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쇼 가족

꿈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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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리얼리티쇼 가족”의 세번째 시간으로 요셉과 그의 형들간의 미움에 대해 케이스 스터디 삼아 봤습니다.  미움은 가족 안에서 비난, 방어적인 태도, 경멸, 담벼락이 되어버림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그것은 파괴적입니다.  하나님은  그 상황에서 요셉을 살리는 이야기를 쓰십니다.

이번주에는 이 씨리즈의 마지막 설교인 “꿈의 가족”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꿈꾸는 가족에 대해 살펴봅시다.

창세기 3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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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우리는 지금까지 현실의 무너진 가정을 품으시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하나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하나님이라 부르자.

A: “우리 가족에도 불구하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B: “우리 가족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우리는 그것에서 멈추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시작은 우리 가족에도 불구하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지만, 끝은 우리 가족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창세기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단순히 복받는 것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 축복이 세상으로 흘러가기를 원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내가” 이루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해 준 후에, 하나님 특유의 인내를 가지고, 4대를 거쳐 이 일을 하신다.

  • 아브라함: 첩 하갈을 들여 그 일을 망친다
  • 이삭: 자기 아내를 자기 아내가 아니라 거짓말해서 아내를 뺏긴다
  • 야곱: 야곱이나 레아나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결혼을 한다.
  • 요셉의 형들: 질투와 미움으로 동생을 죽이려 하고, 노예로 판다.
  • 요셉: 요셉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한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그 일이 이루어질까 싶지만, 하나님이 이루시겠다고 하시니 우리는 믿고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우리의 가정에 대한 꿈은,

  • 우리의 가정을 통해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것이다.
  • 하나님의 나라가 가정을 통해 임하고,
  • 수많은 가정들이 치유되고,
  • 수많은 억압을 받는 가정들이 자유케 되고
  • 수많은 배고픈 가정들이 만족하게 되고,
  • 무엇보다 많은 가정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How?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알기에 우리도 믿음으로 반응을 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는 “절제"라는 것을 말한다.

  • 영성: 비전을 제시해 준다
  • 관계는 기회를 제공하고, 안정감을 준다
  • 실력은 성취를 준다
  • 인격은: 그 관계와 성취를 감싸서 보호해주고, 엔진의 윤활유가 되어 고속으로 작동하게 해 주고, 유지시켜준다.

우리의 역할은 절제이다.  절제란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을 때에,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면 손을 뻗지 않는 것이다.

창세기 3:6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아담과 하와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열매를 볼 때, 그리고 손을 뻗어서 취하면 된다는 이유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었다.

  •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동산을 잃고 쫓겨난 이유가 무엇인가?  왜 그들은 생명을 잃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는가?
  • 왜 그들은 열심히 일하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가?
  • 왜 그들은 가족이 서로 헐뜻고 상처를 주었는가?
  • 절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6 …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잘생긴 미남이었다.

… 12 여인이 요셉의 옷을 붙잡고 “나하고 침실로 가요!” 하고 졸랐다. 그러나 요셉은, 붙잡힌 자기의 옷을 그의 손에 버려 둔 채, 뿌리치고 집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오늘 이야기에서 보디발의 아내에게 선악과는 무엇이었나? 요셉.  요셉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였고, 탐스럽기도 하였다.  그리고 보디발의 아내는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손을 뻗어 요셉을 붙잡는다.

무절제—탐욕이라는 것은 파괴적이다.

  • 무절제는 다른 사람의 것을 파괴한다: 우리 이야기에서는? 노예로 팔려와서, 다시 밑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다시 쌓은 요셉의 인생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린다.
  • 나의 것도 파괴한다: 그녀의 남편 보디발은 바로의 경비대장. 요셉은 나중에? 바로의 총리대신이 된다.  보디발은 자신이 파멸시킨 요셉을 매일같이 서로 마주쳐야 한다.  게다가 이제는 보디발이 요셉 손안에 있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말한다.

고전10:23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절제하지 않는 것이 있지는 않은가?

  • 어떤 사람은 그것이 만나면 안될 사람을 만나는 것일 것이다.
  • 어떤 사람은 음식에 잇어서
  • 어떤 사람은 술: 그 다음날 까지 영향을 주고, 건강 혹은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 어떤 사람은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탐나는 것을 구입하는 문제: 그것이 빚을 져가면서까지
  • 어떤 사람은 잠을 자지 않고, 밤새도록 인터넷이나 게임이나 드라마를 보는 것

절제라는 것이 소중하다

8 그러나 요셉은 거절하면서, 주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주인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시고는, 집안 일에는 아무 간섭도 하지 않으십니다. 주인께서는, 가지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셨으므로, 9 이 집안에서는, 나의 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의 주인께서 나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마님입니다. 마님은 주인 어른의 부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런 나쁜 일을 저질러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의 아내와 대조적인 인물은 바로 요셉이었다.  그는 바로의 아내가 유혹할 때, 원하면 얼마든지 자기도 손을 뻗어 그것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럴 때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그러나 요셉은 거절하면서..”

