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이, 당신은 내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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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스텐리 존스와 친구 감독

스텐리 존스 목사님

  • 젊은 나이에 부귀를 마다하고 인도에 선교사로 간다
  • 인도 선교를 마친 후,미국으로 돌아와서도 복음을 열심히 전한다. 일본 전도 집회를 마치고 미국에서 다시 치유 집회를 이끌던 중 69세에 뇌출혈로 쓰러지신다. 새벽 2시에 그 일을 당함. 아침 7시에나 사람들이 발견. 다섯 시간 동안, 전신이 마비되어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 전신이 마비된 채 5시간을 홀로 누워 있는 동안 놀랍게도 자신의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다. 나는 그전 그대로였다.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었고, 여전히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왕국에 속해 있었다. 다만 외부 세상과 연락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 분이 이렇게 기록한다

“나에게는 내 믿음을 받쳐 줄 외부의 버팀목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믿음이 나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주위의 다른 사람이 모두 자기와 같지는 않다고 하며 안타까워한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은퇴한 한 주교와 대화하고 있었다.  그는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주교직에 있던 시절처럼 각광을 받지 못하니 좌절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승리하는 삶의 비밀을 알고 싶어했다.  나는 그 비밀은 자기 포기(self-surrender)에 있다고 말했다.  즉, 가장 속 깊은 자아를 예수님께 내어놓는 데 있다는 말이다.  중요한 차이는 그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었다.  은퇴로 인해 외부의 줄이 끊어져 버렸는데 내면의 줄이 그를 지탱하기에 충분치 못했던 것이다.  그는 예수님께 자신을 내어놓기보다 ‘무대 체일’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다행히도, 내 경우에는 예수님께 나를 양도하는 것이 최우선이었으므로 마비 증세로 인하여 외부의 줄이 끊어졌을 때에도 삶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의존적 사람, 독립적 사람, 상호의존적 사람

잠깜 모든 것을 멈추고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 자신이 뇌졸증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을 그려자
  • 그전까지 나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 모든 것을 잃고 고립된 나를, 여전히 지지해 줄 수 있는가?

리더십에서 의존적인 사람, 독립적인 사람에 대해 말한다.

의존적인 사람:

  • 정서적으로, 지적으로, 의지적으로 누군가에 대해 의지해야 하는 사람.
  • 쉽게 말하면, 어린 아이가 엄마나 선생님에게 “엄마 피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자기가 가서 피피하면 되는데, 엄마의 결정에 의지한다.

어린아이는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잇다.

예전에 유행했던 말이 있다.  “마마 보이”

어릴 때는 누구나 의존적이다.  그러나 어른이 다 되어서도 여전히 의존적인 사람이 많다.

특별히, 오늘날 젊은이들을 보라.

  • 나이가 들어도 의존적이다.
  • 부모도 자식들을 놓아주지 못하고, 자식도 부모에게 의존적이다.

독립적 사람

의존적 사람을 이해하면 독립적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자기 스스로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성숙한 존재이다.   내적으로 건강하고, 육체도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한 사람.

한국부모님의 입장에서 자식들이, 학교를 마치고, 자기 자리를 잘 잡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특별히 영적인 면에서도 스스로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경건생활, 예배, 섬김 등으로 유지해 나가는 사람이다

상호의존적 사람

대부분은 여기까지 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러나 리더십에서는 한 가지를 더 말한다.  상호의존적 사람:

  • 그는 독립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홀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 다른 독립적인 사람과 함께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 그가 승리하여 내가 승리하고,
  • 내가 그를 이해하고, 그가 나를 이해하고,
  • 내가 100을 내놓고 그가 100을 내놓으면, 200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큰 효과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야 말로 독립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시고, 그들을 통해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본다.

  • 그는 원래 일중심적 사람이었고, 탁월한 면이 많았다. 야심도 있었다
  • 예수를 만나고, 그리고 사람을 세우는 사람 바나바를 만난다.
  • 삶의 목적이 사람을 얻고, 그 사람을 통해서 그들과 더불어 주님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삶을 살게 된다.

우리 교회를 생각해본다

  • 내가 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 다른 한편으로, 사람을 얻는 것이다. 나의 소명이 있다.  상한 자를 데려다 치료하고, 다시 세워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다윗을 상호의존적 사람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우리는 다윗의 동굴이라는 시리즈를 하고 있다.  “다윗의 동굴”은 실패의 동굴이다.  그것은 실패한 사람 다윗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간과 장소를 가지고 다윗의 내면의 끈을 튼튼하게 만드시는 것을 봤다.

