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동굴

다윗의 동굴. 4 불안

2016년 8월 22일 주일 설교

 

불안이 무엇일까?

  • 평안라는 허리 디스크가 빠져버린 삶
  • 평안이 없으니 조금만 외적인 힘이나 충격이 가해지면, 삶 전체가 휘청휘청하는 것

기독교인의 삶이 무엇인가? “평안”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노라”

예수님 하루는 제자들과 밤에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시는데 큰 풍랑이 몰아쳤다.   제자들은 난리를 치는데,  예수님은 곤히 주무셨다.  그게 평안이다.

  • 그것은 막연한 내면과 현실의 단절이 아니다.
    • 제자들이 예수님을, “지금 물에 빠져 죽게 됐는데, 주무십니까?”하고 깨운다.
    • 예수님 일어나서,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하시고 폭풍을 호령해서 잠잠하게 한다.”
    • 예수님의 평안은 요동치는 현실과의 단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깊이 신뢰하기 때문이다.

 

  • 어떤 분은 “예수님은 그런 능력이 있으니까 평화를 누리죠”라고 말할 것이다.
    • 복음서를 다 읽어보지 않아서 그렇다.  예수님은 피땀을 흘리는 극박한 긴장감을 이기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그것도 평안이다.

 

다시 튀어오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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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성 회복력(Resilience)은 적대적 상황, 트라우마, 비극, 위협 혹은 스트레스의 심각한 원인을 직면할 때—가족이나 관계의 문제, 심각한 건강의 문제, 혹은 직장과 경제적인 스트레스를 겪는 상황에서 잘 적응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어려운 경험에서 “다시 튀어오르는 것”을 뜻한다. (APA. Resilience)

이분의 사연을 알지 못한다.  안타깝다.  그러나 대충은 짐작이 가능하다.  이분이 하는 일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궁수인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분은 활을 쏘기보다는 포기해야할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잊지 않고 회복하고자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2 그래서 다윗은 주님께 여쭈었다. “내가 출전하여 이 블레셋 사람을 쳐도 되겠습니까?”

…  4 다윗이 주님께 다시 여쭈어 보았다

이 말이 얼마나 위대한 말인가?

  • 얼마전에 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잃고, 도망자가 되고, 미친척을 해서 살아 남았어야 했다.
  • 그는 자신의 아내, 가장 친한 친구, 자신의 멘토를 다 잃어야 했다.
  • 다시 그에게 400명의 부하들이 생기긴 했지만, 부하들의 말이 맞다: 사울이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자신을 잡으려고 하고 있다.

그는 적대적 상황을 겪었고, 트라우마가 있고, 모든 가족과 친구를 잃는 비극이 있었고, 생명의 위협을 받아 미친척을 했어야 했다.  지금도 언제 잡혀서 죽을 지 모르는 스트레스의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그가 그일라 백성을 구하려 한다 . 주변의 부하들이 다 만류합니다.

3 그러나 다윗의 부하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는 여기 유다에서도 이미 가슴을 졸이며 살고 있는데, 우리가 그일라로 출전하여 블레셋 병력과 마주친다면, 얼마나 더 위험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주님께 여쭌다.  “내가 출전하여 이 블레셋 사람을 쳐도 되겠습니까?”

어떻게 다윗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다윗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동굴로 인도하시면서 하신 일이 있다.

  • 다윗을 죽게하신 것이다.  그것은 다윗의 야망을 죽이고, 어떻게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려하는 자신을 죽게 하신 것이다.
  •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을 살게 하신다.  다윗에게 기름부으시면서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이 살아있게 하고 다윗에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한다.

다윗의 주변에 자신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

  • 그일라 주민처럼, 필요하면 도움을 받지만, 언제든지 자신에게 해가 된다면 그를 배신할 수 있는 사람들
  • 다윗의 부하들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만, 내가 손해볼까봐 그를 외면하는 사람들
  • 사울처럼, 가진것이 많고 힘도 있지만, 그 힘으로 백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거슬리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럼에도 다윗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은 사람이다.

  • 하나님이 기름 부어서 장차 왕으로 삼을 자이다.
  • 왕이란 자기 백성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가서 구하는 자이다

그게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이다.

