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ing Free: 4. 더이상 혼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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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이 쓴 책 중에 아담: 하나님이 사랑하는 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루는 그가 속한 데이브레이크 공동체로 검은 리무진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캐시라는 70대의 부유한 여인이 내립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 말합니다.  몇 년 동안 정신과 의사를 만났지만 더 나빠지기만 합니다.  그녀는 자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뉴욕 타임즈 사회란에서 대통령과 영부인으로부터 백악관 오찬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읽을 때마다 그 명단에 내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침체가 됩니다.”  또, 그녀가 말합니다. “내가 가진 돈의 반도 갖지 못했거나, 내가 맺고 있는 연줄의 반만큼이나 연줄도 없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매력적일 때, 저는 매우 매우 침체됩니다.”  그녀는 뭔가를 잃어버릴 때마다 성 안토니 성당에 1000불을 헌금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랬더니 예배 드리러 가면 사제가 묻는답니다.  “이번 주에는 뭐 잃어버린 거 없나요?”

그녀에 대해 나우웬이 이렇게 평합니다.

“여기 인간이 꿈꿀 수 있는 모든 것—돈, 명예, 연줄, 대단한 권력—을 소유한 한 여성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부유하지만 가난한 사람.  유명하지만 자기 회의에 빠진 사람.  위대하지만 너무나 작은 사람이다”

이 말을 한 후에 나우웬이 말합니다.

“순간 그녀의 침체가 내게 와 닿았다.  캐시는 우리 모두가 하는 동일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모아 놓은 세속의 장식물 없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안다 해도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할까?  우리가 더 이상 그들에게 쓸모 없게 되면 우리를 잊어버릴까?’”

솔직하게 말하며 시작합니다.  이 질문은 나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논리적인 논증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진정한 도움은 참된 사랑을 만나는 데에서 올 것입니다.  사랑과 인정과 돌봄을 받을 때, 자기 자신과 깊은 관계를 느끼게 되고, 그러면 이전과 다르게  더 이상 침체되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는 연약한 모세를 만납니다.  그는 “신화”를 쓴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상황에서 그는 홀로 돌파구를 낸 사람입니다.  그러나, 천하의 모세도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아무 이유없이 침입자가 공격해 옵니다.  이제 모세는 젊은 여호수아를 내보내 싸우게 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지고 산에 올라가 그 팔을 듭니다.  팔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고, 팔을 내리면 아말렉이 우세해집니다.  전쟁입니다.  팔을 올리고 있어야하겠는데, 거기에 나와 공동체의 운명이 달렸는데, 어느 순간 더이상 피곤해서 팔을 들 수 없는 순간입니다.  한계 상황이에요. 위대한 지도자가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신기하게 그 한계의 상황에서 그는 신비한 체험을 합니다.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 와서 모세를 앉게 하고, 그들이 각각 그 양쪽에 서서 그의 팔을 붙들어 올렸다.  해가 질 때까지 그가 팔을 내리지 않았다”

모세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게 해 준 것은 그의 곁에 서서, 그의 지친 팔을 붙들어 올려 준 친구의 손이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없었을 거에요. 그러나 내면에 깊은 일치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행동이에요. 그러나 그 감격과 감사와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승리를 가져다 줍니다.

이것을 어떻게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렇게 부르기로 했어요.  “은혜적 사랑”

벌거벗은 모세를 보면서,  그를 비난하지도, 그를 떠나지도 않고, 여전히 그를 기뻐하며, 돌보며, 섬기는 것.  그 은혜적 사랑이 있는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은혜적 사랑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사랑이 있음으로, 인생을 계속 살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그가 태어난 때는, 바로가 히브리인들에게 태어난 아들들을 죽이던 때에요.  태어나서 석달이 되었을 때에 더 이상 감출 수 없어서, 그 어머니가 모세를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흘려 보내요.  절대적 고립의 순간이에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무기력한 상황이에요.  바로의 딸이 그를 건져내고, 히브리 아기인줄 알면서도 그를 양자로 삼아줍니다.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 오히려 이집트 왕자가 되어 왕궁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어요.

