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8일 주일 설교
조성돈 대표, Lifehope 가독교자살예방센터 대표가 “죽음의 문화와 생명 문화”라는 강연: 심각한 통계를 말한다.
2014년 통계로 1년동안 13836명이 자살했다고 한다. 하루에 39명 자살한 것이다.
- 연령대별로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연령은? 40대. 그 다음이 50대. 그 다음이 30대.
- 우리 나라에서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많이 자살하는가? 남자. 2배 정도
- 40대 남자에 대해 말한다. 40대 남자가 되면 남자가 여자보다 자살하는 경우가 3배 높다.
- 다른 말로 우리나라의 40대 남자가 가장 많이 자살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삶을 마라톤에 비유: 열심히 살았다. 돈 벌어야지. 부장되야지
- 40대쯤 될 때 당신 누구냐 물으면: 연봉이 얼마고, 직책이 어디에 있고
- 그런데 갑자기 해고를 당한다. 연봉과 직책이 나였는데, 해고를 당하고는 나마져도 잃어버린다.
- 사람은 고난 때문에 죽지 않는다. 의미가 없어서 죽는다.
- 가치를 잘못 설정했다. 직책이나 돈에 자기 가치를 설정하면, 그것을 잃는 순간 살 이유가 없어진다.
이렇게 어려울 때 중요한 것이 가정이다
- 가정에서 위로를 받아야 한다
- 그런데 현실에서는 가정은 무서운 곳이다.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내
- 집에 가서 위로 받아야 하는데, 아내 얼굴 보는 것이 어렵다.
- 집에 있으면, 더 이상 가장이 아니라 짐이 되는 자신의 모습
그러면 살아갈 힘을 잃는다. 마음을 잡기가 힘들다. 살기가 힘들다
조성돈 대표는 해결책으로 두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가정을 제시한다. 가정이 안식처가 되야 한다. 낮에는 정글을 다니더라도 집에서는 환영받고 사랑받아야 한다.
둘째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 조성돈 대표가 말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급증한 때가 있따. 1998년 IMF때. 그 때부터 치고 올라와서 계속 증가한다.
- IMF가 우리에게 한 것: 생각을 바꿔버린 것이다. “돈이 최고다"라는 생각을 우리에게 깊숙히 집어넣어 버렸다. “돈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다"라고 우리에게 심어버린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결하는가?
죽음의 생각을 생명의 생각으로. 죽음의 가치관을 생명의 가치관으로.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꿔야 한다.
안식일로의 초대
십계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 끝없는 생산을 강요했던 사회에서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을 구했다. 이집트의 “더 많을 수록 좋다"라는 쉬지 못하게 하는 가치관, 그리고 거기서 "쉬지 못하고 일만해야 했던”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새롭게 하는 역사를 하신 것이다.
그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신들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현대식으로 말하면 가치관을 상징한다. 이집트나 가나안의 신들은 풍요로움과 다산을 상징한다. 풍요와 다산이 신이 되었다는 것은 그것을 추구하다 못해 풍요주의 다산주의가 되어버렸다.
- 쉬지 못하고 일만 하는 문화이다.
- 다른 한편으로 방탕하게 된 문화이다.
그럴 때 하나님이 명령하신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나,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출20:8-11)
하나님이 한주에 한번은 쉬도록 명령하신다.
복되다
그럴 때, 11절에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1.복되다라고 말한다.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쉼이라는 것이 복이 된다. 한국 문화: 일 중심의 문화이다. 멈추고 쉬는 것이 왜 복이 되는가?
Michael Fishbane. 랍비. Sacred Attunement (거룩한 조율)
[우리는] 육체를 고되게 하거나 강요된 행위를 함으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 육체를 가진 자신은 세상에 보내졌으며 땅을 경작해서생계 유지를 해야하지만, 그 과정에서 몸은 축나고 인생은 죽음을 향해 간다.
그와 대조적으로, …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주도권을 잡고, 그 날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 것 혹은 창조를 마친 것을 축하하는 표시를 넘어, 땅은 하나님의 창조의 선물이며, 사람들에게 신성한 믿음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가치가 강화된다. …
휴식의 심장박동은 한 존재의 마음과 관절에 가득차게 되고, 평화롭고 안정된 영적 상태에 선 내면의 균형을 만들어낸다.
