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주기도문: 7. 악에서 구하소서

* Feature Image: “Good versus Evil” by Markus LütkemeyerBy: Markus Lütkemeyer / CC by 2.0

2015-09-13 주일

창 3:1-9, 마 6:9-13

두 주 전에, 한 신문에서 터키의 해변가에 난민 어린 아이 하나가 사망해서 떠내려와 있는 모습이 전 세계에 실렸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그 사진을 보셨을 것입니다.  어느 신문사에서는 그 사진을 기사에 실어놓고는 밑에 대략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 사진을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원래는 신문에 실지 않기로 했으나, 다시 실어야 할 것 같아서 올린다.  왜 그 고민을 합니까?  그 사진과 사진 뒤에 있는 사연이 너무 끔찍해서 입니다.  저도 그 사진을 원래는 여러분들에게 보여 주면서 시작하려고 하였으나, 그 사진이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해서 더 이상 설교가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아서 보여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중에 자식이 이렇게 되었다면 어느 부모가 마음을 찢지 아니하겠느가?

이 사진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 나라가 인구의 절반이 하루 아침에 난민이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 나라가 그것을 놓고 어떻게 해야할 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겪는 악의 문제를 조명해 줍니다.

악에 대해 수 많은 질문들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사의 입장에서 실천적인 면을,그리고 나의 지식의 한계 안에서 대답해 봅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왜 이런 일들을 허용하는가?

악의 문제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하나님은 이런 일을 허용하는가?라는 질문일 것입니다.   성경의 관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은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책이 아니라, 우리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책입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에서는 “뱀”이라는 짐승이 나와 아주 교활하게 사람을 유혹해서 죄를 짓도록 하는 것을 봅니다.  도대체 악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왜 뱀이 하나님의 동산 에덴 동산에 있습니까?  저도 궁금해요.  이 다음에 천국가면 하나님께 여쭤보려고 해요.  성경이 그 뱀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나 대신에 대단히 현실적이에요.

창세기 3장까지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신화와 같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얼마나 우리의 현실을 잘 반영해 줍니까?  우리의 현실 가운데 악이 있고 유혹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넘어지고,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며, 또한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 치지 않습니까?

그 현실적인 관점에서부터 성경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세요.  악 위에 계셔서 악을 심판하시는 분.  악을 허용하심으로, 악으로 악함이 드러나게 하세요.  뱀이 악하다는 것이 이제는 부인할 수 없어요.  그리고 그 뱀을 심판하세요.  악으로 인해 불순종과 사망이 들어오고, 고통 해요., 그것 가운데에서 우리를 구하세요.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기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이 기도를 할 수 있으려면, 하나님은 악에서 우리를 구하실 수 있는 분이며, 또한 실재로 우리를 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전재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악이 있어서, 그것이 거의 동등한 힘이라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며, 악 위에 있어서 악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는가?

이것을 다 이해했다면, 이제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 악을 심판하옵소서: 악으로 숨지 못하고 악으로 드러나게 하시고, 심판하여 주세요
  •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세요: 거짓과 유혹과 정죄의 문제에서 벋어나게 해 주세요.

악의 복잡성

둘째는, 악의 문제는 복잡한 것이고 봅합적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복합적으로 기도하십시오.

밤에 TV를 켰는데, 맛있는 걸 막 먹는 것이 방영이 되어서, 그만 라면을 끌여 먹고 말았어요.  누가 잘못한 거에요?  끌여 먹은 내가 잘못입니까?  아니면 먹으면 안 되는 시간에 보여주는 TV프로그램이 잘못입니까?  둘 다 죄인인 거에요.

