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과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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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pride라는 단어가 있다

  • 이 말은 “자부심”이라고 번역을 할 수도 있지만, “자만심”으로 번역을 할 수도 있다.
  • 둘이 비슷한 것 같지만, 하나는 긍정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이다

자부심과 자만심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 둘다 자신의 성취나 소유에서 부터 오는 만족이나 기쁨을 뜻한다
  • 그런데 자부심은 정당한 성취나 소유에서 오는 것이다
  • 자만심은?
    • 자신감을 가질 이유가 없는데 자신감을 가지고,
    • 자기 자랑을 할만한 것이 없는데, 자랑할 거리를 늘어놓는 것이다.
    • 한마디로 거품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다.

벨사살 왕

본문은 벨사살 왕이  잔치를 벌인 것으로 시작하다.

  • 1절. “벨사살 왕이 귀한 손님 천 명을 불러서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과 더불어 술을 마셨다.”
  • 그 잔치의 규모와, 화려함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 될 수록, 축제를 벌리면 안될 사람이 축제를 벌린 것이 드러납니다.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본다.

첫째는, 외적인 것이다.

  • 당시 바벨론은 페르시아와의 전쟁 중이었다.  특별히 페르시아가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서 Opis라는 도시를 이미 점령하고 바벨론으로 진격해 오고 있는 중이었다.
  • 자신은 모르지만, 그날 밤에 자신의 성이 적군에게 함락될 운명에 처해 있었다.

둘째는, 그 이면에는 내적인 이유가 있다.

  • 정신세계의 기반이 너무 약해졌어요.
  • 종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 아닌가? 그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울리는 괭가리인 거에요.

잔치 중에 왕이 특별한 체험을 해요.  하나님이 보낸 손이 나타나 벽에다 글씨를 써요.

  • 그것이 왕의 존재의 본질을 뒤흔든다.
  • “그렇다가 왕의 얼굴빛이 창백해지더니, 공포에 사로잡혀서, 넓적다리의 힘을 잃고 무릎을 서로 부딪치며 떨었다.”

문제는, 그것에 대해 아무도 답변을 하지 못해요.

  • 왕은 종교 활동을 했다.

Daniel 5:4: 그들은 술을 마시고서, 금과 은과 동과 철과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였다.

  • 그러나 그것이 왕에게 답을 주지 못했다.
  • 왕은 정치인이라 그렇다 치자. 왕이 주술사와 점성술사와 지혜자를 불러서, 그 글씨를 읽고 해석하라 하지만, 아무도 하지 못한다.
  • 그 나라를 대표하는 종교인들조차 영적이고 본질적으로 무기력해요.

이 외적 상황, 내면의 문제를 놓고 질문을 합니다.

  • 튼실합니까? 거품입니까?
  • 잔치해야 합니까? 자중해야 합니까?
  • 자부심입니까? 자만심입니까?

하나님의 평가를 들어보자.

Daniel 5:27: ‘데겔’은, 임금님이 저울에 달리셨는데, 무게가 부족함이 드러났다는 것이고,

특별히 27절.  “데겔”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봐요.

  • 저울에 달다라는 뜻이에요.
  • 하나님의 저울에 달렸는데, 무게가 부족하다.
  • 나는 충분히 무거운 줄 알았는데, 진실을 알고 보니, 무게가 부족해 버린것이다
  • 그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왕과 그의 나라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되어버렸다.

깊이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자부심과 자만심

중요한 것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놓고 자부심이라 생각하지 자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혹시 허영심에 사로잡힌 자가 아닌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본문에서 자만심의 두가지 증상이 있음을 배우게 된다.

첫째는, 나를 둘러싼 사람.  아무도 나에게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면, 나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에요.

  • 왕의 잔치에 몇명이나 초대 되었습니까? 1000명
  • 왕궁 만찬에 초대된 사람들이에요. 그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이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위 0.1%의 사람이다.
  • 그 중에 왕에게 직언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 “왕이여, 전쟁에서 지고 있는 중입니다. 자중합시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 다른 말로 해볼까요? 아무도 나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 내가 자만하면, 다른 사람의 말이 안 들린다.  내가 교만하면, 솔직한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이 싫다. 그러다 보니, 내 주변에 상황 파악 못하는 사람만 남았거나, 아니면, 상황을 알아도 입을 열지 않는 사람만 남은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서, 나에게 진심어린 걱정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교만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이 이야기를 다 들었으면,  나에게 잔소리 하는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하라.

목회를 하면서 감사한 것이 있다.  긍정적 결과를 위해 나의 부족한 점을 걱정하면서 성도들이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 주시기 원한다.

동일한 원리를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적용할 수 있다.  하나님께 좋은 말만 들으려 기대하지 말라.

Tim Keller.  “만일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한번도 반대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당신은 이상화된 자기 자신을 경배하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If your God never disagrees with you, you might just be worshiping an idealized version of yourself.”

벨사살이 찬양한, 금과 은과 동과 쇠와 나무와 돌로 만든 신이 무엇인가?

  • 솔직하게 물어보자? 내가 그 신들을 위해 있는가?  그 신들이 나를 위해 있는가?
  • 그 신들이 나를 심판하고, 나에게 회개하라 하는가?

다니엘은 꾸짖으신는 하나님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은 느브갓네살 왕이 거만해져셔, 교만하게 행동할 때, 그를 낮추신 하나님. 그래서 왕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함을 알게 하셨다.  때로는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은혜이며 사랑이다.

다니엘

본문에서, 벨사살과 대조되는 한 인물 다니엘이 있다.  그는 왕앞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자신의 할말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벨사살이 느브갓네살 왕을 “아버지”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버지”보다는 “조상”이라는 말이 더 맞다.  느브갓네살과 벨사살 왕 사이는 27년이라는 기간이 있고, 그 기간에 왕이 5명이나 있었다.  그 27년간의 기간에 다니엘은 정계에서 물러나 고립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제 왕이 그를 다시 부를 때 어떻게든 왕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 것 같은데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다.  왕 앞에 당당하다.  왕이 주는 지위도 필요없고, 그가 주는 상도 필요없다  오로지 담대하게 왕이 들어야 하는 진실을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 20절. 벨사살 왕의 조상인 느브갓네살이 “생각이 거만해지셔서, 교만하게 행동을 하시다가, 왕위에서 쫓겨나셔서, 명예를 잃으신 일이 있었다.”
  • 22절-23절. “느브갓네살의 아드님이신 벨사살 임금님은 이 모든 일을 아시면서도,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지 않으시고…”

다니엘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서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지, 다른 것을 바라지 않는다.  자신이 섬기는 자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왕을 당연히 섬긴다.  이 땅의 권위자에요.  그러나 자신은 그 이상으로 먼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에서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해야할 말을 하는 것ㅇ리다.

J. I. Packer

그는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이다.  “Knowing God” “하나님을 앎”이라는 책으로 유명하고, 또 많은 명저와 강연을 남긴 존경스러운 분이다.

최근에 기삭 났다.  이제 연세가 89세. 노년에 눈이 안 보인다.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분이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아십니다”  두려움이나 자기 연민이 아니라, 확신이 찬 목소리로 말하더랍니다. 이것은 본부에서 확실한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분께서 주시는 것을 수용합니다.”  평생을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신다고 말한 이 신학자가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 지 아십니다.”  “그리고, 나는 모든 면에서 그분의 선하심을 충분히 경험해왔기에, 현재의 상황에 대해 아무런 의심이 없습니다.”  “선한 것이, 무언가 그분께 영광돌릴것이, 그것으로부터 나올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요동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도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신앙인의 참된 자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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