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회다: 2. 성도 구실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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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녀들을 생각해 봐요.  나이가 들면서 아이가 천천히 자랍니까? 어느새 후딱 자랍니까?  어린 아이를 가지신 분은 천천히라 할 것이고.. 아이를 다 키우신 분은 아마도 후딱이라 할 것이다.  왜 천천히에요?  어린아이는 손이 많이 가니까.  어릴 수록 하나하나 다 챙겨줘야 하고, 때로는 사고도 많고.  왜 후딱입니까?  어른이 되고 나면, 열심히 키우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아이들이 어느새 청소년이 되고, 그리고는 어느새 보니 대학에 갔다 졸업하고, 어느새 결혼하고, 어느새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잡는 것들을 보면 기쁘고, 감사하고, 대견해요.

17세기 말~18세기 초까지 살았던 수잔나라는 여인이 있어요.  아버지가 청교도 목사였던 사무엘 애네슬리인데, 1669년에 수잔나는 25번째 자녀로 태어납니다. 이 여인이 사무엘 웨슬리와 결혼하여 19명 자녀를 낳습니다.

애들이 이렇게 많으면 애키우는게 쉬웠을까요?  어려웠을까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를 키운 보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 중에 요한 웨슬리와 챨스 웨슬리가 있다.  영국에 엄청난 부흥을 일으킨 영적인 지도자 요한 웨슬리. 그로 인해 영국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평가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것을 착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물론 그럴 수 있겠죠. 그러나,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있고, 그 생명이 점점 자라나는 것입니다.

미국 씨에틀의 Mars Hill이라는 교회를 개척하신 마크 드리스콜이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동네의 젊은 전문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예수님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예수님 하면, 착한 예수로 말합니다.  예수의 여성화를 뜻해요. 그래서 남자들이 전도가 안된다는 거에요.  예수는 약한 자, 쓰러진 자에게는 그야말로 천사와 같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은 Macho 이미지를 가지신 분입니다.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 이라 부릅니다.  얼마나 화가났느지 위선적 모습을 보이는 목사에게 “사탄 숭배자"라고 얼굴에 대고 말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물건을 사고 팔게 해주고 이권을 챙길 때, 예수님은 그들의 상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채찍을 휘두르신 분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착한 사람, 혹은 사람들 앞에서 처신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삶”을 사신 분입니다.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해야할 일, 가야할 길을 가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하신 것은, 우리를 착한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와,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이제는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을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 주에 그것을 “단골 손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받고 다시 태어났다면,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 “성장"이다.  사도바울은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하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라고 말한다.  아마도 에베소 교회의 성도 중에 구원을 받고 믿음은 생겼는데, 거기서 신앙의 성장이 멈춰버린 사람들이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온전하게 성인으로 발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 자신에게도 힘든 일이고, 그 부모에게도 어려운 난관이 됩니다.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바울의 그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아시겠어요?  그 뿐만 아니라, 그를 하나님께로 인도한 사람, 그를 양육하고 돌보는 사람, 그리고, 목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로 성숙하게 되기를 원하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고 성장하지 않는 자를 향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드러납니다.

에베소라는 목회의 현장에서, 처음에 만나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할 대, 아직 그의 삶을 잘 모를 때에는 오히려 멀쩡해 보였는데, 점점 이들의 삶을 알면 알 수록 지금까지 죄로 인해서, 또 이 세상에 끌려다니며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한편으로는 황당하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사랑하기에 변화를 원하는 것을 봅니다.  다른 표현대로 해 볼까요?  몸만 컸지, 어린애처럼 사라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 거에요.  자기 중심적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또 무엇이 중요하고 차선적인지 분별력도 없고, 또 알아도 절제하지 못하고, 연약해서,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힘들다고 나가 떨어지고, 삶이 안정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태도를 취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아직 성숙하지 않음에 대해 이해하고 사랑으로 품어줘야 합니다. 아직 영적인 어른이 아니니까요.  다른 한편으로, 그러나 이제는 성장하도록, 양육하고, 훈련하고, 성장의 필요성을 말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에 대해서, 구원 받고, 그냥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참되게 영혼이 변하고, 내면이 변하고, 삶이 변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성장하고 성숙한 내적인 어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영적 성숙은 사실은 성장 과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 어린아이의 특징: 모든 것을 챙겨 줘야 하다
  • 청소년: 자기 자신도 챙기고, 동생들도 돌봐준다
  • 성인: 자신을 챙기고, 재생산-양육-돌봄을 제공한다.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 된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단순하게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성장해서, 영적인 어린이를 벗어나, 영적인 청소년이 되고, 다시 영적인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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