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공동체 6. 공동체를 세우는 사역

2016년 10월 9일 주일 설교

마가복음 9:33-37

9:33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갔다. 예수께서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9:34 제자들은 잠잠하였다. 그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것으로 서로 다투었던 것이다.
9:35 예수께서 앉으신 다음에, 열두 제자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9:36 그리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신 다음에, 그를 껴안아 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그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보다,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오스미 요시노리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

한국이 노벨상으로 떠들석하다.  그리고 교육이 이렇고 저렇고 하는데… 정작 노벨상 수장자들은 노벨상 탈 일을 하고 있던 당시 노벨상에 별로 신경쓰지 않은 듯 하다.  마치 서울대 수석 합격을 하려면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라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남들보다 잘하는” 일등의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노벨상은 수석이 아니다. “이렇게 해야 노벨상을 탈수 있다”라는 말하는 사람이 아에 없어질 때 쯤에 한국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만드는 나라가 될 것이다.  세계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잘해야 하고, 남들을 이겨야 하고, 남들보다 높아야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1등을 우상화하고, 일등에 집착하는 한, 우리는 성공하는 사람은 될 수 있겠지만, 위대한 사람은 될 수 없다.

노벨상을 탄 오스미 교수를 본다.  50년동안 하나만 연구하였다.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나처럼 기초 생물학을 계속해 온 사람이 이런 식으로 평가를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젊은 사람들에게는, 과학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 그의 삶은 일등을 추구한 삶이 아니다.
  •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를 젊어서 발견하고, 그것을 일관성 있게 살아낸 삶이다.
    • 의미있는 것을 하는 삶
    •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산 삶
    • 몰입하는 삶.

어쩌면 바보같은 삶이다.  그러나 성공을 추구하지 않아서 참으로 위대한 일을 성취한다.

섬기는 삶

9:35 예수께서 앉으신 다음에, 열두 제자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예수님은 섬김의 삶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첫째가 되는데, 명예와 지위에, 관심이 없는 삶이다.  대신에 실제로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 사랑하기에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 상대방의 필요한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채워주는 삶을 사는 자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고 또한 가장 귀한 사람이다.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자.  제자들끼리 서로 누가 큰지 길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여러 주석가들이 본문을 교만과 겸손으로 설명한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은지 논쟁을 벌인 것은 교만에서 온 것이다.

  • 아담이 선악과 따먹은 이유? 하나님보다 자기가 높아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이 아담에게 왜 먹었니? 물어보니 뭐라 대답하나?
    • “하나님이 주신 저 여자가 줘서 먹었습니다.”
    • 그럼, 그 셋중에 가장 의인은 누구인가? 아내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다.  아담이다.
    • 교만이 들어가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함으로, 자기 자신을 정당화 하고 자기를 높이려 한다. 자기 의를 드러내려 함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선악과를 따먹고는, 아담과 하와가 분열된다.  오늘 본문에서도 교만이 들어올 때 공동체는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열된다.

교만은 심각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할 뿐 아니라, 죽이기도 한다.  카인이 왜 자기 아우 아벨을 죽였는가?

  • 하나님이 자기 제사는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아우의 제사는 받아들여서.
  • 다른 말로 교만: 자기 아우보다 자기가 잘나야 하는데, 비교하고 질투하는 것도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이기는가?

  •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 또 하나, 교만은 사탄의 영성이다.  반대되는 성령의 영성이 필요하다. 온유하고 겸손해야 한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섬겨야한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신다.

막9:35 …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그리고는 36절에 “어린 아이를 하나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신 다음에”

왜 어린 아이를 데려다 그들 가운데 세우셨을까?  제자들은 지금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로 다투었다.  그들 사이에다 어린 아이를 세워놓으면, 지금 가장 작은 사람이 누가 되는가?  어린 아이.  그야말로 눈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무슨 뜻인가?

  • 요즘이야 아이가 왕이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그 반대의 의미이다.
  • 나보다 큰 사람이 아니라 나보다 작은 사람
  • 나보다 먼저 된 사람이 아니라, 내 뒤에 있는 사람
  • 내가 보기에 내가 섬겨야 할 사람이 아니라, 나를 섬겨야 할 을 사람

그게 예수님이 37절에서 말씀하세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제자들은 다 내가 가장 커야 하고, 내가 가장 앞서야 하고, 내가 섬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때,

  • 나보다 작은 사람을 높이고,
  • 나보다 뒤쳐졌다고 하는 사람 뒤에가서 서고
  • 나를 섬겨야 한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섬기는 삶을 살라는 거에요.
  • 그러면 모든 사람의 꼴지가 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나는 나보다 작은 사람, 나보다 뒤쳐진 사람, 나를 섬겨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럴 때, 겸손이란 것을 본 회퍼라는 신학자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 그 사람의 뜻이, 내 뜻보다 더 급하고, 우선순위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 그 사람의 명예가, 내 명예보다 더 소중하다는 뜻이다.

공동체를 섬기는 사역

그럴 때 본 회퍼가 여러가지 적용을 말한다.  그 중에 3가지 중요한 적용을 생각해 본다.

  • 침묵의 사역, 듣는 사역, 그리고 작은 일을 돕는 사역

침묵의 사역

첫째, 침묵의 사역이다.  다른 말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너희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질문하실 때, 34절에서 “제자들이 잠잠하였다.”  자신들이 서로 서열싸움한 것에 대해 예수님께 말하기가 너무 죄책감이 들고 또 부끄러워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

  • 동일한 질문을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물어보실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 심판 날에 예수님 앞에 서면, 예수님은 “너의 인생의 길에서 다투었는데, 뭘 가지고 그랬니?”라고 물어보실 것이다.
  • 그 때 우리도 예수님 앞에서 아무 말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쉬운 것이 있다. 제자들이 길에서 잠잠했더라면 좋았을까?

  • 사고 다 친 다음에 예수님 앞에서 잠잠한 것이 아니라, 길에서 서로 다투며 언성을 높이기 보다 서로 말을 자제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제자들이, 길에서 서로 다투지 않고,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말을 하지 않고, 자기 기준으로 서로를 판단하면서 “넌 왜 그래?” 혹은 “저 사람은 왜 그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예수님 앞에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첫번째 사역을 해야한다.  그것은 바로 침묵의 사역이다.

약3:2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본 회퍼.  Life Together. 

“많은 경우 우리가 자신의 악한 생각과 가장 효과적으로 싸우는 때는 우리가 그것들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거부할 때이다.  자기 의로움의 영을 이기는 것은 은혜의 성령을 통해서만이다.  그렇지만, [남을] 판단하는 생각을, 죄로 고백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할 권리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음으로 그것을 고립시키고 억제하고 꺼버릴 수 있다.”

무슨 말인가?  누군가를 판단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누군가가 내 맘에 들지 않을 때, 누군가가 나를 반대할 때 우리는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 사람과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비웃거나 조롱한다.

그러나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

  • 잘못한 거 맞다.
  • 그렇다고 잘못을 당사자에게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그를 비웃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영혼 뿐 아니라 자신의 영혼까지도 해치는 것이다.

대신에 그걸 말할 대상이 있다. 그것을 하나님께 회개하자.  그리고 영적인 지도자에게 가서 그것을 고백하고 그 앞에서 내가 이웃을 판단하는 죄를 이기도록 함께 기도하라.

  • 더불어서 말하려면, 만일 그가 나에게 해를 가하여 내 마음을 상하게 해서 그런 것이라면, 그에게 가서 직접 말하자. 그리고 그가 사과하기를 요구하자.

야고보서 4:11: 형제자매 여러분, 서로 헐뜯지 마십시오. 자기 형제자매를 헐뜯거나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헐뜯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율법을 심판하면, 그대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4:29: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h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

자꾸 남을 판단하게 되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은 두 가지를 까먹어서이다.

첫째는 다양성이다.   사람마다 다르다.  다른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를 먼저 구분해야 한다.

TV를 보면 맛집을 찾아 다닌다.  가서 먹으면, 다 내 입맛에 맞으라는 법은 없다.  그럴 때 시식한 사람이 잘 하는 말이 있다: “독특하네요”  그게 나입에는 안맞는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또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이것을 기억하자.

  • 그를 창조한 사람이 누구인가?  나인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그를 독특하게 창조하셨다.
  •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창조된 자이지, 내가 그를 지배하고 내 맘대로 조종하도록 창조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내가 원하는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나와 같은 형상을 갖도록 창조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창조된 것이다.
  • 각 사람은 새롭고 독특하게 창조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나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강한 자이건 약한 자이건, 지혜로운 자이건 어리석은 자이건, 재능 있는 자이건 재능이 없는 자이건, 경건한 자이건 경건하지 못한 자이건 간에, 공동체 안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은, 더 이상 판단하고 정죄하고, 그래서 자기 의를 드러내는 기반이 되어서는 안된다.
  • 오히려 그 다양성을 즐기고 축하하고, 그래서 더 서로를 섬겨야 한다.