그것이 쉬웠을까?  아니다. 8절-9절. 요셉이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한다.  요셉의 말이 많은가 적은가?  이건 마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왜 이 여인을 손으로 잡으면 안되는지를 되새기는 것이다.

요셉의 이야기를 보면 나중에 요셉은 바로의 총리대신이 되는데 그 나이가 30세였다고 나온다.  지금 요셉은 20대 청년이다. 혈기가 왕성했다.  게다가 그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노예로 팔려온 사람이다.  그야말로 자포자기할만한 이유를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끝까지 절제한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는데, 4대째인 요셉에게 가서야 그 약속을 완성하시는가?  하나님이 왜 요셉을 선택하셨나?  아브라함도 절제하며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여종 하갈을 통해 아이를 낳았다. 이삭은 불안에 넘어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기 아내를 자기 누이라 거짓말했다.  야곱은 자기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4여인과 결혼했다.  야곱의 첫째 루우벤도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첩을 건드렸다.  야곱의 넷째 유다도 자기 며느리가 창녀인줄 알고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그녀를 임신시킨다.

하나님은 요셉의 실력이나 수완뿐 아니라, 그의 인격을 본 것이다.  기업주가, 실력이 좋다고 자기 부하에게 모든 전권을 줄수 있나? 그랬다 반란을 일으키면?  전권을 주려면 그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요셉은 보디발에게나, 감옥에서나, 후에 바로왕에게서나, 실력을 인정받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맡겨도 될 만한 믿음이 가는 인물인 것이다.  요셉은 손을 뻗어서 잡아야 할 것과, 잡지 말아야 할 것을 정확히 구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분별력대로 자기의 행실을 다스렸다.

What?

  • 2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 3 그 주인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 5 … 주님께서 요셉을 보시고,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 …

  • 21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

  • 23 …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 되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오늘 이야기의 시작과 끝부분이다.  요셉의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은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관점에서 자신이 겪은 모든 일을 해석한 것이다.

이건 거져 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말씀과 기도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구덩이에 떨어진 것과 같은 삶에서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심이 확인될때까지 기도했을 것이다.  어쩌면 요셉은 자기 아버지 야곱이 부모와 형에게 사기치고 도망가 광야에서 하루밤을 지낼 때, 여전히 그를 찾아와 그의 하나님 되시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묵상하고 묵상했을지도 모른다.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셨다는 것을 요셉이 어떻게 알았을까?  그냥 운이 좋았다고 말할수도 있고, 사람들이 잘 도와줘서 그랬다고 말할수 있고, 요셉 자신이 탁월해서 그랬다고 말할수도 있지 않은가?  일하기 전에 기도하고, 기도 응답받은대로 일하였더니 일이 성공했기에 알았던 것이다.

다른 말로 요셉이 손을 뻗어잡으려 했던 것이 있다.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으시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나도 하나님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다.

궁극적 요셉

이사야 53: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는 요셉 이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다.  그는 참되고 영원한 요셉이다.

우리는 절제가 없고, 우리의 정욕을 따라갔기에, 길을 잃었고, 제각기 갈길로 갔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향해 손을 뻗고, 그를 향해 나가셨다.  그 절제와 신실함이 그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였다.

그러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맛보게 하고, 우리도 손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향해 뻗도록 하려 하심이다.

질문

  1. 나의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꿈을 이해합니까?  그 시작점은 깨어진 가정을 수습하는데에서 시작하지만, 그 마침점은 나의 가족을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내 가족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2. 내 삶을 허무는 무절제는 무었입니까?  내가 절제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또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3. 나는 기도와 말씀의 삶을 통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까?  그 하나님 안에서 부족함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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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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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 변명 경멸 담벼락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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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리얼리티쇼 가족”의 두번째 시간으로 야곱과 레아의 결혼을 케이스 스터디 삼아 봤습니다.  잘못된 동기의 결혼이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알았고, 하나님이 그 회복의 방편으로 언약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번 주에는 요셉과 그 형들의 이야길를 케이스 스터디로 봅니다.

 

창세기 37장 2절~38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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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의 말

“요셉을 미워하여, 그에게 말 한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4절)

가족안에 미움이 있고, 그 미움이 지배적인 감정이 되면 가족간의 언어가 변한다.  긍정적인 말이 사라지고, 반대의 말이 나오게 된다.

존 가트만은 다음 4가지 종류의 언어에 대해 경고한다.

  • 비난 (불평이 아닌), 방어적, 경멸, 담벼락처럼 되는 것

본문을 보면,

  • 형들의 비난: 8절. 요셉은 12형제중에 11번째. 형들과 나이차이가 많이 난다.  그러나 어린 동생이 자기 꿈 이야기하는데, 형들이 말이 곱지가 않다.
  • 형들의 담벼락: 10절-11절. 요셉이 또 꿈 얘기를 할 때, 이번에는 아에 형들이 대꾸도 안한다.  10절에 아버지 야곱이 그를 꾸짖는다.  왜 그랬을까?  11절에 힌트가 나온다.  “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했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  아버지는 요셉의 말이 그닥 싫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형들의 싸늘한 분위기를 보면서, 그걸 풀어주느라 아버지가 혼낸 것이다.
  • 형들의 경멸의 말: 19절. 요셉을 뭐라 하나? “꿈꾸는 녀석”.  옛날 성경에는 “꿈장이”

비난, 경멸과 또 아에 서로 무시해버리는 일이 반복될 때 그 결과는 무서운 것이다.

