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여자와 결혼한 남자, 그 남자의 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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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리얼리티쇼 가족”이라는 시리즈로 가족을 위한 설교를 시작했고, “네 남자와 결혼한 남자 Part I“을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은 깨지고 망가진 가족의 현실을 품으시고, 그 가족을 원래 계획하신 건강한 가족이 되도록 이끌어가십니다. 오늘은 그 서론으로 “네 여자와 결혼한 남자, 그 남자의 퍼스트”라는 제목을 붙여봅니다.

창세기 29장 15절~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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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

언약은 친밀감과 제도가 결합한 것이다.

  • 친밀하기에 약속한다: 서로로 인해 만족하면, 우리는 그 관계가 계속 지속되기를 원한다.
  • 지속적 관계를 보장받았기에, 친밀함이 깊어지도록 자신을 더 열어보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의 두려움으로 열어보일 수 없다.

이 언약을 헤치는 것이 있다.

  • 첫째는 욕구 충족의 방향에 문제가 생긴다.
    • 나도 만족하고 너도 만족하는 것이다: 음식도 같이 먹고, 서로에게 애정을 주는 것이고, 서로 존중해 주는 것이다.
    • 상대방의 만족에 상관이 없이, 나의 만족만을 바란다면?
  • 둘째는, 경계의 문제이다.
    • “여기까지”라는 선이 있다.
    • 건강한 욕구충족은 절제가 필요해요. 욕구가 선을 넘어가면 욕망이 된다.
    • 식욕은 좋은 것이다. 배고플 때 밥을 안 먹으면 기운도 빠지고 화가 나고 슬퍼진다. 먹어야 해요.
    • 그런데 정도 이상 먹으면? 기분도 나빠지고, 건강도 해친다. 식욕이 선을 넘어가면 식탐이 된다. 그건 파괴적이다.
    • 방법에 있어서도 선을 넘어가면 안된다.
    • 대상에 대해 선을 넘어가도 안된다.

Case Study 1: 야곱

야곱과 레아의 결혼의 장면이다.

앞에서 말한 것을 말해놓고, 본문을 보면 두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언약의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서로를 채워주는 것도 없고, 욕구를 채우려는 것에 대한 절제도 없다. 욕망으로 가득찼다.

먼저 야곱을 놓고 보자. 야곱은 열정적인 남자이다.  그는 라헬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칠 년이라는 세월을 마치 며칠같이 느꼈다.”  야곱은 참 라헬을 사랑했나보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야곱이 라헬을 왜 사랑했는가이다.

야곱에게 삼촌 라반이 그의 삮을 어떻게 주면 될지 물어본다.  야곱은 그 때 황당한 답을 한다. 라헬과 결혼하게 해주면 7년을 일하겠다고 한다. 그 당시 신부를 데려오는 값과 평균 임금을 계산하면 야곱은 약 2년~3년 정도의 급여를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야곱은 7년을 일해주겠다고 말한다.   야곱은 라헬에 있어서는 뇌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티모시 켈러 목사님 본문을 이렇게 분석한다.  야곱은 가슴이 텅 빈 사람이다.  아버지는 늘 형 애서를 편애하였다.  게다가 쌍둥이인데 에서가 좀 먼저 태어났다고, 아버지에게 장자의 축복을 받는다. 그것은 영적인 축복 뿐 아니라, 아버지의 유산의 2/3를 받는 것이다.  그 공허함을 야곱은 견디지 못하고, 채우기 위해 선을 넘어가는 것을 기꺼이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서 눈이 잘 안보일 때 에서로 분장하고 들어가,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에게 주는 영적 축복을 받아냈다.  형이 그것을 알고 야곱을 죽이겠다고 말하고 다녔고, 야곱은 도망쳐서 삼촌 라반의 집에 와야만 했다.  빈털터리가 된 채로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야곱의 처지이다.  그런 그에게 예쁜 아가씨 라헬과의 사랑은 자기의 텅빈 가슴을 채우려는 갈급함에서 나온 행동이다.

