 땅이 어찌 가뭄이 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세벨이라는 여인의 가정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 가정이 평안했겠습니까?

아까 교독문에서 우리는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가만히 이걸 묵상하면서 오래된 유치한 사랑의 고백이 떠올랐어요.  그대가 없는 세상은 뭐같아요?  “단무지 없는 김밥”이요, “앙꼬 없는 찐빵”이요.  단무지 없는 김밥을 돈 주고 사시겠습니까?  앙꼬 없는 찐빵을 사 드시겠습니까?  좀 심각한 질문을 해볼까요?  말에 사랑이 없는 사람과 같이 사시겠습니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언어, 지식, 신념을 가졌어요, 능력을 행해요, 선행) – 사랑 = 0

Gottman: Four Horseman

시카고 대학의 John Gottman이라는 심리학 학자가 100명의 커플을 대상으로 그들의 갈등에 대해 조사해 봅니다.  결과가 나옵니다.

첫째는,정서적인 관계가 유지되는데,주기적으로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걱정해야 하는 관계가 있어요. 정서적 갈등이 없는 관계: 감정적으로 거리가 너무나 멀어져 버렸습니다.

두번째로. 그가 말해요.  부부간에 대화를 5분만 듣고 분석하면, 90%의 정확도를 가지고 그들이 계속 결혼생활을 할지 이혼할지 예측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가 말합니다. 감정적인 갈등이 찾아올 때, 네가지를 조심해야 해요.

첫째는, 비난하는 말을 하면 안되요.
우선은 불만과 비난을 구별해야 해요.

  • 불만: “부억을 정리 안되어 있으면, 나는 심기가 불편해 집니다.  아침에 커피마실 때 주변이 정리정돈이 되어야 기분이 좋답니다.  자기 전에 정리를 해 주면 안될까요?”
  • 비난: 거기에 한 마디만 더하면 된다는 거에요. “당신 뭐가 문제요?”
  • 불만: “당신이 늦게 들어오는데 연락이 없어서 걱정했어요. 연락하기로 하지 않았었나요?”
  • 비난: “당신 생각이 있는 겁니까? 자꾸 잊어버리는데, 당신 이기적이에요.  딴 사람 생각도 안하나?  내 생각은 절대로 안하지요?”

비난 하는 순간 상대방에게 사랑이 아니라 상처를 주어요.  그러면 그가 변하던가요?  그건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래요.

둘째는, 경멸의 말:

  • “그것도 모르냐?” “이 바보야”  “등신아”  어느 영화 보니까 “닭 대가리”.
  • 혹은, 말도 필요가 없어요. 그냥 표정만으로도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어요.

연구 결과가 심각하다:

  • 혹독하게 비난하는 말과, 경멸하는 듯한 표정이 약간만 있으면 상대방의 심장박동이 올라간다는 거에요.
  • 비난과 경멸을 받으면, 우리의 뇌가 싸움의 모드로 가거나 혹은 도피의 모드가 된데요.

셋째로, 싸움의 모드로 뇌가 가면 어떻게 됩니까?  상대방을 공격하게 되요.

  • “그럼 너는?”

이 말을 하고 나면, 싸움이 끝납니까? 아니면 불에다 기름을 끼얹은 결과가 됩니까?  잘못하면 폭력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그리고 승자가 없어요.

넷째로, 도피의 모드로 가면 어떻게 됩니까?  오늘 엘리야가 도망의 모드가 된 것 아닙니까?

도피의 모드가 될 때 아무 반응이 없는 담벼락이 된다.

  • 주로 남자들이 이렇게 된데요. 여자들을 더 화나게 한다.
  • 여자들도, 주로 남편의 폭력 이후에, 이렇게 될 수 있데요.

여기까지 가면, 이제는 결혼생활을 할지, “전문적 연합”이 될지가 놓여있다.

살리는 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말, 칭찬의 말, 존중해 주는 말,  사랑의 말이 필요합니다.

작가 박완서를 아실 것입니다.  그가 57세가 되던 해 남편이 병으로 돌아가십니다.  그리고는 6개월만에 다시 25세의 아들이 죽습니다.  본인이 말합니다.

  • 자식이 다섯이나 있지만 그 중에 유일한 아들입니다.
  • 명문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된 자랑스러운 아들입니다.