그 사람이 살을 빼고 싶다면, 밤에 TV 먹방 프로그램을 더 이상 보면 안됩니다.  더불어서 밤에 야식 먹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은 하나가 더 있습니다: 고무줄 바지를 입으면 안됩니다.  유명 다이어트 전문 강사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고무줄 바지는 사악한 것입니다.  그걸 입으면 몸이 편하기 때문에, 살을 뺄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에 기여하는 주요 요소들을 규명하고, 그 하나하나를 다 처리해야만 합니다.  악의 문제가 그러합니다.  악이라는 것은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 악이라는 단어는 πονηρός입니다.
  • 세 가지로 용례가 성경에 나와요.
    • 첫째는, 악한 것을 말해요
    • 둘째는, 악한 사람에 대해 말해요
    • 셋째로는, 악한 영에 대해 말해요.
    • 성경이 이 악이라는 것의 복잡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악에 대해 말할 때, 보수적인 분들은 개인의 도덕적 책임에 대해 말합니다.  진보적인 분들은 구조적인 악에 대해 말합니다.  어느쪽이 옳습니까?  둘다 맞아요. 개인적인 책임이 없습니까?  아니에요 분명히 있어요.  구조적인 면이 있습니까?  있어요.  둘다 틀려요.  이 중 한쪽만을 중요하다고 한다면, 다른 한쪽의 차원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제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음을 말해요.  악한 것이 있고, 또한 악한 사람이 있을 뿐 아니라, 악한 영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엡2:1 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엡2:2 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엡2:3 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에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엡2:4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엡2:5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악에 대한 진단 악에는

  • 사회-문화의 구조적 요인과
  • 악한 영적인 요인과
  • 심리적-도덕적 요인이 같이 있음을 말해요

문제가 생겼다면 한쪽으로 치우치지 마세요.  “이 악에서 구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때에 세 가지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회-문화적 요소에 대해 생각하며 구조를 바로잡는 기도해야 하고, 악한 영에 대해 분별하며 대적하는 기도하고, 더불어서 나의 개인의 죄를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회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악한 자

그 뱀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3:1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

사탄은 머리가 좋아요.  그와 동시에 마음이 악해요.  그래서 그 좋은 머리로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왜곡해요.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왜곡하며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왜곡해요.

두 가지 거짓말

이 거짓을 가지고 하는 두 가지는 유혹과 정죄에요.

유혹: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부인한 것입니다.

  • “그냥 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 거야.”
  • 하고 나서 회개하면 된다라는 생각이에요.

정죄: 하나님의 거룩을 왜곡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한 것이다.

  •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한 것보다 우리의 비참함을 더 강조하는 것
  • “그러고도 네가 그리스도인이냐?”
  • “그런 짓을 하고도 하나님이 너를 받아줄 것으로 생각하느냐?”이 두 가지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어요.
  • 마귀가 먼저는 우리를 유혹해요.
  • 그리고는 우리가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지으면, 정죄해요.

가만히 보면 기독교인들의 삶에는 이러한 유혹과 정죄가 반복되는 악한 싸이클에 빠져서 잘 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다시 이해해야 한다.

  • 거룩함과 용서가 함께 있는 곳입니다
  • 거룩함: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죄를 십자가에 못밖는 것입니다
  • 용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를 믿을 때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습니다

거룩함을 정결함을 구하세요

  • 용서를 남용하지 마세요.  바람을 핀 남편을 아내가 용서했어요.  이제 아내가 용서할 것을 알고 남편이 바람을 또 피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실 것을 알기에, 우리가 그 용서를 이용해서 내가 하고 싶은데로 사는 것은 그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 그 은혜를 주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인이기에 넘어졌을 때,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사랑하심을 구하십시오

임마누엘 하나님

성경에서의 악에 대한 이러한 논의를 할 때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마치 지구 반대쪽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평가하거나, 혹은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악 위에 계시나, 또한 그 악의 문제에 임하셔서 함께 구속의 역사를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입니다.

창 3:9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부르시며 물으셨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부모의 심정을 아십니까?  그 심정으로 하나님이 부르짖고 계신 것이 들리십니까?  “어딨니”라는 가벼운 톤으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  어디에 있냐?”  라는 사람이 겪고 있는 혼란스럽고 파괴적인 악의 현실에 들어와, 그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입니다.