20절.  “자, 저 녀석을 죽여서…”

  • 살의와 악행: 죽이고 싶다. 죽이지는 않았지만,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린다.
  • 변명: 거짓말로 요셉의 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서 아버지에게 가져다 준다. 그리고는 길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 슬픔:  그 결과는 무엇인가?  아버지가 슬픈 나머지 옷을 찢고, 베옷을 걸치고, 여러날을 울었다.
  • 죄책감: 요셉을 파는 것을 주동한 유다는 죄책감으로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38:1)

미움의 말은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해치고, 더불어 자기 자신까지 해치고 만다.

용서가 필요하다.

  • 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결정이다. 풀기로 하는 것이다.
  • 용서는 많은 에너지가 들고, 힘든 것을 안한다. 용서를 안하면 더 많은 에너지가 들고, 더 힘들고,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떻게 용서하는가?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에베소서 4:31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용서 1: 이야기를 내버리라

첫째, “내버리십시오”

오늘 본문으로 하면 자신의 비난과 변명, 경멸과 담벼락을 정당화하는 이야기를 멈춰야 한다.

비난하고 경멸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을 정당화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야, 저기 꿈꾸는 녀석이 온다”

이건 이야기인 것이다. 자기들이 왜 요셉을 미워해도 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 이 녀석은 양을 칠 때 저지른 우리 허물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한 녀석이다. 또 양치는데 우리를 찾아온다.
  • 이 녀석은 아버지에게 채색 옷 받은 녀석이다. (그것은 요셉 잘못도 아니다)
  • 이 녀석은 자기가 우리를 지배하는 꿈을 꾸고 눈치없이 말한 녀석이다.
  • 그것도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은 피해자이고,  상대방이 얼마나 못된 사람인지를 말하고, 그럼으로 지금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다.

거기까지 가게 된 것은 이해를 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러지 말아야 할 두가지 이유를 찾게 된다.

1. 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 나중에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이 그런 경우이다. 요셉은 형들에게 죽을 뻔했고, 그들의 손에 노예로 팔려갔다. 그리고 험한 풍파를 겪는다. 놀랍게 그는 형들을 말한마디로 살리고 죽일 수 있을 때, 형들에 대해 비난하지도 경멸하지도 않는다.
  • 나의 과거의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지금 나의 말과 행동과 연결되지 않는다
  • 나는 여전히 나의 말과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2. 자신을 정당화하는 이야기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 앞에서 비난과 경멸의 결과가 무엇이지 봤다.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야기는 칼이 되어 상대방을 찌를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찌른다.  유다가 요셉을 꿈쟁이라 부른 대가는, 그도 역시 마음에 상처를 입고, 형제들과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용서의 중요한 점은 이제는 내 비난과 경멸의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이야기를 말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에 다른 이야기를 하라.  이제는 그가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말고, 그를 미워하고 나의 이야기를 하라.

많은 경우, 나의 미움은 별거 아닌 하찮은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형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 어린 동생이 고자질한 이야기.
  • 어린 동생의 채색 옷 이야기. (그건 요셉의 잘못도 아니다. 아버지의 잘못이지)
  • 철없는 꿈 이야기

너무 하찮아서 그거 말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가슴 깊이 묻어둔다. 그러나 그것을 해소하지 않은 순간 나의 말투와 태도가 이전과 달라졌다.  그것을 용서하고, 그 미움이 솟아오르는 시간을 잘 넘겼다면, 오년이 지나고 십년이 지나면 “그 때 그랬었지”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었을 것을, 넘기지 못해서 돌이키지 못할 실수를 하고, 괴로움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을 살게된다.

 

이제는 내가 하는 비난과 경멸과 담벼락을 변호하는 이야기 대신에, 나는 미움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께 고백하라.  지금까지 미워해온 나의 이야기를 고백하는데에서부터 시작하라. 그리고 거기서 싹튼 미움을 고백하고 버리라.

용서 2: 하나님의 이야기

에베소서 4:32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바울의 말을 오늘 본문으로 하면 하나님의 이야기를 말하라는 것이다.

36절. “그리고 미디안 사람들은 이지브에서 요셉을 보디발이라는 사람에게 팔았다.  그는 바로의 신하로서, 경호대장으로 있는 사람이었다.”

  • 여기서 “그리고” 라는 말은 엄청난 말이다.
  • 35절은 “아버지는 잃은 자식을 생각하며 울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여기서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36절은 “그리고”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말한다. 그 이야기는 요셉과 함께 하시는 이야기이다.

노예로 있는 요셉:

39:2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그 후에 억울하게 감옥에 간 요셉

창39:21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하셨다.

