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ing Free: 2. 하나님을 탐욕함

어느 사람이 화가 나서 하나님께 나가 항의합니다. 대화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주님!

주님: 그래, 말해보거라.

먼저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주님: 그래, 화내지 아니하마

왜 오늘 저에겐 힘든 일만 있었던 겁니까.. 도대체 저에게 왜 이러셨나요..?
평소에 늦게 일어난 적이 없던 제가, 중요한 약속이 있는 오늘 늦게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시작의 불과합니다.. 차의 시동이 오랫동안 걸리지 않아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나: 바쁜 와중에 점심식사로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점원의 실수로 또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전화가 걸려와 받았더니 갑자기 핸드폰 안테나가 안 잡혀 전화가 먹통이 되지 뭡니까..
결국 지친 몸을 달래며 집에 도착한 저는 어제 막 구입한 마사지 의자로 피로를 풀까 했는데.. 이 새 의자도 고장이 났는지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 제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어요.. 왜 저에게 이러신 것입니까??

주님:
그래, 내 말을 들어보거라. 오늘 아침 죽음의 사자가 네 머리맡에 있더라, 너를 살리기 위하여 나의 천사를 보내 싸우게 하였다. 그리하여 너를 늦게까지 자게 한 것이니라.
네 차의 시동이 늦게 걸리게 한 이유는, 너의 집 앞을 지나쳐 갔던 술에 취한 트럭 운전사 때문이니라
편안했어야 할 너의 점심 시간에 처음에 너의 샌드위치를 만들던 점원은 병에 걸려있었단다. 나는 너에게 그 병이 옮겨지기를 바라지 않았단다.
너의 핸드폰에 문제가 생긴 이유는, 너에게 전화를 건 그 사람이, 너에게 잘못 된 정보를 주려했기 때문이니라. 나는 너를 보호하고 싶었단다.
그리고 너의 새 마사지 의자는.. 네 집에 정전을 일으키려 하였기에 내가 그리했노라. 나는 네가 어둠 속에서 헤매길 바라지 않았단다.

그 사람이 민망해서 말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미안해 말거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안에서 나를 믿는 법을 배우거라
나: 예 믿겠습니다. 주님!
주님: 그리고 의심하지 말거라, 네가 계획한 하루보다 내가 계획한 하루가 더 나으리라.
나: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저에게 일어난 모든 일, 감사드립니다 주님!
주님: 사랑하는 내 작은 영혼아, 오늘 뿐만이 아니라 나는 항상 너희 안에서 너희를 돌보고 있단다..

참으로 공감되는 이야기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감사하며, 무엇에 대해 불평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불평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출16: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항의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 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습니다."

음식이 없는 것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좀 심합니다.  이집트 땅이 어떤 땅인데요?

  • 이스라엘이 노예였던 땅
  • 이스라엘의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아들이 태어나면 뺏어서 나일강에 던지던 곳
  • 벽돌을 만들면서 지푸라기를 안주던 곳

그러나, 음식 문제에 딱 사로잡히는 순간, 음식의 노예가 됩니다.  먹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을 지배한다.  다른 말로 음식의 노예가 되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로 데리고 나온 이유를 알게 됩니다.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이 아버지가 자식을 인도하듯이 이스라엘을 인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도한 광야는 먹고 살 것이 없는 곳이거든요.  사랑하는 아버지가 왜 그러셨을까요?

티모시 켈러 목사님:

You can get the people out of slavery quickly, immediately, but you can’t get the slavery out of the people quickly.

“백성들을 노예제도로부터 끄집어 내는 것은 빨리, 즉시 할 수 있으나, 백성들 속에 있는 노예를 끄집어 내는 것은 빨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집트에서 나왔다고, 하루아침에 노예 근성을 벗어버리고, 건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게 아니거든요.  그것은 과정적이에요. 시간이 걸려요.

화끈하게 예수 믿는 분들 계세요.  질병에서 나았다든지, 대형 사고가 낳는데 아무 일 없이 걸어 나왔다든지, 자식이 문제가 생겼는데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든지.  그래서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보다.. 믿게 되고, 교회 다니게 됩니다.  그런데 그 분들 평상시에 말하고 행동하는 걸 보면 예수 믿기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 분이 속사람까지 참되게 말씀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은 오랜 기간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음식을 가지고 가르치셨다는 것이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식이라는 것은 생존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것이잖아요. 자신의 밥줄이 걸린 문제에서, 즉 필수적 경제 영역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믿지 못하면, 그리고 행동으로 그 믿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주일날 예배 드릴 수 없습니다.  예배 드리러 와도 마음은 딴 데 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지 얼마 안되었거든요!  지난 시간에 그게 우리 식으로는 세례 받은 것이라 말씀 드렸어요.  하나님이 지금 막 세례 받은 초신자에게 새가족반을 하시는 거에요. 그 때, 제일 먼저 가르친 것은, (1) 예배를 어떻게 드리고,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였어요. 혹은 (2) 추상적인 신학을 가르친 것도 아니에요.  신앙인의 경제 생활부터 가르쳤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먹고 마시는 것에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사는 것부터 가르칩니다. (이건 저도 제 목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사실은 그게 진짜 하나님 믿는 거잖아요.  그것이 안되면 일관성 있게 신앙 생활이 안 되요. 일이 있으면, 주일에 예배 드리거나, 주중에 소모임 나오는 것이 힘들어요. 들쑥날쑥 해요.  그러다 어느 날 떨어져 나가요.  다시 홍해를 건너 이집트로 돌아가는 샘이에요.  먼저 필요한 것은 경제 생활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신 성품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거에요. 또 그것을 위해 믿음으로 과감하게 순종하는 거에요.  그 때 불안에서도 자유 하게 되고, 탐욕에서도 벗어나게 되요. 그래야 신앙의 진보가 있어요. 자연스럽게 주일날 예배 드리게 되고, 그리고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되요.