  • 앞에서 말한 욕구들—안정, 애정, 소속감, 존중, 성취라는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라헬을 얻으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사실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다. 라헬을 사랑한 이유가 그 외모 때문이었지, 그와의 인격적인 교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어떻게든 봐주겠는데, 야곱의 사랑에 대한 집착의 문제뿐 아니라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21절에 “이제 장가를 들게 해 주십시오. 라헬과 결혼하겠습니다.”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의역이다.  원문을 직역하면, “내 아내를 주십시오.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습니다.” 다른 말로, 장인어른에게, 그녀와 잠자리 하게, 이제 당신 딸을 아내로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사랑에 대한 비정상적인 갈급함 뿐 아니라, 주체를 못하는 성적인 충동이 있었다.

야곱은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어낸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자신도 고통을 당하고,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당하게 한다.

  • 라헬을 얻으려고 7년을 일하겠다고 할 때, 라반이 어떻게 해요? 그것을 이용해 그를 14년을 부려먹는다.
  • 라헬를 얻기 위해, 그는 자신에게 먼저 시집온 레아를 처다보지 않는다. 그로 인해 레아는 계속 고통을 당한다.
  • 그럼 라헬은 괜찮았을까? 아니다. 야곱은 라헬을 맞이해서 좋았겠지만, 라헬은 그로 인해 평생 언니와 경쟁해야했다.  게다가 거기서 끝나지 않고 30장을 보면 결국 자식 경쟁으로 번져서 자식을 더 낳으려고 자기 종을 첩으로 집어넣는다.
  • 시간이 지나면 그 4명의 아내로부터 나온 자식들끼리 엄청난 갈등을 가져온다.

25절이 얼마나 상징적인지 모른다.

“아침이 되어서 야곱이 눈을 떠 보니, 레아가 아닌가!”

  • 당시에는 전기불이 없었던 시대이다. 신부는 자기 얼굴을 하루 종일 가리고 있고, 야곱은 만취했다.
  • 그는 잠자리에 들 때는 라헬과 들었지만, 아침에는 레아였다.
  • 그게 욕망의 결과이다.
  • 마치 그것이 이루어지고 만족하는 듯 하지만, 늘 실망하는 것이다.

일부다처제에 대해

잠시 일부다처제에 대해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에 보면, 구약의 인물들이 일부다처제의 삶을 사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그것을 반대하지 않거나, 최소한 반대해도 묵인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성경의 이야기를 다시 잘 읽어봐야 한다.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일부다처제를 통해 순차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Case Study 2:  레아

레아는 어떠한가?  레아는 표면적으로 보면 문제가 없어보인다.  레아는 전통적 가치의 여인이었다.

  • 아버지가 결혼하라고 하는 남자와 결혼했고,
  • 아이를 낳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 남편에게 사랑받는 좋은 아내가 되려고 했다.

그런데, 의문이 올라온다.   레아는 왜 라반과 함께 야곱을 속여서 결혼했을까?

창세기 29:17: 레아는 눈매가 부드럽고,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도 예뻤다.

눈매가 부드럽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학자들도 잘 모른다. 그러나 문맥을 보면, 그게 눈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가 예뻤다라는 것과 눈매가 부르러웠다는 것은 대치가 되는 것이다.  라헬은 눈에 띄는 여인이었고, 레아는… 늘 라헬의 그림자에 있었던 여인이었던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결혼에 대해 보수적인 가치를 표현한 라헬은, 감정적 충동에 이끌려 결혼한 야곱과 반대되는 여인같다. 그러나, 내면을 보면, 야곱만큼이나 사랑받고 인정받는데 갈급했던 사람이었다.  그럴 때 레아는 방법에서는 야곱과 다르게 결혼과 출산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자기 욕구를 채우려 했다.

건강하지 않은 동기에서 시작된 그 일은, 방법만 괜찮다고, 정당화 할 수도 없고, 만족을 주는 결과도 가져오지 못한다.  레아는 결혼하면서 아마 이제는 레아의 그늘에서 벋어나, 자신의 인생을 찾을 수 있고, 자기가 주목받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 여전히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고, 결국 자기 뿐 아니라 라헬과도 결혼했다.  레아는 그 뒤에는 아들을 낳음으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약의 하나님

이렇게 언약이 깨어질 때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간다.  야곱은 자기 욕망을 채우려 하지만 괴로울 뿐이고, 레아는 전통을 통해 자기 욕구를 채우려 하지만 억압만 받을 때, 하나님은 오셔서 언약을 맺으시고, 이들을 사랑하시고, 이들과의 관계를 변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켜나가신다.