마태복음 본문에서는,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기도를 가르치시는 예수님은

  •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 임마누엘의 하나님, 우리가 겪는 모든 악의 문제를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겪으신 하나님
  • 태어날 때 여관의 방이 없으셔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하나님
  • 태어나자마자 헤롯이 죽이려해서 이집트로 도피해야 했던 하나님
  • 아버지 요셉이 일찍 돌아가셔서, 어릴 때부터 가난의 문제와 싸우며 가정을 책임져야 했던 하나님
  •  궁극적으로 배신받고 버림받고 죄인 아니나 죄인 되어서 십자가의 피를 흘리신 하나님
  • 그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 하시잖아요?
  •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준다.

히4: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시험이 찾아오고, 악이 우리를 억압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세요.

  •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분.
  • 부활하셔서 악을 이기신 분
  • 하늘에 올라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분.

그럴 때 하나님이 도움을 주실 것이에요

주기도문: 5. 용서받은 자의 용서

2015-08-30 목
마태복음 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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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 Gilbert

Dan Gilbert: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이며,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진 분입니다.  그가 한 강연에서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은게 다음 중 어느쪽을 선택하겠습니까?  복권이 담청되어 약 3억불의 상금 (우리 돈으로 약 3500억 정도)를 받는 것과, 하반신이 마비인 사람이 되는 것  중에 어느 쪽을 선호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전자가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두 그룹의 사람들을 실제로 연구해 보면, 약 1년후에 두 그룹의 행복지수가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제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모여서, 한편에서는 실제 상황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실험실에서 연구해본 결과는, 선거에 당선되든지 떨어지던지, 애인을 얻던지 헤어지던지, 승진이 되든지 못되든지, 대학에 들어가든지 못 들어가든지가, 생각보다 충격도 훨씬 적고, 그 강도도 작으며, 그 영향도 오래 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큰 일을 겪었어도,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사람들의 행복도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계속 몇 개의 실례를 듭니다.

  • Jim Wright은 미국의 민주당 의원으로 하원 의장까지 한 분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비리를 젊은 공화당 의원이 폭로해 버려서, 하루 아침에 자기 권력과 재물을 다 잃어버립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가 말합니다.  “나는 건강이나, 재정적인 면에서나 정신적으로나 거의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낳아졌습니다”
  • Moreese Bickham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 때문에 Louisiana 주립 교도소에서 37년간 갇혀있었습니다. 그가 그 경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단 일분도 아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 Pete Best는 비틀즈의 원래 드러머였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Beatles 멤버들이 그를 심부름으로 어딜 보내놓고는 도망갑니다.  그리고는 Ringo Starr라는 드러머로 그를 교체합니다.  1994년에 Pete Best가 인터뷰를 합니다.  그는 여전히 드러머이고, 여전히 스튜디오에서 반주를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비틀즈에 있었어도 지금처럼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두 가지 종류의 행복에 대해 말해요:  자연적 행복과 합성된 행복

  • 자연적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얻는 행복.
  • 합성된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에, 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감사할 일, 의미있는 일을 찾아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에요.
  • 우리는 자연적 행복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연구해 보면, 합성된 행복이 주는 만족도가 자연적 행복과 차이가 없다는 거에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살면서 억울한 일도 당하고, 왕따도 당하고, 배신이나 버림을 받을 때도 있어요.  분명히 아픈 일이긴 합니다. 애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좌절하지는 마세요.  특별히 너무 그 사람 미워하지도 마세요. 그 사람 탓하지도 마세요.  이걸 기억하세요. “원망한다고 내가 행복해지나?”  “그 사람 탓하면 내 상황이 개선이 되던가요?”  아니에요.  뒷골만 땡길 뿐이에요.  오히려 털고 일어나고, 풀건 풀어버리세요. 과거에 붙잡혀 있지 마세요. 대신에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감사의 제목을 찾는 것이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일입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것을 잃었거나 놓쳤더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행복한 이유를 찾으면, 대등하게 행복할 수 있어요.

