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 사랑의 언어: 4. 하나님이 손을 주신 이유

접촉이라는 사랑의 언어

오늘은 스킨십이라고 번역된 “meaningful touch”(의미있는 만지기)에 대해 말해봅시다.  사실 이것은 번역하기가 참 어려운 표현입니다.  우리는 touch라고 합시다.

Touch라는 것이 참 소중합니다.  사랑의 가장 원초적인 언어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생각해 봅시다.  그 아이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 그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중한지를 표현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바로 신체적 접촉이 언어를 통해서 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가 그 아이를 안아주비다. 그게 첫 사랑의 경험입니다.  심지어 젖을 빠는 것 이전에 피부의 접촉과 따스한 체온을 통해 사랑을 경험합니다.

내가 아는 분 중에 0세-2세 전문가가 있습니다.  그 분의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아이는 언어를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때가 부모가 좋은 습관을 들여주어야 할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더이상 습관의 형성이 아니라 이미 교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옳고 그른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의사소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이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칩니까?  부모와의 신체적 접촉이 언어입니다.  긍정의 표현, 칭찬의 표현은 부모가 꼭 끌어앉는 것입니다.  부정의 표현은 맴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들이 갓난 애기 때는 맴매 하지 말고 기다리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 때 맴매를 하려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아이가 커서 대화가 가능하면 말로 해야지요.  그 이전에는 맴매를 하면 아이가 알아 듣는다고 합니다.

긍정의 표현, 즉 부모가 안아주는 것과 부정의 표현, 즉 부모가 아프게 맴매하는 것 중에 어느게 사랑입니까?  둘 다 사랑의 표현입니다.  건강한 부모가 건강한 사랑의 표현을 몸으로 합니다.  그 아이가 그 사랑을 통해 사랑을 받고, 또한 성장하면서 그 사랑을 하게 됩니다.

손은 사랑하라고 있다

한번 자기 손을 들여다 보십시오.  우리에게 왜 하나님이 손을 주셨습니까?  십계명을 가지고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가 미울 때, 때리라고 주었습니까? 정욕을 채우기 위해 간음하라고 주었습니까?  남의 것이 탐날 때, 힘으로 빼앗으라고 주었습니까?

아닙니다.  이 아이를 앉고 있는 엄마의 손을 보세요.  손은 사랑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몸을 가진 존재에요. 그래서 몸으로 사랑받고, 몸으로 사랑을 배우고, 몸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갓난 아이는 부모가 안아줘서 사랑을 배웁니다.
젊은이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안아줍니다.
노인은 저기서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달려가서 안아줄 때, 거기서 사랑을 받게 됩니다.
특별히 사랑의 언어가 touch인 사람은 스킨십을 통해 내면이 채워집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

그러고 나면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을 이해하게 되요.

요일1:1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

여기서

  • 우리가 들었다. 그건 이해가 되요.
  • 그 다음 부터: 말씀을 눈으로 보았다. 또 지켜보았다. (자세히 보았다) (응?  말을 눈으로 봤다고?)
  • 맨 마지막이 기가 막힙니다: “우리가 손으로 만져보았다.”

어떻게 말씀을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그리고 손으로 만져 봅니까?  이것은 성육신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 즉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자 하나님이 그 보이지 않는 분이, 보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자에게는 별볼일 없는 것같이 보이나, 이것은 깜짝 놀랄만한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선택하세요.

  • 변치 않는 분이 변함을 선택하세요: 사람이 되어 유아기를 거치고, 십대가 대면서 변성기를 거치고, 성인으로 성장해야 했습니다.
  • 누군가가 강요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영원한 분이 유한을 선택합니다
  • 아무런 제약이 없는 분이, 스스로 육신의 제한을 입은 것입니다.

왜요?  몸을 가진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육신을 가지십니다.

한번은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로 나와,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어요.  예수님 바쁘신데, 또 예수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으신데.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나에게 나오는 것을 막지 말라 하시고, 그 아이들에게 손을 얹고 그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도 육체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어루만지십니다.

나병 환자를 만지신 예수님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한 나병 환자를 봅니다.  그가 예수께로 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합니다.

“…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당시의 나병 환자들은 단순히 악성 피부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나병은 “부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환자가 “나를 깨끗하게 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만일 내가 부정한 것을 만지면 어떻게 되요? 나도 부정해져요.  나병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적어도 2m 정도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병 환자들은 자신들의 옷을 찢고, 자기의 입을 막고, “나는 부정합니다”라고 외쳐야 했습니다.

나병은 종종 내면의 문제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 간주되었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미리암이 모세를 대적할 때, 하나님이 미리암을 심판하시면서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미리암이 나병에 걸리게 하십니다.  그래서 랍비들은 나병 환자들이 자기에게 다가온다 생각이 되면 그들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다 드리고 다시 40절 41절 봅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 이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충격적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고..”

라고 말합니다.   “입이 쩍 벌어지는”이라는 표현이 있지요?  바로 그런 상황 아닙니까?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봤지 봤지” 할만한 상황입니다.

“원하시면..”

“원하시면”이라는 단어에 여러분의 관심을 모아봅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손을 댈 필요가 있었나요?  아니에요. 예수님은 원하시기만 하면 얼마든지 그를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 사람을 만지셨나요?  하나님이 육체가 되셨을 때, 이제는 그 분이 거리를 둘 사람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만지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시에는 육체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영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성전은 거룩한 곳이었다. 흠이 있는 짐승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집을 작은 성전으로 간주해서, 육신이 온전하지 못하거나 결함이 있는 자들을 집으로 들이지 않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꾸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그들을 만집니다.