우리의 시작점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죄로 인해 그 형상을 망가뜨릴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매를 맞고 채찍에 찢김으로 우리의 형상을 회복하셨다.  우리의 종말점도 하나님이다.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각자 자기 길로 가고 흩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켰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종착역을 향해 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께로 부터 나오고, 예수께로 가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다시 일어나자.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도 포기하자고 말한다.  상황도 포기해야할 것 같은 상황이다:  이 일을 한다고 나에게 당장 돌아오는 유익도 없는 듯 하다: 누가 감사하다고 말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이 있기에 나는 그 일을 계속한다. 그게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의 삶이다.  그는 그러하게에 늘 다시 튀어오른다.

주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으로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게 하자.

 

나는 당신이, 당신은 내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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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스텐리 존스와 친구 감독

스텐리 존스 목사님

  • 젊은 나이에 부귀를 마다하고 인도에 선교사로 간다
  • 인도 선교를 마친 후,미국으로 돌아와서도 복음을 열심히 전한다. 일본 전도 집회를 마치고 미국에서 다시 치유 집회를 이끌던 중 69세에 뇌출혈로 쓰러지신다. 새벽 2시에 그 일을 당함. 아침 7시에나 사람들이 발견. 다섯 시간 동안, 전신이 마비되어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 전신이 마비된 채 5시간을 홀로 누워 있는 동안 놀랍게도 자신의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다. 나는 그전 그대로였다.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었고, 여전히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왕국에 속해 있었다. 다만 외부 세상과 연락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 분이 이렇게 기록한다

“나에게는 내 믿음을 받쳐 줄 외부의 버팀목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믿음이 나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주위의 다른 사람이 모두 자기와 같지는 않다고 하며 안타까워한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은퇴한 한 주교와 대화하고 있었다.  그는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주교직에 있던 시절처럼 각광을 받지 못하니 좌절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승리하는 삶의 비밀을 알고 싶어했다.  나는 그 비밀은 자기 포기(self-surrender)에 있다고 말했다.  즉, 가장 속 깊은 자아를 예수님께 내어놓는 데 있다는 말이다.  중요한 차이는 그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었다.  은퇴로 인해 외부의 줄이 끊어져 버렸는데 내면의 줄이 그를 지탱하기에 충분치 못했던 것이다.  그는 예수님께 자신을 내어놓기보다 ‘무대 체일’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다행히도, 내 경우에는 예수님께 나를 양도하는 것이 최우선이었으므로 마비 증세로 인하여 외부의 줄이 끊어졌을 때에도 삶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의존적 사람, 독립적 사람, 상호의존적 사람

잠깜 모든 것을 멈추고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 자신이 뇌졸증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을 그려자
  • 그전까지 나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 모든 것을 잃고 고립된 나를, 여전히 지지해 줄 수 있는가?

리더십에서 의존적인 사람, 독립적인 사람에 대해 말한다.

의존적인 사람:

  • 정서적으로, 지적으로, 의지적으로 누군가에 대해 의지해야 하는 사람.
  • 쉽게 말하면, 어린 아이가 엄마나 선생님에게 “엄마 피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자기가 가서 피피하면 되는데, 엄마의 결정에 의지한다.

어린아이는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잇다.

예전에 유행했던 말이 있다.  “마마 보이”

어릴 때는 누구나 의존적이다.  그러나 어른이 다 되어서도 여전히 의존적인 사람이 많다.

특별히, 오늘날 젊은이들을 보라.

  • 나이가 들어도 의존적이다.
  • 부모도 자식들을 놓아주지 못하고, 자식도 부모에게 의존적이다.

독립적 사람

의존적 사람을 이해하면 독립적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자기 스스로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성숙한 존재이다.   내적으로 건강하고, 육체도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한 사람.

한국부모님의 입장에서 자식들이, 학교를 마치고, 자기 자리를 잘 잡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특별히 영적인 면에서도 스스로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경건생활, 예배, 섬김 등으로 유지해 나가는 사람이다

상호의존적 사람

대부분은 여기까지 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러나 리더십에서는 한 가지를 더 말한다.  상호의존적 사람:

  • 그는 독립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홀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 다른 독립적인 사람과 함께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 그가 승리하여 내가 승리하고,
  • 내가 그를 이해하고, 그가 나를 이해하고,
  • 내가 100을 내놓고 그가 100을 내놓으면, 200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큰 효과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야 말로 독립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시고, 그들을 통해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본다.