다양성과 더불어 또 한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나도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 내 죄가 더 커요? “그 넘”의 죄가 더 커요?
  • 내 죄가 더 작고 덜 혐오스럽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 “영적 성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 내가 죄를 이겨서,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  문제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저 높은 곳에 있고… 나머지 중생들은?  더러운 것들은 저 아래에 있는 것이다.
    • 그게 자기 의로움이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교만이라고 한다
  • 아니다. 은혜의 관점으로 생각해야 한다.
    •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신앙의 성숙은 더욱더 은혜로 들어가는 것이다.
    • 신앙의 성숙이란 “나는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다”라는 것을 더 깊이 느끼고, 인정하며, 고백하고, 그러므로 은혜를 간구하는 삶,
    • 내가 가장 큰 죄인입니다. 사도 바울이 죽기전에 디모데에게 쓴 편지의 고백대로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딤전 1:15)라고 말하는 것이다.
  • 그럴 때는 다른 사람의 죄는 정상참작이 된다. 내 죄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 그럴 때 가식없이 그를 섬길 수 있게 된다.
  • 그럴 때 내가 자신을 그 위에 두지 않을 3수 있다.
  • 그럴 때 내가 그에게 소망을 가질 수 있다.

듣는 사역

둘째는 듣는 사역이다.

예수 잘 믿는 것은 듣는 귀가 열리는 것이다.

  • 무엇보다도 귀가 하나님께로 열려야 한다.
    • 설교듣고 은혜 받았다는 것이 무엇인가?
    • 설교가 잘 들리고, 내 얘기하는 것 같다.
  • 말씀이 안들리면? 졸립기만 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귀는 이웃을 향해서도 열려야 한다.

  • 우리는 사역을 내가 말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 신앙 생활을 좀 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가르치려 할 때가 많다.
  • 하나님이 입만 주신 게 아니라 귀도 주셨다. 들어주는 것은 중요한 사역이다.  때로는 듣는게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어느 이민교회 목사님.

  • 혼자 외롭고 경제적으로도 어렵게 사시는 노인들을 대하는 사역
  • 인기가 많았다. 왜요? 찾아가면 하고 싶은 말씀을 많이 하신다.  오느 분은 밤을 새서 말씀하신다.
  • 이 목사님은? 분위기 봐서 필요하면 집에 전화: 오늘 밤새고 간다
  • 한번은 새벽까지 말씀하시는데 그걸 다 들었데요. 그러더니 그 할아버지가 위장병이 낳았다.

말할 때와 들을 때를 구분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있으면, 이웃의 말을 듣는다.  이웃의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 하나님의 말씀도 곧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 죽은 영성: 영적인 잡담과, 경건의 어휘로 말은 하는 것 같은데 알고보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들.
  • 이웃의 말을 시간을 들여 인내를 가지고 듣지 못하면, 말이 어긋나고, 정말로 상대방이 필요한 말을 하지 못한다.
  • 상대방이 말하는데 내가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돕는 사역

세번째 낮아지는 사역은 그를 돕는 일이다.  특별히 작은 일에서 돕는 일을 뜻한다.

“내가 이런 하찬은 일을 하러 여기 왔는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는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 “나는 그런거나 하려고 여기 온게 아니야”라고 생각하면, 나는 그 공동체에서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다. 도움을 주려 하지 않으니까

제임스 에드워드라는 신학자가 설명한다.  “섬기다”라는 단어는 diakonos라는 단어이다.  거기서 집사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단어는 식탁에서 웨이터 노릇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것은 개인적으로 헌신해서 섬기는 것이지, 노예처럼 섬기거나 혹은 고용되어서 섬기는 것이 아니다.  당시 문화에서는 섬기는 것은 의미가 없고, 존엄성을 잃는 것이다.  플라톤은 “누군가를 섬기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해 질 수 있는가?”라고까지 말했다.  예수님은 반대로 말한다. 섬김은 이웃을 사랑하기에 나오는 것이다.   그 섬김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은 재능있거나 특권이 있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공동체의 간단한 일에서 나온다.   예수님은 “인자는 섬기러 온 것이다.”  그 예수의 성령이 충만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섬기는 살마이 되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 예전에 섬기던 어느 교회에서 있던 이야기.  학생 하나가 컵라면을 먹고, 그것을 화장실 남자 소변기에 버렸다.  나름대로 잘 처리했는데, 그만 정말 손톱만한 면 몇 개가 거기 남았다.  청소하시는 분이 내가 이걸 치워야 하느냐? 그러면서 화를 노발대발 했다. 가만보니까 그분도 쌓인 게 많다.  그런데 그 학생도 사실 자존심이 쎄고 성질이 있는 녀석이라, 그걸 전하면 싸움만 나지 해결이 안될 것 같다.  기도하다 아이디어가 낳다. 제가 가서 제 손으로 그 면을 다 주워서 버렸다.  그리고 손은 비누로 열심히 씻었다.  그리고는 그 학생이 교회에 왔을 때 조용히 불러다 자초지경을 다 설명하고, 내가 손으로 주웠다 말했다.  그 학생이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나 그 후로 그런 사건이 한번도 없었다.

결론

나는 침묵의 사람입니다.

나는 듣는 사람입니다.

나는 작은 일에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럴 때, 나로 인해 우리가 하나되고, 모두가 행복한 사람이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은혜 안에 거하며, 그 은혜를 드러내는 사이 된다.

공동체 5. 화목하라

히브리서 12:12-17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른한 손과 힘 빠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똑바로 걸으십시오. 그래서 절름거리는 다리로 하여금 삐지 않게 하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5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또 쓴 뿌리가 돋아나서 괴롭게 하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더러워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16 또 음행하는 자나, 음식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와 같은 속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17 여러분이 알다시피, 에서는 그 뒤에 축복을 상속받기를 원하였으나, 거절당하였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구하였건만,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다.

도입:성 프란체스코의 변화

성 프란시스가 젊었을 때, 하루는 그가 시골길을 말을 타고 가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 조금 전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이런 응답을 받았습니다.
  • “프란시스야, 만일, 네가 나의 뜻을 알고자 하면, 너는 육체를 가지고 사랑하고 갈망했던 모든 것을, 경멸하고 미워해야만 한다. 그러기 시작하면, 너에게 지금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고 씁쓸한 것이 될 것이나, 네가 전에 혐오했던 것들이 매우 달콤해지며 넘치는 기쁨이 될 것이다.”

이 말을 곰곰히 생각할 수 있을 때, 갑자기 현실로 돌아옵니다.

  • 그의 말이 갑자기 움직이면서 그를 깨웁니다.
  • 그가 앞을 올려다보니, 바로 몇 걸음 앞에 중증 나병환자가 있습니다.
  • 프란시스가 그동안 혐오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나병환자입니다.
  • 그 사람을 보자마자 프란시스는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바람에 실려오는 그 냄새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그는 코를 막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는, 그리스도가 해 주신 대역전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 프란시스는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알았습니다.
  • 말에서 내려서, 나병 환자에게 다가가서,
  • 그에게 돈을 주고,
  • 그 나병환자의 냄새나는 손에 입맞춤을 합니다.
  • 그리고는 말을 타고, 집에 오면서, 그는 감정이 북받쳤다고 합니다.
  • 하나님이 말씀대로 이루셨고, 그의 마음에 기쁨이 가득찼습니다.

그 다음날, 그는 나병 요양소를 찾아갑니다.

  • 그 악취 때문에 그는 순간적으로 코를 잡아야 했지만,
  • 그는 자기를 진정시키고, 그 슬프고, 송장과 같은 무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구제금을 나눠주고, 모든 사람들의 병걸린 손에 입 맞춥니다.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거룩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잘 믿는 사람의 특징은 눈이 바뀌는 거에요

  • 이전에 밉고 혐오스럽게 보이던 사람이
  • 이제는 예쁘게 보이는 거에요

다른 말로 해볼께요.

  •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 나도 나를 사랑해요.
  • 그러고 나면 하나님이 이웃을 사랑하니, 나도 그를 사랑하게 되요.
  • 그럴 때 교회가 하나가 됩니다

고전12:21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 할 수가 없고, 머리가 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 할 수 없습니다.

고전12:22 그뿐만 아니라, 몸의 지체 가운데서 비교적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고전12:23 그리고 우리가 덜 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지체들에게 더욱 풍성한 명예를 덧입히고, 볼품 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

고전12:24 그러나 아름다운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골고루 짜 맞추셔서 모자라는 지체에게 더 풍성한 명예를 주셨습니다.

고전12: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내 눈이 이제는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뀌고, 나는 나의 죄성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Why: 모든 사람과 화평해야 한다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14절에서 제일 크게 보인 것은 바로 “모든 사람”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모든 사람이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 한 사람이 아니에요.
  • 어떤 사람이 아니에요
  •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이 아니에요.
  • 내가 끌리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 나랑 다른 사람과도.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성격이. 취향이
  •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 견디기 힘든 사람
  • 내가 실망한 사람
  • 나에게 손해 끼친 사람
  • 나에게 상처 준 사람
  • 그 사람을 보면 불편하거나 심장이 벌렁벌렁한 사람
  • 괄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평하라

두번째로, “화평하라”라는 말이 나에게 다가옵니다

화평이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 미움 다툼 시기 질투
    •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
    • 누군가에 대해 gossip 하는 것
  • 차가운 미움: gossip
    • 누군가를 피하는 거에요. 그로 인해 모임에 안나가는 것
    • 또 겉보기에는 서로 웃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 사람이 싫은 거에요.  앞에서처럼 다른 것,손해, 상처, 때문에 속은 안 좋은데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것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한가?