용서받고 용서하라: 은혜의 방혜 요소를 제거하라

오늘 주기도문에서,

마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라고 기도하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용서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며, 또한 이웃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용서에 대한 기도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라는 간구 바로 다음에 하는 기도라는 것에 관심을 가져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시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고, 그것을 나에게 주시는 은혜가 있어요.  요한 웨슬리가 말합니다. 하나님게로부터 좋은 것들이 오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죄”이다. 말을 합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죄가 있고, 또한 우리의 이웃간의 관계에 막힌 것이 있기 때입니이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고, 더불어서 이웃을 용서 해야하는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다: 그것은 은혜의 방해 요소를 제거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건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건강해 지기 위해서 자꾸 뭔가를 섭취하려 해요.  맞는 말이에요.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섭취하기 전에 먼저 속을 청소해요.  그걸 Detox라 하지요.  안에 더러운 것이 있으면, 좋은 것 넣어도 더러운 것이 되어버려요.  안이 막혀있으면, 좋은 것 넣어줘도 그걸 흡수하지 못해요.  속이 먼저 청소가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줘도 자기 것으로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자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왕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서, 왕 앞에서 애원하니까, 왕이 그의 빚을 탕감해 줍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그가 집에 가다가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 빌린 동료를 만납니다.  그에게 빚을 갚으라고 하면서, 자기에게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는 그를 감옥에 가둡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려면 화폐를 이해해야 합니다.

  •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삭입니다.
  • 한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입니다. 데나리온의 6000배.
  • 한 데나리온은 최저 임금제를 생각해보면 약 오만원 정도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일백 데나리온은 500만원 정도
  • 일만 달란트는 약 3조원 정도의 돈입니다.

왕이 내 빚 3조원 빚을 탕감해줘요.  그 은혜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감격이 얼마나 큽니까?  그 때의 자유함이 얼마나 상쾌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그 3조원짜리 감격과 자유를 빼앗기는 시점이 있어요.  언제입니까? 자기에게 500만원 빚진 사람 미워하고, 정죄하고, 고소할 때입니다.  사실은 감격을 잃은 것이 아니에요. 스스로 내 손에 있는 감격을 집어 던진거에요.  자유를 빼앗긴 것이 아니에요. 스스로 자유를 박탈해 버린 것이에요.

그 장면을 보면 500만원 빚진 자를 만날 때, 그 사람 멱살을 잡고 돈 갚으라고 해요. 그리고 감옥에 가두어요.  이거 너무 나무라지는 맙시다. 그 정도까지 행동할 때에는,이유가 있겠지요.  돈 빌려간 사람도 아마 대게 못되게 행동했을 거에요.  그를 용서하고, 채무를 탕감해 주는 것 결코 쉽지 않을 것이에요.  그러나 경제적으로 이득을 따져보세요.  500만원짜리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3조원짜리 감동과 자유를 잃어요.  차라리 용서하고, 나에게 준 은혜를 누리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자의 행동입니까?

이것을 일반적인 관계에 적용해 봅니다.  나에게 해를 끼치고, 사과하거나 변상하려 하지 않고, 뻔뻔하게 있는 사람들 보면 생각만 해도 분이 나요.  그러나, 그 분함을 해소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무한대의 은혜를 내 것으로 누리지 못해요.

현실적인 차원에서도 생각해 봐야 해요

잠21:19 다투며 성내는 아내와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

집이 아무리 좋으면 무엇합니까? 그 집안에 같이 있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그 집이 지옥이지요.  내게 아무리 좋은 것들이 주어져도, 내 가슴이 답답하면, 결코 행복한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봐요.  당장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지금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해요. 또 역으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셨어요.  집에 가면서 차 안에서 다퉜어요.  하나님 주신 은혜를 다 쏟아버리고 말게 되어요.  기도도 마찬가지에요. 직장 상사에 대한 마음을 풀지 않으면, 기도도 되지가 않아요.   눈 감고 앉으면 하나님이 아니라 미워하는 사람만 눈 앞에 아른아른 할 꺼에요.  내 마음에 쓴 뿌리가 남아있다면, 과거에 상처를 해결하지 않으면, 성령 충만함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백년전에 평양 대부흥 운동을 주신 하나님: 그 시작점이 회개와 용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디 선교사가 집회를 인도하면서, 자신의 백인 우월감, 학문적 우월감, 동료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을 미워하였던 것들을 공개적으로 회개할 때, 강한 성령의 역사.  그리고, 그 곳에 참석한 사람들도 그 회개와 용서의 일에 참여한다.  그러면서 부흥의 불길이 퍼집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타적 행위로 생각해요.  손해본다 생각해요.  그러나 사실은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에요. 나를 위해서라도 용서해야만 해요.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1: 용서와 신뢰가 다름을 알아라

용서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두가지 조언을 드립니다.