  • 그는 원래 일중심적 사람이었고, 탁월한 면이 많았다. 야심도 있었다
  • 예수를 만나고, 그리고 사람을 세우는 사람 바나바를 만난다.
  • 삶의 목적이 사람을 얻고, 그 사람을 통해서 그들과 더불어 주님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삶을 살게 된다.

우리 교회를 생각해본다

  • 내가 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 다른 한편으로, 사람을 얻는 것이다. 나의 소명이 있다.  상한 자를 데려다 치료하고, 다시 세워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다윗을 상호의존적 사람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우리는 다윗의 동굴이라는 시리즈를 하고 있다.  “다윗의 동굴”은 실패의 동굴이다.  그것은 실패한 사람 다윗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간과 장소를 가지고 다윗의 내면의 끈을 튼튼하게 만드시는 것을 봤다.

신비로운 것은 하나님이 그 시간을 사용해서 그를 지지해 주는

  • 포용력 있는 관계,
  • 전에 몰랐던 은혜,
  • 뚜렷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영성을 만드신다.
  • 그것을 통해 다윗이 왕이 될 준비가 되고,
  • 장차 나라를 함께 이끌어갈 상호 의존적 공동체가 세워진다.

가장 독립적으로 보이나 가장 정서적으로 의존적인 사람.

오늘 본문에 다윗 말고 실패한 사람이 한 명 더 나온다.  바로 사울 왕이다.  단 사울은 다윗과 다르게 외적인 실패가 아니라 내면의 실패를 한 사람이다.

  • 그는 외적으로는 지지해주는 끈이 가장 튼튼한 사람이다.
  • 그를 둘러싼 수많은 신하들이 있고,
  • 군대를 이끄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정서적으로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정서적 의존성” –> 나의 존재 가치와, 나의 안전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의존하게 된다.

  • 누군가가 나를 나쁘게 평가하면 견지지 못한다
  •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면 나는 무너지게 된다

정서적으로 의존적인 사람의 Keyword: “너.  You”

  • “YOU”가 나를 칭찬하면 나는 자신감이 생기고 행복하다.
  •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 일이 잘못되면, 의존적인 사람은 실패나 비난을 받아들일 내적인 힘이 없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 탓하는 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 관점을 가지고 사울을 보면, 그가 평생에 정서적으로 얼마나 건강하지 못했는가가 나온다.

  •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지난 주에 말한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라는 것이다: 그 사건이 있을 때, 다윗도 잘못 처신 했지만,
    사울은 그 이상으로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한다. 더 나아가 죽이려고 한다.  사람들의 평가도 받아들이기 힘들 뿐 아니라, 그렇게 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다윗”
  • 그 다음날 다윗을 죽이려 할 때, 미친척 하고 창을 던졌다는 것이 의미 심장하다.
  • 요새식으로 말해볼까?
    • 맨정신으로 말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 작정하고 술마신 후에 할말 퍼붓는 것과 같다.
    • 심지어 술을 마시고 사람을 때리는 사람도 있다.
    • 이 사람 불쌍한 사람이다. 그는 강한 자가 아니라, 의존적인 자인 것이다.

사실은 과거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늘 다른 사람의 탓을 했다

  •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하나님께 먼저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사장 사무엘이 늦었다. 그가 안 나타나자, 사울왕이 월권으로 제사를 드린다.  그리고 사무엘이 오니, “사무엘이 늦게와서”라고 책임을 그에게 돌린다
  • 아말렉을 치고 나서, 그들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좋은 소때와 양때를 감춰논 것은 사무엘에게 걸리자, 예언자에게 바치려고 했다고 변명 뒤에 숨는다. 사무엘이 끝까지 추궁하니 그제야 진실을.  군인들이 싫어할까봐

호통을 치는 자

오늘도 사울 왕이 신하들에게 호통을 반복적으로 친다

7절: 호통을 친다

12절: 호통을 친다

13절: 꾸짖었다.

호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로 잘못은 누가 했는가?  사울 자신이 한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그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다.

