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찬미 (동경).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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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주부터 주기도문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에 대해 배우도록 합니다

그걸 제가 화면에 뭐라고 썼나요?

  • 찬미. 영어로 adoration.
  • 괄호로 뭐라고 썼나요? (동경)

찬미가 무엇일까요?

예전에 유행가가 있었어요.  아마도 여러분도 아실꺼에요.  가사를 아시는 분은 같이 불러주세요.

  • “한번 보고 두번보고 …” (그 다음에 “자꾸만 보고 싶네“)
  • “아름다운 그 모습을“ “자꾸만 보고 싶네“
  • “그 누구나 한번 보면“ “자꾸만 보고 있네"

왜?  자꾸만 눈이가요?

  • 미인이기 때문에
  •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게 바로 찬미에요.

찬미에 대해 네 가지를 생각하게 되요

첫째, 사람은 찬미할 대상을 원해요.

  • 아름다운 것, 또 뛰어난 것을 보면, (1) 기분이 좋아져요. (2) 그리고 경이감에 빠져요.
  • 그건 본능적인 거에요
  • Victor Frankle.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그는 수용소에 오랫동안 갇혔습니다.  몸이 망가졌어요: 많이 혹사당하고 제대로 먹지 못해서 제 모습이 아니에요.  정신도 무너졌어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수도 없이 모욕을 받아요. 그리고 수 많은 비인간적인 죽음을 목격하거나, 그것에 대해 들어요.   그 때 마음이 무감각해지는 것을 고백합니다.
  • 그런데, 하루는 밖에 숲에서 노역을 하고 있는데, 동료가 급하게 오더니 자기를 어디로 끌고 가더래요.  어딜 가나 하고 가서 봤더니, 해가 산을 넘어 지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장관이더래요.  둘이서 말을 잊고 한참을 쳐다보는 것을 말해요.  아름다움과 놀라움이라는 것 그건 먹고 살만해야만 되는 게 아니에요. 만일 그렇다면 배고픈 예술가는 없어요.  아니에요 영혼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에요.

둘째, 경이로움을 볼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말과 행동으로 찬미하게 되어있어요.

  • 예쁜 아기가 있어요. 여인들 그걸 보면 어떻게 반응해요?
  • “어~ 너무 예쁘다. 어~ 무슨 애가 이렇게 코가 높아? 애기가 앞통수, 뒷통수가 예술이네.”
  • (1) 그것은 본능적인 거에요.
  • (2) 칭찬, 긍정. 그리고 존중과 존경을 주는 것이에요.

이 세상에 찬미로 가득해요.

  • 할아버지들 모임에 대해 들었어요. 손주에 대해 서로 자랑해서, 자랑하려면 만원씩 돈 내야 된다고 약속을 했데요.
  • 연인들끼리 서로 찬미해요.
  • 자전거 타시는 분은 그 시골길을 칭찬해요
  • 야구 팬은 자기 팀을 응원해요
  • 날씨를, 좋은 와인을, 주부는 예쁜 그릇을, 관객은 배우를, 자동차를, 대학교를, 애국자는 나라를, 아름다운 꽃을, 학자나 정치가를

중요한 것이 있어요.  겸손한 사람일 수록, 가장 균형 잡히고 능력있는 사람일 수록 상대방을 칭찬하고 감탄하고 높여줘요.

셋째, 찬미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사람도 끌여들여요

  •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는 거에요? 같이 먹는 거에요? “ 같이“  아니 왜 맛있으면 혼자 먹지 그걸 나눠 먹죠?  “맛있지 않냐?” 그러면, 상대방도 “어 그지. 진짜 맛있다.” 맞장구를 쪄춰야 더 맛있는 거에요.  참된 찬미의 대상을 발견하면, 그것의 전도사가 되게 되어있어요.

마지막으로, 행복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 건강한 찬미의 대상이 많은 사람입니다.
  • 생각해 보세요.  아침에 눈을 뜨고 가족을 보는 순간에 칭찬이 입에서 나오는 사람과, 짜증이 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요?  음식을 먹으면서, 그 맛과, 향과, 모양을 보면서 칭찬하는 사람이 행복해요? 아니면 죽지 못해서 먹는 사람이 행복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칭찬해 줄만한 사람이 있는 사람이 행복해요? 아니면 직장에 마주치기도 싫은 사람이 있는 게 행복해요?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찬미할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계십니까?

그러므로 다시 주기도문을 돌아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그걸 다른 말로 찬미라고 하는 거에요.  하나님을 정말로 만나면,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영광과 위험과 아름다움과 사랑에 푹 빠져들게 되거든요.

시편 96:6 주님 앞에는 위엄과 영광이 있고, 주님의 성소에는 권능과 아름다움이 있다.

여러분 안구 정화이라는 말 아세요?

  • “눈 버렸다"라는 말은 아시죠? 추한 것, 하잘것 없는 것을 보면 그 표현을 써요.
  • 안구 정화는? 보통은 여신급의 여인을 볼 때 하는 말이에요.
  •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십시오.”의 뜻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보고, 그 권능과 아름다움을 보니 내 안구가 참되게 정화되었다는 뜻이에요. 그 경이로움을 맛보면,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요  하나님 아버지를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습니다.

그걸 시편기자가 이렇게 표현해요.

시84:1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시84:2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 부릅니다.

이 시를 쓴 사람을 놓고 생각을 해봐요.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과 아름다움을 봤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좋던지, 그것을 사모한데요.  행복한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예배가 즐거웠을까요?

예배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나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에요.  신비롭게도, 그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드러날 때, 나에게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몰려들어요. 그러므로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실은 맨 앞에 하나님을 찬미하는 거에요.