첫째는, 용서와 신뢰의 회복은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것을 아세요.

용서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용서와 신용을 부여하는 것을 동일시 해서 그래요.  용서하면 관계가 한꺼번에 회복되야 된다 생각하게 때문이에요.  아니에요. 용서는 빚을 -에서 0로 돌려주는 것이고, 신뢰는 그 때부터 다시 +로 쌓아가는 것이에요.  릭 워렌 목사님 말씀하십니다. 용서는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에요.  신용은 내 노력으로 쌓아가는 것이에요.   나에게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한다고 해서, 그에게 신뢰를 다시 다 부여하는 것이 아니에요. 용서한다고, 그 사람에게 신뢰를 다시 다 줘야한다는 것은 미련한 일이에요.  용서는 그에게 신뢰를 다시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에요.

둘째: 종말론적 관점

지난 화요일에 햇살사회복회를 다녀왔습니다.  갈 때마다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배 가운데 특별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  그곳에서 설교할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생각이 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그리고 또 햇살사회복지회와 같이 삶을 마감하고 계신 분들을 상대하면서, 한가지 배운 것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도 있습니다.  특별히 지난 여름이 덥지 않았는가? 노인들 그러면 환절기 때 돌아가시는 분들 계신다.

그러니 만나면, 그분께 해야할 말, 또 같이 해야할 것은 반드시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것이 영원한 삶과 관련된 것이라면 반드시 해야하겠습니다.  이분들 예수 믿는 영접 기도 다시 한번 했어요.  지금까지는 하나님과 상관 없이 살았고, 가족에게 부끄러운 삶을 살았고, 가까운 이웃과도 경쟁하고, 시기하고 다툰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인생을 마감하며, 영원한 삶으로 나가는 관점에서 지금 나의 삶을 보고 이제는 하나님과 이웃과 화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화목하게 해 주시는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셋째: 용서 받음에 집중하라

셋째로는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로 내 관심을 집중해야 해요

용서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있어요..  “이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은 도움 안 되요.  반대로 “이 사람을 용서해야만 하는데” 그것도 도움이 안 되요.

시선을 들어 하늘을 봐야만 해요.  나에게 주신 큰 은혜의 감격을 붙잡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리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해요.

내가 은혜의 강물이 넘쳐 흐르는 강에 배를 타고 가면, 밑바닦에 돌이 있어도 거뜬히 넘어갑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용서의 감격을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것을 충만하게 주시며, 그럴 때 내게 용서할 수 있는 능력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한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 4. 간구. 일용할 양식

2015-08-23 주일
마태복음 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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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좋은 일, 화목 된 가정, 안정된 환경, 풍성한 노년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행복이라는 것은 우리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행복이라는 단어 보다는 “복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

시편 128을 보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복 네 가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참으로 마음에 와 닿아서, 한번 소개해 봅니다.  우리 시편을 읽어보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28:1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명에 따라 사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나 복을 받는다.
128:2 네 손으로 일한 만큼 네가 먹으니, 이것이 복이요, 은혜이다.
128: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와 같고, 네 상에 둘러앉은 네 아이들은 올리브 나무의 묘목과도 같다.
128:4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복을 받는다.
128:5 주님께서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빈다. 평생토록 너는, 예루살렘이 받은 은총을 보면서 살게 될 것이다.
128:6 아들딸 손자손녀 보면서 오래오래 살 것이다. 이스라엘에 평화가 깃들기를!

여기서 네 가지 복이 무엇입니까?

