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 사랑의 언어: 5. 섬김

꿈들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이라는 질문을 던질 때, 아이들이 예상과 다르게 너무나 대답을 잘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걸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함께 보도록 합시다.

아이들이 참 대답을 잘 한다.  “하나님이랑 나는 무슨 사이인가요?” 이라 물어볼 때, 아이들은

  • 매일 함께 하는 사이: 같이 노는 사이
  • 구원해주는 사이: 총 안맞게 해 주는 사이
  • 사랑하는 사이
  • 도와주는 사이: 기도할 때 “말을 들어주시는 사이”
  • 뚱뚱한: 힘을 나눠주는 사이
  • 재미있는 사이

가만히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들이 다섯가지 사랑의 언어에 대해 말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나를 사랑하세요.
  •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도 나를 사랑해요.
  • 그리고 그와 같이 내 이웃을 사랑해요

오늘 본문에서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이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을 청해서 자기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식사를 대접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대접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초대하고도 그것을 즐기지도 못하고, 칭찬을 듣지도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시에 손님을 초대하면 해야할 세 가지 예절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손님이 오면 그를 환영할 때,그에게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들이 나와 같은 지위의 사람이라면 그들의 볼에다 입맞춤을 했어요.  나보다 높은 존경할만한 분이라면, 그들의 손에다 입맞춤을 했습니다.  시몬은 그러지 않습니다.

식사하기 전에 손님의 손과 발을 물로 닦아주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귀한 손님이라면 직접 그들의 발을 닦아 주기도 했고, 하인을 시켜 그렇게 하도록 했습이다.  아니면 최소한 발 닦을 물이라도 주었어야 합니다.  시몬은 예수님께 그러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또 그곳은 건조한 사막 기후였기에, 올리브 유를 머리와 피부에 발라주었습니다.  시몬은 그러지 않습니다.

시몬이 그 세가지를 다 안해 버립니다.  그가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아니였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로 인해 초대한 손님, 예수님을 모독한 격이 되어버립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해석해요. 초대해 놓고 빰 때린 격이라고.  그 식사할 때 미묘한 기류가 흐르지 않았겠습니까?

어느 분이 천국과 지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 일리가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분은 자기는 천국과 지옥이 다른 장소가 아니라, 같은 한 곳이라 생각한데요.  그리고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곳이라는 거에요.  문제는 나에게 있어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곳이 천국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그곳은 지옥입니다.

교회 가는 것이 그와 같습니다.  교회에 억지로 끌려나오면, 지옥 같습니다. 예배 드리고, 성도들 만나는 것이 즐거워 나오면 여기가 천국이에요.

가정을 생각해 보세요.  서로 사랑하면, 같이 있는 것이 천국이에요. 서로 미워하면, 지옥이에요.

시몬은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있어요.  천국이에요 지옥이에요?  마땅히 섬겨야 할 자를 섬기지 않을 때, 지옥이 된다.

반면에 같은 본문에서 사랑을 실천한 한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자신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발에 입맞춤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바른다

이 여인은 감히 식탁에 참여하지 못하고 예수님 발 곁에 있습니다.  그곳은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이 바리새인과 대화를 합니다. 이야기를 마칠 때에는 시선이 그 여인에게 집중되고, 그 여인에게 은혜로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게 천국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 여인의 섬김입니다.

섬김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사랑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Love is as Love Does

사랑은 무엇입니까?  누군가가 사랑을 이렇게 말합니다.

Love is as Love Does

사랑이란, 사랑을 행한 만큼,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은 동사에요.  아무리 내가 좋은 의도가 있어도, 막상 그것을 행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한다면, 사랑을 행하세요.  오늘 섬김에 대해 말해요. 섬김의 뿌리는 사랑입니다.

또한 기왕 사랑을 할 것이라면, 뜨겁게 해야 해요.  사랑이 상처가 되는 것: 사랑이 식었을 때입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그 사랑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을 때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십니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계 3:16)  뜨뜻 미지근한 사랑이 얼마나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합니까?  결정적 순간에는 차든지 뜨겁든지 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뜨겁다라는 것 앞에서 사랑은 의도 이상으로 행동이라 했지 않습니까?  상대방에 대한 열정 이상으로, 얼마나 신실하게, 헌신과 일관성으로 사랑의 삶을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점검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앞에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를 써 놓았다. 이것이 활발하게 , 헌신적으로, 일관성있게 되어야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옆에 온도계를 놓았다.  나의 사랑 지수를 점검해 보십시오.  각 항목에 대해 0도~100도까지 자신의 사랑의 온도를 한번 적어보세요.  그래프를 그려보셔도 좋아요.