많은 분들이 예배를 한정식 A세트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예배의 앞부분은 애피타이저에요.  메인 코스를 “설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좀 늦어도 메인코스만 먹으면 된다라고 생각해요.  아니에요. 틀렸어요. 맨 앞에 시작이 메인 코스에요.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얼굴을 환하게 비추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그 분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에요.

우리가 선포하잖아요

영원히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모든 은총을 기억하면서

이 시간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나이다.

이 얼마나 소중한 찬송입니까!  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입니까!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러면서 또 하나를 생각해요.  예배가 소중하고, 그리고 기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경험하고, 그래서 내 입에서 찬미가 흘러나오는 것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제 일순위를 두세요.  그것이 바로 “거룩하게 하는 것이에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Q: 사람에게 제일순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답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크고 변하지 않는 행복을 주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 말할 것이에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아름답고 위엄이 있는 것들을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것들을 보며, 감탄하고, 찬미하고, 그러면서 행복함을 알게 해 주셨어요.

그러나, 그것들은 가장 큰 것도 아니고, 영원한 것도 아니다. 꽃은 시들어요.  여인의 아름다움도 사그라져요.  며칠 전에 집에서 TV를 틀었더니, 우연히 돌아가신 고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가 나와서 들었어요.  그분이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가지고 설교를 하세요.  이 세상에서 부자였던 사람이 죽었어요. 자기는 이 땅에서처럼 죽어서도 천국에 가서 잘 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죽어보니, 자기는 지옥에 가서 고통을 받게 되었어요.  왜 그럴까요? 돈은 죽고 난 다음에는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이에요.

사람마다, “이것만 있으면 내가 행복할 것이다”라구 구하는 것이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죽음 너머로 가져갈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썩어 없어질 것이에요.  하나님은 가장 영화로우시고, 가장 아름다운 존재이시고, 영원히 계신 분이세요.

하나님이 이 땅의 것들을 주신 것은 한편으로는 이 땅에서 그것들을 누리며 행복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은 그림자에 불가해요. 참된 실체는영원한 하나님과 그 분의 나라에요.  그러므로 이 땅의 것들을 주신 것은 그것을 통해,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사모하도록 하신 것이에요.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정말로 주셧다는 거에요.  가장 구체적으로는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어요.  사도 요한이 말하잖아요. “우리가 그를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렇다면,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해야할 일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세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 후에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그 영광중에서 우리의 제사장 역할을 해 주세요.  그러므로 그를 믿을 때 나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존귀와 아름다움을 보며,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우리에게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행복은 빼앗기지 않을 것이에요.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말해요

롬8: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롬8: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행복하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영원토록 빼앗기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해 주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할 수 있어요.  답을 봅시다.

A: 사람의 제일순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그것이 될 때에 사실은 우리는 영원히 빼앗기지 않고, 변하지 않는 행복을 얻는 것이에요

이것의 첫번째 적용점은 예배입니다.  대단히 깊은 이야기에요.  그러나 간단히만 말할께요.  하나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고 말하면, 하나님 밖에 하나님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다고 말함으로, 하나님을 하나님 아니라고 말하는 거에요.  하나님보다 더 즐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 밖에 하나님보다 더 큰 기쁨의 근원이 있다고 말함으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는 것이에요.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는 순간, 하나님 아닌 것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함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우상으로 만든 것이에요.

이 중에 예배를 좋아하지 않는 분은 없을 꺼에요.  그러나 그것이 예배에 대한 헌신과는 다른 거에요.  그러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 여러분은 가장 좋은 것을 빼앗기는 사람이에요.  예배를 가장 중요하고, 가장 소중하고, 가장 우선순위를 두는 결정이 필요해요.  영원토록 할 것이니까.  일상에서 예배를 드리며, 주일에 성도가 함게 모여 드리는 예배가 중요해요.

또 하나 적용점이 있습니다. 기도의 순서 입니다.  기도할 때, 제일먼저 해야할 것은 누구에게 기도하는 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에요: 누구에게 하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여기까지는 잘 한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보통은 바로 “간구"로 뛰어들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찬미“ 부터 하라고 해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하나님”이 될 때야,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가 올바로 잡히기 때문입니다.

간구: 간구라는 것은 나의 세상에 대한 관점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라는 것은 내가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찬미가 간구 앞서지 않으면, 나는 이 세상에서  나의 진짜 필요가 무엇인지에 대해 혼란을 갖게 되요.

가만지 자신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내가 이것만 있으면 만족할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험에 합격하는 것입니까? 물질입니까?  로멘스 입니까?  이성에게 매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이런 것들은 그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지만, 내가 하나님보다 더 필요하다고 하는 순간 나에게 우상이 된다.  그게 내 우상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기도의 일관성을 통해 알 수 있다.  그것이 내 우상이라면, 나는 그것들이 없으면 열심히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있으면 기도를 멈출 것이다.  그리고 제가 예언합니다. 그것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나를 파괴할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때에, 나는 무엇을 구해야할지를 정확히 알고, 온전한 기도와 그 속에서의 평화와 만족을 누리게 된다.

두번째로 참회의 고백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관점입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은 내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 없다면,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도 나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내 말고 딴 여자랑 바람 핀 남자가 있습니다.  아내가 그를 받아들였고, 또한 목사님과 상담하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는 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알고 보니, 그는 성에 대해 보수적 성향의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또 자식을 향한 기대가 너무 큰 부모 밑에서 자란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높이 생각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음에도, 여전히 부모님을 실망시킨 것에 대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높인 것을, 하나님 밑으로 내려서게 하지 않을 때까지, 그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높이며 거룩히 여길 때에만, 그는 참된 용서와 자유를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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