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3 함께하는 경건의 삶

2016년 9월 18일

사도행전 2:37-47

2:37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2:38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14)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또는 ‘침례’
2: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2: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말로 증언하고, 비뚤어진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권하였다.
2:41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15)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 날에 신도의 수가 약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 또는 ‘침례’
2:4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16)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성만찬’ 또는 ‘친교 식사’를 가리킴
2:43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2: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2:45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2:46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2:47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도입

저널리스트 Hector Tobar, deep down dark . 칠레의 San Jose라는 지역의 탄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 33명의 칠레 광부들이 약 600백미터 지하에 갇혀 69일간 어두운 지하에 있었다.
  • 언론들은 그들의 생존확률 2%로 예측한다.
  • 그들은 그 지하 동굴을 자신들의 관으로 여기게 된다.
  • 거기서 그들은 죽음을 직면하면서, 잠시 삶을 멈추게 되고, 과거의 후회스러운 많은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 그리고는 자신들 중에 예수를 잘 믿는 Jose Henriquez를 찾아간다.
  • Jose는 지금까지 4번이나 갱도가 무너지는 일에서 살아남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신앙을 깊이 가지게 되고, 교회의 건강한 성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그에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 그리고 그 순간부터 동료 광부들이 Henriquez를 목사님이라 부른다.
  • 그들이 함께 모여서 엘리퀘가 가르쳐주는 것을 따라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 그가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는 최고의 사람들은 아닙니다.  주님.  그러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빅터 세고비아는 자기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빅터 자모라는 너무 쉽게 화를 냅니다.  페드로 코르테즈는 자기 어린 딸에게 나쁜 아빠였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딸의 엄마를 떠났고, 그리고 그는 자기가 없는 것이 딸에게 오래 남을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어린 딸을 방문하는 것과 같은 아버지로서 해야할 기본적인 일을 하지 않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여, 우리가 주님의 은혜의 보좌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이 어려운 시간을 살피옵소서.  우리는 죄인이며, 우리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 Jose Henriquez는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하였고, 그들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한다. “주님, 그렇게 아내와 아이들에게 언어 폭력을 한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 마약으로 몸을 함부로 굴린것을 회개합니다.  주님, 나를 사랑한 여인을 버린 것을 회개합니다.”
  • 그리고는 이제는 서로에게 고백을 하기 시작한다. “언성을 높였던 것 미안합니다.  물 가져오는 것을 돕지 않아서 미안해요”

 

  • 이곳에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형성한다. 모든 33명이 만나는 시간은 하루에 한번 있는 식사시간과 또 기도하는 시간

 

무너진 갱도에서 죽음을 접하고, 그러면서 이들은 오히려 온전한 신앙공동체가 생기게 된다.

  • 궁극적인 것을 접할 때, 우리는 “나와 너”사이에 있는 가식과 두려움과 불안을 떨어버리고 참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본다.

교회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

오늘 본문은 교회가 시작하는 장면이다.

  •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질문하는 사람들:
  • 그들 가운데 오신 성령님과, 베드로의 말씀을 듣는다.
  • 신기하게 그것을 믿는 자들이 개인의 신앙에서 멈추지 않고 이상적인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장면이다.

다른 말로 하면,

  • “궁극적 질문에 답하는 궁극적인 분을 만났다. 죽으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분을 만난다.”
  • 그럴 때 그들은 하나의 영적 공동체를 이루고 참된 성도의 교제를 누리는 된다.

공동체의 영성: 교회 안에 계신 그리스도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에 대한 오해가 있다

1. 건물이라 생각한다.

  • “교회 간다”고 말한다.
  • 건물이 교회가 아니다. 예배당이다
  • 가족이 있으면 살아야 할 집이 필요한 것은 맞는 말이다.
  • 교회가 있으면, 함께 모여 예배 드리고 성도의 교제를 할 장소가 필요하다.
  • 그러나 집이 우리 가족이 아닌 것과 같이, 예배당이 교회 공동체가 아니다.

2. 조직이나 제도라 생각한다.

  • 교회는 조직적 요소가 있다. 교회에는 시스템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있고, 사역이 돌아가니까.
  • 그러나 교회는 조직이 아니다
  • 어느 설교 잘하는 목사님이 계셨다.  한참 한국 교회 전체가 부흥하던 때이다.  사업을 하시는 분이 그 목사님의 목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고서는, “이 목사님을 모셔다가 교회를 하면 잘 되겠다”  가서 목사님에게 제안을 한다. 자기가 투자할 테니까, 오셔서 당회장 하시라고.  가야 해요 말아야 해요?
  • “교회는 그런 것이 아니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공동체이다.