그래서 큐티 밑에 이렇게 적었어요

  • “나는 모든 사람과 화평한가?”
    • 회개할 게 많더라고요
  • 심각한 질문이에요. 특별히 “교회 안에서 나는 모든 사람과 화평합니까?”
  • 또 하나 질문을 던졌어요. “우리 교회 성도들은 각기 모든 사람과 화평한가?”

질문을 계속 던져봅니다.

  • 여러분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든 사람과 화평합니까?
  • 여러분은 집안에서 모든 사람과 화평합니까?
  • 대답이 “당연하지. 그걸 왜 묻나?”라고 대답이 자신있게 나와야 하는데, 때로는 우리로 대답을 주저하게 하거나, 또 마음이 울컥하게 되기도 한다.

이유: 화평과 거룩

왜 그렇게까지 해야해요?

본문에서 두가지 이유

  • 화평이라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끼리 사이가 좋은 것 이상이기 때문이다
  • 화평, 혹은 평화라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셨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에요.
  • 화평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화평을 선물로 주셨으니, 우리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 화평을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다면,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한 기도와, 그리고 기도했으니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실 것을 믿는 사람답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힘쓰십시오

나는 몇몇 사람들과는 화평하게 지낼 수 있어요

그러나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는 것?”

  •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서 그랬는지, 오늘 본문에서도 “힘쓰십시오”라고 말을 합니다.

  • 힘쓰십시오: (διώκω)라는 이 단어는 큰 노력과 확실한 목적 혹은 목표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는 것.  “열심히 하다.  ~를 향해 약진하다”라는 뜻입니다.
  • 피터 오브라이언이라는 학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힘쓰다”라는 동사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구하다”라는 것보다 강한 것이며, 그 권면을 쫓기 위해 공동체가 보여야 할 강도와 긴박감으로 관심을 모아줍니다.  즉 모든 노력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 무슨 말인가?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게 되도록 젓 먹던 힘까지 다해야 합니다.
  • 시간적. 나중입니까 지금입니까?  미루지 말고 지금.

오늘 본문을 보면 느낌이 화평은 두번째이고, 더 중요한 것은 거룩하게 사는 것을 힘쓰는 것이다라는 느낌이 옵니다.

  • 원문을 단어 순서까지 안 바꾸고 직역해 드릴께요. “화평을 힘쓰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그리고 거룩함을, 그것이 없이는 아무도 보지 못한다 하나님을”
  • 강조가 어디에 있는가? “화평에 힘쓰라.  모든 사람과”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 “몸부림을 친다”라는 표현을 참 자주 사용하세요.

  • 모든 사람과 화평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한탄하고 슬퍼하면서, 한편으로는 회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모든 사람과 화평하기 위해 기도하고 힘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로마서 12:18: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존경하는 다른 어느 목사님: 성도 중에 미운 사람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 그럴 때 그분은 그 미운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밤을 새우고 기도하신다는 말을 자기 책에 써 놓으셨다.

우리도 또한 하나님이 주신 화평이라는 선물을 나의 것으로 누리기 위해 나의 힘을 다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실질적인 이유가 있어요: 화평함이 없으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문제는 화평과 거룩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 윌리엄 레인이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화평과 거룩함은 분리되지 않는다.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것으로 공동체를 함께 묶어준다면, “거룩함”은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것을 판정해 주는 성질이다.
  • 누누히 말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과,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가 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다.

무슨 말이에요?

  • “화평함”이 없이는 거룩할 수 없고, 거룩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 이웃과 화평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 삶에서 역사하심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 이웃과 화평함이 없으면, 하나님이 내 죄를 사해주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

  •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 그 밑에 설명을 이렇게 하신다.
  • 마6:14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 마6:15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 그 말의 뜻은, 우리가 남을 용서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고,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지 안으실 것이다.
  • 사도바울: 로마서 14:10: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비판합니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 화평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예배를 받아주시지 않는다. 예배가 실패할 거에요.

마5: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마5: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24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Ephesians 4:29–32 (NKSV)

29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십시오.

30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성령 안에서 여러분은 구속의 날을 대비해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역으로 교회 안에 화목이 있을 때에는 교회 예배도 뜨거워집니다.  이걸 경험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릭 워렌 목사: Harmony comes out of Harmony.

  • 하모니는 하모니에서 나옵니다
  • 앞의 하모니는 찬양이 크고 조화로운 것. 뒤의 하모니는 교회 공동체가 화평한 것.
  • 성도간에 사이가 좋은지 알려면 찬양을 들어보면 됩니다
  • 사이가 좋으면 찬양 소리가 커집니다
  • 관계가 막힐때 기도도 막힌다

베드로전서 3:7 남편이 된 이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아내가 여성으로서 자기보다 연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으로 알고 존중하십시오. 그리해야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

부부싸움하고 기도가 됩니까?

관계가 틀어지면 신기하게도 성경 말씀이 눈에 안 들어오고, 기도 하기가 싫어집니다.  억지로 성경 읽기보다는, 가서 화해하셔야만 해요.

  •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용서의 기쁨이 없는 자
  • 예배에 아무런 감흥도 열정도 없는 자
  • 기도가 되지 않고 기도해도 응답없는 자

가장 불쌍한 기독교인입니다.

How: 이웃을 타일러라

레 19: 17 너는 동족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이웃이 잘못을 하면, 너는 반드시 그를 타일러야 한다. 그래야만 너는 그 잘못 때문에 질 책임을 벗을 수 있다.

그를 타일러라: 혼내다. 야단치다. 벌주다.  꾸짖다.

  • “네 이웃을 꾸짖으라.”

이게 우리는 익숙하지 않다.

  • 그가 잘못할 때: 쉽게 말하면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혹은 나에게 상처나 손해를 끼칠 때
    • 많은 경우
      • 말하지 않고, 그냐 넘어가려 한다.
      • 웃고 그냥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왜 그에게 직접 말을 못하죠?

  •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 것을, “할 말이 있어도 그의 기분을 나쁘게 하거나 상처주지 않으려고 말 안하는 것”으로 착각해서
  • 그렇지 않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를 향한 열정이 있기에, 그를 꾸짖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봅시다.

  • 꾸짖는다는 것에는 3가지 요소가 들어간다
    • (1) 관계가 위기가 온다
    • (2) 반대되는 아이디어들이 충돌한다
    • (3) 강한 감정이 수반된다
  • 그러니까, 다들 회피하고 싶은 거에요.

할 말이 있는데 말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무엇인가?

  • 친한 것 같지만 전혀 교류가 없습니다
  • 겉보기에는 아무일 없는 것 같고, 심지어 반가워하기도, 또 웃기도 하는데, 속으로는 아무런 긍정적 감정이 오고가지 않게 되요.
  • 또 다른 반응으로, 그에게 해야할 말을, 정작 그에게는 안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또 나와 함게 하는 사람들, 또 그 사람이 공동체에서 점점 멀어지고, 공동체의 열기가 식어집니다

  • 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다. 같은 모임에서 전과 똑같은 것을 하는데 /  전에는 은혜가 넘치고 성령을 부어주시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이 있던 그 모임이 / 어느 순간 더이상 성령의 감동도, 서로간의 온전한 교제도 없어진다.  à결국 흐지부지 해지고 해산하게 됩니다

혹은 그에게 말 안하면, 풀어야할 것을 풀지 않으면

  • 결국에는 내가 행동하게 된다.
  •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가로채고, 아버지까지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챌 때, 안타까운 것이 하나 있다. 에서가 그것을 야곱에게 항변했다는 말이 안나온다.  에서가 야곱에게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를 받아낸 것이 없다.
  • 그리고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요.
  • 창27:41 에서는 아버지에게서 받을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것 때문에 야곱에게 원한이 깊어갔다. 그는 혼자서 ‘아버지를 곡할 날이 머지 않았으니, 그 때가 되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다.
  • 그것 때문에 야곱이 집에서 도망처서 삼촌 라반에게 가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필요하다면 타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해요?

  • 죄를 끄집어 내고 고백하고 예수의 피로 용서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섭섭한 것이 있으면?

  •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러세요?  왜 기도 응답 안해주세요?  왜 가만히 계세요?

누군가에 대한 쓴 뿌리가 생겼다면,  섭섭하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가서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교회는 NICE 한 곳이 아닙니다.