그의 나이 40이 되었을 때에, 이집트 인을 죽이고 도망쳐서 미디안 땅으로 도피하게 됩니다.  이집트 왕족의 복장을 한 자가 홀로 사막을 건너왔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문제가 있는 것이 뻔히 보였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회피하고 외면할 때, 그 땅의 제사장 이드로가 그를 맞아들이고, 자신의 딸까지 주어 사위로 삼아줍니다.  그 땅에서 가정을 꾸리고 양 때를 칠 수 있었어요.

강야에서 므리바에서 물이 없을 때, 백성들이 원망하고 돌을 들어 그를 치려고 해요.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그들 앞에 서서 걸어갑니다.  이미 다툰 상황입니다. 모세를 안 따라가면 그만인 상황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신뢰하고 따라가주는 사람이 있기에, 호렙산 바위 앞까지 갈 수가 있었어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섰을 때, 나의 능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있어야만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신비한 섭리에 대해 생각해 봐요.  모세의 인생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면 decrescendo에요.  그 인생의 첫 40년은 왕궁에서의 부와 권세를 누리는 삶이었어요.  그 다음 40년은 꼭 그렇게 화려한 삶은 아니지만, 좋은 집안 출신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며,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는 기업이 있는 안정된 삶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서 모세를 부르시고, 또 인도하셔서, 광야로 이끌고 갑니다. 그의 마지막 40년의 삶은 셋째는, 불안정한 삶입니다.  처음에는 먹고사는 것조차 어려웠고, 그로 인해 여러 번 불평이 있고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날 벌어서 그날 먹을 수 있지만, 여전히 사는 곳이 그리 안전하지 않아 무단침입을 받기도 합니다.

질문이 생겨요:  하나님이 왜 그런 일을 하십니까?    하나님 왜 모세를 그렇게 인도하십니까?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러나 그것만이면 모세는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실은 모세에게도 그 과정은 치유의 과정인 거에요.

미국 포틀랜드에 Imago Dei Community라는 교회가 있어요. 그 교회를 세운 분은 Rick McKinly라는 분이에요.  그의 사역을 통해 많은 젊은이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어요.  그분이 어느 podcast에 나와서 자신의 연약함에 대해 고백해요.  그는 자신은 일을 하는 데에는 믿음이 있데요. 사역을 만들고 일이 되게 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다는 거에요.  그의 약점이 있어요. 과거에 예수 믿기 전에 문제가 많던 사람이었거든요.  이제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부족하다고 고백해요.

가만 보면 모세가 바로 이 Rick 과 같아요.  지금까지의 모세의 믿음은 능력을 행하는 믿음이었어요.  이제 오늘 하나님이 그를 한계 상황으로 몰아붙입니다. 신기하게 그 한계 상황을 통해, 그는 남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요.

신기한 것이 있어요.  지금까지 광야에서 모세는 늘 One Man Show였어요.  홍해를 가를 때도 혼자 기도해야 했고, 혼자 행동해야 했어요. 물이 없거나 먹을 것이 없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오늘 모세가 은혜의 사랑을 배우고 난 후에, 그 다음 장 18장에 가면 이스라엘의 공동체가 조직이 구성되고, 리더들이 세워지고, 모세와 함께 동역하는 동역자들이 세워져요.  모세가 은혜의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이스라엘이 함께 모인 개인들이 아닌, 참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  은혜적 사랑은 내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거나 내면을 치유하는 것 뿐 아니라, 외적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된다.

13 이렇게 해서,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그 백성을 칼로 무찔렀다

많은 분들이 오늘 본문을 가지고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준 것은 모세가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모세가 손을 들고 내리지 않은 것이 중보기도이고, 기도가 멈추면 안된다 말합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는, 모세가 손을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었기에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이에요.

하나님은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세요.  혹시 여기 주변에 어려운 상황에서 고립된 자가 있습니까?  가서 그에게 은혜의 사랑을 베풀어 주세요.  대단한 큰 일이 아니어도 되요. 찾아가 그 손 한번 잡아주는 것을 통해 그가 계속 살아갈 이유가 생기고,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거에요.  또한 그 은혜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가운데 지금 한계 상황에 처한 자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인도한 것을 믿으세요.  그것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시고, 나로 자신과 화해하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는 것인 것입니다.

오늘 모세의 두 손을 든 모습을 통해 연상되는 또 다른 한 분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요.  그분께로 나아오십시오.  모세는 한계 상황을 통해 은혜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그 분이 그렇게 하심은, 그러함으로 우리로 하나님의 은헤의 사랑을 받도록 하게 하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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