나와 너 사이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 신앙 공동체는 신비로운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 교회와 함께 하심을 뜻한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열두 제자와 공동체를 형성하심

  • 열 두 사람: 제자가 되기 이전에 서로 친했던 관계도 있지만,
  • 그 중에는 서로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 더 나아가, 서로 원수 같은 사람들—열심당원 시몬과 세리 마태—함께 있었다.
    • 한명은 독립운동가이다.
    • 한명은 식민통치의 압잡이었다.
  • 이들이 예수님 때문에 3년을 함께 지내며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된다.

다른 말로 이것을 “그리스도 중심적 관계”라고 이름 붙여본다.

  • “나와 너”는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 “나와 너”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게 된다.

자, 예수님 이 땅에 계실 때에는 그것이 12제자들의 공동체에 적용된다  이제 사도행전에 들어오면서, 그것이 온 교회에 그 일이 일어난다.   사도행전 2장의 전체 이야기가 무엇인가?  교회는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시작된 공동체이다.

  • 성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다.
  • 예수님이 이 땅에 더 이상 몸으로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
  •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심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교회에게 부어주신다.

성령을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영으로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 그럴 때, 교회는 12제자들의 공동체가 증식되고 확장이 된다.
  • 예수님 계실 때에는 12명 밖에 그것을 누릴 수 없었다.
  • 성령이 임하시니, 모든 성도가 다 함께 예수님의 공동체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영으로 여전히 교회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중심의 사귐이다.

  • 나와 너는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것이다.

자기 중심성의 한계를 깬다

이것이 너무 소중한 이유는, 예수님이 나와 너 사이에 계심은 나의 자기 중심적 한계를 넘어 사랑하게 해 주신다.

엡2: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것은 마치 물과 기름과 같아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관계를 뜻한다.
  • 인생을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도저히 하나가 되지 못하는 관계가 얼마나 많은가?
  • 우리가 이 땅에서 가장 끈끈한 공동체라 말하는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도 도저히 하나되지 못하고, 해야할 도리는 하지만 그를 용서하거나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관계가 있지 않은가?
  • 예수님이 우리 사이에 계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상하심으로, 나와 너 사이에 있는 담을 다 허물어 주셨다는 것이다.
  • 이제 그와 나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랑을 나눌 뿐 아니라, 심지어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고 더 나아가 그의 필요를 채우는 섬길 수 있는 것이다.
  • 예수님이 그를 사랑하니 나도 그를 사랑해요
  • 예수님이 그를 그를 용서하니 나도 그를 용서해요
  • 예수님이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니, 나도 그의 필요를 채워준다.

교회와 소모임에 관하여

교회와 소모임은 내가 내키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하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하는 것, 혹은 반대로 나랑 잘 맞지 않는 사람 혹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다 보면, 사람들 때문에 시험에 들어서 교회를 옮기려 하는 분들 계시다.

  • 한편으로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럴까 생각하게 된다.
  • 다른 한편으로 그러나 그것이 공동체를 멀리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그 사이에 계신 예수님도 멀리하는 것이기 떼문이다.
  • 실제로 사람에게 시험이 든 사람은 말씀과 기도 생활이 잘 되지 않는다. 또한 악순환적으로 말씀과 기도 생활이 잘 되지 않기에, 사람에게 시험을 든다.
  • 그 시험을 이기는 것: 공동체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 그분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할 때,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말씀과 기도

어떻게 나와 그 사이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행2:4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나와 그 사이에 말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42절은 사도들의 가르침: 즉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난다.

  • 서로 사귐과 빵을 떼는 일이라는 성도의 교제의 대명사는 말씀과 기도라는 영성으로 감싸져 있다.

술 취하지 말라

(에베소서 5:19) 술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 “한국 문화에서, 사람을 만나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
  • 심지어, “술이 없으면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른다”
  • 그와 나는 직접적 관게를 맺은 것이 아니라, 그와 나 사이에 주님, 예수님 말고 술님이 있는 것이다.
  • 거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술은, 특별히 우리 문화에서의 음주는, 절제함이 없고, 끝까지 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도덕적 기준이 무너지고 방탕함이 따른다.