안식일, 즉 한주의 7번째 되는 날에 관한 글이다.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찬양하고, 말씀듣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은 거울과 같다. 나도 만나게 된다. 참된 나,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삶이라는 선물, 나의 삶의 이유를 회복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삶의 가치를 재정립하게 된다. 또한 안식일에 예배 드리고 다 집에 가서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가족들에게 사랑 받으면서, 나는 치유를 받는다.
[휴식의 심장박동]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닫는다. 일하는 것은 무거운 것을 들거나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과 같다: 필요한 것이지만, 계속 그러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이다. 멈추고 쉴 때,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회복의 시간이 다가온다.
인식이란 무엇인가?
- 단순하게 쉬면서 재충전: 그건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못한다.
- 회복(restoration):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는 치유를 뜻한다
- 탐욕과에서 자유해서 평화를 누리는 것
- 잘못된 가치에서 건강한 가치를 회복하는 것
- 절망에서 소망을 누리는 것
- 죽음에서 자유해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평화로운 주일을 주셔서, 그 주일을 온전히 지킴으로 쉬는 것이 복이다.
십걔명의 5계명~10계명
- 부모를 공경하라
- 살인하지 말라
- 간음하지 말라 (음란하지 말라)
- 도둑질하지 말라
- 거짓 증거하지 말라
-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
너무나 당연한 것들인데, 왜 안될까?
- 탐욕에 사로잡혀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니까
- 잘못된 동경을 붙잡고, 오만하거나 질투하고, 그것이 이루려면 어떤 수단이라도 쓰려고
- 정욕에 사로잡혀 채워지지 않을 만족을 얻으려 하니까
한마디로 멈추고, 예배드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받는 훈련이 안되서. 일주일에 하루 예배를 드리고, 소모임이 만나고, 그래고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이고, 소중한지를 알아야 한다.
거룩하다
그러므로 중요하다. 안식을 거룩히 여겨야 한다. 멈추고 쉬는 날을 중요시 여기고, 그것을 위해 훈련해야 한다.
거룩하다: 특별하게 따로 때어놓는 것을 뜻한다.
- 핸드폰 꺼내보세요. 다 꺼주세요
- 왜 끄지 못하는가? “중요한 연락이 올까봐” 그 말은 예배를 특별하게 따로 떼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안해서 어떻게 하나” 인류 10,000년 역사상 핸드폰이 꺼져서 불안해 한 기간은 지난 20년 밖에 없다. 불안해 하는 우리가 문제이다.
- 미국사람들 퇴근하면서 핸드폰을 꺼버리는 사람들 많다. –> 나의 쉼을, 나의 운동을, 나의 취미를, 내가 소중한 사람과 만나는 것을 특별하게 따로 떼어놓는 것이다.
- 신문에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도 해외 여행을 떠날 때 의도적으로 로밍을 받지 않고 나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주일을 거룩하게 하라. 안식일을-주일을 거룩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멈춤을 제도화하신다.
출20:10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나,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온 나라가 일을 멈추도록 했다. 멈춤이라는 은혜를 알지 못하고, 알아도 지킴으로 누리지 못할 때, 그것을 법으로 제정하여 쉼을 제도화하고 훈련시키고, 습관과 문화로 만드신다.
- 구약학자들이 한 주에 하루 쉬는 안식일의 근원을 찾으려고, 고고학적 방법으로 이스라엘 주변 문화를 연구했다.
- 아무리 연구해도, 이스라엘을 둘러싼 모든 사회에서, 주기적으로 6일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을 제도화한 나라가 없다.
- 한주에 하루 쉬는 제도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 유대인들은 창조의 섭리적 은혜에 감사하면서, 또한 그들을 이집트의 끊임없는 노역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한주의 7번째날 토요일을 쉬는 날로 지키고, 그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 기독교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주님이 부활하신 날, 주일 (혹은 일요일)을 쉬는 날로 지키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가족과 지인과 시간을 보낸다.
- 우리는? 그래서 토요일도 쉬고, 주일도 쉰다.
- 주5일 근무제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라.