  • 사랑하지 못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수군거리는 나의 연약함과 죄성에 대해
  • 속 상한 나의 모습에 대해
  • 솔직하게 고백하고, 속을 털어놓고,
  • 그런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공동체를 통해 예수님을 경험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맛보는 곳.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서, 그것으로 인해서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가는 곳

  • 용서는 즉각이지만 신뢰는 오랫동안 다시 쌓아야 합니다.
  • 그럴 때, 기꺼이 그 신뢰를 쌓아가는 길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가겠다고 하는 곳

예수 그리스도

존 오르뜨버그 목사님 말해요

성경을 보세요.  성경은 심각한 대화로 가득하다

  • 아담과 하와가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회피한다
  • 하나님은 어떠세요? “아담아 너 어디 있니?”라고 하면서 그를 찾아서 “그거 왜 먹었니”라고 말씀하세요

예수님을 생각해 보세요

  • 예수님: 꾸짖음 대장이다.
  • 하루는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 집에 가셔서 말씀을 전할 때,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서 열심히 말씀을 듣고, 마르다는 손님 대접하느라고 혼자 분주
  • 마르다가 참다참다 예수님에게 저 철없고 눈치없는 마리아좀 혼내서 일좀 시키라고
  • 예수님: “눅10:41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42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이 잡혀서 고난당하고 십자가를 지실 것을 예고하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항변하면서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à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해서 말하는 베드로에게 뭐라 하시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꾸짖은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꾸짖은 것이다.
  • 그것을 통해 예수님은 가식이 없는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셨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꾸짖어야 할 것을, 대신 예수를 꾸짖고 내리친 사건

사53: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사53: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공동체 4.나눔

2016-09-25

사도행전 4:31-5:5

4:31 그들이 기도를 마치니,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고,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말하게 되었다.
4:32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4: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4:34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4: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4:36 키프로스 태생으로, 레위 사람이요, 사도들에게서 바나바 곧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별명을 받은 요셉이,
4:37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밭을 팔아서,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5:1 그런데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함께 소유를 팔아서,
5:2 그 값의 얼마를 따로 떼어놓았는데, 그의 아내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떼어놓고 난 나머지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5:3 그 때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나니아는 들으시오.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사탄에게 홀려서, 그대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의 얼마를 몰래 떼어놓았소?
5:4 그 땅은 팔리기 전에도 그대의 것이 아니었소? 또 팔린 뒤에도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소?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할 마음을 먹었소?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오.”
5:5 아나니아는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숨졌다. 이 소문을 듣는 사람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

 

성령 충만. 부활의 삶: 이웃을 사랑한다.

San Francisco Cronicle이라는 신문에 샌프란시스코의 한 버스 운전기사 Linda Wilson-Allen

흑인 여성

  •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기억하고, 그들과 친구가 된다
  • 그 시간에 버스를 타는 사람이 늦으면, 그가 올 것을 기다려서 그를 태우고 간다.
  • 어느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있을 때, 그는 내려서 손수 그 짐을 들어주었다. 그 할머니는 그 다음부터 앞에 온 버스를 다 보내고, 린다가 운전하는 버스를 탄다.
  • 하루는 운전하다가 버스 정거장에서 Tanya라는 여자를 발견한다. 린다는 그녀가 이 동네에 처음 와봤고, 길을 잃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추수감사절이 가까운 때라 린다가 그녀를 초대한다.  “놀러와서 나랑 우리 애들이랑 같이 어울립시다.”
  •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사실은 그녀가 모는 버스를 타는 승객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그녀를 사랑한다

  • 사람들이 꽅다발이나 화분을 그녀에게 선물한다.
  • 그녀가 유니폼에다 스카프를 매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사람들이 그녀에게 예쁜 스카프를 선물하였다.
  • 휴가철이 되자,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여행상품권, 또 time share: 우리 식으로 하면 콘도를 사용하라고 준다.

그 비결?

  •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서 기도한다. “주님 할 말이 많습니다.”  그리고 30분간 기도한다.
  • 그리고는 4시 20분 기차를 타고 출근한다.

이 여자가 버스교회 목사구나.

 

이 이야기를 통해서 두 가지 교훈

  • 첫째, 하나님 사랑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함께 간다

행4:31 그들이 기도를 마치니,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고,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말하게 되었다.

행4:32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행4: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 그리스도로 충만: 기도와 말씀가운데 성령충만한 내가 된다
  • 그럴 때 드러나는 현상 중 하나는 이웃을 사랑
  • 특별히,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내 것을 내어주는 사랑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일4:20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요일4:2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둘째로, 사랑이 교회 안으로 한정되어야 할까?  교회에서 만들어준 소모임으로 한정되어야 하는가?

  • 아니다. 그 사랑이 나의 일상에서 드러나야 한다.
  • 예수를 잘 믿는 것은, 주일날 오전에 내가 교회에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그가 일상에서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가는지로 판명이 된다.

 

  • 교회에서는 천사인데 집에가서는 가족을 탈탈 터는 사람이 있다.
    • 부모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데,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 교회를 안나가는 집들이 있다. 그 자녀들이 하는 공통적인 말은, 부모가 교회와 집에서 너무나 다른 말을 보인다는 것이다.
    • 교회에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부모인지, 배우자인지를 고백하고 기도하고 치유받고, 그것으로 가정에 가서 사랑하세요.

 

  • 교회에서는 천사인데 직장에 가서 자기 아랫사람들에게 악독 상사
    • 그 예수쟁이 때문에 예수를 믿고 싶고 교회를 나가고 싶어야 하는데, 예수쟁이 때문에 안 믿는 그 사람이 시험에 들고, 심지어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보았다.
    •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분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분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있으면, 그로서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랑의 표현중 하나: 베푸는 삶

그렇다면 추상적인 사랑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실천이 무엇이 있습니까?

오늘 성경에서는 베푸는 삶에 대해 말한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나의 것을 나누는 것”

  • 지금 당장 물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요.
  • 그럴 때, 그를 남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하나님의 한 가족이라 여기고,
  • 그를 위해 내 것을 내어주는 것이 아깝지 않고, 심지어는 기쁘기까지 한 것을 말한다.

다섯가지 특징

1.아가페 사랑에 기반을 둔 베풂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 사랑하면 가능해요.
    •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때, 그 표현은 아낌없이 내어주는 거에요
    • 연인이 서로 사랑할 때, 그들은 상대방에게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줘요.

특별히,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 내 안에 있고, 내가 하나님 사랑안에 거하기 때문

 

요 3:16: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외아들을 주셨으니”

  •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외아들을 이처럼 사랑하사 세상을 주셨으니”라고 써야하지 않나요?

 

그 자기 중심성을 깨고, 기꺼지 자기 자신을, 아니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사랑 à 아가페 사랑이라고 한다.

  • 신학자들이 에로스 사랑과 아가페 사랑이라고 해서 사랑을 구분해요.
  • 에로스 사랑: 여러분은 야한 생각을 하시겠지만, 그 이야기가 아니다.
  • 에로스 사랑은 “자기 욕망”에 기반을 둔 사랑이다.
  • 그것은 “자기를 찾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 내가 그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고, 그 관계에서 나의 욕망을 채우고자 한다.

아가페 사랑은 “섬김”의 사랑이다.

  • 그것은 성령이 주시는 사랑이다.
  • 그것은 나와 그 사이에 그리스도가 중보자로 계시며,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 가는 사랑이다. 그럴 때, 그 사랑으로 인해 나는 그를 섬기며, 그에게 베푼다.

 

에로스 사랑의 대표적인 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예

  • 아나니아를 함부로 보지 마시라.
  • 그는 자기 밭을 팔아, 비록 일부를 때놓긴 했지만, 문맥상 보면 상당부분을 구제를 위해 교회에 헌금한 사람이다.
  • 이 중에 자기 집이나 밭을 팔아 헌금한 분은 없지 않은가?

 

  • 아나니아가 한 일은 겉보기에는 마치 아가페 사랑처럼 보인다.
    • 아나니아가 일부를 감췄다고는 하지만,
    • 바나바나 아나니아나 자기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내놓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 아나니아가 소유를 팔아서 다 드리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러면서도 소유를 판 돈 전체를 드렸다고 거짓말 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마음의 동기를 보게 된다.
  • 그러나 그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바나바와 경쟁하는 마음.  주도권을 잡고 싶은 마음.  자신을 높이고 싶은 마음.  그리고 하나님보다, 이웃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마음.
  • 아가페 사랑이에요? 에로스 사랑이에요?
  • 에로스 사랑이 나의 물질 사용의 기반이 될 때는 두 가지로 드러난다
    • 인색함: 내것인데… 움켜 잡고 놓을 줄 모른다. 베풀줄 모른다.
    • 정 반대로 아나니아처럼 베품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동기가 순수하지 않아요.  뭔가 나에게 이득이 있거나, 나를 높이거나, 내가 주도권을 잡기 위하여.
  • 그것이 거짓말 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올 때, 3절 “그대의 마음을 사탄에게 흘려서”
    • 사탄이라는 것이 뭐에요? 원래 천사.  하나님을 질투해서,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했다.
    • 육체적으로는 욕망에 가득찬 것이요, 영적으로는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다. %

아나니아가 그러한 것이었다.

 

바나바가 보여준 베풂은 그런 것이 아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해서 그토록 사랑하는 자기 외아들을 내어주니, 나도 나의 목숨처럼 여기는 내 재산을 빼앗기지 않으려 욺켜쥐는 삶이 아니라, 기꺼이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의 이웃에게 내어 줄주겠다는 마음이다.

 

아가페적 베풂이라고 말하고 싶다.

2.계시적 베풂

성도의 베풂은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한다

  • 믿는 자가 이웃에게 베푸는 이유: 리스도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이 말씀과 성령으로 내 안에 있어서, 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 이웃을 섬기고, 그럼으로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
  • 그리고 그러한 사랑의 베풂이 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영적이고 추상적으로 다가올 만한 사랑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3.위로

성도의 베풂은 위로를 준다

  • 사도들이 바나바에게 붙여준 별명: 위로의 아들
  • 그게 무슨 뜻인가? “위로”라는 추상적 가치를, 인격적으로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 바나바는 듣는 사람.
  • 바나바: 그는 아가페 사랑을 하기에, 대방을 살리는 사랑.
  • 바나바를 만나는 사람마다, 바나바가 돕는 사람마다, 바나바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받는 것이다.