  • 첫째: 좋은 일: 요즘 같은 때 내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또 일을 하고도 그 수고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일한 것의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면 감사한 것이다.
  • 둘째, 화목한 가정: 아는 친구 하나가 인터넷에 자기와 자기 아이들이 같이 앉아서 환하게 웃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렸어요. 그리고는 설명을 이렇게 써요.  “행복은 늘 가까이 있음을…”
    가정이 화목하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경험적으로 알지 않습니까?
  • 셋째, 안정된 환경: 내가 아무리 잘해도, 환경이 척박하면 얼마나 어려워요?  지금 대한민국이 떠들석한게 무엇입니까? 전쟁이라도 “꽝”하고 일어나면 그 동안 쌓아놓은 것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요.
  • 마지막으로, 풍성한 노년: 젊어서 아무리 잘나가도, 노년에 가서 건강을 잃던지, 쌓은 것을 빼앗기던지, 자손들에게 문제가 생긴다든지 하면, 괴롭거든요.  노년에 자식들이 번성하고, 자기 자리들을 잘 잡아가는 것을 보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좋은 일, 화목한 가정, 안정된 환경, 풍성한 노년: 살면 살수록, 이 네 가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 그런데, 좋은 일, 화목한 가정, 안정된 환경, 풍성한 노년을 “복”이라고 부르는 데 초점을 맞춰봐요.
  • 이것들은 한편으로는 이것은 “나의 책임”이에요. 공부를 하고, 기술을 쌓아야 해요. 부지런히 돌보고 가꿔야 해요.   지금부터 미래를 준비해야 해요.  그것이 없으면 안 되요.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주어지는 것”이에요. 실력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내가 실력이 있다고 이것들이 내 것이 됩니까?  열심히 일하는 것이 맞지만, 내가 열심히 한다고 일이 꼭 이루어지나요?  내가  준비한다고 하지만, 노년이 반드시 잘 준비됩니까?  아니에요.  복이 있어야 해요.
  •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필요한 자원이 주어져야 하고, 기회가 맞닿아야만 가능한 거에요.

Level 5 CEO

짐 콜린스가 쓴  Good to Great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라는 책이 있습니다.

  • 최소 15년동안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고도의 성장과 수익을 올린 기업들을 찾아서 연구를 했더니 중요한 결과가 나왔어요.
  • 그런 기업이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바뀌는 전환점에는 반드시 위대한 CEO가 있었다는 거에요.
  • 그럴 때 이 사람들은 Level 5 Leader라고 말해요. 가장 높은 수준의 지도자에요.
  • 오해하지 마세요. 그 바로 밑에 Level 4의 지도자가 있는데, 그들도  기업을 크게 성장시킨 사람들이에요.  그러나 Level 5의 지도자들과 같은 오랜 기간 동안 높은 성취를 내지는 못해요.

그럴 때 Level 5의 지도자의 특징을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 말합니다.

  • “지속적인 위대함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겸손함과 전문적인 의지의 역설적 혼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 한편으로는 이들은 비전을 향해, 기업을 세우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헌신된 사람들이에요. 탁월한 경영을 해요.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겸손한 사람이에요.
  • 그 겸손함의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은 성공한 것이 “내가 잘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팀이 좋았고, 당시의 상황이 좋았다고 말한다는 거에요.  정 설명이 안되면 “운이 좋았다”라고 말한답니다.  진심으로 “내가”라고 말하지 않고, “누구든지 거기서는 잘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 그들이 한결같이 진심으로, “결코 내가 실력이 있고, 내가 잘나서 그 일이 잘 됐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 그걸 성경적으로 말해볼까요?
  • 내가 열심히 살기는 했지만, 사실은 그 이상으로 내가 복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렀습니다.
    • 사람에 대한 복이 있었고, 시기를 잘 만나는 복이 있었고, 그 때 필요한 물질이 주어졌기에 가능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이걸 알아야 해요.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에요.  주어질 때 그것을 잘 타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그 복의 근원이다

시편기자가 하는 고백은 무엇입니까?  1절과 4절에 계속 반복되어 나와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이와 같이 복을 받는다”라고 말합니다.

가끔씩 사람들이 자기 일하는 것 때문에 기도 부탁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럼 저는 늘 그분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있어요.  “주님 그 분에게 요셉의 축복을 주십시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일을 할 때, 성경이 이렇게 말해요

 창39:3 그 주인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창39:4 주인은, 요셉이 눈에 들어서, 그를 심복으로 삼고, 집안 일과 재산을 모두 요셉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였다.