거룩하다라는 것: “그걸 중요하게 여기고, 중심으로 삼아라" 삶을 일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쉼 중심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김정운 교수. 우리나라는 주5일 근무제라고 하지만 일본은 주2일 휴무제라고 한다. 이것은 관점이 다르다.
- 우리나라는 일을 중심으로 쉼을 보지만, 일본은 쉼을 중심으로 일을 바라본다.
- 어느 쪽이 성경적인가? 주2일 휴무제가 더 성경적이다. 거룩하니까.
이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대한 민국 사람들은 일중독자이다. 일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쉼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은 역으로 생각하신다. “쉬는 날"을 중심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일은 소중하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소중하고, 특별히 창의적이고,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쉼이 중요하다.
그럴 때 멈춤이라는 것, 쉼이라는 것은 수동적 개념이 아니라, 적극적 개념이다. 그래서 쉰다고 말하기 보다는 논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날잡고 놀아라.
자유하게 하는 예배
어떻게 쉬는가?
쉼을 이해해야 한다. 쉼이란 일을 멈춤을 통해: 존재 상실에서 존재 발견, 잘못된 가치에서 건강한 가치, 불안에서 평화, 미움에서 사랑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가는 것
레위기 23:3 엿새 동안은 일을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반드시 쉬어야 하는 안식일이다. 거룩한 모임을 열어야 하고,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이 날은 너희가 살고 있는 모든 곳에서 지킬 주의 안식일이다.
거룩한 모임:
- 두가지 요소: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 성도의 교제를 나누세요. (성도의 교제에는 가족들과 교제)
- 그런 면에서 가족이 함께 예배 드리는 것이 소중하다
이사야 66:23 “매달 초하루와 안식일마다, 모든 사람이, 내 앞에 경배하려고 나올 것이다.”
특별히, 그 쉼의 중심에 예배를 두세요. 쉬는 날의 거룩함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쉬는 날의 중심에, 섭리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예배드림을 말하는 것이다.
윌리엄 윌버포스. 19세기 초반 영국의 의원
- 그는 영국에서 노예제도 폐지법을 통과시킨 분으로 유명하다
- 1801년에 Addington경이 이끄는 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그가 수상이 되어서 새로운 내각을 구성한다.
- 당시는 나폴레옹 때문에 온 유럽이 공포에 빠질 때, 영국은 어떻게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까를 고심하게 된다.
- 윌버포스가 그 내각 중 한명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고, 윌버포스 자신도 자신의 평화 정책 때문에 자신도 내각으로 지명되게 되기를 원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윌버포스는 내각으로 지명되는 가능성에 온 정신이 팔려버린다.
- 마음을 빼앗기고, 다른 일은 눈에 안 들어온다.
- 그 마음에 야망으로 가득차고, 영혼도 약하게 된다.
- 한 주가 끝날 때쯤 되면, 그는 모든 술수를 써서라도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환상과 유혹에 사로잡힌다.
위험한 순간: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균형을 찾게 해주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영적 훈련이 무엇인가? “주일을 지키는 것” 주일에 쉼으로, 그는 일상가운데 자신의 내면이 정상을 찾게 된다. 그럴 때, 주일이 그 영혼을 치료한다.
그가 쉴 때 그 균형이 다시 회복된다. “복되신 주님, 하루 쉬는 날을 주셔서 영적으로 집중하게 해주셔서, 땅의 것들이 참된 크기로 돌아왔습니다. 야망이 저지되었습니다.” 멈추고 쉬는 그 하루가 있어서, 그 모든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건강하게 회복하고, 그래서 소진되거나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윌버포스가 자신의 친구 William Pitt에 대해 말한다. “불쌍한 친구 같으니. 그 어떤 것보다도 정치적 고뇌야말로 가장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인데. 그는 그것들을 멈추고 마음을 고무시키는 법이 없어”
그는 자살한 두 명의 정치인들에 대해 말한다: “평화로운 주일이 있었더라면, 그들이 극심한 긴장감으로 끈이 끊어지는 일은 없었을텐데”
* 참된 쉼은 “하나님께 나와 예배 드림에 있다" 주님 앞에 예배 드릴 때 하나님을 만나고 나를 보게 된다. 주님 앞에 예배 드릴 때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 나도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헛된 야망에서 자유하게 된다. 주님 앞에 예배 드릴 때 살 소망을 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