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6. 공동체를 세우는 사역

2016년 10월 9일 주일 설교

마가복음 9:33-37

9:33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갔다. 예수께서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9:34 제자들은 잠잠하였다. 그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것으로 서로 다투었던 것이다.
9:35 예수께서 앉으신 다음에, 열두 제자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9:36 그리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신 다음에, 그를 껴안아 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그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보다,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오스미 요시노리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

한국이 노벨상으로 떠들석하다.  그리고 교육이 이렇고 저렇고 하는데… 정작 노벨상 수장자들은 노벨상 탈 일을 하고 있던 당시 노벨상에 별로 신경쓰지 않은 듯 하다.  마치 서울대 수석 합격을 하려면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라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남들보다 잘하는” 일등의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노벨상은 수석이 아니다. “이렇게 해야 노벨상을 탈수 있다”라는 말하는 사람이 아에 없어질 때 쯤에 한국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만드는 나라가 될 것이다.  세계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잘해야 하고, 남들을 이겨야 하고, 남들보다 높아야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1등을 우상화하고, 일등에 집착하는 한, 우리는 성공하는 사람은 될 수 있겠지만, 위대한 사람은 될 수 없다.

노벨상을 탄 오스미 교수를 본다.  50년동안 하나만 연구하였다.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나처럼 기초 생물학을 계속해 온 사람이 이런 식으로 평가를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젊은 사람들에게는, 과학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 그의 삶은 일등을 추구한 삶이 아니다.
  •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를 젊어서 발견하고, 그것을 일관성 있게 살아낸 삶이다.
    • 의미있는 것을 하는 삶
    •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산 삶
    • 몰입하는 삶.

어쩌면 바보같은 삶이다.  그러나 성공을 추구하지 않아서 참으로 위대한 일을 성취한다.

섬기는 삶

9:35 예수께서 앉으신 다음에, 열두 제자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예수님은 섬김의 삶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첫째가 되는데, 명예와 지위에, 관심이 없는 삶이다.  대신에 실제로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 사랑하기에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 상대방의 필요한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채워주는 삶을 사는 자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고 또한 가장 귀한 사람이다.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자.  제자들끼리 서로 누가 큰지 길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여러 주석가들이 본문을 교만과 겸손으로 설명한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은지 논쟁을 벌인 것은 교만에서 온 것이다.

  • 아담이 선악과 따먹은 이유? 하나님보다 자기가 높아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이 아담에게 왜 먹었니? 물어보니 뭐라 대답하나?
    • “하나님이 주신 저 여자가 줘서 먹었습니다.”
    • 그럼, 그 셋중에 가장 의인은 누구인가? 아내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다.  아담이다.
    • 교만이 들어가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함으로, 자기 자신을 정당화 하고 자기를 높이려 한다. 자기 의를 드러내려 함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선악과를 따먹고는, 아담과 하와가 분열된다.  오늘 본문에서도 교만이 들어올 때 공동체는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열된다.

교만은 심각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할 뿐 아니라, 죽이기도 한다.  카인이 왜 자기 아우 아벨을 죽였는가?

  • 하나님이 자기 제사는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아우의 제사는 받아들여서.
  • 다른 말로 교만: 자기 아우보다 자기가 잘나야 하는데, 비교하고 질투하는 것도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이기는가?

  •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 또 하나, 교만은 사탄의 영성이다.  반대되는 성령의 영성이 필요하다. 온유하고 겸손해야 한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섬겨야한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신다.

막9:35 …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그리고는 36절에 “어린 아이를 하나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신 다음에”

왜 어린 아이를 데려다 그들 가운데 세우셨을까?  제자들은 지금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로 다투었다.  그들 사이에다 어린 아이를 세워놓으면, 지금 가장 작은 사람이 누가 되는가?  어린 아이.  그야말로 눈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무슨 뜻인가?

  • 요즘이야 아이가 왕이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그 반대의 의미이다.
  • 나보다 큰 사람이 아니라 나보다 작은 사람
  • 나보다 먼저 된 사람이 아니라, 내 뒤에 있는 사람
  • 내가 보기에 내가 섬겨야 할 사람이 아니라, 나를 섬겨야 할 을 사람

그게 예수님이 37절에서 말씀하세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제자들은 다 내가 가장 커야 하고, 내가 가장 앞서야 하고, 내가 섬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때,

  • 나보다 작은 사람을 높이고,
  • 나보다 뒤쳐졌다고 하는 사람 뒤에가서 서고
  • 나를 섬겨야 한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섬기는 삶을 살라는 거에요.
  • 그러면 모든 사람의 꼴지가 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나는 나보다 작은 사람, 나보다 뒤쳐진 사람, 나를 섬겨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럴 때, 겸손이란 것을 본 회퍼라는 신학자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 그 사람의 뜻이, 내 뜻보다 더 급하고, 우선순위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 그 사람의 명예가, 내 명예보다 더 소중하다는 뜻이다.