대신에 성경에서는 그와 나 사이에 술 대신에, 우리 주님 예수님이 계심을 말한다

  • 내가 주안에, 주가 내 안에

참된 성도관의 관계

  • 나와 너를 연결시켜주는 것이 알코올로 충만해서 같이 노래방에서 괴성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계심으로 부르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말씀

지난 주 유아세례 간증에 공통적으로 나온 말씀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17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관계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 어떤 사람은 나와 너 사이에 “이득 관계”
  • 어떤 사람은 나와 너 사이에 “해야할 도리”
  • 어떤 사람은 그 사이에 “원망과 불평”
  • 어떤 사람은 그 사이에 “분노가”
  • 어떤 사람은 나와 너 사이에 “냉냉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서로를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

 은혜의 척도로서의 성도의 교제

예전에 수련회나 부흥 집회를 하면, 그 집회가 은혜로웠는지 아닌지 측정할 수 있는 방법

  • 예배가 끝났는데 성도들이 집에 가지 않고 계속 하하호호 떠들며 웃으면 그 예배는 은혜로웠다는 증거이다.

예배에 성공하면: 말씀에 은혜를 받고 진정한 헌신을 하며, 기도가운데 성령충만함과 기도의 응답을 받는 감격이 있으면,

  •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 그 나는 점점 더 교회 공동체를 즐기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게 된다.

 

더불어, 선순환적 관점에서 교회 공동체에 깊이 들어갈수록

  • 더욱더 그 공동체를 통해서 말씀과 찬양과 기도가 깊어지고 넓어져야 한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3:16; 표준새번역)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공동체의 영성과 공동체의 교제가 서로 선순환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말함

  • 우리 가운데 예수님이 계심으로, 우리에게 말씀이 풍성하고, 찬양이 끈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을 통해 나와 너가 진정한 성도의 교제를 하게 된다.
  •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들 가운데 성도의 교제가 풍성할 때, 그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한 그 분을 찬양하고, 예수님께 기도하게 된다.

주일 교회 생활을 그렇게 디자인 한 것이다.  오늘 말씀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 예배가 끝나고 함께 식사하고 소모임을 하는 것
  • 혹은 주중에 모여도 함께 먼저 찬양하고 기도한 이후에 서로 친교하는 것
  • 영성과 교제가 따로 놀면 안되고 함께 돌아가야 한다.
  • 은혜 받은 말씀과 그것에 대한 자신의 결단과 헌신을 나누고,
  • 모여서 먹고 마시면서,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 서로를 내 가족처럼 사랑하니까 그 필요한 것을 내 것으로 채워주고 섬기며
  •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러한 온전한 영성 위에 세워진 공동체는 영적 권위가 있는 공동체이다.

기도

기도에 영적 권위

성령이 우리 가운데 계심.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심

  •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예수님과 동떨어져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자시의 몸을 교회를 통해 하시는 기도인 것이다.
  •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기도인 것이다

이것은 신비로운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우리의 기도는 자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기도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를 한 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도,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영적인 권세가 있는 것도, 우리의 기도가 우리만의 기도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기도이기 때문인 것이다.

놀라운 일과 표징

그러면 43절이 이해가 된다.

행2:43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 사도들을 통해 놀라운 일과 표징 –>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행하시던 초자연적인 사건을 뜻한다.
  • 그것이 사도들을 통하여 일어났다는 것은,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가 교회에 계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론: 한계를 넘는 사랑

그러므로 42절 끝에 “힘썼다”

  • προσκαρτερέωa: 의지적인 것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 지속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 강한 노력과, 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을 뜻한다.  “헌신하다.  계속 하다.  끈기를 가진다”

교회의 공동체와, 공동체의 영적 행위는 선물이다.  이제는 선물로 주어졌기에,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또한 완성해가는 교회의 의도적 선택과 행위가 필요하다.

  • 교회 공동체에 대해 은혜를 받고 그 결과로 성도의 교제를 즐기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나 수동적인 것이다.
  • 이제는 그렇게 주시는 하나님의 공동체의 영성과 교제가 소중하고 즐거운 것을 알았다면, 그것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을 뜻한다. 말씀과 기도-성도의 교제와 함께 떡을 땜에 대한 지속적인 헌신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힘써 모입시다.  모일 때마다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며, 기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계심을 드러내고 느낍시다.  예수로 인하여 참되게 사랑하며 섬기며 세워주는 온전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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