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최후 승리를 바라보는 자

한 영화에서 미국의 특수부대 훈련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교관이 그들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극한으로 밀어붙입니다.
예를 들면 손을 뒤로 묶은 후에 바다에 뛰어들게 합니다.  그리고, 익사하기 직전에 기절해 있는 그들을 끌어냅니다.  훈련병들이 폐에 있는 물을 토해내며 고통스러워 합니다.

재미있는 것이 있어요. 교관들이 그들보고 “고생이 많지?”하고 위로하거나,
“조금만 더 버텨라.”하면서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만두라고 권유한다는 것입니다.  훈련장에 종을 달아놓습니다.  그리고 진흙탕 속에서 구르고 있는 훈련생에게 달콤하게 말합니다.
“그만두고 싶으면 이 종을 쳐라.  그러면 바로 샤워를 할 수 있게 해 주고, 깨끗한 옷과 좋은 음식을 제공해 주겠다.  그리고 집에 가서 쉴 수 있다”
가끔씩 훈련생 중에는 하다 하다 못해서 “이제 그만 두겠습니다.”  종을 땡 치는 사람 있어요.
그러나 많은 자들이 끝까지 그것을 이겨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왜 그 종을 치지 않고 끝까지 버팁니까?

인내가 너무나 소중하지 않습니까?
소중한 일일수록, 값진 일일수록, 바른 일일 수록 인내가 요구됩니다.
농부와 같습니다.  농부는 가을에 추수할 것을 바라보며 봄에 씨앗을 심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결실이 맺어집니까?  아니지요?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길쌈을 매주고, … 아침부터 밤까지 수고해야 해요.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것이 순조롭기만 합니까?
여름에 비가 안와서 마음이 타들어가기도 해요.  가을에 태풍이라도 불면 추수 직전에 누런 벼가 넘어지기도 해요.
그 모든 것을 인내해야만 가을에 추수의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계시록이라는 책을 봅니다.  그 책은 사도 요한이 썼습니다.
계시록의 배경은: 진리의 길, 옳은 길을 가는 자의 고난입니다.

그는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가지고 평생을 바쳐 헌신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체포되어 외딴 곳에 유배되고 격리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합니까?
대중들은 그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그는 고립되었으며, 평생 쌓아 놓은 공동체가, 기업이 허물어질 위기에 빠집니다.

특별히 자기 혼자만은 그 길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살았다고 하지만,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 중에는 타협하지 않아서 경제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진 사람도 있습니다.  본문대로 예수 믿어서 목 베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악이 흉흉하고 선을 이기는 듯 합니다.

본문에 “아비소스”라는 것이 나옵니다.
개혁개정판에는 “무저갱”이라 번역됩니다.: 밑바닥이 없는 구덩이입니다.
우리 말에 “바닥을 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떨어지더라도 바닥을 치면 올라옵니다.
그러나 밑바닥이 없는 구덩이에 떨어지는 듯한 경험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 때는 어떻게 합니까?

인내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인내하겠습니까?
그가 가는 길을 계속 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을 인내한다고 결론이 좋다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포기하는 것이 낳지 않겠습니까?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이 말씀을 드리고 6절을 읽으며 깜짝 놀라게 됩니다.
6절에서 그들을 놓고 “복이 있고”라 말합니다. 복이라는 것은 “행복” 혹은 “특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거기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Andrew Solomon은 정치, 문화, 그리고 심리학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그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책을 냅니다.
한번은 그는 청소년기에 강제로 성추행을 당한 한 여성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임신을 하게 됩니다.
장례의 계획을 망치게 됩니다.
친밀감을 나누던 관계들도 망가지게 됩니다.
솔로몬이라는 작가가 이 여인이 50세가 될 때에 만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을 성 추행한 그 남자가 자주 생각납니까?”
그녀가 대답합니다.  “전에는 그를 생각하면 분노가 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불쌍히 여길 뿐입니다.”
그는 추측합니다.  그녀가 불쌍히 여긴다고 한 이유는: 그가 진화가 덜 되어서; 그런 끔찍한 일을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리고 묻습니다. “불쌍히 여긴다고요?”
그녀가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아름다운 딸과, 두 명의 아름다운 손주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압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I’m the Lucky One 내가 복받은 사람입니다.”

생명이 참으로 신비하지 않습니까?
악은 파괴적입니다.  생명을 헤치려고 죽음을 휘두릅니다.
그러나 풍성한 생명의 열매가 마지막에 있는 것을 알고 고백할 때에,
그 지나간 삶이 의미 있고 값진 삶이 되요.
그녀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승리자가 됩니다

여러분 너무나 근시안 적으로 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복에 대해 너무 현세적으로 생각해요.  지금 당장 뭐가 되야 할 걸로 생각해요. 현세적인 복을 구하는 사람은, 지금 어려움이 있으면 그게 너무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지금 나의 일이 잘되면 신이 나고 자랑하고, 지금 어려우면 다 끝난 것처럼 다들 풀이 죽고 사람들을 회피합니다

아니에요. 복을 종말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마지막에 승리가 있고, 마지막에 의로워야 하고, 마지막에 생명으로 풍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오늘을 담대하게 살아가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이 있어요.  현재에 있으면서, 내 마지막에 생명의 역사가 풍성하다는 것을 아는 자가 복있는 자입니다.

본문에서 요한은 “보다”라는 단어를 네 번 반복합니다. 여기 주님의 은혜가 있어요. 사실은 요한이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거에요.