공동체를 섬기는 사역

그럴 때 본 회퍼가 여러가지 적용을 말한다.  그 중에 3가지 중요한 적용을 생각해 본다.

  • 침묵의 사역, 듣는 사역, 그리고 작은 일을 돕는 사역

침묵의 사역

첫째, 침묵의 사역이다.  다른 말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너희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질문하실 때, 34절에서 “제자들이 잠잠하였다.”  자신들이 서로 서열싸움한 것에 대해 예수님께 말하기가 너무 죄책감이 들고 또 부끄러워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

  • 동일한 질문을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물어보실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 심판 날에 예수님 앞에 서면, 예수님은 “너의 인생의 길에서 다투었는데, 뭘 가지고 그랬니?”라고 물어보실 것이다.
  • 그 때 우리도 예수님 앞에서 아무 말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쉬운 것이 있다. 제자들이 길에서 잠잠했더라면 좋았을까?

  • 사고 다 친 다음에 예수님 앞에서 잠잠한 것이 아니라, 길에서 서로 다투며 언성을 높이기 보다 서로 말을 자제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제자들이, 길에서 서로 다투지 않고,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말을 하지 않고, 자기 기준으로 서로를 판단하면서 “넌 왜 그래?” 혹은 “저 사람은 왜 그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예수님 앞에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첫번째 사역을 해야한다.  그것은 바로 침묵의 사역이다.

약3:2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본 회퍼.  Life Together. 

“많은 경우 우리가 자신의 악한 생각과 가장 효과적으로 싸우는 때는 우리가 그것들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거부할 때이다.  자기 의로움의 영을 이기는 것은 은혜의 성령을 통해서만이다.  그렇지만, [남을] 판단하는 생각을, 죄로 고백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할 권리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음으로 그것을 고립시키고 억제하고 꺼버릴 수 있다.”

무슨 말인가?  누군가를 판단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누군가가 내 맘에 들지 않을 때, 누군가가 나를 반대할 때 우리는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 사람과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비웃거나 조롱한다.

그러나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

  • 잘못한 거 맞다.
  • 그렇다고 잘못을 당사자에게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그를 비웃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영혼 뿐 아니라 자신의 영혼까지도 해치는 것이다.

대신에 그걸 말할 대상이 있다. 그것을 하나님께 회개하자.  그리고 영적인 지도자에게 가서 그것을 고백하고 그 앞에서 내가 이웃을 판단하는 죄를 이기도록 함께 기도하라.

  • 더불어서 말하려면, 만일 그가 나에게 해를 가하여 내 마음을 상하게 해서 그런 것이라면, 그에게 가서 직접 말하자. 그리고 그가 사과하기를 요구하자.

야고보서 4:11: 형제자매 여러분, 서로 헐뜯지 마십시오. 자기 형제자매를 헐뜯거나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헐뜯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율법을 심판하면, 그대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4:29: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h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

자꾸 남을 판단하게 되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은 두 가지를 까먹어서이다.

첫째는 다양성이다.   사람마다 다르다.  다른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를 먼저 구분해야 한다.

TV를 보면 맛집을 찾아 다닌다.  가서 먹으면, 다 내 입맛에 맞으라는 법은 없다.  그럴 때 시식한 사람이 잘 하는 말이 있다: “독특하네요”  그게 나입에는 안맞는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또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이것을 기억하자.

  • 그를 창조한 사람이 누구인가?  나인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그를 독특하게 창조하셨다.
  •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창조된 자이지, 내가 그를 지배하고 내 맘대로 조종하도록 창조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내가 원하는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나와 같은 형상을 갖도록 창조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창조된 것이다.
  • 각 사람은 새롭고 독특하게 창조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나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강한 자이건 약한 자이건, 지혜로운 자이건 어리석은 자이건, 재능 있는 자이건 재능이 없는 자이건, 경건한 자이건 경건하지 못한 자이건 간에, 공동체 안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은, 더 이상 판단하고 정죄하고, 그래서 자기 의를 드러내는 기반이 되어서는 안된다.
  • 오히려 그 다양성을 즐기고 축하하고, 그래서 더 서로를 섬겨야 한다.