그 순간 그의 인생이 곤두박질 치고 맙니다.  삶이 허무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살 맛이 안나고, 밤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그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일기를 쓰고 그것을 출판합니다.  책 제목이 뭔지 아십니까?  “한 마디만 하소서”  예수를 믿는 자이기에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 “한 마디만 하소서”

그 한마디는 어느 한 마디입니가?

  • 엘리야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 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말
  • 살기를 포기한 자에게, 다시 생의 의지를 주는 말
  • 낙심한 자에게, 다시 힘을 주는 말
  • 도피한 자에게, 다시 가야할 길을 가게 해 주는 말
  • 가정이라면: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말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생명의 말씀을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말씀의 두 가지 특징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입니다.

연인들이 사랑의 대화를 할 때, 크게 소리 지릅니까?  부드럽고 조용하게 대화합니까?

어린애에게 [혼내듣이] “I love you”라고 말하면, 아이는 울어요.  그러나 애교부리면서 “미워~ 미워~”라고 말하는 것의 뜻은 무엇입니까?

대화의 내용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말하는 어투도 중요해요.

둘째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미래 지향적인 말입니다.

하나님과 엘리야의 대화의 내용을 보세요.  엘리야는 자꾸 과거의 것을 말해요

  • 14절에 보면, 말이 “나는 이제까지…”라고 말하면서 시작해요.
  • “열심히 주님을 섬겼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났고, 예배드리는 제단을 헐었고, 예언자들을 죽였습니다.”
  • 그럴 때 그의 현재는 그 죄로 잘못된 과거의 결과에요.
  • “나만 홀로 남았고, 나마저 죽이려 합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의 말에 어떻게 대답합니까?

  • 과거의 일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오로지 미래 지향적이에요
  • 다마스쿠스로 가서 하살엘에게 기름을 붇고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고
  •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의 뒤를 잇게 한다.
  • 엘리야의 현재는 과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고 반성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과거에 억매이면 지금의 문제를 벋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라는 후회와 죄책감만 찾아오고, 지금의 내 처지가 불행해 질 뿐입니다.

그럴 때 옆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해요.  장래의 약속에 대해 말해야 해요. 그럴 때 약속을 받은 자는 소망이 생겨요.

이 하나님 말씀 앞에 괄호가 하나 붙었으면 좋겠어요.

  • 괄호치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나는 너를 이미 용서했다.”
  • 그러니 지금은 예전 일을 말하지 말자.
  • 언약이 있기에, 그 언약을 기억하고, 그 언약을 충실되이 유지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 하나님이 의지적으로 용서를 선택하는 거에요.

사도 베드로가 말해요.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  거기에 지혜가 있어요.  내 말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해요.  말해야 할 때와, 말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해요.

분이 나면 말을 뱉지 말고 참으래요.  언제까지?  입에 침이 찰때까지 기다리레요.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주세요”라 기도하며 분별해야 해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살리는 말인지 죽이는 말인지, 변화하게 하는 말인지, 변명하게 하는 말인지, 사랑하게 하는 말인지 싸우게 하는 말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한 엘리야를 사랑의 말, 생명의 말로 대합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비한 것이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이 엘리야를 살리고, 그리고 그 말씀이 엘리야와 함께 할 때,그럴 때 엘리야가 사람에게 기름을 붇는 사람이 되요.

엘리야가 이전까지는 능력은 많으나, 외톨이었습니다.  그 때는 수많은 능력을 행사하나 이스라엘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대표적으로 엘리사와 선지자 학교.

호렙 산으로 가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엘리야의 행적을 생각해 봅니다

17장-18장에서 그가 개인적으로, 사역적으로,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수 많은 일을 당할 때에, 그가 그것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주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라는 구절이 반복적으로 나오기 때문이었다.

19장에서 엘리야가 위기에 빠진 것은 “주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로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어다.

우리는 호렙산으로 갑시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홀로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들어야 해요.

우리에게는 엘리야보다 더 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그가 십자가에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와보라” 조롱을 받으십니다.  예수는 조롱 받으실만한 분이 아니셨거든요.  그가 조롱을 당함은, 그러함으로 예수를 믿는 자에겐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라”는 아버지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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