하나님의 기회

그럴 때 아히멜렉 제사장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

삼상22:14 그러자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모든 신하들 가운데서 다윗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더구나 그는 임금님의 사위인 동시에 경호실장이며, 이 궁중에서 매우 존귀한 사람이 아닙니까?

아히멜렉의 말이 무슨 말인가?

  • 사울이 들어야 할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 다윗은 시기하고 의심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왕이 가장 믿어야 할 사람
  • 다윗은 내쫓고 죽여야 할 사람이 아니라, 왕이 받아들여야 할 사람이다

그럴 때 나는 17절에서 사울이 아히멜렉을 부르는 호칭이 눈에 띈다.

“주님의 제사장”

아히멜렉은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행동을 변론하는 것이지만, 심층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정서와 생각과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못하는 내가, 이제는 자신의 그 의존적 한계를 극복하고, 건강한 내면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안타까운 것이 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버럭 화를 내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던것 같다.

  • 그 때, 사울이 했어야 하는 것이 있다.
  •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인정했어야 한다.
  • 더 좋은 것은 “다윗을 복귀시키자”라고 말해야 한다

그것을 다른 말로 회개라고 한다.

  •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한 것을 바로잡는 것
  • 그것은 아픈 작업이다. 불편한 작업이다.  힘든 작업이다. 서투른 작업이다
  •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이 시키는 것은, 내가 내적으나 외적으로나 건강한 사람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사울은 회개하는 대신에 그는 부하를 시켜 아히멜렉을 죽인다.  그것도 “달려들어 죽이라”

본문을 보면서 로마서 1:18 “진리를 가로막는 사람” “진리를 억압하는 사람”

  •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고, 그것에 대해 변명하지 못할 때, 여전히 그 진리를 억압하고 억누르는 사람들이 있다.
  • 사울은 진실이 드러날 때, 특별히 그것이 자신을 위협한다면, 그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없었다.
  • 그 진실 앞에 벌거벋고 서서 자신의 참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 그 진실을 인정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용기를 내고, 기꺼이 그 대가를 치루고자 하지 않았다.

회개의 기회가 주어질 때 회개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더 악으로 치닫게 된다.

  • 사울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
  •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를 건강하게 사용하는 왕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 결과: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그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 사울은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두 사람을 제거하고 고립됨
  • 군사적으로 다윗 장군을 제거한다.
  • 영적으로 제사장 가문을 몰살시킨다.

결국에 이것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사무엘상의 끝: 강력한 블레셋 군대와의 전투가 나온다.   사울이 두 가지가 부족해서 전투에서 진다.

첫째는, 하나님의 음성이 안들림

  • 삼상28:5 사울은 블레셋 군의 진을 보고, 두려워서 마음이 몹시 떨렸다.
  • 삼상28:6 사울이 주님께 물었으나, 주님께서는 그에게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로도, 대답하여 주지 않으셨다.

왜?  사울이 하나님께 계속 불순종했으니까.   그러나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오늘 본문에서 제사장 가문을 몰살시켰다.

  • 사울은 스스로 자신의 영적 지지 기반을 무너뜨렸다.

둘째는, 현실적으로 전력이 부족하다.

  • 다윗은 용사요, 군인이다. 이스라엘은 당시에 블레셋과 끊임없는 전쟁이 있었고, 사실은 이스라엘이 열세에 있었다.  그 시점에서 전력을 역전시키고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끄는 중요한 인물을 제거하게 된다.
  • 결국 사울이 직접 나가 싸우다가 전사하고 만다.

독립적인 사람일 뿐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사

다윗이 왕의 사위요 사울왕의 경호실장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아둘람 동굴에 가게 된다.  다른 말로 그를 지탱해 주던 외적인 끈이 하루 아침에 다 잘려나감

그러나 그는 중요한 것을 얻게 된다. .

삼상22:5 그 때에 갓이라는 예언자가 다윗에게, 그 산성에 머물러 있지 말고 어서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재촉하였다. 그래서 다윗은 그 곳을 떠나서, 헤렛 숲으로 들어갔다.

다윗이 얻은 것 두 가지가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얻었다.
  •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을 얻었다.

외적 끈이 끊어질 때 우리는 벌거벗은 몸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솔직한 자신을 말씀에 비춰보고, 말씀이 나를 덮어주시고, 말씀이 나를 이끌어가시게 된다.