  • 나로 일할 수 있게 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 그 일한 것의 정당한 열매를 풍성하게 거둘 수 있게 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또한 나도 성실하게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

찬송가가 하나 생각나요.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앞에 가사가 나오는데 한번 불러봅시다.

  1.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길 없도다
    천사들의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구속하신 그사랑을 항상 찬송 합니다
  1. 주의 크신 도움받아 이때까지 왔으니
    이와 같이 천국에도 이르기를 바라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에 빠진 우리를
    에수 구원하시려고 보혈흘려 주셨네
  2. 주의 귀한 은혜받고 일생 빚진 자되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맘은 연약하여 범죄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아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이 말씀이 믿어지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줄 모르세요?  내가 구하는 주제를 놓고, 주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세요.  기도하고 또 기도하세요.  응답받을 때까지.

특별히 오늘 주제가 무엇입니까?

  •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 8절에서 예수님 말씀하세요…

마6:8 ….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

이것을 알고 구하는 사람과, 모르고 구하는 사람은 천지 차이가 나요.

요한 웨슬리가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사람들이며, 전적으로 확신을 갖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께 알려드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마치 그 분이 우리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 분인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도의 목적은 우리 자신에게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 필요에 대한 감각을 우리 마음의 더 깊은 곳에서 고치려는 것입니다.  그분을 우리가 지속적으로 의지하는 감각을 고치기 위함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기도로 움직이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가 구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히려 우리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준비한 선한 것들을 기꺼이 받을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 기도는 하나님이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 지 알려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가 필요한 것을 아세요.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이 어느 분이신지를 알게 되요.
  • 기도는 하나님이 고약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안 주려 하기 때문에, 계속 때를 쓰거나 설득해야 하는 것도 아닌 거에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세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응답 받을 만한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이에요.
  • 구체적으로 세가지 변화를 말할 수 있어요.

1.     확신

첫째는, 기도 가운데 확신이 생겨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하여 확신을 가져요

눅 11: 11 너희 가운데 아버지가 된 사람으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12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어느 유명한 목사님 말씀하세요.  기도하다 마음이 평안해지면, 본인은 응답 받았다는 거에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되고,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게 되요.  불안이 확신으로, 초조하고 다급함이 평화로 변하게 되요

2. 관점의 변화

둘째는 관점이 변해요.  많은 경우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에요.  같은 상황을 놓고 어떤 사람은 호둘갑을 떨지만, 어떤 사람은 평안하거든요.  기도는 내 관점이 상황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바꿔줘요

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그 사람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내 명예를 훼손했어요. 그 때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손해나 명예 회손 자체가 아니에요. 사실은, 내 재물이 내 중심에 있어서 그래요. 혹은 내 명예가 가장 중요해서 그런거에요.  그러니 용서를 하지 못하는 거에요. 기도하면서, 중심이 나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져요. 물질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고, 내 명예보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면, 비로서 그를 용서할 수 있고, 분노에서 자유해 질 수 있어요.

이 모든 상황 위에 하나님이 계세요.  그 분이 세상을 다스리세요. 그럴 때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간이 바뀌어요. 그 때부터 문제가 해결됩니다.

3. 겸손함

셋번째로 변하는 것은 겸손함이에요.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을 믿어요. 그러기에, 이 모든 상황에서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고 기다리게 되요.

Richard Sibbs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기도 응답의 등가 원리라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데요.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 구하는 것의 응답으로, 엉뚱한 것을 주실 때가 있어요. 그러나 여전히 동등하게 소중한 것으로 우리에게 주세요.

예수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난 적이 몇 번 있어요.  제자들이,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무슨 말이에요? “풍랑을 멈추게 해 주세요.” 기도한 거에요.  예수님이 어쩔 때는, 풍랑을 잠잠하게 해 주세요.  그런데, 또 다른 때에는, 풍랑을 잠잠하게 해 주지 않았어요. 대신에 베드로를 물 위로 걷게 해 주셨어요.