3. 아가페의 베풂은 전염성이 있다

아가페 베풂은 전염성이 있다.

사랑을 어떻게 배우나?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배운다.

우리는 바울을 복음 전도자이며, 교회 개척자이고 신학자로 이해한다.

맞다.  그게 바울의 주요한 활동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이나 바울이 쓴 서신들을 보면, 바울은 제1순위가 영혼구원과 교회 개척이라면, 바로 제2순위가 구제사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울은 원래 관계 중심적이 아니라 일 중심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었다

  • 그가 언제부터 구제를 하고, 사람을 세우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 바울과 바나바를 연구해보면, 바울은 바나바와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면서부터 구제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무슨 말인가? 바나바가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래서 바울도 자신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4. 성도의 베푸는 삶은 선교적이다.

아까 아가페 사랑과 베풂이 하나님 사랑을 계시한다고 말했다.

교회와 성도의 베풂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다.

더불어서 고ㅜ, 선교는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복음을 전하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대치되는 가치관으로 역사하는 문화와 사회 구조를 변혁하는 것도 포함한다.

  • 초대교회의 과부를 돕는 전통은 선교적이었다.
  • 당시 과부들은 생산의 수단이 없었고, 그래서 사회의 문제가 됨
  • 당시의 로마 사회에서는 과부들이 재혼할 것을 정책적으로 장려
  • 결혼하지 않는 과부들에게는 벌금을

 

  • 그 상황에서 초대교회가 과부를 돕는 것은, 과부들이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이 되며, 따라서 단지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 당시 사회 문화에게는 큰 도전이고, 그 과부들에게는 자유를 주는 일이었다.
  • 교회의 베풂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문화의 억압적인 세계관과 구조에 도전하고 변혁하는 것이다.

베푸는 삶의 실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돕기 위해 힘써 일하라

 엡4:28 도둑질하는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하지 말고, 수고를 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게 하십시오.

 

  • 도둑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내 것이 아닌 것을 몰래 혹은 힘으로 빼앗는 것이다.
  • “돈이면 최고다” “돈이면 다다”라는 생각
  • 그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풍조가 아닌가?
  • 그 마음을, 그 생각을 회개하라. 수고하여 일하여 자기 삶을 유지할 뿐 더러,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행20:35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 힘써 일한다: 나의 성취, 나의 명예, 나의 부유함, 나의 편안함
  • 그러나 이제는 삶의 자세가 바뀐다.: 힘써 일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삶
  • 왜 그래요?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예수님의 말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 하나님의 감동이 있을 때, 실제로 자기의 것을 내어주면, 이전에 알지 못하는 마음의 기쁨이 있다.

 

빚을 갚으라

둘째로,  을 갚으세요:

  • 베풀고 싶은 데 베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돈을 벌어도 나갈 곳이 많아서”이다.
  • 통계를 보니까 2015년에 평균 가구 수입의 25%를 빚 갚는데 사용한데요. 올해는 작년보다 빚이 급증했다고 하니, 그 이상일 거에요.

 

그리고 도저히 빚이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 교회의 중요한 사역 중 하나는 실질적으로 성도들이 빚을 줄여나가고 건강한 재정을 유지하면서, 건강한 은퇴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 더불어서, 성도라는 것은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원칙을 가지고 자신의 재정을 건강하게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 인생의 낙은 카드써서 맛있는 거 먹고, 쇼핑하고, 좋은 것 보러 여행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번 돈을 빚 갚는데 쓰지 않아도 되서 오는 여유에요. 나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빚을 지기보다는,
  • 그래야 베푸는데 인색하지 않을 수 있다.

주기 위해 돈을 따로 떼어 모으라

주기 위해 돈을 따로 떼어 모으는 삶

고전16:2 매주 첫날에, 여러분은 저마다 수입에 따라 얼마씩을 따로 저축해 두십시오. 그래서 내가 갈 때에, 그제야 헌금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가뭄에 들면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도 굶주린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받는 영적인 은혜를 받았으니, 우리는 그들에게 물질적으로 돕는 은혜를 주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돕기 위한 약정을 바울에게 한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다른 지역에서 전도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린도교회에게서 헌금을 받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고자 한다.

 

그 때 닥쳐서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매주 마다 수입의 일부를 따로 떼어 모으면, 자신에게 큰 부담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일정기간 정기적으로 모이면 큰 도움이 된다.

 

커피 한잔만 덜 마시고 돈을 모아 주세요

매주 소주 한 병, 혹은 맥주 한잔 마시지 말고 그 돈을 모아주라

점진적 십일조

점진적 증가의 십일조. Rick Warren

결론: 예수 그리스도

고린도후서 8: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난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 가난해지심을 묵상해 본다. 그 한 의 탄생은 마구간에서 나셨다:

  •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아이를 마구간에서 낳는 집은 없잖아요.

그분은 공생애를 사시면서 머리둘 곳도 없언 분이다.

  • 마태복음 8:2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 우리 중 가난하다해도 여전히 밤이 되면 갈 곳이 없는 사람이 없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겉옷 뿐 아니라 속옷까지 뺏기심

  •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의 옷을 빼앗아 나눠 가졌다.
  • 우리 중에 가난하고 힘없이 빼앗기어 입을 옷이 없는 사람 없다

 

바울은 말한다.  예수님이 그토록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다.

  • 우리가 부요하게 됨은, 내가 성취하는 것, 내가 유명해 지는 것이 아니라,
  • 나의 부요함을 나눔으로 부족한 사람이 없게 하고,
  • 그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공동체. 3 함께하는 경건의 삶

2016년 9월 18일

사도행전 2:37-47

2:37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2:38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14)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또는 ‘침례’
2: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2: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말로 증언하고, 비뚤어진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권하였다.
2:41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15)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 날에 신도의 수가 약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 또는 ‘침례’
2:4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16)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성만찬’ 또는 ‘친교 식사’를 가리킴
2:43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2: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2:45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2:46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2:47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도입

저널리스트 Hector Tobar, deep down dark . 칠레의 San Jose라는 지역의 탄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 33명의 칠레 광부들이 약 600백미터 지하에 갇혀 69일간 어두운 지하에 있었다.
  • 언론들은 그들의 생존확률 2%로 예측한다.
  • 그들은 그 지하 동굴을 자신들의 관으로 여기게 된다.
  • 거기서 그들은 죽음을 직면하면서, 잠시 삶을 멈추게 되고, 과거의 후회스러운 많은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 그리고는 자신들 중에 예수를 잘 믿는 Jose Henriquez를 찾아간다.
  • Jose는 지금까지 4번이나 갱도가 무너지는 일에서 살아남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신앙을 깊이 가지게 되고, 교회의 건강한 성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그에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 그리고 그 순간부터 동료 광부들이 Henriquez를 목사님이라 부른다.
  • 그들이 함께 모여서 엘리퀘가 가르쳐주는 것을 따라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 그가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는 최고의 사람들은 아닙니다.  주님.  그러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빅터 세고비아는 자기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빅터 자모라는 너무 쉽게 화를 냅니다.  페드로 코르테즈는 자기 어린 딸에게 나쁜 아빠였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딸의 엄마를 떠났고, 그리고 그는 자기가 없는 것이 딸에게 오래 남을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어린 딸을 방문하는 것과 같은 아버지로서 해야할 기본적인 일을 하지 않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여, 우리가 주님의 은혜의 보좌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이 어려운 시간을 살피옵소서.  우리는 죄인이며, 우리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 Jose Henriquez는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하였고, 그들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한다. “주님, 그렇게 아내와 아이들에게 언어 폭력을 한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 마약으로 몸을 함부로 굴린것을 회개합니다.  주님, 나를 사랑한 여인을 버린 것을 회개합니다.”
  • 그리고는 이제는 서로에게 고백을 하기 시작한다. “언성을 높였던 것 미안합니다.  물 가져오는 것을 돕지 않아서 미안해요”

 

  • 이곳에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형성한다. 모든 33명이 만나는 시간은 하루에 한번 있는 식사시간과 또 기도하는 시간

 

무너진 갱도에서 죽음을 접하고, 그러면서 이들은 오히려 온전한 신앙공동체가 생기게 된다.

  • 궁극적인 것을 접할 때, 우리는 “나와 너”사이에 있는 가식과 두려움과 불안을 떨어버리고 참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본다.

교회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

오늘 본문은 교회가 시작하는 장면이다.

  •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질문하는 사람들:
  • 그들 가운데 오신 성령님과, 베드로의 말씀을 듣는다.
  • 신기하게 그것을 믿는 자들이 개인의 신앙에서 멈추지 않고 이상적인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장면이다.

다른 말로 하면,

  • “궁극적 질문에 답하는 궁극적인 분을 만났다. 죽으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분을 만난다.”
  • 그럴 때 그들은 하나의 영적 공동체를 이루고 참된 성도의 교제를 누리는 된다.