요셉은 수많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잇었다

  • 자기를 죽이려고 했고, 자기 옷을 빼앗고, 이집트에 노예로 판 형들, 자기 인생을 빼앗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잇었다.
  • 그는 자기를 유혹하고, 그 유혹이 안 통하자, 그를 모함에서 감옥에다 집어넣어, 그가 엵심히 쌓아올린 것을 허물어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할수도 있었다.
  • 대신에 창세기 마지막장. 창세기 50장을 마칠 때 요셉이 형에게 한 말이다.

 창 50:20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겠습니다.”

  • 요셉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샀다
  • 그것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로 만들겠다고 하는 그의 선택인 것이다.
  • 게다가, 그는 그 하나님의 이야기를 누구에게 말하는가? 자신을 미워해서 인생을 앗아간 형들에게, 하나님의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는 사람
  • 그 덕분에 요셉은 미움에서 자유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하는 삶을 살수 잇었던 것이다.

 나눔 질문

  1. 우리 가족에는 4명의 기수: 비난, 경멸, 방어적, 담벼락이 있는가?
  2. 여러분은 그가 얼마나 못된 사람인가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얼마나 피해자인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을 멈추겠습니까?
  3. 내 삶에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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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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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자와 결혼한 남자, 그 남자의 퍼스트

예수소망교회 설교 팟케스트(블로그)에 방문하신 것 환영합니다.   내용이 좋다면 친구, 가족, 동료들에게 공유해주세요.

지난주에 “리얼리티쇼 가족”이라는 시리즈로 가족을 위한 설교를 시작했고, “네 남자와 결혼한 남자 Part I“을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은 깨지고 망가진 가족의 현실을 품으시고, 그 가족을 원래 계획하신 건강한 가족이 되도록 이끌어가십니다. 오늘은 그 서론으로 “네 여자와 결혼한 남자, 그 남자의 퍼스트”라는 제목을 붙여봅니다.

창세기 29장 15절~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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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

언약은 친밀감과 제도가 결합한 것이다.

  • 친밀하기에 약속한다: 서로로 인해 만족하면, 우리는 그 관계가 계속 지속되기를 원한다.
  • 지속적 관계를 보장받았기에, 친밀함이 깊어지도록 자신을 더 열어보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의 두려움으로 열어보일 수 없다.

이 언약을 헤치는 것이 있다.

  • 첫째는 욕구 충족의 방향에 문제가 생긴다.
    • 나도 만족하고 너도 만족하는 것이다: 음식도 같이 먹고, 서로에게 애정을 주는 것이고, 서로 존중해 주는 것이다.
    • 상대방의 만족에 상관이 없이, 나의 만족만을 바란다면?
  • 둘째는, 경계의 문제이다.
    • “여기까지”라는 선이 있다.
    • 건강한 욕구충족은 절제가 필요해요. 욕구가 선을 넘어가면 욕망이 된다.
    • 식욕은 좋은 것이다. 배고플 때 밥을 안 먹으면 기운도 빠지고 화가 나고 슬퍼진다. 먹어야 해요.
    • 그런데 정도 이상 먹으면? 기분도 나빠지고, 건강도 해친다. 식욕이 선을 넘어가면 식탐이 된다. 그건 파괴적이다.
    • 방법에 있어서도 선을 넘어가면 안된다.
    • 대상에 대해 선을 넘어가도 안된다.

Case Study 1: 야곱

야곱과 레아의 결혼의 장면이다.

앞에서 말한 것을 말해놓고, 본문을 보면 두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언약의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서로를 채워주는 것도 없고, 욕구를 채우려는 것에 대한 절제도 없다. 욕망으로 가득찼다.

먼저 야곱을 놓고 보자. 야곱은 열정적인 남자이다.  그는 라헬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칠 년이라는 세월을 마치 며칠같이 느꼈다.”  야곱은 참 라헬을 사랑했나보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야곱이 라헬을 왜 사랑했는가이다.

야곱에게 삼촌 라반이 그의 삮을 어떻게 주면 될지 물어본다.  야곱은 그 때 황당한 답을 한다. 라헬과 결혼하게 해주면 7년을 일하겠다고 한다. 그 당시 신부를 데려오는 값과 평균 임금을 계산하면 야곱은 약 2년~3년 정도의 급여를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야곱은 7년을 일해주겠다고 말한다.   야곱은 라헬에 있어서는 뇌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티모시 켈러 목사님 본문을 이렇게 분석한다.  야곱은 가슴이 텅 빈 사람이다.  아버지는 늘 형 애서를 편애하였다.  게다가 쌍둥이인데 에서가 좀 먼저 태어났다고, 아버지에게 장자의 축복을 받는다. 그것은 영적인 축복 뿐 아니라, 아버지의 유산의 2/3를 받는 것이다.  그 공허함을 야곱은 견디지 못하고, 채우기 위해 선을 넘어가는 것을 기꺼이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서 눈이 잘 안보일 때 에서로 분장하고 들어가,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에게 주는 영적 축복을 받아냈다.  형이 그것을 알고 야곱을 죽이겠다고 말하고 다녔고, 야곱은 도망쳐서 삼촌 라반의 집에 와야만 했다.  빈털터리가 된 채로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야곱의 처지이다.  그런 그에게 예쁜 아가씨 라헬과의 사랑은 자기의 텅빈 가슴을 채우려는 갈급함에서 나온 행동이다.

