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Father-daughter duo in Chatpal, Kashmir, India

Father-daughter duo in Chatpal, Kashmir, India” by sandeepachetan.com // CC by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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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사님이 새로 온 성도의 가정을 심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가 질문을 하더답니다.  “교회를 다니는데, 신앙이 성장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죠?”  그 목사님이 속으로 생각이 들더래요. “아니 당신 신앙에 대해 나에게 물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치만 그렇게 말하면 안되니까, 물었데요. 하루에 기도는 얼마나 하십니까?  그 분이, “식기도 빼고는 안해요”하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대답을 합니다. “기도를 안 하니 신앙이 성장하지 않지요. 기도를 해야지요.” 그랬더니 이 분이 말씀하더래요. “저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요.”  목사님이 찬송가 책을 가져오라 하시고 뒤에 보면 교독문이 있으니 그거 읽으면서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 성도가 그 말씀을 그대로 지켜서 기도를 매일 하면서, 나중에는 기도 대장이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도에 성공하였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즐겨야 할 것은 기도이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가지고,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우도록 합니다.

이방 사람들 vs. 기독교인

기독교인의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를 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오늘 본문에서 대조가 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봅니다. 바로 이방사람들과 기독교인입니다. 이방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 상황에 맞춰 보면, 결국 믿지 않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차이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는 보통은 이방인.. 믿지 않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고, 기독교인들은 기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지 앟습니다.

  • 이방 사람들 기도할 뿐 아니라, “말은 많이 한다"고 말해요. 기도를 많이 하는 거에요.
  • 그리고 기독교인도 기도해요. 어쩌면, 비기독교인 중에 기독교인들 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는 사람도 많아요.
  • 다른 말로 기도는 기독교만의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방인들과 기독교인들의 기도는 비슷한 것인가요?

  • 그렇지 않습니다. 그 기도는 전혀 다른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이 “너희는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 예수님은 그 차이를 “하나님 너희 아버지"라는 말로 말씀하십니다.
  • 그러면서,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나면 질문이 생깁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 대답은 “아닙니다” 입니다.  바로 그 다음 줄에 뭐라 말씀하세요?

  •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기도하지 말라는 거에요 기도하라는 거에요? 기도하라는 거에요
  • 또 몇 줄 아래 가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주시고“ 필요한 것 구하라는 거에요? 아니면 구할 필요가 없다는 거에요? 필요한 것 있으면 구하라는 거에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가?

  • 예수님은 기도할까 안할까에 대해서 대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 “어떻게 기도할까?”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Tim Keller가 이것을 잘 요약해 준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도 기도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 생각하며, 교회에 속했으며, “우리 아버지”를 암송하지만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에게 나가지 않는다.  그들은 이방인들의 기도를 한다.  사실, 그들은, 어떤 면에서, 이방인처럼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열쇠는 당신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는 원인이 무엇인가?이다.  그것이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교회에 다니고, 바쁘고,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 교회에서 열심을 내는 것, 그르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 믿지 않는 사람의 이유와, 믿는 자의 이유가 다른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하숙생과 가족이라는 패러다임을 가지고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재작년에 신촌의 모 대학 앞에서 1994년의 하숙집에서 벌어진 일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히트를 쳤어요.  어느 부부가 집을 큰 걸 사서 자기 대학생 자녀들과 함께 살 뿐 아니라 하숙을 받아서 자식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대학생들과 함께 집에 살았습니다.  집에 대학생들이 우굴거리는 거에요.

평소에는 내 자식들이나 하숙치는 아이들이나, 나이도 비슷하고, 같은 식탁에서 같은 밥 먹어요.  그러나,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어요.

하숙생: 괄호치고 비즈니스 관계라고 했는데,

  • 그들이 내 집에서 사는 이유는 나와 계약을 했기 때문이에요.
  • 그리고 내 집에 계속 머물고, 내 식탁에서 밥을 먹으려면: (1) 매달 하숙비를 내야 해요 다른 말로 내가 무엇인가 제공할 것이 있는 거에요. (2) 그 뿐 아니라 내 집에서 못된 짓 하거나 사고치면 안되요.  기본적으로 규칙을 지켜야 해요.  다른 말로 퍼포먼스를 내야만 집 주인에게 서비스를 받을 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 다른 말로 이건 조건적인 거에요.