공동체의 영성: 교회 안에 계신 그리스도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에 대한 오해가 있다

1. 건물이라 생각한다.

  • “교회 간다”고 말한다.
  • 건물이 교회가 아니다. 예배당이다
  • 가족이 있으면 살아야 할 집이 필요한 것은 맞는 말이다.
  • 교회가 있으면, 함께 모여 예배 드리고 성도의 교제를 할 장소가 필요하다.
  • 그러나 집이 우리 가족이 아닌 것과 같이, 예배당이 교회 공동체가 아니다.

2. 조직이나 제도라 생각한다.

  • 교회는 조직적 요소가 있다. 교회에는 시스템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있고, 사역이 돌아가니까.
  • 그러나 교회는 조직이 아니다
  • 어느 설교 잘하는 목사님이 계셨다.  한참 한국 교회 전체가 부흥하던 때이다.  사업을 하시는 분이 그 목사님의 목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고서는, “이 목사님을 모셔다가 교회를 하면 잘 되겠다”  가서 목사님에게 제안을 한다. 자기가 투자할 테니까, 오셔서 당회장 하시라고.  가야 해요 말아야 해요?
  • “교회는 그런 것이 아니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공동체이다.

나와 너 사이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 신앙 공동체는 신비로운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 교회와 함께 하심을 뜻한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열두 제자와 공동체를 형성하심

  • 열 두 사람: 제자가 되기 이전에 서로 친했던 관계도 있지만,
  • 그 중에는 서로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 더 나아가, 서로 원수 같은 사람들—열심당원 시몬과 세리 마태—함께 있었다.
    • 한명은 독립운동가이다.
    • 한명은 식민통치의 압잡이었다.
  • 이들이 예수님 때문에 3년을 함께 지내며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된다.

다른 말로 이것을 “그리스도 중심적 관계”라고 이름 붙여본다.

  • “나와 너”는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 “나와 너”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게 된다.

자, 예수님 이 땅에 계실 때에는 그것이 12제자들의 공동체에 적용된다  이제 사도행전에 들어오면서, 그것이 온 교회에 그 일이 일어난다.   사도행전 2장의 전체 이야기가 무엇인가?  교회는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시작된 공동체이다.

  • 성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다.
  • 예수님이 이 땅에 더 이상 몸으로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
  •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심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교회에게 부어주신다.

성령을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영으로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 그럴 때, 교회는 12제자들의 공동체가 증식되고 확장이 된다.
  • 예수님 계실 때에는 12명 밖에 그것을 누릴 수 없었다.
  • 성령이 임하시니, 모든 성도가 다 함께 예수님의 공동체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영으로 여전히 교회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중심의 사귐이다.

  • 나와 너는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것이다.

자기 중심성의 한계를 깬다

이것이 너무 소중한 이유는, 예수님이 나와 너 사이에 계심은 나의 자기 중심적 한계를 넘어 사랑하게 해 주신다.

엡2: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것은 마치 물과 기름과 같아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관계를 뜻한다.
  • 인생을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도저히 하나가 되지 못하는 관계가 얼마나 많은가?
  • 우리가 이 땅에서 가장 끈끈한 공동체라 말하는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도 도저히 하나되지 못하고, 해야할 도리는 하지만 그를 용서하거나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관계가 있지 않은가?
  • 예수님이 우리 사이에 계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상하심으로, 나와 너 사이에 있는 담을 다 허물어 주셨다는 것이다.
  • 이제 그와 나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랑을 나눌 뿐 아니라, 심지어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고 더 나아가 그의 필요를 채우는 섬길 수 있는 것이다.
  • 예수님이 그를 사랑하니 나도 그를 사랑해요
  • 예수님이 그를 그를 용서하니 나도 그를 용서해요
  • 예수님이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니, 나도 그의 필요를 채워준다.

교회와 소모임에 관하여

교회와 소모임은 내가 내키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하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하는 것, 혹은 반대로 나랑 잘 맞지 않는 사람 혹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다 보면, 사람들 때문에 시험에 들어서 교회를 옮기려 하는 분들 계시다.

  • 한편으로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럴까 생각하게 된다.
  • 다른 한편으로 그러나 그것이 공동체를 멀리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그 사이에 계신 예수님도 멀리하는 것이기 떼문이다.
  • 실제로 사람에게 시험이 든 사람은 말씀과 기도 생활이 잘 되지 않는다. 또한 악순환적으로 말씀과 기도 생활이 잘 되지 않기에, 사람에게 시험을 든다.
  • 그 시험을 이기는 것: 공동체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 그분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할 때,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말씀과 기도

어떻게 나와 그 사이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행2:4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나와 그 사이에 말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42절은 사도들의 가르침: 즉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난다.

  • 서로 사귐과 빵을 떼는 일이라는 성도의 교제의 대명사는 말씀과 기도라는 영성으로 감싸져 있다.

술 취하지 말라

(에베소서 5:19) 술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 “한국 문화에서, 사람을 만나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
  • 심지어, “술이 없으면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른다”
  • 그와 나는 직접적 관게를 맺은 것이 아니라, 그와 나 사이에 주님, 예수님 말고 술님이 있는 것이다.
  • 거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술은, 특별히 우리 문화에서의 음주는, 절제함이 없고, 끝까지 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도덕적 기준이 무너지고 방탕함이 따른다.

대신에 성경에서는 그와 나 사이에 술 대신에, 우리 주님 예수님이 계심을 말한다

  • 내가 주안에, 주가 내 안에

참된 성도관의 관계

  • 나와 너를 연결시켜주는 것이 알코올로 충만해서 같이 노래방에서 괴성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계심으로 부르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말씀

지난 주 유아세례 간증에 공통적으로 나온 말씀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17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관계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 어떤 사람은 나와 너 사이에 “이득 관계”
  • 어떤 사람은 나와 너 사이에 “해야할 도리”
  • 어떤 사람은 그 사이에 “원망과 불평”
  • 어떤 사람은 그 사이에 “분노가”
  • 어떤 사람은 나와 너 사이에 “냉냉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서로를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

 은혜의 척도로서의 성도의 교제

예전에 수련회나 부흥 집회를 하면, 그 집회가 은혜로웠는지 아닌지 측정할 수 있는 방법

  • 예배가 끝났는데 성도들이 집에 가지 않고 계속 하하호호 떠들며 웃으면 그 예배는 은혜로웠다는 증거이다.

예배에 성공하면: 말씀에 은혜를 받고 진정한 헌신을 하며, 기도가운데 성령충만함과 기도의 응답을 받는 감격이 있으면,

  •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 그 나는 점점 더 교회 공동체를 즐기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게 된다.

 

더불어, 선순환적 관점에서 교회 공동체에 깊이 들어갈수록

  • 더욱더 그 공동체를 통해서 말씀과 찬양과 기도가 깊어지고 넓어져야 한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3:16; 표준새번역)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공동체의 영성과 공동체의 교제가 서로 선순환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말함

  • 우리 가운데 예수님이 계심으로, 우리에게 말씀이 풍성하고, 찬양이 끈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을 통해 나와 너가 진정한 성도의 교제를 하게 된다.
  •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들 가운데 성도의 교제가 풍성할 때, 그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한 그 분을 찬양하고, 예수님께 기도하게 된다.

주일 교회 생활을 그렇게 디자인 한 것이다.  오늘 말씀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 예배가 끝나고 함께 식사하고 소모임을 하는 것
  • 혹은 주중에 모여도 함께 먼저 찬양하고 기도한 이후에 서로 친교하는 것
  • 영성과 교제가 따로 놀면 안되고 함께 돌아가야 한다.
  • 은혜 받은 말씀과 그것에 대한 자신의 결단과 헌신을 나누고,
  • 모여서 먹고 마시면서,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 서로를 내 가족처럼 사랑하니까 그 필요한 것을 내 것으로 채워주고 섬기며
  •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러한 온전한 영성 위에 세워진 공동체는 영적 권위가 있는 공동체이다.

기도

기도에 영적 권위

성령이 우리 가운데 계심.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심

  •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예수님과 동떨어져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자시의 몸을 교회를 통해 하시는 기도인 것이다.
  •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기도인 것이다

이것은 신비로운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우리의 기도는 자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기도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를 한 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도,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영적인 권세가 있는 것도, 우리의 기도가 우리만의 기도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기도이기 때문인 것이다.

놀라운 일과 표징

그러면 43절이 이해가 된다.

행2:43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 사도들을 통해 놀라운 일과 표징 –>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행하시던 초자연적인 사건을 뜻한다.
  • 그것이 사도들을 통하여 일어났다는 것은,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가 교회에 계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론: 한계를 넘는 사랑

그러므로 42절 끝에 “힘썼다”

  • προσκαρτερέωa: 의지적인 것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 지속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 강한 노력과, 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을 뜻한다.  “헌신하다.  계속 하다.  끈기를 가진다”

교회의 공동체와, 공동체의 영적 행위는 선물이다.  이제는 선물로 주어졌기에,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또한 완성해가는 교회의 의도적 선택과 행위가 필요하다.