  • 첫 주에 우리는 선물에 대해 말했고,여러분에게 선물상자를 드렸습니다.여러분의 가정은 선물을 서로 주고 받으십니까?  어느 분이 말씀하세요. 요새는 문자주고 받는 프로그램으로 선물도 주고 받을 수 있잖아요?  누구를 데리고 나가 커피 사주는 것보다, 그걸로 커피 상품권을 하나 보내주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  다음은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 그 다음은 “칭찬하는 말”입니다: 혹시 역으로 좌절시키는 말이 오고가지는 않습니까?
  • 의미있는 터치는 몇도나 됩니까?
  • 그리고 오늘 말하는 “섬김” 혹은 “봉사”는 몇도나 됩니까?

테레사 수녀가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사랑 하느냐이다.  그러므로 그대로 하여금 가장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을 실천하십시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저자인 채프만이 말합니다.  그는 자기는 어려서 농구를 좋아했데요.  토요일에 농구하러 나가려 하면, 어머니가 집안 청소를 안하면 나가 놀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아주 그게 싫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는 “여기서 벗어나기만 하면 다시는 청소를 안할 것이다.”라고  다짐을 했답니다.  그가 아내를 만났어요. 아내의 제1 사랑의 언어가 무엇이었을까요?  “섬김.”  “봉사”  채프만이 말해요. 자기는 “아무리 큰 돈을 주어도 청소는 안할 것이다.” 생각했어요.  그러나, 집에서 규칙적으로 청소한데요. 그건 100%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집이 천국이 되는 거에요.

왜?  마음의 태도: 비판하는 자 & 용서에 감격하는 자

다시 이야기로 와서  왜 이런 차이가 나오게 됩니까?

42 둘이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돈놀이꾼은 둘에게 빚을 없애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가운데서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시몬이 대답하였다. “더 많이 빚을 없애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판단이 옳다.”

마음의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인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전도사님.  실력도 아주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아주 성격이 쾌활하다. 특별히 또 부탁하면, 늘 기분 좋게 그걸 받아주시는 분이세요.  이 전도사님이, 어떤 집사님을 놓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 집사님… 누군가가 부탁하면 상대방을 앞에 놓고 투덜거린다.  “바쁜데”  “힘든데”   그런데, 그러고는 또 맘은 착해서 부탁은 또 들어준다는 거에요.  전도사님이 이 집사님과 친하거든요. 그러니까 농담처럼  “그 집사님 바보”라는 거에요.  어짜피 다 들어줄 거면, 왜 부정적인 말을 해서 상대방 기분 나쁘게 하냐는 거에요.  도와줄 거면, 표정이나 말도 기분 좋게 말해야 한다는 거에요.

이 시몬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은, 39절이 그 마음을 다 말해 줘요.  예수님을 놓고 무엇이라 하는가? “이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저 여자가 누구이며, 어떠한 여자인지 알았을 테인데”  그리고는 그 여인을 누구라 부르는가? “그 여자는 죄인인데” (v39)  이 사람이 바보인 거에요. 그 마음의 불만과 비판적 태도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초대하고도 예수님과 사랑을 누리지 못해요.

이 여인은?  성경에 그녀는 “죄인”이라고 묘사가 되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그녀가 창녀였다고 해석합니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오늘 주제를 놓고 생각하면, “사랑에 실패한 여인이에요.”  어쩌면 젊어서 실수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혹은 남편에게 버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돈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지도 몰라요.  그녀의 사연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까지 올 때는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이제는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거에요.  그러나, 오늘큰 사랑을 행합니다.  오늘 그녀는 예수님을 온 맘을 다해 섬깁니다.  예수님이 들어설 때부터 그녀는 예수님께 줄곧 입맞춥니다. 행여라도 예수님 오해 살까 그분의 얼굴에도 입맞추지 못하고, 그 분의 손에도 입맞추지 못할 때, 그녀는 예수님의 발에 입맞춥니다.  그러면서, 아마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온 것 같아요.  삶에 대한 후회와 부끄러움, 또 용서와 사랑에 대한 감격이 함께 섞여 나왔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쏟아졌는지, 그것을 닦아내야만 했습니다.