그것을 이해하면, 하나님이 굳이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하시면서, 특별히 이렇게 어려움을 겪게 하시는지 이해가 됩니다.

  • 하나님이 광야에서 가진 목적은, 빠른 이동이 아니라, 교육이었습니다.
  • 그래서 칼빈은 이것을 가지고 광야 학교, 혹은 광야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럼 하나님이 광야에서 뭘 가르치십니까?  신명기는 모세의 회고록이며, 마지막 고별 설교입니다.  오늘 이 사건을 돌아보면서,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첫째는, 만나를 통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가르치세요.

만나는 음식이에요. 그걸 먹어야 살아요.  그런데 만나가 어디에서 부터 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부터 와요.  만나를 통해서, 만나를 주시는 분을 알게 되요.

젖을 먹는 아이를 생각해 봅니다.  갓 태어난 아이는 나자마자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젖을 힘을 다해 빨아요.  젖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그 젖을 먹으면서 그 젖을 주는 어머니에 대해 알게 된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생각하게 되요.  그리고 더 나아가 젖이 아니라, 어머니를 사랑하고, 간절히 구하게 되요.

이와 같이 만나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어요.

  • 이스라엘은 남자만 60만, 여자, 노인, 어린이 합치면 150만~200만 정도
  • 그 많은 사람들이 먹으려면 엄청난 양 아닙니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되요.

더불어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을 배워요. 하나님이 하루만 능력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40년동안, 매일 같이 그 일을 행하세요.

참된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것을 삶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과 성품을 알게 되요. 신학적인 앎이고, 이성적인 앎이에요.
  • 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시거든요. 내 삶에서 그 말씀의 역사를 경험해요. 머리로 알던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요.
  •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더 잘 이해가 되요.
  • 이 선순환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참되게 하나님을 아는 거에요.

성도들을 보면, 어떤 분은 아는 건 많은데 체험이 없는 분이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체험은 있는데, 성경도 잘 모르고, 신학도 정립이 안된 분들이 있습니다.  어느 한쪽만이 강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삶이 건강한 신앙이며 신학인 거에요.  메르스 때문에 온 나라가 소동입니다. 학교가 다 멈추고, 경제적인 손실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전염병이니 다들 조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 좀 유난을 떠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이 상황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과 또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그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신 사랑을 알 때에, 이스라엘도 말씀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주시면서, 이스라엘에게 말씀으로 규칙을 주세요.

  • 하루에 먹을 만큼만 거두라 하세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이상 걷는다.  그 다음날 썩어요.
  • 또 주말에 안식일 전날에는 평소보다 두 배로 거두어 들이고, 안식일에는 만나 구하러 돌아 다니지 말고 쉬라고 하세요. 그러나 여전히 안식일에 쉬지 않고 나가 일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이스라엘은 노예였잖아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책임 있는 행동을 배우지 못한 거에요.  하나님이 인내를 가지고 그들이 자신을 신뢰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어느 분이 고아를 입양했다고 합니다.

  • 처음엔 그 아이에게 자기 물건을 사주거나, 용돈을 주면, 이 아이가 자꾸 그걸 어디에다가 감춰 두더래요.  고아원에서는 안 그러면 빼앗기거나 누가 훔쳐갔거든요. 아직도 생각하는 건 고아원에서 나오지 못한거에요
  • 양부모가 그 아이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너의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빼앗아 가지 않는다” 말해주지만, 오랫동안 감추는 습관이 고쳐지지 않더래요.
  • 인내를 가지고 이 아이를 일관성 있게 대할 때,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아이가 양부모의 진심을 알고, 신뢰를 배우고, 그리고 행동이 교정이 되더래요.

이스라엘이 처음 광야에 들어갈 때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마음이에요. “하나님 정말 말씀하신데로 하실까?”  하나님이 그것과 상관없이 신실하게 이스라엘을 대하세요.  그럴 때 이스라엘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을 믿게 됩니다.  그 때부터는 그들도 믿음의 삶, 순종의 삶을 살게 되요.  하나님 말씀을 전제로 삼아 자신들의 삶의 리듬을 맞춰갑니다.

특별히 생존에 관련된 일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듣게 되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요.

절박한 순간의 기도에 대해 생각해 봐요.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 앞에 꼿꼿하게 기도하지 못해요. 그렇게 기도 시작했다가, 기도 도중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가 끝날 때에는 납짝 업드려요.  기도 응답 받으면서 믿음이 생기는 거에요.  또, 그 과정에서 회개해야 할 것이 있으면 하나님이 회개도 시키세요. 마음과 생각을 바꿔놓으세요.  그 때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되요.

광야 학교에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가는 것을 하나님이 만들어 가세요.

셋째로, 그 믿음의 삶, 순종의 삶을 따라오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 극치가 안식일입니다.

“그리하여 백성이 이렛날에는 안식하였다.”

이것은 신비로운 것이다.  광야에서 안식을 누려요.   .

  • 애굽에 있을 때, 세상 가운데에서 죄의 종살이 할 때에는, 풍요로운 듯 하나, 마음도 몸도 쉼이 없었어요.
  • 또 홍해를 건너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마음이 불안하거나, 혹은 탐욕에 빠져요. 그 때에는 쉬는 날에도 스스로 쉬지 못하게 해요.
  • 안식일은 하나님이 외적으로, 객관적으로 주시는 거에요.
  • 그런, 오직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믿음이 있기에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만 누릴 수 있어요.

하나님을 탐욕함을 생각해 봅젖을 먹는 니다.

우리의 삶에 부족함을 느낍니까?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채우시고, 만족시킬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힘써서 압시다.  그 하나님을 간절히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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