  • 교회 공동체에 대해 은혜를 받고 그 결과로 성도의 교제를 즐기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나 수동적인 것이다.
  • 이제는 그렇게 주시는 하나님의 공동체의 영성과 교제가 소중하고 즐거운 것을 알았다면, 그것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을 뜻한다. 말씀과 기도-성도의 교제와 함께 떡을 땜에 대한 지속적인 헌신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힘써 모입시다.  모일 때마다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며, 기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계심을 드러내고 느낍시다.  예수로 인하여 참되게 사랑하며 섬기며 세워주는 온전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2.감동이 있는 언약

2016-09-11 주일 예배

알베르 보통이라는 철학자가 있다.  그가 자신의 글에서, 소설을 인용하면서 어떤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에 대해 말한다. 이 학생은 미술 작품을 학문적으로 분석하는 사람이다.

그가 하루는 박물관에 갔다가, Roger van der Weyden라는 화가가 그린 “십자가에서 내려지심” 이라는 작품을 본다.  그리고 그 그림을 보는 방문객을 본다.

방문객들을 보면서,이 미대생이나 또 거기 있는 경비들이 놀라는 것이 있다.  방문객들이 그림 밑에 붙은 제목이나 안내 책자를 보지 않는다.  또 그들은 붓칠을 얼마나 섬세하게 잘했는가만 보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그걸 보면 눈물을 터뜨리고심지어 사람들 앞에서도 대놓고 울고만다.  그리고 그러한 강렬한 감정이 표출되는 것이 드문일이 아니다.

이 그림에서 나오는 슬픔과 아름다움 때문에.  더불어서 자신의 삶의 어려움과 그 작품의 고결한 정신과의 대조를 느끼기 때문에.

그림을 보는 3가지 방법이 있다.

  • 학자로서 그림을 분석하는 것
  • 경비로서 관람객들이 행여나 그림에 흠집이라도 내지 않는가?
  • 그 그림을 감상: 그 아름다움과 고결함을 느끼고, 또한 자신의 삶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것

이 말씀을 드리고 오늘 본문을 묵상해 본다.  니고데모의 이야기이다

3: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분별력이 있는 자. 현상을 보고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꽤뚤어 보는 자이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대부분 거기서 대단하다 말하고 끝난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본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  하나님이 함께 하는 분임을 파악한다.

문제가 생긴다.  예수님이 칭찬할줄 알았지? 그러지를 않으신다.

3: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다시 나지 않으면“ [옛날 성경표현대로 “거듭 나지 않으면“]  무슨 뜻인가? 예수님이 지금 니고데모가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거에요 못본다는 것인가?  아마도 예수님 표정은 “참 안됐다"라는 표정이었을 것이다.

Poor Nicodemus

영어로 poor 는 불쌍하다는 뜻이다 .  동시에 그 단어는 가난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신학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막상 자기 자신은 그걸 누리지 못한다.  그는 천국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 불쌍하고 가난하다.  니고데모가 예수가 누구인지 아는 것  값진 일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고, 예수를 누리는 것이 더 소중하다.

오늘은 추석감사예배이다.  서양의 추수감사예배를 우리의 추석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린다.  한해동안의 수고한 끝에 추수의 풍성함이 있기에 감사하였던 전통의 절기이기도 하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기에 추수는 더 소중하다.  중요한 일을 따기 위해서, 늦게까지 야근하면서 견적을 하는 회사원들이 있기에 소중하다.  중요한 면접을 보고 나서, 마음을 졸이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부모와 청년이 있기에 소중하다.  대학 입시를 향해 밤을 지새우며 공부하는 학생이 있기에 소중하다.  이 예배는 그 추수라는 하나님의 풍요로운 선물을 축하할 뿐 아니라, 더불어서 우리에게 있는 불안과 초조와 걱정을 표현하고, 또한 신앙으로 소망을 얻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누리자.

또한 그것을 기념해서 새로운 영적 생명을 상징하는 세례가 있는 날이다.  예수님 세례에 대해 말씀하신다.

3: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세례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죄사함과 생명 주심을 상징한다.   세례라는 것 자체가 죄사함과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다.

  • 그러나 예수의 은혜를 우리가 믿음으로 받고, 죄 사함과 새생명 얻은 것을 외적인 상징으로 고백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 첫째, 물: 예수의 피를 상징해요. 물이 우리를 씻어주는 것과 같이, 예수의 피로 죄사함을 받을 거에요. 다른 말로 예수와 함께 죄 된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거에요.
  • 둘째, 성령: 성령은 생명을 뜻해요. 성령이 예수님을 부활시킨 것과 같이, / 예수 믿는 우리도 성령이 십자가에서 죽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줘요.
  • 셋째. 아이가 태어나면, 그것은 자신의 개인적 생명이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아기는 동시에 자동적으로 그 가족이라는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 세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것…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는 사건. 다른 말로 하나님의 가족 즉 교회의 가족이 된다.
  • 넷째. 그걸 언약이라고 한다.
  • 언약: 쉽게 말하면 가족이 되는 것을 뜻한다.
  •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에 헌신하는 약속
  • 왜 용서가 있는가? 지속적으로 사랑하기 위해 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을 해결해야 한다.
  • 영원한 생명이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언약을 맺으심으로 생명을 지속적으로 주시니 영원한 생명이 된다
  • 교회: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와 내가 지속적인 사랑과 섬김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데 헌신하는 것이다.
  •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와 성령 주심을 피부로 느끼는 것처럼, 교회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세례를 받는 분들

  • 마음껏 울고 울어라
  • 세례 받는 분들 대표로 간증하시는 분들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 하나님의 은혜 + 나의 삶의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면, 그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 억지로 참는 것 아니다.

또 이 자리에 참석하시는 분들, 심지어 손님으로 계신 분들에게 바라는 것

  • 세례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선물: 죄사함과 영생이라는 것 à 이해하고 구경하는 것으로 끝나면 헛된 것이다.
  • 그 하나님의 선물이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것 되어야 한다.
  •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교회 예배에 참석해 보라. 다니다 보면 이해도 되고, 감동도 있다.

생명은 선물이다.  잉태되고 탄생될 때,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영원한 생명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예수가 사람이 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주시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할 뿐 아니라, 나의 것으로 받아간다.

공동체. 1.하나님의 공동체

2016년 9월 4일 주일

하버드대학의 심리학과에서, 1938년에 당시 10대였던 723명을 선정해서, 매2년마다, 지금까지, 그들의 삶 전체를 통해 행복도를 조사해 왔다.

이 연구가 마음에 드는 이유

  •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연구했다. 723명.  거기에 그 배우자.  리고 자녀들은 지금 2000여명에 달한다.
    • 그 중에는 하버드에 다니는 학생, 그 반대로 보스턴의 최저 생계층, 뜨거운 물도 안 나오는 집에서 살던 아이들도 있다.
    • 이들이 중년이 될 때는 변호사, 의사도 있고, 심지어 대통령이 된 사람도 한사람 있다. 그 중에는 밑바닦에서 정상에 간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사람도 있다.
  • 둘째 과학적으로 연구했다.
    • 2년에 한번씩, 설문 조사한다. 그런데 그 뿐 아니라,
    • 그 집에 찾아가 거실에서 본인 뿐 아니라 배우자들과 자녀들도 인터뷰한다.
    • 건강 검진도 같이: 피검사 또 뇌 스켄. 건강에 대한 데이터 수집
    • 기억력 같은 두뇌의 활동—즉, 정신이 얼마나 예리한가도 조사
  • 마지막으로, 종말론적이다. 1938년부터 지금까지 75년 이상 추적해왔다.  연구 시작할 때 십대였다.  지금은?  80대, 90대이다.
    • 인터뷰할 때는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대답한다.
    • 이제는? 인생을 다 살아보고, 뒤돌아보면서 대답할 수 있다.
    • 오늘 성경에서 17절에 보면, 중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인생을 마치고 평가를 받을 때, (1) 나도 잘 살았다고 말할 뿐 아니라 (2) 주변 사람들, 특별히 소중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3) 하나님께서 그 말을 해 주셔야 한다.

이 연구의  director. Robert Waldinger의 말이다.

“그 연구의 교훈은 부나 명성이나 혹은 일하고 또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이 75년간의 연구에서 우리가 얻는 가장 명백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좋은 관계들이 우리를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게 지켜준다.  끝”

Well, the lessons aren’t about wealth or fame or working harder and harder. The clearest message that we get from this 75-year study is this: Good relationships keep us happier and healthier. Period.

요약하면 이러하다

  1. 가족 및 친구와 관계를 잘 맺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산다
    1.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 더 사람들에게서 격리된 사람은, 불행하고, 건강도 나빠지고, 뇌 기능도 떨어진다.
  2. 외로움이란 군중 속에 있어도. 가족이 있어도 느끼는 것. 그러므로 내가 친구가 얼마나 많은가 혹은 내가 헌신된 관계에 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 관계의 질이 어떠한가가 중요하다.
    1. 갈등이 많은 삶은 건강에 좋지 않다. 갈등은 많으나 애정이 결핍된 결혼 생활은 건강에 좋지 않다.  반대로 좋고 따스한 관계는 우리를 보호한다.
    2. 연구 대상자들이 80대가 됬을 때, 이 사람들이 50대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정리해봤다.  다른 말로: 지금 50대인 사람들의 lifestyle을 보면, 그가 80대가 될 때 행복할지 불행할지를 예측할 수 있는것이다.  2년마다의 건강 데이터, 가족 관계까지 다 있으니까: 50대의 콜레스테롤 레벨이, 그들이 나이들어서 어떻게 살지를 크게 결정하지 않느다.  50대에 관계에 가장 만족하는 자가 80대에 가장 건강하다.
    3. 80대에 부부 관계나 친구 관계가 가장 좋은 분들은 몸이 아파도 여전히 행복하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관계에 있는 분들은, 몸이 아픈 날, 감정적 고통도 확대되었다.
  1. 마지막으로, 좋은 관계는 몸 뿐 아니라 두뇌도 보호한다. 80대에, 내가 혹시라도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있는 사람은, 기억력도 예리한 상태로 더 오래 지속되더라.   그러나 80대에, 내가 상대방을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은 기억력이 감퇴가 더 빨리 진행된다.

