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8.그는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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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은혜

13절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1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종말론적 관점에서 자기를 이해하고, 오늘을 사는 삶을 산다

  • 종말론적 은혜의 관점에서 자기 과거를 이해하고,
  • 종말론적 약속의 관점에서 자기 미래를 내다본다
  • 그리고, 오늘을 달려나가는 산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인생을 살다보면 나를 괴롭히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

  • 과거에 대한 후회
  • 미래에 대한 불안함

과거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바울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써놓은 것을 보라.  그는 가진 것이 많았고, 치열하게 살았고, 그가 잘 나가면서 열심히 살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다.  다마스커스를 가던 길에서, 그는 부활의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행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열심히 살던 그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게 되었어요.  바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행9: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라는 말이 나에게 크게 다가온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는 순간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심판 앞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훗날에 그가 로마서를 쓰면서, 아마도 이 경험을 토대로 이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가끔씩 과거에 대해 돌아보면 아쉬움이 있다.  특별히 심판 앞에 서서 나의 살아온 길이 펼쳐질 때 그러하다.  과거에 잘 살지 못했다면 나는 오늘 부끄럽고 후회가 많다 역으로 최선의 삶을 살아갔다 할지라도 죽음이라는 심판을 넘어가지 못한다. 여전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이며 따라서 죄인이다.

나의 노력 이상으로 은혜가 필요하다.  나를 죄를 씻기며, 나의 죄책감에서 자유하게 하고, 심판을 넘어가게 해 주는 은혜.  그것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내 삶이 가치가 있다고 해 주시는 은혜이다.

3:9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과거의 은혜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과거가 아닌 그리스도의 과거가 나를 붙잡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 하여 심판 받으시고 죽으심으로 나는 심판과 죽음의 형벌에서 벋어나게 된다.  그리스도의 삶이 가치 있으므로, 그를 믿고 그 안에 있을 때, 나도 생명도 가치있다고 해 주시는 삶을 뜻하는 것이다.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  인생의 연륜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지 않는가?  아무도 당장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날지 예측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아무리 몰입하는 일들이 있고, 좋은 관계를 맺었으며, 성취를 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좋은 일이 꼭 일어나던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전혀 기대하지 않던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한두번 겪었는가?   몰입, 관계, 성취.  이 것들은 미래에 대한 더 낳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기회를 잡을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은 없다.

열심은 중요해요.  열심히 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걸 알자. 나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열심이 아니라 약속이다.  약속이 없는 열심은 불안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질 약속을 받은 사람은 장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과거에 대해서도, 미래에 대해서도, 사람은 노력만으로 잘 살 수 없다.  은혜가 필요하다.

바울은 장례의 은혜를 말한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바울이 그 약속을 “부활”이라고 한다.예수님이 부활하신 모습이 있다. 주님이 마지막 날에 그가 부활하신 그 모습을 우리에게도 선물로 주실 것이다.  죄에서 자유하여 죄를 질 수 없는 자.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며 그 영광을 반사하여 그 영광으로 가득찬 몸을 가질 것이다.

다른 말로 주님께서 예비하신 나의 완성된 모습.  그것이 오늘 나를 이끌어 가는 삶이다.  나는 완성을 향해 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요셉의 예

요셉은 10명의 배다른 형이 있었다.  그들이 그를 시기해서 죽이려다가, 생각을 바꿔서 이집트에 노예로 판다.  이집트에서 처음에는 노예로 있다가, 나중에는 누명을 쓰고 감옥까지 가게 된다.

아이러니가 있다. 하나님이 분명히 은혜를 주신다.  노예로 있을 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

“창39:2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요셉은 그 주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게 해 주지는 않으신다. 오히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다.  감옥에 가서도 비슷하다.

창39:21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하셨다.

하나님이 분명 요셉을 축복하시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때까지 감옥에서 나오는 은혜를 주시지는 않는다.언제 그가 감옥에서 나오는가?  언제 흔히들 말하는 “인생 역전”이 그에게 일어나는가?  그가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 이집트와 가나안 땅에 찾아올 가뭄을 극복하고 생명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거기에 참여하고자 할 때.  그 때, 바로가 그를 이집트의 총리대신으로 만들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풍년이 들 때 곡식을 창고에 쌓아 두어 그 후에 올 가뭄을 대비하게 된다. 또 가뭄이 왔을 때 수 많은 생명을 구한다.  한마디로 장례의 은혜를 알고, 거기에 들어갈 때 삶이 변화가 일어난다.

그 장례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로 살 때, 그는 자기를 노예로 판 형님들을 용서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형님들이 요셉에게 살려달라고 찾아온다.  그 때 그가 장례의 은혜에 대해 말한다.

창50:20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장례의 은혜, 즉 하나님의 예정된 구원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될 때,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죽음의 위협이 새롭게 해석된다.  그것을 통해 은혜로 나아간다면, 그것 역시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부활에 대한 소망

오늘 바울도 “부활”이라는 장래의 은혜를 알기에 오늘을 새롭게 이해한다.

빌3: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누가 고난을 즐기며, 누가 죽음을 반기는가?  그러나 부활을 알 때에, 오늘의 고난과 죽음이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장래의 소망이 있을 때 그것은 형벌과 심판이 아니라 부활로 가는 과정과 통로가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13절 후반에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라고 표현한다.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바대로 미래를 붙잡으려고 하는 삶이다.  이미 장래에 있을 심판에 판결을 받았다. 그 심판 후에 있을 영원한 생명의 상급을 알기에, 그것을 향해 사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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