그러나 내 친 자식들은 어때요?

  • 그들이 내 집에 사는 이유는 나에게 하숙비를 내서도 아니에요. (오히려 돈을 받아가겟죠)
  • 그들이 공부를 잘해서도 아니에요.
  • 착해서도 아니에요. 어쩌면 가장 말 안 들어요.
  • 그러나 단지 내 자식이라는 이유 때문에, 내가 먹이고 입히고, 내 집에서 재우는 거에요.
  • 언약이라 해요. 먼저 관계가 성립이 되요.
  • 그러면 공부 못해도 되나요? 아니에요. 관계가 있으니까, 내 새끼니까,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거에요
  • 말안듯고 못되게 살아도 되나요?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나와 헌신한 관계니까, 바르게 살고 친밀감을 나눠야 하는 거에요.

이것을 이해해야 해요.

  • 오늘 예수님 기도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쳐줄 때, 주기도문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라고 하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하숙생으로 기도하라는 거에요? 가족으로 기도하라는 거에요?
  • 기도를 많이 하면, 지극 정성으로 하면, 하나님게서 응답하신다는 것은 하숙생의 자세인 거에요.
  • 내 아버지니까,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거에요.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것을 아니까, 기도를 열심히 정성을 다해 하는 거에요.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하실 때 “우리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할 때

  •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신 것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으로 택함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 “우리 왕”이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은 우리 왕이신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 친구라고 하지도 않으셨다: 친구는 비즈니스와 가족의 관계의 혼합형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어느 정도는 얼마나 잘 하느냐—performance–에 달려있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우리 하나님은 바로 “우리 아버지”입니다.

  • 주의할 것: “우리 아버지”는 가족 용어라는 것입니다.  왜? 가족은 현실에서는 그리 이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자매 간에, 말썽 피우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에, 그들과 계속 긴밀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 전히 서로의 삶에 투자하고, 여전히 공공의 목표를 위해 같이 갑니다.
  • 그래도 내 형제-자매입니다.  그래도 내 부모이고, 그래도 내 새끼인 것입니다.  그래도 내 남편-내 아내인 것입니다.
  • 족은 현실에서 낭만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그 어느 관계보다도 강력한 개념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명혹하게 하는 순간에,

  • 우리가 누구인가가 정확해 집니다.  요한복음 1:12절에 이러한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것이 예수 믿는 자의 본질인 것입니다.
  • 이방인에 대해 무엇이라 말해요? 그들은 기도를 계속 해요. 기도를 많이 해요.  그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 순서가 바뀌어야 해요. 기도를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 예수를 영접하고, 예수의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십니다.  그게 예수 믿는 것이다.

입양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입양하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세요. 그 중에 특별히 장애아이를 입양하시는 분들 계세요.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 아이를 놓고 생각해 봅니다. 그 아이가 잘나서 입양되는 것입니까? 아니거든요.  이유 없이, 조건 없이 입양되는 거에요.  입양은 아이가 주체가 아니에요. 아버지가 하는 거에요.  그리고 입양은 행동이나 본성이 바뀌는 것이 아니에요.  아이가 변하는 것은 우선 입양해 놓고, 그 아이를 사랑해주고 가르쳐 주면 변할 꺼에요.  그러나 본질적 변화는 그 아이의 위상이 변하는 것이고, 법적인 변화가 있는 거에요.

요한복음 17장에 예수님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사랑하신 것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입양한 아이에게 못하는 말이 있어요: “너 그 따위로 할꺼면 내 집에서 나가”라는 말은 할 수도 없는 것이고, 해서도 안됩니다.  아니에요. 잘못하던지-잘 하던지, 잘났던지-못났던지, 너는 늘 내 집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권위로 우리가 누구인지가 변했어요. 아무것도 아닌 자에서 소중한 자가 된 것이에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 친자식 사랑하듯이, 내가 너를 사랑하고, 용납하고, 너에게 헌신하겠다.”