신비로운 것은 하나님이 그 시간을 사용해서 그를 지지해 주는

  • 포용력 있는 관계,
  • 전에 몰랐던 은혜,
  • 뚜렷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영성을 만드신다.
  • 그것을 통해 다윗이 왕이 될 준비가 되고,
  • 장차 나라를 함께 이끌어갈 상호 의존적 공동체가 세워진다.

가장 독립적으로 보이나 가장 정서적으로 의존적인 사람.

오늘 본문에 다윗 말고 실패한 사람이 한 명 더 나온다.  바로 사울 왕이다.  단 사울은 다윗과 다르게 외적인 실패가 아니라 내면의 실패를 한 사람이다.

  • 그는 외적으로는 지지해주는 끈이 가장 튼튼한 사람이다.
  • 그를 둘러싼 수많은 신하들이 있고,
  • 군대를 이끄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정서적으로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정서적 의존성” –> 나의 존재 가치와, 나의 안전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의존하게 된다.

  • 누군가가 나를 나쁘게 평가하면 견지지 못한다
  •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면 나는 무너지게 된다

정서적으로 의존적인 사람의 Keyword: “너.  You”

  • “YOU”가 나를 칭찬하면 나는 자신감이 생기고 행복하다.
  •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 일이 잘못되면, 의존적인 사람은 실패나 비난을 받아들일 내적인 힘이 없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 탓하는 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 관점을 가지고 사울을 보면, 그가 평생에 정서적으로 얼마나 건강하지 못했는가가 나온다.

  •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지난 주에 말한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라는 것이다: 그 사건이 있을 때, 다윗도 잘못 처신 했지만,
    사울은 그 이상으로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한다. 더 나아가 죽이려고 한다.  사람들의 평가도 받아들이기 힘들 뿐 아니라, 그렇게 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다윗”
  • 그 다음날 다윗을 죽이려 할 때, 미친척 하고 창을 던졌다는 것이 의미 심장하다.
  • 요새식으로 말해볼까?
    • 맨정신으로 말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 작정하고 술마신 후에 할말 퍼붓는 것과 같다.
    • 심지어 술을 마시고 사람을 때리는 사람도 있다.
    • 이 사람 불쌍한 사람이다. 그는 강한 자가 아니라, 의존적인 자인 것이다.

사실은 과거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늘 다른 사람의 탓을 했다

  •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하나님께 먼저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사장 사무엘이 늦었다. 그가 안 나타나자, 사울왕이 월권으로 제사를 드린다.  그리고 사무엘이 오니, “사무엘이 늦게와서”라고 책임을 그에게 돌린다
  • 아말렉을 치고 나서, 그들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좋은 소때와 양때를 감춰논 것은 사무엘에게 걸리자, 예언자에게 바치려고 했다고 변명 뒤에 숨는다. 사무엘이 끝까지 추궁하니 그제야 진실을.  군인들이 싫어할까봐

호통을 치는 자

오늘도 사울 왕이 신하들에게 호통을 반복적으로 친다

7절: 호통을 친다

12절: 호통을 친다

13절: 꾸짖었다.

호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로 잘못은 누가 했는가?  사울 자신이 한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그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다.

하나님의 기회

그럴 때 아히멜렉 제사장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

삼상22:14 그러자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모든 신하들 가운데서 다윗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더구나 그는 임금님의 사위인 동시에 경호실장이며, 이 궁중에서 매우 존귀한 사람이 아닙니까?

아히멜렉의 말이 무슨 말인가?

  • 사울이 들어야 할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 다윗은 시기하고 의심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왕이 가장 믿어야 할 사람
  • 다윗은 내쫓고 죽여야 할 사람이 아니라, 왕이 받아들여야 할 사람이다

그럴 때 나는 17절에서 사울이 아히멜렉을 부르는 호칭이 눈에 띈다.

“주님의 제사장”

아히멜렉은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행동을 변론하는 것이지만, 심층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정서와 생각과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못하는 내가, 이제는 자신의 그 의존적 한계를 극복하고, 건강한 내면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안타까운 것이 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버럭 화를 내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던것 같다.

  • 그 때, 사울이 했어야 하는 것이 있다.
  •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인정했어야 한다.
  • 더 좋은 것은 “다윗을 복귀시키자”라고 말해야 한다

그것을 다른 말로 회개라고 한다.