다양성과 더불어 또 한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나도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 내 죄가 더 커요? “그 넘”의 죄가 더 커요?
  • 내 죄가 더 작고 덜 혐오스럽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 “영적 성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 내가 죄를 이겨서,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  문제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저 높은 곳에 있고… 나머지 중생들은?  더러운 것들은 저 아래에 있는 것이다.
    • 그게 자기 의로움이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교만이라고 한다
  • 아니다. 은혜의 관점으로 생각해야 한다.
    •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신앙의 성숙은 더욱더 은혜로 들어가는 것이다.
    • 신앙의 성숙이란 “나는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다”라는 것을 더 깊이 느끼고, 인정하며, 고백하고, 그러므로 은혜를 간구하는 삶,
    • 내가 가장 큰 죄인입니다. 사도 바울이 죽기전에 디모데에게 쓴 편지의 고백대로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딤전 1:15)라고 말하는 것이다.
  • 그럴 때는 다른 사람의 죄는 정상참작이 된다. 내 죄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 그럴 때 가식없이 그를 섬길 수 있게 된다.
  • 그럴 때 내가 자신을 그 위에 두지 않을 3수 있다.
  • 그럴 때 내가 그에게 소망을 가질 수 있다.

듣는 사역

둘째는 듣는 사역이다.

예수 잘 믿는 것은 듣는 귀가 열리는 것이다.

  • 무엇보다도 귀가 하나님께로 열려야 한다.
    • 설교듣고 은혜 받았다는 것이 무엇인가?
    • 설교가 잘 들리고, 내 얘기하는 것 같다.
  • 말씀이 안들리면? 졸립기만 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귀는 이웃을 향해서도 열려야 한다.

  • 우리는 사역을 내가 말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 신앙 생활을 좀 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가르치려 할 때가 많다.
  • 하나님이 입만 주신 게 아니라 귀도 주셨다. 들어주는 것은 중요한 사역이다.  때로는 듣는게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어느 이민교회 목사님.

  • 혼자 외롭고 경제적으로도 어렵게 사시는 노인들을 대하는 사역
  • 인기가 많았다. 왜요? 찾아가면 하고 싶은 말씀을 많이 하신다.  오느 분은 밤을 새서 말씀하신다.
  • 이 목사님은? 분위기 봐서 필요하면 집에 전화: 오늘 밤새고 간다
  • 한번은 새벽까지 말씀하시는데 그걸 다 들었데요. 그러더니 그 할아버지가 위장병이 낳았다.

말할 때와 들을 때를 구분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있으면, 이웃의 말을 듣는다.  이웃의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 하나님의 말씀도 곧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 죽은 영성: 영적인 잡담과, 경건의 어휘로 말은 하는 것 같은데 알고보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들.
  • 이웃의 말을 시간을 들여 인내를 가지고 듣지 못하면, 말이 어긋나고, 정말로 상대방이 필요한 말을 하지 못한다.
  • 상대방이 말하는데 내가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돕는 사역

세번째 낮아지는 사역은 그를 돕는 일이다.  특별히 작은 일에서 돕는 일을 뜻한다.

“내가 이런 하찬은 일을 하러 여기 왔는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는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 “나는 그런거나 하려고 여기 온게 아니야”라고 생각하면, 나는 그 공동체에서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다. 도움을 주려 하지 않으니까

제임스 에드워드라는 신학자가 설명한다.  “섬기다”라는 단어는 diakonos라는 단어이다.  거기서 집사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단어는 식탁에서 웨이터 노릇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것은 개인적으로 헌신해서 섬기는 것이지, 노예처럼 섬기거나 혹은 고용되어서 섬기는 것이 아니다.  당시 문화에서는 섬기는 것은 의미가 없고, 존엄성을 잃는 것이다.  플라톤은 “누군가를 섬기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해 질 수 있는가?”라고까지 말했다.  예수님은 반대로 말한다. 섬김은 이웃을 사랑하기에 나오는 것이다.   그 섬김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은 재능있거나 특권이 있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공동체의 간단한 일에서 나온다.   예수님은 “인자는 섬기러 온 것이다.”  그 예수의 성령이 충만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섬기는 살마이 되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 예전에 섬기던 어느 교회에서 있던 이야기.  학생 하나가 컵라면을 먹고, 그것을 화장실 남자 소변기에 버렸다.  나름대로 잘 처리했는데, 그만 정말 손톱만한 면 몇 개가 거기 남았다.  청소하시는 분이 내가 이걸 치워야 하느냐? 그러면서 화를 노발대발 했다. 가만보니까 그분도 쌓인 게 많다.  그런데 그 학생도 사실 자존심이 쎄고 성질이 있는 녀석이라, 그걸 전하면 싸움만 나지 해결이 안될 것 같다.  기도하다 아이디어가 낳다. 제가 가서 제 손으로 그 면을 다 주워서 버렸다.  그리고 손은 비누로 열심히 씻었다.  그리고는 그 학생이 교회에 왔을 때 조용히 불러다 자초지경을 다 설명하고, 내가 손으로 주웠다 말했다.  그 학생이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나 그 후로 그런 사건이 한번도 없었다.

결론

나는 침묵의 사람입니다.

나는 듣는 사람입니다.

나는 작은 일에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럴 때, 나로 인해 우리가 하나되고, 모두가 행복한 사람이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은혜 안에 거하며, 그 은혜를 드러내는 사이 된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