  • 앞에서 말한 욕구들—안정, 애정, 소속감, 존중, 성취라는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라헬을 얻으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사실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다. 라헬을 사랑한 이유가 그 외모 때문이었지, 그와의 인격적인 교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어떻게든 봐주겠는데, 야곱의 사랑에 대한 집착의 문제뿐 아니라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21절에 “이제 장가를 들게 해 주십시오. 라헬과 결혼하겠습니다.”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의역이다.  원문을 직역하면, “내 아내를 주십시오.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습니다.” 다른 말로, 장인어른에게, 그녀와 잠자리 하게, 이제 당신 딸을 아내로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사랑에 대한 비정상적인 갈급함 뿐 아니라, 주체를 못하는 성적인 충동이 있었다.

야곱은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어낸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자신도 고통을 당하고,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당하게 한다.

  • 라헬을 얻으려고 7년을 일하겠다고 할 때, 라반이 어떻게 해요? 그것을 이용해 그를 14년을 부려먹는다.
  • 라헬를 얻기 위해, 그는 자신에게 먼저 시집온 레아를 처다보지 않는다. 그로 인해 레아는 계속 고통을 당한다.
  • 그럼 라헬은 괜찮았을까? 아니다. 야곱은 라헬을 맞이해서 좋았겠지만, 라헬은 그로 인해 평생 언니와 경쟁해야했다.  게다가 거기서 끝나지 않고 30장을 보면 결국 자식 경쟁으로 번져서 자식을 더 낳으려고 자기 종을 첩으로 집어넣는다.
  • 시간이 지나면 그 4명의 아내로부터 나온 자식들끼리 엄청난 갈등을 가져온다.

25절이 얼마나 상징적인지 모른다.

“아침이 되어서 야곱이 눈을 떠 보니, 레아가 아닌가!”

  • 당시에는 전기불이 없었던 시대이다. 신부는 자기 얼굴을 하루 종일 가리고 있고, 야곱은 만취했다.
  • 그는 잠자리에 들 때는 라헬과 들었지만, 아침에는 레아였다.
  • 그게 욕망의 결과이다.
  • 마치 그것이 이루어지고 만족하는 듯 하지만, 늘 실망하는 것이다.

일부다처제에 대해

잠시 일부다처제에 대해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에 보면, 구약의 인물들이 일부다처제의 삶을 사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그것을 반대하지 않거나, 최소한 반대해도 묵인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성경의 이야기를 다시 잘 읽어봐야 한다.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일부다처제를 통해 순차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Case Study 2:  레아

레아는 어떠한가?  레아는 표면적으로 보면 문제가 없어보인다.  레아는 전통적 가치의 여인이었다.

  • 아버지가 결혼하라고 하는 남자와 결혼했고,
  • 아이를 낳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 남편에게 사랑받는 좋은 아내가 되려고 했다.

그런데, 의문이 올라온다.   레아는 왜 라반과 함께 야곱을 속여서 결혼했을까?

창세기 29:17: 레아는 눈매가 부드럽고,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도 예뻤다.

눈매가 부드럽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학자들도 잘 모른다. 그러나 문맥을 보면, 그게 눈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가 예뻤다라는 것과 눈매가 부르러웠다는 것은 대치가 되는 것이다.  라헬은 눈에 띄는 여인이었고, 레아는… 늘 라헬의 그림자에 있었던 여인이었던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결혼에 대해 보수적인 가치를 표현한 라헬은, 감정적 충동에 이끌려 결혼한 야곱과 반대되는 여인같다. 그러나, 내면을 보면, 야곱만큼이나 사랑받고 인정받는데 갈급했던 사람이었다.  그럴 때 레아는 방법에서는 야곱과 다르게 결혼과 출산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자기 욕구를 채우려 했다.

건강하지 않은 동기에서 시작된 그 일은, 방법만 괜찮다고, 정당화 할 수도 없고, 만족을 주는 결과도 가져오지 못한다.  레아는 결혼하면서 아마 이제는 레아의 그늘에서 벋어나, 자신의 인생을 찾을 수 있고, 자기가 주목받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 여전히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고, 결국 자기 뿐 아니라 라헬과도 결혼했다.  레아는 그 뒤에는 아들을 낳음으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약의 하나님

이렇게 언약이 깨어질 때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간다.  야곱은 자기 욕망을 채우려 하지만 괴로울 뿐이고, 레아는 전통을 통해 자기 욕구를 채우려 하지만 억압만 받을 때, 하나님은 오셔서 언약을 맺으시고, 이들을 사랑하시고, 이들과의 관계를 변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켜나가신다.

31절.  “주님께서는,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레아의 태를 열어주셨다.”

이야기에서 레아를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야곱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레아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그에게 남편이 되어주신다.  야곱이 남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레아의 남편 되어주신다.  레아는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점점 배워간다.