어떤 분은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너무 쉬워서 잘 못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쉬운게 말이 됩니까?  그러나 그렇게 말한다면 아직도 하나님 집의 하숙생인 것입니다.  이방 사람과 기독교인의 차이는 기도를 하는가-안 하는 가, 혹은 종교적인가-종교적이지 않은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즈니스의 관계인지, 아니면 가족의 관계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종교와 무관하게 살았던 사람, 즉 기도와 상관 없이 살았던 사람이 기독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종교인이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이전과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이전에는 예수님을 모범으로 봤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서 모방할 대상으로 삼았어요.  그러나 예수를 이제는 믿음의 대상으로 봐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어요.  예수님 분명히 우리에게 어느 정도 모범이 되세요. 그러나 이건 알아야 해요.  그건 예수를 도덕적 관점에서 보는 거에요. 그러나 예수님은 올바르게만 사신게 아니에요. 장님을 눈뜨게 하고, 오천명을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먹이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어요.  그것도 따라할 수 있나요?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가 내 죄의 대가를 치루고 죽어야 하는데, 그 분이 나 대신에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살아야 할 때, 그 분이 나 대신 그 삶을 사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입양이라는 것, 그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그것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자녀들만이 할 수 있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이건 하숙생은 할 수 없는 기도입니다.  하숙생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하숙비를 냈는데?”라는 패라다임인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했으니, 내가 받아야 할 것을 받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감사가 없어요. 받아야 할 것은 받은 것이다.  30분 쯤 기도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하숙생은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이것도 해주시고, 저것도 해주시고” 요구만 하게 된다.  그러나, 30분을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만 하라고 하면… 그는 그것을 할 동기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을못받으면 냉담할 수도 있어요. “내가 제대로 살고, 해야할 일 다했는데, 왜 기도 응답을 안 해주시죠?”  안절부절 못할 수도 있어요. “내가 제대로 안 살아서 그래. 제대로 봉사도 안하고 해서 응답 안해주시는 거야.”  둘다, 자녀가 아니라 하숙생으로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회개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회개해요. 예수를 꼭 믿지 않아도 잘못한 것에 대해 성잘하고 뉘우침이 있어요.  예수 믿는 자의 회개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자들은 자신들의 죄 뿐 아니라, 의로움도 회개해요.  예수 믿는 사람은 자신들의 최선의 행동이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한 행동이 마치 월세를 낸 것과 같은 거에요.  선한 행동을 했으니 모든 일들이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뭐가 잘못되면, 혹은 기도한 것을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으면, 화를 내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선물이고, 하나님의 사랑이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시며라는 기도가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할 수 있는 두 번째 기도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라는 기도이다.

Tim Keller목사님이 중요한 포인트를 말하세요.  “오늘”이 아닌 것이 있어요.  오늘은 “한주에 한번”이 아니에요. 혹은 “한달에 한번”이 아니에요.  오늘은 쉽게 말하면 “매일” 구하는 거에요.  한달에 한번 구하는 것은 직원이에요.  매일 구할 수 있는 것은 자식만 할 수 있는 거에요.

매일 구한다는 뜻이 무엇일가요?  꼬맹이들이 부모에게 때쓰는 것을 생각하시면 되요.

  • 첫번째는 작은 일도 구하라는 거에요. 하찮은 일을 일일히 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할 수없어요. 오직 자식이 부모에게 구하는 것이에요.
  • 두번째는 구할 때 뻔뻔하라는 거에요. 아빠니까. 미안해 하지 말고, 계속 구해도 되요.  언제까지?  줄 때까지

하나님이 내 아버지세요.  아버지께 내가 작은 일까지 늘 간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그것을 응답해 주실 때까지 끊이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해요.

그러면 이 구절이 이해가 되요.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종교생활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사람, 오직 자식만이 할 수 있는 기도에요. 우리 아버지가 되기 위해, 우리를 입양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자기 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내어주셨어요.  그 아들이 죽기까지 내어주었어요.  그러니 이제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있으므로, 아들을 향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나에게도 쏟아짐을 믿고 받아들이세요.  그럴 때, 하나님을 더 깊이 예배하게 되고, 그래야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요.  그럴 때, 주저없이, 부끄럼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날마다, 나의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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