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ing Free: 3.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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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와 해파리

여러분, 돌고래와 해파리의 차이를 아십니까?  네 물론 차이가 무척 많죠.

John Piper 목사님이 해파리와 돌고래를 이렇게 비교합니다.

  • 해파리는 물위를 둥둥 떠다닐 뿐입니다. 파도에 밀려다닙니다.
  • 그러나 돌고래는 그렇지 않아요. 돌고래는 헤엄을 쳐요.  돌고래의 속도는 약 시속 30km가 된다고 해요.   때로는 역방향의 해류를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방향의 해류를 타고 가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해파리가 되고 싶으십니까?  돌고래가 되고자 하십니까?

  • 하나님이 예수 믿게 해주신 것은 우리로 돌고래처럼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
  • 그런데, 정작 우리는 자꾸 자기가 해파리인 줄 알고, 해파리처럼 살때가 있지 않습니까?
  • 물로 해파리 중에는 큰 놈은 2m 짜리도 있데요. 그러나 해파리는 해파리인거에요.

좀 심각한 예기를 해볼께요.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명한 심리학자입니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2차 대전 때 아우슈비츠에 수감됩니다.  전쟁 후에 그가 심리학자로서 그 경험을 내부자이며 또한 참여관찰자의 입장에서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이름이 Man’s search for meaning 입니다.  우리 말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로 번역된 책입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는 그 수용소에서 일어난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대해 말합니다.

  • 그러면서 그는 수용소의 수감원들이 다른 수용소로 이송되는 것을 예로 듭니다.  그들은 그것이 사실은 사형당하러 가는 것으로 생각해도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럴 때, 몸이 아프거나 약한 자를 고르는 과정에서 수용소 수감자 사이에 투쟁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 자기 가족, 자기 친구가 그 이송 리스트에서 빠지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그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이 대치되야한다는 것을 압니다.
  • 그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 과정에서 도덕적 거리낌이 다 없어져 버리고. 생존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필요하면 잔인하여지거나 친구를 배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중에는 기적적으로 생존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돌아왔을 때에는 그들의 가장 선한 모습에 더이상 남아있지 않게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최선을 잃어버린 사람들

오늘 본문은 또 다른 생사를 오고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악재가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납니다.  15장부터 쭉 보면

  • 처음에는 쓴 물 밖에 없어 마실 수 없었고,
  • 그 다음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합니다.
  • 한 고비 한 고비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간신히 해결하고, 이제 한숨 돌리려나 했더니, 다시 한번 마실 물이 없어서 위협을 받습니다.

악재의 연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두 가지 증상을 보입니다.

첫번째는 다툼입니다.

  • 므리바라는 지명: 다툼
  • 상황이 어려워지면 처음에는 원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쌓이면 어느 순간 다툼으로 번지게 됩니다.
  • 특별히 다투었다라는 이 말은 사실은 법적 용어이다. 백성들이 지금 지도자 모세를 고소한 것입니다.
  • 실재로 화가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을 들어 모세를 치려합니다.

두번째는, 의심입니다.

  • 그곳의 지명이 맛사라고도 불렸습니다. 시험이라는 뜻입니다.
  •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과거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능력을 경험했다.
  • 그러나 오늘 다시 어려움이 찾아올 때 또 다시 의심이 든다.

잠시 멈춰서, 이스라엘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좀 불편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생존에 관련된 일입니다. 목숨이 오고가는 마당에 분쟁이나 의심이 듭니다.  그러나 이해는 들지만 안타깝습니다.  자신들의 최선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으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니에요.  이 일이 다 지나고 나서 찾아오는 후회와, 자신과 남에 대한 실망과, 원망은 이루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사람의 양면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 한쪽으로는 사람은 생존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 다른 한쪽으로는 존엄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면 좋겠는데, 많은 경우 둘 중 하나를 위해 다른 한 쪽을 희생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있습니다.
  • 그러나, 생존이 참된 생존 되기 위해서는 존엄성을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Best of Moses

감사하게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의 최선을 끄집어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

모세는 지금 최악의 상황에 있습니다.

  • 외적으로는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 내부적으로는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한다.

17:4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었다. “이 백성을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지금이라도 곧 저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

  • 모세도 사람입니다. 그의 부르짖음이 그의 흔들림을 보여줍니다.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모세라고 의심과, 두려움, 그리고 미움이 마음에 스며들지 않겠는가?

최선을 끌어내시는 하나님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가 분위기와 감정에 떠내려가지 않게 막아 줍니다.  도리어  최악의 상황에서 모세의 최선을 끌어냅니다.

출17: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서 가거라. 그리고 나일 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이 백성보다 앞으로 가거라”

  • 왜 그 말씀을 하셨을까요? 중세의 랍비 Abraham iban Ezra: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신 이유는 모세가 백성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라 해석합니다.
  • 더불어 생각해 봐요. 모세의 입장에서 두려움도 있지만, 더불어서 “자기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아무리 기적을 베풀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 이끌고 싶겠습니까?
  • “집어 치워” 말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백성들 앞서서 간다.

  • 이 장면을 보면서 생각나는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 바로 목자가 양 때를 이끄는 모습입니다.
  • 서양에서는 목자가 양 때를 뒤에서 몰고 갑니다
  • 이와 반대로 이스라엘에서는 목자가 지팡이를 들고 양 때 앞에 서서 간다. 그럴 때 양 때가 목자를 따라갑니다.