32절 “주님께서 나의 고통을 살피시고“

첫째 아들 이름을 “르우벤”  “보아 아들이다”라는 뜻이다.  영어로 see through라는 표현이 있다. 무언가를 통해 본다. 투명한 창문이 있을 때 우리는 창문을 보지 않고 창문을 통해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본다.  사람들이 동생 라헬과 있으면 자기를 투명인간 취급한 것이다. 동생만 보고, 자기를 보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레아는 남편 야곱은 나를 쳐다봐 줄줄 알았는데 그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나를 관심있게 본 것인가? 하나님. 괴로워하는 나를 보신 것을 알게 된다.

33절 “주님께서 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내가 애를 둘이나 낳았다.  그러나 남편마져 내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하소연하면 야곱은 담벼락같이 대꾸도 안하고 가버린다. 하나님께서는 내 소리를 다 들으시는 것을 알게된다.  그 아이의 이름을 시므온: “듣다”라고 지었다.

34절.  “내가 아들을 셋이나 낳았으니, 이제는 남편도 별 수 없이 나에게 단단히 매이겠지”

야곱과 결혼하는 날 이제는 이 남자가 평생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자기를 보고, 아버지에게 자기랑 결혼시켰다고 화를 내고, 그리고 결국 신혼 일주일 만에 라헬과 신방을 차린 남자였다.  평생 외롭게 있을 때, 하나님은 지금도 내 옆에 떠나지 않고 계시면서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  아이의 이름을 “레위”: 매듭이라고 지었다.

이 과정을 통해 레아도, 신랑되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 나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채워주는 분이다.
  • 나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시는 분
  • 나를 떠나지 않고, 변하지 않게 사랑하는 분.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 그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자기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넷째 아들 유다를 낳을 때 레아가 하는 말은 이전과 다르다.

35절: 유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라는 뜻이다.

이전에는 “아이를 낳았으니”라는 조건절이 붙었고, 그랬으니 사랑받을거야라고 말했다.

이제는 조건이 없어졌다. 조건이 필요없는 거에요. 아들을 낳아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나 그대로 사랑하신다.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맺고, 그 언약을 깨달은 레아는 이전의 레아와 다른 레아이다.

레아는 이전에는 하나님 + a 의 신앙이었다.

  •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지만, 조건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 “만일 하나님이 OOO 해주시면…”
  • 한손에는 하나님을, 한 손에는 우상을 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그렇게 대하지 않으시고 언약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이제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것을 알게 된다.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는 “조건”이라는 우상을 내려놔도 되는 것을 알고 내려놓는 것이다.

“레아의 출산이 그쳤다”

더이상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기 위상을 증명할 필요도 없고,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은 노력을 통해 사랑을 쟁취할 필요가 없다.  안심하고 평화를 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레아도 역시 하나님을 조건없이 사랑하고 기뻐하고 찬양한다.

창 49장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모아놓고 그들을 축복하고 장래의 일을 예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 9-11: 유대에 대한 말씀을 하는데, 유다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이 나시고, 그 혈통에서 메시아가 나올 것을 말한다.
  • 유다라는 것. (아무런 조건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이 우리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시고, 신실하게 우리와 관계를 맺어 나가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조건 없이 살아하고 그분과 신실한 관계를 맺어나가겠다
  •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고, 하늘에 있는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신실함이 합쳐져서 언약을 맺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도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참된 언약을 보여줄 수 잇는 사람이 된다.

 나눔 질문

  1. 하나님이 없다면 전통적인 결혼관이나 로맨틱한 결혼 가치관이나 참된 만족을 주지 못함을 알겠습니까?
  2. 하나님의 언약을 기준으로 자신을 돌아봅시다.
    1. 서로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기 위한 친밀한 공동체입니까?
    2. 서로에게 헌신하는 언약의 관계입니까?
  3. 오늘 내용이나 성경 구절 중에 나에게 가장 다가온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나누고 기도로 바꿔봅시다.  또한 어떻게 나의 현실에 적응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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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소망교회

질문이 있으십니까?  권혁수에게 jesushope @ jesushope. co. kr로 질문하십시오.

 

네 여자와 결혼한 남자 Part I

예수소망교회 설교 팟케스트(블로그)에 방문하신 것 환영합니다.   내용이 좋다면 친구, 가족, 동료들에게 공유해주세요.

오늘부터 “리얼리티쇼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가족을 위한 설교를 합니다.  오늘은 그 서론으로 “네 여자와 결혼한 남자”라는 제목을 붙여봅니다.

MP3 다운로드

 

눈썹 없는 아내의 땀 닦아주기

예전에 광수 생각이라는 만화가 있었다.  그 에피소드 하나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부부가 있는데 그 아내가 선천적으로 눈썹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눈썹을 그리고 다닌다.  하루는 아내의 이마에 땀이 난 것을 보고, 남편은 손수건을 꺼내 아내의 땀을 닦아준다.  아무 말 안하지만 아내의 눈썹을 잘 피해서 닦아준다.