전에도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며 또한 찬양하는 자였으나 위기의 삼황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다.

이제 불안한 자신은 말씀 앞에서 죽고 오직 말씀이 자신 안에서 살아계신다.  말씀에 대해 내가 주고권을 잡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잡고 나를 이끌고 나를 내몰아가신다.

유다 땅은 자기 목숨을 노리는 사울 왕이 있는 곳.  가장 위험한 곳이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믿기에, 믿음을 통해 말씀이 그를 붙잡아줌으로 평안을 누린다.

그리고 그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된다.

23절에 다윗이 자기를 찾아 도망온 아비아달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라

삼상22:23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할 것이오.”

다윗이 말하는 안전은 상황에 의존하는 안전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얻는 안전인 것이다.    가장 상황에 좌지우지 될 것 같은 다윗이 가장 상황에 초연하여 평화를 누리는 것이 신비하다.

처음에 말한 스텐리 존스 목사님의 이야기나 다윗의 이야기나 묵상하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  내가 믿음으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나를 붙잡아 준다.   그 믿음은 바로 성령님의 다른 이름이다.  내 안에 믿음을 창조하시고, 말씀을 믿음으로 받게 하시고,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나를 붙잡아 주시는 분.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령님 나에게 오소서.  내게 말씀을 들을 귀를 주시고,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나를 붙잡으소서.

실패에서 얻은 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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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코비: 성격 vs 성품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성품(Character 인격)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것을 성격(Personalithy 성향)이라는 것과 대조를 한다.

그가 18세기부터의 미국의 성공문헌을 수백권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

처음 150년,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성공의 성품—인격을 말한다.

  • 언행일치, 겸손, 충성, 절제, 용기, 정의, 인내, 근면, 소박, 수수함 같은 것들을 말한다.
  • 그러한 덕목들이 자신의 제2의 본성이 되어, 내면의 원칙과 행동의 습관으로 드러남에 대해 강조를 한다.

1차대전 이후에는

  • 성향 중심으로 바뀐다.
  • 테크닉을 강조한다: 대인관계 기술, 대중적 이미지 만들기, 커뮤니케이션 기법 등 기술을 더 강조한다.
  • 또 하나는 적극적 태도를 강조한다.

코비가 말한다.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만 2차적인 것이다.

  • 그는 건강한 덕목을 자신의 본성으로 만드는 과정이 없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 성품을 중요시 하지 않으면, 문제: 인성이 변하지 않고, 겉으로만 포장된 사람이 나올 수 있다.

성품이 중요하다.  그것이 기초가 되며, 그것이 근원이 된다.

결국 우리의 어떤 말이나 행동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우리 자신을 전달해 주는 것은 성품이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예컨대 그 사람의 내적 성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잇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이 달변이든 아니든 대인관계 기술이 훌륭하든 그렇지 않든, 그 사람을 믿으며, 그들과 함께 일한다.

전에 남자들이 취업하기 위해 성형수술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 인상이 좋아야 하니까.
  • 문제가 있다. 인상이 좋아 회사에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인성이 나쁘면 결코 그 곳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이다.

다윗의 실패의 원인

이 말씀을 드리고, 오늘 본문을 들여다 본다.  한 구절이 눈에 띈다.

21:11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

옛날 성경이 더 쉽다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다.”

사울왕과의 경쟁

아마도 이 말을 들은 다윗은 과거의 일이 생각났을 것이다. .

다윗은 어릴 때부터 재능이 많아 승승장구했던 사람이다.

  • 믿음으로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워서 이긴다. 10대의 소년
  • 영감있는 노래를 불러서, 그가 노래를 하면 사울 왕을 괴롭히던 악신이 떠났다.
  • 왕자 요나단은 다윗의 매력에 푹 빠져, 그와 언약을 맺고 자기의 겉옷과, 칼과 허리띠까지 다윗에게 준다
  • 다윗은 어는 임무를 주던지 일을 잘 해내서, 왕이 그를 군대를 이끄는 장수로 임명한다.
  • 게다가 사울 왕의 딸까지 얻어서, 왕의 사위가 된다.

 

대단해요.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18장으로 가봅시다

삼상18:6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죽이고 군인들과 함께 돌아올 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소구와 꽹과리를 들고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사울 왕을 환영하였다.