관계에 투자하라

이 말씀을 다 드리고 나서, 본문을 묵상해본다.

7절, 8절 읽어보자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하라고?  “서로 사랑합시다.”  진작 성경말씀을 잘 읽고,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얼마나 좋을뻔했다.  그랬으면 행복해 졌을 것이다.

투자하라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을 좀 바꾸어 경제적 용어로 생각해 보자.  투자하라.  투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가진 자원들: 돈과 시간, 에너지, 힘 등을 내어주어서, 장래에 더 큰 유익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투자는? 사랑에 투자하라

비슷한 연구 결과를 보면 건강하려고 외롭게 셀러드만 먹는 사람보다 친한 사람들이랑 같이 삼겹살 먹는게 장기적으로 건강에 더 좋다는것이다. (물론 한국분들이라면 거기에 소주는 빠져야 하겠죠)

자녀들이 행복하게 잘살게 하기 위해서 강조하는 것: “공부”이다.

  • 2014년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 사교육비 총액이 18조2천억원.
  • 우리는 사교육에 목숨을 걸어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부모는 두려움과 경제적 부담이 더 늘고, 자녀들은 부모의 기대가 버겁고, 몸은 피곤해지지만 안나요?
  •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서, 그리고 연구결과를 보면서, 도전을 받는 것은, 가장 중요한 사교육은 엄마-아빠가 자식들에게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 또 한가지. 엄마-아빠가 자식들을 사랑하는 것이에요.   자녀들에게 “사랑”이라는 말은 “시간”이래요.  많은 분들이 바쁘니까, 자녀들과 “짧고 굵게” 시간을 보내려 해요.  틀렸어요.  “길고 굵게” 시간을 보내야한다

결혼한 자식을 두신 부모님들, 좀 심각하게 말씀드린다

  • 나는 미국에서 시어머니 때문에 남편과 이혼한 집사님을 만난적이 잇다.
  • 또, 반대로, 사위될 사람이 마음에 안든다고, 처가 어르신들이 결혼식 전날 몰래 불러다 야단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어요. 결국 부부관계가 안되서 남편이 바람나고 .. 이혼했다.
  • 자식이 성공하는 것을 놓고, 그들의 배우자들을 닥달하지 마세요. 그 배우자들이 그러면 여러분의 자녀들을 미워할 거에요.  본인들도 겪어보셔서 알거 아니에요?
  • 결혼한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부모님들이 하실 일은, “이것으로 인해 자녀가 서로 더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가?”를 좀 미리 생각하라.
  • 친구들이 자꾸 자식 자랑하면, “자식 부부 금실은 좋은가?”하고 역으로 질문하세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개인주의에 대한 도전

다시 7절, 8절로 돌아와서 말씀을 듣자

7절에 “…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절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요한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이라고 말한다

  • 요한은 지금 사람을 분류하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 밖에 없다.

  •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
  •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 그걸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은 간단해요: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을 알지 못한다
  • 행복은 어떤 면에서 이기적 개념이에요: “나”의 웰빙에 대해 말하는 거니까.
  • 그런데 그 진정한 행복은 뚜껑을 열어보니 나 자신이 아니라, 자기중심주의를 깨고, 관계에 집중할 때, 그리고 관계에서 성공해야만 얻어진다.

젊은이들: 키워드.

  • “내 선택” 혹은 “내 기분”이 중요하다.
  • “내 자유” 혹은 “내가 하고 싶은 데로”, 가 중요하다
  • “내 성취” 혹은 “내가 무엇을 기여하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얻느냐?”가 중요하다.
  • 그러니까 혼자 밥먹는 거다.
  • 사실은 교회도 그 기준으로 고르고, 그렇게 다니는 사람 많다
  •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집단적 회식과 접대로 대표되는 “성공을 위한 인맥 관리”에 회의를 느껴서 그럴꺼에요.
  • 그러나 “나”라는 단어가 너무 강조되면: 외로움과, 경쟁과,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남게 될거에요

 

어떻게 해야하는가?  요한이 하나님의 이타적 사랑을 말한다.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4:10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여 자기 독생자 예수를 보냈다.
  • 그 아들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셨다.
  • 그것을 알고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 (16절)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철저하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계명을 지키신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은 사랑이세요.
  • 이걸 보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행복한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을 믿기를 참 잘했다.
  • 그럴 때,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는 것은 행복으로 초대한다는 것을 알고, 나도 그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응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믿는 자라면,

  • 그 은혜로 인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를 뿐 아니라,
  • 더불어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하나님이 그를 그러한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셨으니 그것을 누릴 뿐 아니라,
  • 더불어서 그것이 우리의 마땅히 해야할 일이 되어 그러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인생의 방향을 설정해야하는 것이다.

공동체

그 구원은 공동체적이며,

그 구원은 공동체로의 소명이에요. 11 .  . 구원하신 하나님은 사랑의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세요.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래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

  •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
  • 그와 동시에 공동체로 부르시는 것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이 불러서 그분을 따라갔다

  • 그런데 가보니 11명의 다른 사람들이 있더라
  • 예수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과 교제하고 기도하는 것은 쉽다
  • 그러나 나와 다른, 그리고 부족한 면이 있는 그들과 함게 교제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 베드로는 늘 장담하지만, 뒤에서 사고치는 사람이었다
  • 요한은 별명이 “천둥의 아들”이었다. 성격이 좀 거시기 했나보다.
  • 도마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 가롯 유다는 공통 주머니에서 돈을 훔치던 사람이었고
  • 열심당원 시몬은 로마의 식민정치에서 이스라엘이 독립하기를 위해 운동하던 사람이었고
  • 세리 마태는 로마의 압잡이로 이스라엘에서 세금을 걷던 사람들이다
  • 예수님이 이 12을 데리고 소모임하셨다.

예수님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야 하느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요한은 기록해요.  예수님 잡히시던 밤에, 자신이 죽으실 것을 아시면서, “제자들을 사랑하시데 끝까지 사랑하셨다.”  자신을 배신할 가롯 유다의 발도 씻어주셨다.  자기를 부인할 베드로의 발도.

이제 그 사랑을 보고, 그 사랑을 알고, 그를 믿고, 그의 성령을 받을 때, 제자들도 서로 사랑할뿐 아니라, 그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세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된다.

그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어떻게 아는가?  우리는 구원을 영적인 차원으로 축소시키는 성향: 말씀듣고, 뭔가를 깨닫고,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영적 체험하고.  그러나 그것만이라면 그건 반쪽짜리 구원이다.

그 사람이 구원받은 것을 진짜 알려면, 그가 사랑하는지를 보면 되요

  • 자기밖에 모르던 사람이, 교회를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기 시작하고 그를 이해하고,
  • 잘못한 거 절대로 인정 안하던 사람이, 사과하고 보상하고
  •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하던 사람이, 용서하고 화해하고,
  • 남들을 깔보거나 반대로 시기 질투하던 사람들이, 낮아지고, 그를 칭찬하고 인정해주고 세워주고
  • 일을 당한 사람 옆에서 입바른 소리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같이 울어주고,
  •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볼 때,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심지어 자기것을 팔아서 그것을 채워주고
  • 그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진심으로 걱정하고, 연락하고, 찾아가고
  • 기도를 해도, 내 기도만 하던 사람들이, 남을 위하여 새벽에 일어나서, 혹은 밤을 지새우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

어떻게 가능한가?

4: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어요. 그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세요.
  •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바로 그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은” 바로 그 성령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뜻이다.
  • 그 성령께서 우리의 성품을, 인격을 감화하시고, 감동하셔서, 예수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게 하신다
  • 그걸 은혜라 하는 거에요. 참 은혜는 사랑하게 하는 은혜이다

그럴 때, 그 은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응답은:

  • 그 사랑의 관계를 더 발전시키고자 지속적인 헌신하는 거에요
  • 한 마디로 언약이에요. 그것을 약속하는 거에요.

처음에 말한 Robert Waldinger가 말한다.  우리는 Qucik fix. 즉각즉각 해답을 얻기를 원한다.  그러나 관계는 그게 아니다.  현실에서는 들쑥날쑥하고, 힘들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실망할 때도 많다.   그러나, 건강한 관계가 가장 큰 행복을 주기에, 그리고 영원한 삶을 소유하고 누리게 함으로, 우리는 사랑하기로 약속한다

결론

인생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인생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갑니다

  • 하나님이 그 삶을 주신 것은 사랑함으로 행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안에 거함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자, 그가 참된 영생을 누리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