많은 것을 말해주는 이야기이다.  참 좋은 남편이다. 그를 남편A라고 불러본다.

그런데 질문합니다. 현실에 그런 남자가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는 현실에 있는 다른 종류의 남편을 생각해 봤다.

남편 B

  • 아내가 눈썹이 나지 않는다.
  • 하루는 아내의 이마에 땀이 난 것을 본다.
  • 남편은 손수건을 꺼내 자기 이마에 난 땀을 닦고 손수건을 집어넣는다.
  • 아내는 속으로 “니가 그러면 그렇지”라고 생각한다.

남편 C

  • 아내가 눈썹이 나지 않는다.
  • 하루는 아내의 이마에 땀이 난 것을 보고, 남편은 간만에 손수건을 꺼내 아내의 땀을 닦아준다. 그런데 아내의 눈썹까지 닦아준다.
  • 아내는 화를 낸다. 남편은 놀라서 이유를 물어보지만 아내는 아무말도 안한다.
  • 남편: 왜 그런지 이유를 몰라 당황해 한다.

세상의 남편이 다 남편A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 보다는 남편B나 남편 C가 더 많을 것이다.

원론적인 관점에서 가정의 달 설교는 웃음이 가득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부부에 대한 이야기,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끄집어내어 아프게 하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다.  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 소속감, 안정감과 존중받음을 줘야하는 곳이다.  그러나 때로 현실에서의 가족은 우리에게 우울증, 공허함, 소외감, 불안을 주는 곳일 때도 있다.

하나님: 원칙 + 현실적

성경은 가정에 대한 우리의 이상과 현실을 반영한다.

원칙적인 하나님

먼저 성경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에 대한 꿈과 원칙이 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하나님은 그 원칙을 세우신다. 그리고 예수님도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창조의 본문으로 돌아가 말씀하신다.

마 19:4-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는 것과, 그리고 그가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될 것이다’하신 것을 너희는 아직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가르쳐주는 가정의 원칙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 하나님이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창조하셔서
  • 그들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의 공동체 되게 하시고
  • 그리고 그것을 평생동안 지켜나가도록 헌신하게 하셨다.

이것은 문화적 제약을 받지 않는다.  구약에서도, 예수님을 통해서도, 그리고 사도들이 유대인이나 혹은 헬라권 믿는 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이 원칙은 동일하게 반복되고 지켜진다. 하나님은 창조때부터 역사와 문화를 막론하고 원하시는 원칙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현실적인 하나님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의 가정의 현실을 부인하지 않고 받아들이신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의 가정의 모습을 살펴보면 건강한 가정을 이룬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창세기에서 믿음의 조상이라 하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의 이야기는 개인의 이야기보다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그 4대의 이야기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후첩을 들여 아이를 낳았고, 나중에 그 후첩과 이혼하고 아이와 함께 집에서 쫓아낸다.  위자료는 거의 주지도 않는다.
  • 이삭은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자기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거짓말했고, 결과로 그 지역의 왕에게 아내를 시집보냈다가 찾아온다.
  • 야곱은 장자권을 얻어내려고 그의 형 에서를 속이고, 엄마와 공모해서 아버지마져 속이고 축복을 받아낸다
  • 야곱의 형 에서는 열 받아서 동생을 죽이겠다고 했고, 그래서 야곱은 어머니 고향에 있는 라반에게로 도망쳐야 했다
  • 야곱은 거기서 라반의 두 딸-레아와 라헬과 결혼하고, 게다가 두 명의 첩-실바와빌하를 맞아들인다.
  • 야곱의 장자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한다
  • 야곱의 딸 디나는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성폭행을 당한다.
  • 야곱의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는 젊은 혈기에 성폭행한 사람뿐 아니라 그가 사는 마을 주민 전체를 학살한다.
  •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는 자신의 며느리와 동침해서 임신을 시킨다.
  • 야곱의 10명의 아들은 11번째 아들 요셉을 질투해서 죽이려고 했다가, 이집트에 노예로 판다.
  • 그 열명의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요셉이 죽었다고 거짓말한다.

이것이 간략한 믿음의 조상의 가족 이야기이다.  이게 무슨 막장 드라마인지 성경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  성경은 그 모든 현실에 대해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을 만났고 은혜를 받고 믿는다고 하지만 쉽사리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믿는 자의 가정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죄와 상처를 이기시는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끈기와 참을성과 생명의 역사에 감탄하고 감사한다

하나님의 시작점: 우리의 깨어진 현실을 받아들이시고 감싸신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하나님”이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찾아오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지켜나가시는 하나님이다.

“그런 사람들 포기하면 안되나요?”라고 질문을 하면, 하나님은 대답하실 것이다.

  •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되로 창조되었다
  • 우리는 문제있는 사람은 거리를 두려한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  모르는 사람
  • 하나님은 자기 이름으로 부르는 자기 백성이라고 기꺼이 칭하신다.
  • 정 이유가 없으면, “하나님이 이름의 명예를 위해” 그 일을 하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에 그의 사랑이 변할 수 없다.