삼상18:7 이 때에 여인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

 

성경은 그 말을 들은 사울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기록이 되어있다.

8 이 말에 사울은 몹시 언짢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올랐다.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만을 돌렷으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 밖에 없겠군!”하고 투덜거렸다.

  • 놀라운 것이 있다. 사울의 그 말에 대한 다윗의 반응이 없다.  그는 침묵했다.
  • 말에서 뛰어내려 사울 앞에 엎드리기라도 했어야 한다.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재능이 있는 사람, 은사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 인격도 완숙한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그렇게 속는다.

다윗은 너무나 빠른 고도성장을 했다.  그것은 그에게 득도 되었지만, 해도 되었다. 다윗이 자신의 재능을 감싸줄 성품을 키울만한 충분한 시간과 경험이 없었다.

다윗은 재능과 힘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도 알았고, 남을 이기는 방법은 알았다.  그러나 그는 주변 사람을 품을 만한 성품의 그릇을 빚어내지 못하였다.

그럴 때 그의 성공은

  • 주변 사람들에게 질투를 일으키고,
  • 자신보다 힘 쎈 사람을 위협하게 된다.
  • 특별히 다윗의 경우는, 자신의 재능이 위협한 사람은 바로 왕이었다.

 

다윗의 침묵의 결과이다. 다음 절에 이렇게 나온다.

삼상18:10 바로 그 다음날,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에게 내리덮치자, 사울은 궁궐에서 미친 듯이 헛소리를 질렀다. 다윗은 여느날과 같이 수금을 탔다. 그 때에 사울은 창을 가지고 있었는데,

삼상18:11 그가 갑자기 다윗을 벽에 박아 버리겠다고 하면서, 다윗에게 창을 던졌다. 다윗은 사울 앞에서 두 번이나 몸을 피하였다.

 

질문: 사울이 왜 미친 거지요?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라는 말 때문이다.

  • 그 말이 사울을 시기하게 하고 의심하게 만든다.

 

또 하나 질문.

  • 사울이 미쳐서 다윗에게 창을 던진것인가?
  • 아니면 다윗에게 창을 던지려고 미친척 한 것인가?

 

내가 힘이 강해져서, 나보다 힘센 사람을 위협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 그렇지 않으면 자신보다 힘 쎈 그 사람이 나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빼앗을 거에요.
  • 사울이 다윗를 죽이려 해서, 그는 하루 아침에 도망자가 된다.
  • 그의 아내 미갈은 다윗을 사랑했다. 아버지가 남편을 죽이려 할 때, 남편의 편을 들어 그를 도망치게 해 준다. 그러나 아버지 사울은 미갈을 강제로 다른 사람에게 다시 시집보내고 만다
  • 그의 친구 요나단은 다윗을 위해 어떻게든 아버지를 설득하려 하고, 그리고 다윗을 변론해 준다. 그러나 결국에는 다윗과 함께 떠나지 않고, 아버지 옆에 남아있게 된다.
  • 도망치는 다윗은 자신의 멘토인 사무엘에게로 도피한다. 그러나 사울 왕이 그것을 알고 군대를 보내어 다윗을 잡으려 한다.  다윗은 사무엘을 떠나야만 했고, 또 사무엘도 곧 나이가 들어 이 세상을 떠난다

가드 왕 앞에서

오늘 본문에서 그는 가드왕에게 갔다.

거기서 이 말을 듣는다.  .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다”

전에는, 다윗은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았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이제 고생좀 하고 철이 들었지.

성경이 말해요

삼상21:12 다윗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다. 그는 가드 왕 아기스 옆에 있는 것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다윗은 이 말에 침묵했다.  오늘은 그렇게 못한다

13절.  그래서 그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는 미친 척을 하였다.  그들에게 잡혀 있는 동안 그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여 성문 문짝 위에 아무렇게나 글자를 긁적거리기도 하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기도 하였다.

성경에 시편이 있지요?  이스라엘의 찬양을 모아놓은 책.  거기에 다윗의 시편이 많다.

시편 56편을 보면, 시작 부분에 그 시의 배경이 이렇게 나와요.

“블레셋 사람이 가드에서 다윗을 붙잡았을 때에 다윗이 지은 시”

8절.  나의 방황을 주님께서 헤아리시고,

내가 흘린 눈물을 주님의 가죽부대에 담아 두십시오.