31절.  “주님께서는,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레아의 태를 열어주셨다.”

이야기에서 레아를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야곱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레아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그에게 남편이 되어주신다.  야곱이 남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레아의 남편 되어주신다.  레아는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점점 배워간다.

32절 “주님께서 나의 고통을 살피시고“

첫째 아들 이름을 “르우벤”  “보아 아들이다”라는 뜻이다.  영어로 see through라는 표현이 있다. 무언가를 통해 본다. 투명한 창문이 있을 때 우리는 창문을 보지 않고 창문을 통해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본다.  사람들이 동생 라헬과 있으면 자기를 투명인간 취급한 것이다. 동생만 보고, 자기를 보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레아는 남편 야곱은 나를 쳐다봐 줄줄 알았는데 그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나를 관심있게 본 것인가? 하나님. 괴로워하는 나를 보신 것을 알게 된다.

33절 “주님께서 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내가 애를 둘이나 낳았다.  그러나 남편마져 내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하소연하면 야곱은 담벼락같이 대꾸도 안하고 가버린다. 하나님께서는 내 소리를 다 들으시는 것을 알게된다.  그 아이의 이름을 시므온: “듣다”라고 지었다.

34절.  “내가 아들을 셋이나 낳았으니, 이제는 남편도 별 수 없이 나에게 단단히 매이겠지”

야곱과 결혼하는 날 이제는 이 남자가 평생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자기를 보고, 아버지에게 자기랑 결혼시켰다고 화를 내고, 그리고 결국 신혼 일주일 만에 라헬과 신방을 차린 남자였다.  평생 외롭게 있을 때, 하나님은 지금도 내 옆에 떠나지 않고 계시면서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  아이의 이름을 “레위”: 매듭이라고 지었다.

이 과정을 통해 레아도, 신랑되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 나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채워주는 분이다.
  • 나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시는 분
  • 나를 떠나지 않고, 변하지 않게 사랑하는 분.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 그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자기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넷째 아들 유다를 낳을 때 레아가 하는 말은 이전과 다르다.

35절: 유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라는 뜻이다.

이전에는 “아이를 낳았으니”라는 조건절이 붙었고, 그랬으니 사랑받을거야라고 말했다.

이제는 조건이 없어졌다. 조건이 필요없는 거에요. 아들을 낳아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나 그대로 사랑하신다.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맺고, 그 언약을 깨달은 레아는 이전의 레아와 다른 레아이다.

레아는 이전에는 하나님 + a 의 신앙이었다.

  •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지만, 조건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 “만일 하나님이 OOO 해주시면…”
  • 한손에는 하나님을, 한 손에는 우상을 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그렇게 대하지 않으시고 언약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이제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것을 알게 된다.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는 “조건”이라는 우상을 내려놔도 되는 것을 알고 내려놓는 것이다.

“레아의 출산이 그쳤다”

더이상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기 위상을 증명할 필요도 없고,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은 노력을 통해 사랑을 쟁취할 필요가 없다.  안심하고 평화를 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레아도 역시 하나님을 조건없이 사랑하고 기뻐하고 찬양한다.

창 49장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모아놓고 그들을 축복하고 장래의 일을 예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 9-11: 유대에 대한 말씀을 하는데, 유다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이 나시고, 그 혈통에서 메시아가 나올 것을 말한다.
  • 유다라는 것. (아무런 조건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이 우리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시고, 신실하게 우리와 관계를 맺어 나가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조건 없이 살아하고 그분과 신실한 관계를 맺어나가겠다
  •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고, 하늘에 있는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신실함이 합쳐져서 언약을 맺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도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참된 언약을 보여줄 수 잇는 사람이 된다.

 나눔 질문

  1. 하나님이 없다면 전통적인 결혼관이나 로맨틱한 결혼 가치관이나 참된 만족을 주지 못함을 알겠습니까?
  2. 하나님의 언약을 기준으로 자신을 돌아봅시다.
    1. 서로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기 위한 친밀한 공동체입니까?
    2. 서로에게 헌신하는 언약의 관계입니까?
  3. 오늘 내용이나 성경 구절 중에 나에게 가장 다가온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나누고 기도로 바꿔봅시다.  또한 어떻게 나의 현실에 적응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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