지금은 내가 끝없이 추락하는 듯 하나, 그 때에는 하나님의 천사가 사단을 붙잡아, 쇠사슬에 묶어 무저갱에 가둡니다.  마지막에는 성도가 아니라 악이, 악한 자가 한없이 떨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박해 받아 유배를 왔지만, 그 때에는 보좌에 앉아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이 너무 커서 지금은 주님께서 숨어 계시는 듯 보이지 않으나, 그 때에는 천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그 분은 보일 것입니다.
현재는 죄인이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이며 죽어야 할 자이나, 그 때에는 심판주께서 나를 의롭다 하실 것이고,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믿는 자의 특권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최선은 긍정일 뿐입니다.  미래에 대해 가능성을 보고, 낙관할 뿐이에요.  그것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확실함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는 그 마지막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고,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아마 대부분 요한처럼 환상을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것을 본 요한의 증거가 기록되어 성경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을 한 사람에게 보여주셨어요.  그러나 그 마지막에 대한 약속은, 사도가 기록한 성경을 읽고 그것을 믿는 모든 교회가 함께 받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증거, 성경을 볼 때에 우리는 또한 최후 승리를 바라보며 이기게 됩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와 묵상으로 읽으며,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자 그가 복된 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거룩한 삶, 성도의 삶은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의무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약속의 말씀이 있어서 결론을 보니, 이제는 결론에 서서 오늘을 봅니다.
그럴 때 오늘의 사는 태도가 변하게 되요. 외부자가 보기에는 지금은 고난의 삶이나 정작 본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나의 가는 길이 복된 길이다.  “이 길을 가며 나는 행복하다.”  “이 것이 나의 특권이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이 있기에, 말씀으로 자신을 깨끗게 하고, 말씀에 감격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자, 그가 거룩한 자입니다.

70년대 초반 아직 월남이 공산화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Hien Pham이라는 젊은 기독교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어를 잘해서 미군 통역 뿐 아니라 선교사들의 통역을 도와 그들과 함께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월남이 전쟁에서 질 때, 그는 투옥되어서 미국을 도운 죄로 기소됩니다.  감옥에서 그는 쇄뇌를 당합니다.
영어는 금지되고, 오직 베트남어와 불어만 허락됩니다.
매일같이 마르크스와 엥겔의 책만 읽도록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속아왔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이 안 계실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결심합니다.  “내일 아침부터 하나님께 기도 드리지 않겠다.”

그 다음날 아침에 그는 감옥의 변소 청소로 배정이 됩니다.  그곳은 무척이나 역겨운 장소였습니다.
그가 오물과 휴지로 가득한 휴지통을 비우다가, 그 속에서 영어가 기록된 종이를 발견합니다.  더러운 종이입니다.  그러나 그는 황급히 그것을 물로 닦아서 자기 주머니에 집어 넣습니다.
밤이 되어 그는 모기장 아래에서, 모든 사람이 잠에 들 때, 그는 그 종이를 꺼내어 작은 후레시로 비추고 읽습니다.  종이의 맨 위에 “로마서, 8장”이라고 써져 있었습니다.  그의 몸이 떨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읽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히엔이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며 용서를 구합니다.  “주님 내가 기도 안하기로 결심한 첫날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히엔은 캠프 지휘관을 찾아가서 매일 변소를 청소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그 지휘간은 몇전년에 선교사에게 받은 영어 성경을 가지고 있고, 화장실에서 성경책을 휴지 대신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로마서 전체를 모으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히엔은 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배를 만들어서 다른 52명과 함께 베트남을 탈출하려 합니다.  이제 배가 다 완성되어 떠나려는 날 바로 직전에 베트콩이 그를 찾아와, 그가 이곳을 탈출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진짜냐?”
그가 아니라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납니다.
그러나 히엔은 마음에 가책을 느끼고, 혼자 방에서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님,주님께서 내 삶을 이끄시는 것을 알면서도, 또 제가 또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려 했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만일 베트콩들이 돌아오면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베트콩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네가 탈출하려는 것을 안다.  그렇지 않으냐?”
히엔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합니다.  “사실이다.  이제 어찌하겠는가?  나를 다시 감옥에 넣을 것인가?”
그들이 그를 방으로 데리고 가 문을 닫고 말합니다.  “아니.  우리도 너와 함께 탈출하겠다.”

탈출할 때, 그들은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이 탈출한 네 명의 베트콩들은 알고보니 유능한 선원이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들은 태국에 도착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미국이 문을 열어주어, 미국에 와서 그는 버클리에서 경영을 배우고 자기 사업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로 승리하게 할 것입니다.
말씀에 내 삶에 의미가 있고,
말씀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밑바닥이 드러날 때 2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은 기독교인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그럼 어디까지 사랑해야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여유가 있는 것으로 도우면 되는 것입니까?  그 기준을 세워보시다.

2014년 9월 28일 주일 권혁수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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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이 드러날 때

외딴 곳에 찾아간 적이 있습니까?  그 외딴 곳은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일 수도 있지만, 집 앞에 수퍼마켓 밖에 있는 테이블과 파라솔일 수도 있습니다.   그곳으로 사람들이 몰려갈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마도 밑바닥이 드러나서 그렇지 않을까요?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할까요?  성경의 대답을 들어봅시다.

2014년 9월 21일 주일 권혁수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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