이 사정이 주님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짓궂게 생각하게 된다.

  • 다윗이 미친 척을 한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미쳤을까?
  • 그의 미친 연기를 잘해서 아기스 왕과 그 신하들이 정말로 속았다.
  • 그들이 다윗에게 속은 것이요? 아니면 다윗의 깊은 내면을 본 것인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롯또의 문제점

결혼의 인격 없는 결혼.  다른점을 장점이 되게하고, 연약함을 덮어주고

기업.

교회도.. 예배의 영성이 없교회 성장만 한다면

시편 1편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시편 1:2: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시편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시편 1:4: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한낱 바람에 흩날리는 쭉정이와 같다.

시편 1:5: 그러므로 악인은 심판받을 때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죄인은 의인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다.

시편 1:6: 그렇다. 의인의 길은 주님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아시겠어요?  그 시편은

  •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다.
  •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인생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 오만하였던 자기가 한낱 바람에 흩날리는 쭉정이와 같이 날라가는 것을 겪은 것이다.

 

이제 참된 하나님의 성품을 나의 제 2의 본성으로 만드는 사람이 됩시다.

  •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묵상하며, 순종하는 자
  • 그는 사람을 얻는 사람이며, 그는 오래동안 지속될 기업을 얻을 자입니다.

다윗의 성품: 은혜의 사람

22장이 이렇게 시작한다.  “다윗은 거기에서 떠나”

  • 이전에 자기 잘난 것 믿고 오로지 이기려고만 했던 다윗
  • 성품에는 관심이 없이, 오로지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던 태도에서 떠났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는 아둘람 동굴로 간다.

  • 아둘람 동굴은 한편으로는 실패의 동굴이다.

 

그러나 성경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동굴에서 많은 일을 하신다.  하나님이 아둘람 동굴을 은혜의 장소가 되게 하신다.

  • 다윗은 고립된 줄 알았어요. 그런데 400명이나 그를 찾아오고, 다윗이 그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어려울때 친구는 진짜 친구.
  • 모두가 자신에게 적대적인지 알았어요. 그러나 모압왕이 자기 부모를 받아주고 보호해줘요.
  •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 갓이 찾아와,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뚜렷하게 듣게 되요.

 

왜 사람들이 모여들었을까?   모여든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이렇게 기록된다.

  • 삼상22:2 …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
  • 다윗을 찾아 동굴까지 온 사람들은 자기들도 미칠만한 일을 당해본 사람들
  • 다윗이 미친척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것이 아니라,
  • 다윗도 미친척 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다.
  • 다윗이 잘 나갈 때는 안그랬겠지만, 이제는 다윗 앞에 서면, 자기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그러면서 치유받는 장소

 

아둘람 동굴은 치유의 은혜가 있는 장소인 것이다.

거기서 다윗 개인의 성품이 은혜의 성품이 된다.

그리고 더불어 아둘람 공동체의 성품이 은혜의 성품으로 형성된다.

 

——

다윗이 전에는 힘으로 원하는 것을 알았다면, 이제는 은혜를 구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모압왕에게 자신의 부모를 받아달라고 부탁을 할 때,

3절에: “간청했다”라는 말이 나온다.

전 같았으면 다윗 자존심에 어림도 없지.

  • 간청했다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구한 것이다.
  • 은혜: 자격없는 자에게 값진 것을 주는 것
  • 다윗은 이제는 힘이 아니라 은혜로 귀한 것을 받는다.
  • 은혜로 구할 때, 모압 왕의 마음이 움직여져서 다윗의 부모를 그가 보살펴 준다.

무엇보다, 다윗은 깊은 은혜의 영성을 소유하게 된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버릴만도 했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예언자를 자신에게 보낸다.  하나님이 찾아온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전에는 희미하게 들리던 하나님의 음성이, 이제는 정확하고 똑똑히 들리는 영성을 갖게 된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줄도 알고, 구할줄도 아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은 아둘람 동굴에서 다윗의 성품을 빚어가신 것이다.

시편 131편

다윗의 시편중에 시편 131편이 있습니다.

 시131:1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시131:2 오히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뗀 아이와 같습니다.

시131:3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