  •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다. 예수님이 그녀에게 안수하십니다.
  • 12살된 소녀가 죽을 때(시체는 부정했다), 예수님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키십니다.
  • 벳세다에 소경이 있을 때(신체적으로 부정한 자), 예수님 그 눈을 만지십니다.

또, 예수님은 부정한 자들, 질병에 걸린 자들이 자기를 만지는 것을 허용하셨다.

  • “…온갖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누구나 그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막 3:10)
  • 12년동안 혈루병 걸린 여인(피를 흘리면 부정하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질 때, 예수님에게서 치료의 능력이 그녀에게 나가서 치료한다. 그녀가 두려워할 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안심하고 가거라.”(막 5:34)  그녀는 12년동안 남편과도 사랑하는 자녀와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가 안심하고 갈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만지지 않아서” 하나님을 향한 자신들의 경건을 드러냈습니다

  • 너는 내 근처에 오면 안되
  • 너는 내 옆에 앉으면 안되
  • 너는 우리 집에 못 들어와
  • 너는 내 손 안 댈 거야

예수님은?

  • “만짐으로”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헌신을 드러내셨습니다.
  • 그리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십니다.

상처의 손, 치유의 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고 거듭남이 무엇입니까?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손은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UCLA대학에서 연구해 보니, 하루에 열 번 의미 있는 touch를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장수 한데요.  어떤 분이 그 이야기를 듣던, 그 옆에 앉아있던 아내를 (만지면서) “한번.. 두 번.. 세 번.. ). 그게 의미있는 touch가 아니라는 것을 아시지요?

반대로 여러분의 손은, 해치는 능력이 있어요.

  • 상대방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는 것.
  • 만지면 안되는 사람을 내 쾌락을 얻기 위해 비윤리적으로 혹은 강제로 만질 때,
  • 혹은 반대로 만져야 하는 사람을 만지지 않을 때

손을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악수에 대해 생각해봐요.  악수라는 것은 원래는 “내 손에 무기가 없습니다”라는 뜻이래매요?  “악의가 없는 것”을 뜻해요.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단순한 악의의 결여 이상으로 긍정의 뜻이 있어요.

  • 악수를 하려면, 그에게 다가가야 해요. 얼만큼? 친밀감의 거리만큼 다가가야 해요.
  • 악수를 하려면 서로 눈을 마주 보아야 해요.
  • 악수를 하려면 서로 사랑의 말이 오고가요.
  • 악수는 손과 손이 마주 닿아요.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잖아요?  이웃뿐 아니라, 원수에게 사랑과 화해와 신뢰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이 손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손이 되는 것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여러분이 악수해야할 그 “웬수”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느 부부가 결혼 이후에 너무 사이가 벌어졌어요.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자신의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하루는 잠자리를 자다가 남편이 뒤척이다가 발이 아내의 다리에 닿았습니다. 아내가 자다가 놀래서 다리를 움추리더래요. 이 남자의 제일 사랑의 언어가 touch였어요. 아내가 그렇게 반응하는 순간 거절감이 너무나 커서 낙심되더랍니다.  이 부부가 심리상담학 박사 학위를 받은 목사님을 찾아 상담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하고, 주변의 도움으로, 또 기도로, 둘이 다시 손 잡고 서로 쳐다볼 수 있으면, 그 때부터 그 남자의 사랑의 탱크가 채워지기 시작할 것이고, 그 때부터 변화가 시작될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고 합니다.

반대의 경우가 있어요.  어느 분이 친구들과 부부 동반으로 식사를 하시다가, 이 분이 뭔가를 말씀하셨는데, 순간적으로 자기 아내가 그 말 때문에 상심했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지더랍니다. 남들은 모르지만, 자기는 알겠더레요.  조금 있다가, 테이블 밑으로 작은 발 하나가 자기 발을 툭툭 치더랍니다. 바로 자기 아내의 발입니다.  발로 표현을 다 하더래요 “나 괜찮아요.  우리 문제 없어요.  이건 나중에 대화합시다.  도망가지도, 토라져 있지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발이 말을 하는 것 같더래요. “나는 여전히 당신과 함께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touch가 얼마나 지혜로운 것입니까?

말고 Malchus

성경에서 예수님에게 마지막 치료를 받은 사람은 말고라는 사람이에요.  사실은 겟세마네 동산에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 중에 하나입니다.  대제사장과 성전 경비들과 장로들의 무리가 예수님을 잡으러 옵니다.  그 적대적 시간에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칼을 꺼내서 휘둘러 말고의 귀를 자릅니다.  그러나 예수님, “그만해 두어라” 말씀하시고, 손을 뻗어 말고의 귀를 만져서 치료해 주신다 (눅 22:51)

손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만진다는 것은 친밀감의 표현 아닙니까?  예수님, 자기를 잡아 죽이러 오는 자를 용서하십니다.  그를 사랑하시고 그를 치료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은 십자가에 그 손이 못밖히십니다.

여러분 그 손의 못자국을 만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셨으니, 이제는 그 자유를 가지고 내 손을 주님께 드립시다.

주여 나를 자유케 하셨으니,

내 손을 주님께 드립니다.

나병 환자를 가까이 오게 하시고, 그를 만지신 손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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