모세로 돌아옵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앞에서 그들을 이끌어서 마실 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걸 은혜라고 하는 거에요.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그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  그것을 위해 필요한 대가를 대신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 마음에는 미움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행함으로는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에요.
  • 속으로는 두려움이 있을 것이에요. 그러나 행함으로 담대하게 나가야 해요
  • 내면에 본인도 의심이 들며 흔들렸을 거에요. 그러나 행함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보이는 것이에요.
  • 그러기에 의지적 결단이 필요해요. 하기 싫은 내 맘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에요.

연극하는 것이 아닙니까?  위선자가 아닙니까?

  • 그 목적이 생명을 주기 위한 것일 때에는 아니에요.
  • 특별히 상대방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을것이 없는데, 그 일을 행한다면, 그것은 위선이 아니라 자기 희생이에요.

놀라운 것은, 그 은혜에 대한 의지적 행동이 있을 때에야, 백성에게 물을 주는 능력의 자리로 갈 수 있었다는 거에요.

  • 모세는 백성을 므리바 혹은 맛사에서 인도해서 호렙 산 바위 앞으로 인도할 수 있었어요.
  • 은혜의 사람이 다툼과 의심의 장소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 그리고 만족과 생명의 자리로 이끌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은혜의 사람이란

  •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과 서로에게 화해하게 합니다.
  • 은혜의 사람은 그것을 위해 대가를 치루는 사람입니다.

그 순간이 그의 최고의 모습이 나오는 시간입니다.

  • 상황이 최악이라고 나의 모습이 악으로 치달을 필요가 없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라고 최선을 포기할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최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요

사실은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대가를 치루셨어요.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쳤어요.

  • 지팡이는 나일강을 친 지팡이: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노예로 만들고 압제할 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나일강을 친다.   물이 피로 변했다.
  •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
  •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그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칠 때, 하나님이 그 바위 위에 서 계셨어요. 하나님이 맞으신 거에요.
  • 이스라엘이 맞아야 할 것을 하나님이 대신 맞으신 거에요.
  • 그것을 통해 불평하고 다투고 불신앙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져요.
  • 그러나 동시에 자격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은혜가 나와요.
  • 그래서 바위에서 생명을 주는 물이 나오는 거에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0:4 에서 모세가 내려친 그 바위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맞아서 깨어짐으로,
  •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이 형벌을 면하고,
  • 아무 자격없는 자가 생명의 은혜를 내어 주신거에요.

평택의 적십자 회원들

어제 뉴스에서 두개의 감동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첫째는 평택의 적십자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

  • 잘 아시지만 평택이 메르스가 시작된 곳이잖아요.
  • 도시의 모든 것이 위축된 상황인데,
  • 적십자 자원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다시 봉사를 시작하면서, 이들이 홀로 사는 노인들을 다시 방문하고 돕기 시작하는 것이 뉴스에 나왔어요.
  • 그 자원봉사자 한명이 인터뷰하는 것이 나와요. “언제까지 위축돼 있을 수는 없잖아요. 누군가가 먼저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저희가 먼저 시작했습니다”
  • 외부자가 가기에는 아직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내부자로써는 그것을 할 수 있는거에요

적십자라는 것 자체가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에서,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 아닙니까?

  • 그 정신의 중심에 십자가를 세겨놓았다는 것이 얼마나 상징적입니까?

이 자원봉사자들의 사랑과 희생과 용기가 저에게 감동이 됩니다.

여전히 외부자가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에요.  그러나 내부자로서 이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지하면서, 그 일을 담대하게 할 때, 이들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요.

또 하나가 있어요.

  • 미국의 한 21살 된 백인 청년이 Charleston Church라는 흑인 교회의 성경공부에 참석해서는, 그 자리에서 총으로 9명을 죽였어요.
  • 그 중에는 그 교회 목사님도 있었어요.
  • 이 사람이 재판을 받을 때, 그 주의 관습이 있어서, 피해자의 가족들이 그 살인자에게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순서가 있어요,
  • 한결같이 나와서 하는 말은 두 가지에요. 첫째는, 그들이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고 말해요.  어떤 사람은 “내 몸의 세포가 다 아프다”라고 말해요.
  • 그런데, 그 이후에 그들이 또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 “용서한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그들이 이 사람에게 “예수 믿으라 말해요.”
  •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너를 축복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해요.

이것이 충격이 되었어요.  그 중 한명이 기자 회견에서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이 평범한 흑인 여인이 대답해요.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마음에 미움의 자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게 예수 믿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비 상식적인 일을 한다고 해요.  그러나 이런 비 상식적인 일이 있기에 이 세상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교회를 너무 열심히 다니면 “광신”이라 하잖아요.  그러나 이런 광신이 우리 사회에 넘쳐서 문제가 아니라 부족해서 문제 아닌에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더 깊은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믿는 자로 어떤 상황에서도 은혜의 사람 되게 하십니다.

예배

이 모든 일을 말씀 드리고 이제 여러분을 경배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인도한 장소는 바로 하나님의 지성소입니다.

그 바위 위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그곳에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참된 목자가 되어서 인도해 주시고,
하나님 서 계신 반석에서 생명의 물이 흘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게 예배 아닌가요?

그걸 묵상하면서, 예배를 시작할 때 늘 낭송하는 시편 100편이 생각나요.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지금의 나의 육신의 목마름을 채워주시는 것을 통해,
더불어 나의 중심의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그것을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막대로 치시는 하나님

  • 모세는 막대 지팡이를 들고 갔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 모세는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셔 갈증을 해소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셨습니다
  • 모세는 반석을 지팡이로 내리쳐 물을 내었지만, 예수님은 생명의 물을 내시기 위해 창에 찔려 허리에서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그러함으로, 우리에게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영원한 생명의 물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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