무엇으로 닦아냅니까? 아무것도 없을 때  자신의 머리로 닦아냅니다.  여성분들. 머리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중요한 곳에 가실 때 머리가 준비가 안되면 가시겠습니까?  얼마나 소중한지는 머리카락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가 말해준다. 머리 꼭데기.  가장 귀한거에요.  그 머리로, 예수님의 발을 닦습니다. 외출하고 오면 가장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는 부위입니다.  그래서 아마 신체의 가장 낮은 부분일 것입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 높은 것으로 상대방의 가장 낮은 것을 닦아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자세입니다.

그 섬김의 낮아짐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나같은 사람을 사랑해주는 것에 대한 감격이에요.  47절에 예수님 말씀하신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특별히 유명한 설교가 챨스 스펄전 목사님이 잘 말씀해 주세요. “여기서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은 객관적인 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자기가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죄의 용서받은 분량이다.”

그것이 성도의 삶 아닙니까?  구원을 받고, 10년이 지났어요. 이제 절망과, 형벌에 대한 두려움은 지나가요.  그러나 거룩한 삶으로 전진할 수록 죄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에 대해 점점 깊이 느끼게 되요.  역설적을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깊어져요.  그럴 때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용서하신 예수님을 더 감사하고 사랑하게 되요.

가정에 적용해 봅시다.

  • 20대 : 그냥마냥 좋아서 산다.
  • 30대 : 애들 커가는 맛에 어떨결에 산다.
  • 40대 : 일에 지쳐 시간 가는줄 모르고 산다.
  • 50대 : 버리기 아까워서 산다.
  • 60대 : 오갈데 없을까봐 불쌍해서 살아준다.
  • 70대 : 여태까지 살아준게 고마워서 산다.

뭐가 가장 복음적입니까?  70대에요.  사실은 그게 진리인거에요. “나같은 사람과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빚이 있어요. 그럴 때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자가 더 많이 사랑할 것이라는 거에요.  나는 부족한 사람이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고, 실수도 많아요. 이기적이에요.  역설적으로 그러기에 여전히 나를 인내하고, 용서하고, 데리고 살아주는 것에 대한 감동이 있고, 감사가 있어요.

부모에게, “나같은 사람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사실 어린 자녀에게도 감사합니다. “나같은 부모를 여전히 엄마 아빠라고 찾아 주는 것도 감사합니다.”  그러면 만사 해결이에요.

봉사함으로 내가 사랑할 수 있음을 확인한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여인이 와서 예수님 발에 입맞추고, 그 발을 머리로 닦고, 향유를 뿌리는 섬김을 받으세요.  그것은 수동적인 것이에요.  그러나 이 여인은 죄인이고, 예수님은 지금 바리새인 집에 있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대단히 적극적이고 선택적인 수동태에요.

그것을 통해, 신비로운 일을 이루세요.  이 여인의 삶이 변화되게 하세요.  이 여인을 보십시오. 향유 옥합을 깨어서 그 발에 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목에 달고 다녔던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직업을 생각할 때, 그것은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비웁니다.  그것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 것이니까요.

그 순간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되는 순간이에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죄인이 아니에요.용서받은 자에요.  예수님이 용서를 선포하세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것은 세례 받으실 때에 아버지의 사랑의 음성을 들으신 예수님이, 이제 그녀에게 동일한 사랑을 전해주십니다.

뮤지컬 배우 박소연. “사랑의 실패를 통해 깨닫게 된 진실”이라는 강연에서 말합니다.  그녀는 음악을 사랑하여 뮤지컬 배우가 됩니다. 그리고 절어서 사랑을 열정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유명 뮤지컬 배우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8개월만에 이혼합니다.

결혼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저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에 빠집니다.  그리고 “나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또 “노래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생각이 들어, 노래를 그만두게 됩니다.

이제 주변의 권유로 노숙지들에 식사를 대접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점차 사람들이 그녀을 알아보게 되면서 그곳에서 음악회 요청합니다.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반신반의 히며 임시로 작게 설치된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몇십분 부르고 내려옵니다.  그러나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노래를 하고 있는 나는 더이상 불행하거니 슬프거니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한 여성이 다가와 고맙다고 인사. 최근에 너무나 힘든 일이 많아 몇달 동안 아무것도 못했는데 노래를 듣는 동안 그 생각이 안났다고 하면서, 마음이 치유를 받았다 말합니다.

그 순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음악이 나의 최고의 사랑의 능력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는 나를 사랑하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로, 나는 그와 같이 내 이웃을 살아하게 됩니다.

참된 섬김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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