현실에서 원칙으로 이끄시고 동행하시는 분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시작점에 그냥 머물러 계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종말점을 향해 나가신다.  하나님의 종말점은?  원래 창조했던 건강한 가족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하신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그 문제를 맞고, 그것을 함께 풀어나가시고, 그들과 함께 오랜 기간을 인내하시는 하나님이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이를 주시고, 믿음의 가정을 꾸리게 하신다.
  • 더불어서 이혼당하고 쫓겨난 하갈과 그 자녀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과 대등한 언약을 주시고, 그들로 번성하게 하신다.
  • 하나님은 아버지와 형을 속인 사기꾼 야곱을 찾아오셔서 그를 축복하시고 그의 하나님 되셔서 함께 하신다. 그것을 통해 오랜 시간 끝에 결국 그가 사람되게 하신다.
  • 하나님은 혈기를 참지 못하고 온 마을을 학살한 레위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제사장 가문이 거기서 나오게 하신다. 레위는 모세와 아론의 조상이 된다.
  • 유다는 자신의 며느리와 동침하여 자식을 얻지만 그 자식을 통해 하나님은 다윗의 왕조를 세우시고, 그리고 거기서 예수님이 태어나신다.
  • 요셉의 열명의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았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대신 만드시고, 야곱의 가족을 가뭄에서 구하신다.

예수 그리스도

그 결정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다.

  • 아까 말한데로 예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평생을 함께 하는 삶을 원칙으로 삼으신 분이시다.
  • 그러나 그 예수님은 다섯 남자와 결혼생활을 실패하고 또 다른 남자와 동거하는 여인과 친구가 되시고 생명의 물을 제공하신다.

그분은

  • 남자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간음한 것이고, 여자가 이혼하여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간음한 것이라 하셨다.
  • 그러나 그분은 간음하다 잡혀와 군중이 돌로 쳐 죽이려는 여인을 보호하시며,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라고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신 분이다.

꽁꽁 싸매지 않아도 되요

이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지 알게 된다.

마가복음 1:15: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하나님이 자신의 때에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럴 때 우리는 두 가지를 해야 한다.  하나는 회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믿는 것이다.

회개라는 것이 무엇인가?   회개는 고백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가정에서의 아픔과 문제를 부인하거나 가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 우리의 죄와 약점과 부끄러운 점을 감추려 하지말라.

“다 알면서 뭘 그래?라는 표현이 있다.

  • 볼 거 다 보고 알거 다 아는 어른들끼리 하는 말이다.
  • 하나님이야 말로 볼거 다 보고, 알거 다 아시는 분.
  • 그게 전능이고 전지 아닌가?

하나님을 뭘 모르는 샌님으로 생각하지 말라

  • 하나님을 현실을 모르는 원칙주의자로 착각하지 말라.
  • 하나님은 내 모든 형편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나의 모든 아픔이 있을 때 나의 처지보다 더한 것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께 나와서그 마음을 쏟아놓으라.

더불어서, 나와 신뢰의 관계를 형성한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도 나의 형편을 열어주라.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의 솔직한 가정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는 것이 감사하다.  그래서 나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다.

최영기 목사님이 쓰신 “교회는 병원이다”라는 책이 있다.  책 제목이 너무나 와 닿는다.

교회는 사교 모임이 아니다.  사교모임은 건강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또 건강하지 않거  나의 약한 모습이 있다면 그것을 꽁꽁 감싸고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하면서 모이는 곳이다. 왜요? 그 부끄러운 것을 보면 뒤에서 gossip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약점을 보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자기 아픈 것을 싸매고 안 보여주지 않고, 기꺼이 벌거벗고 아픈 것을 드러낸다.  의사는 나의 부끄러움에 대해 소문내는 사람이 아니라 비밀을 보장해 주는 분이다.  의사는 나의 아픈 것을 치료하는 분이다.

교회가 그러한 곳이며, 또한 그러한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감사한 것이 있다.

  • 교회를 시작할 때 우리 성도들 처음 만난분들, 어색하기도 하고,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한다
  •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신뢰가 쌓이고, 그래서 목사라고 저에게 자신의 삶을 열어주시는 분들
  •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을 같이 경험하고,
  • 그 가운데서 사실은 그도 저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저도 그에 대해 가진 편견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어주는 공동체를 이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것을 통해 우리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서로를 통해 위로를 받고 치유가 일어나고, 서로와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나눔 질문

  1. 나의 가정의 현실을 하나님께 열어보이고, 내 집으로 하나님을 초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가정의 원칙을 기준으로 나의 가정의 현실을 평가해 봅시다.
    1.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입니까?  거기서 시작하고 양가의 부모님과 자녀들로 확장되어있습니까?
    2. 서로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기 위한 친밀한 공동체입니까?
    3. 서로에게 헌신하는 언약의 관계입니까?
  3.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의 모습이 되기 위해 (1)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2) 내가 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4. 오늘 내용이나 성경 구절 중에 나에게 가장 다가온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나누고 기도로 바꿔봅시다.  또한 어떻게 나의 현실에 적응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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