  •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한 것을 바로잡는 것
  • 그것은 아픈 작업이다. 불편한 작업이다.  힘든 작업이다. 서투른 작업이다
  •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이 시키는 것은, 내가 내적으나 외적으로나 건강한 사람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사울은 회개하는 대신에 그는 부하를 시켜 아히멜렉을 죽인다.  그것도 “달려들어 죽이라”

본문을 보면서 로마서 1:18 “진리를 가로막는 사람” “진리를 억압하는 사람”

  •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고, 그것에 대해 변명하지 못할 때, 여전히 그 진리를 억압하고 억누르는 사람들이 있다.
  • 사울은 진실이 드러날 때, 특별히 그것이 자신을 위협한다면, 그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없었다.
  • 그 진실 앞에 벌거벋고 서서 자신의 참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 그 진실을 인정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용기를 내고, 기꺼이 그 대가를 치루고자 하지 않았다.

회개의 기회가 주어질 때 회개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더 악으로 치닫게 된다.

  • 사울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
  •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를 건강하게 사용하는 왕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 결과: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그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 사울은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두 사람을 제거하고 고립됨
  • 군사적으로 다윗 장군을 제거한다.
  • 영적으로 제사장 가문을 몰살시킨다.

결국에 이것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사무엘상의 끝: 강력한 블레셋 군대와의 전투가 나온다.   사울이 두 가지가 부족해서 전투에서 진다.

첫째는, 하나님의 음성이 안들림

  • 삼상28:5 사울은 블레셋 군의 진을 보고, 두려워서 마음이 몹시 떨렸다.
  • 삼상28:6 사울이 주님께 물었으나, 주님께서는 그에게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로도, 대답하여 주지 않으셨다.

왜?  사울이 하나님께 계속 불순종했으니까.   그러나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오늘 본문에서 제사장 가문을 몰살시켰다.

  • 사울은 스스로 자신의 영적 지지 기반을 무너뜨렸다.

둘째는, 현실적으로 전력이 부족하다.

  • 다윗은 용사요, 군인이다. 이스라엘은 당시에 블레셋과 끊임없는 전쟁이 있었고, 사실은 이스라엘이 열세에 있었다.  그 시점에서 전력을 역전시키고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끄는 중요한 인물을 제거하게 된다.
  • 결국 사울이 직접 나가 싸우다가 전사하고 만다.

독립적인 사람일 뿐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사

다윗이 왕의 사위요 사울왕의 경호실장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아둘람 동굴에 가게 된다.  다른 말로 그를 지탱해 주던 외적인 끈이 하루 아침에 다 잘려나감

그러나 그는 중요한 것을 얻게 된다. .

삼상22:5 그 때에 갓이라는 예언자가 다윗에게, 그 산성에 머물러 있지 말고 어서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재촉하였다. 그래서 다윗은 그 곳을 떠나서, 헤렛 숲으로 들어갔다.

다윗이 얻은 것 두 가지가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얻었다.
  •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을 얻었다.

외적 끈이 끊어질 때 우리는 벌거벗은 몸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솔직한 자신을 말씀에 비춰보고, 말씀이 나를 덮어주시고, 말씀이 나를 이끌어가시게 된다.

전에도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며 또한 찬양하는 자였으나 위기의 삼황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다.

이제 불안한 자신은 말씀 앞에서 죽고 오직 말씀이 자신 안에서 살아계신다.  말씀에 대해 내가 주고권을 잡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잡고 나를 이끌고 나를 내몰아가신다.

유다 땅은 자기 목숨을 노리는 사울 왕이 있는 곳.  가장 위험한 곳이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믿기에, 믿음을 통해 말씀이 그를 붙잡아줌으로 평안을 누린다.

그리고 그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된다.

23절에 다윗이 자기를 찾아 도망온 아비아달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라

삼상22:23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할 것이오.”

다윗이 말하는 안전은 상황에 의존하는 안전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얻는 안전인 것이다.    가장 상황에 좌지우지 될 것 같은 다윗이 가장 상황에 초연하여 평화를 누리는 것이 신비하다.

처음에 말한 스텐리 존스 목사님의 이야기나 다윗의 이야기나 묵상하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  내가 믿음으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나를 붙잡아 준다.   그 믿음은 바로 성령님의 다른 이름이다.  내 안에 믿음을 창조하시고, 말씀을 믿음으로 받게 하시고,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나를 붙잡아 주시는 분.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령님 나에게 오소서.  내게 말씀을 들을 귀를 주시고,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나를 붙잡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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