사도 바울이 몸에 가시가 있었어요.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몰라요. 어떤 사람은 눈이 잘 안 보이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간질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이론도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바울이 괴로와서 3번이나 없애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대로 응답을 안 하세요. 대신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니라” 말씀하세요.  그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게 하세요. 그의 가난함을 통해 하나님의 부유함이 드러나게 하세요.  그래서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져요.

그걸 경험하고 바울이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에게,

무엇을 주실 지는, 우리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판단해서 주시는 것이에요.  그게 베스트에요.  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그것을 믿고 주시는 것을 감사로 받는 것이 필요해요.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그 마음을 주세요.

결론

여러분 우리 기도합시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말했답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한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좋아하는 일은 꼭 하시잖아요.!  그러니 기도합시다. 기도로 인해 하나님이 복의 근원 되어 주실 것이고, 또한 내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기도문: 3. 순종-그 나라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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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시온이를 기억하십니까? 엄마를 제가 잘 압니다. 청년 때 신앙생활 잘 하다가, 시집을 갔습니다. 그리고 쌍둥이를 임신합니다. 그런데 그만 7개월째에 그 중에 하나가 유산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가 가까스로 태어납니다. 그것이 시온이 입니다.

엄마의 허락을 받고 사진을 올립니다. 막 태어났을 때의 사진입니다. (탯줄이 아직 붙어있습니다.) 7개월째에 태어나면 폐가 완성이 되지 않았기에 인공 호흡기를 꼽아야 합니다. 간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피에 독소가 제거가 되지 않았습니다.이제 이 아이가 살아날 수 있을지 그렇지 못할지 아무도 장담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아이를 살려달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기도 편지를 매주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편지를 받아 주변 분들에게 돌리면서, 아이를 위해 함께 기도할 것을 호소했고,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 아이가 살아났고, 점점 건강해 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초의 사진입니다. 많이 건강해졌죠? 이 사진의 제목은 “나는 남자다"라고 합니다.

최근에 시온이는 아빠의 장난에 신나게 웃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온이는 조산아이고, 고도 난청이기에 최근까지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어요. 그러나 우리 교회를 통해 연결된 어느 교수님의 도움을 받고 이 일이 가능해 집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우리가 기도하였고,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기도와 그 응답을 무엇이라 할까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미숙아의 훈련: 아기의 뜻이 아니라, 부모의 뜻

이 시온이라는 아이의 치료를 보니 배울 것이 많습니다. 치료 중에 하나가 뭔지 아십니까? 간단해요. 이제 태어난 지 4달 정도 된 아이에요. 편하게 등을 바닥에 두고 누워있는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엎어서 배를 바닥에 대고 눕게 하는 거에요. 그러면 아이가 고개를 들어야 하잖아요. 팔로 자기 몸을 들어 올려야 하잖아요. 거기다 뒤집기까지 시켜요. 그게 힘드니까, 아이가 막 울어요. 자기를 똑바로 놓으라고 때를 쓰는 거에요.

아기가 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이가 힘들어서 우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거에요. 맞는 말이죠. 불편하니까 편하고 싶은 거에요. 그러나 좀더 생각해보면, 어쩌면 아이는 부모가 나에게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해서 때를 쓰는 것일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질문합니다
• 이 아이가 겪고 있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까? 맞아요. 그래야 이 아이가 건강하고 정상적인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 아이가 원하는 데로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까? 아니에요. 그러면 안되요.
• 아이가 이해를 못한다고, 그 아이를 이해시키려고 할 것도 아니에요.
• 힘들고 불편하지만, 겪어야 할 것을 겪게 해야해요

그걸 한마디로 아이의 뜻이 아니라, 부모의 뜻이 이루어져야 해요.

그렇다면 이제 동일한 질문을 여러분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은 반드시 나에게 필요합니까?
• 그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데로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까?
• 이 사건을 내가 이해를 못한다고, 꼭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까?
• 힘들고 불편하지만, 겪어야 할 것을 겪어야만 하겠습니까?

질문을 바꿔볼까요? 사건가운데 내 뜻이 꼭 이루어져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성공회 대학 교수인 김찬호 교수가 “위험을 다스리는 사회”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말을 합니다. 우리가 위험이라고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있잖아요. 그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말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가 안 되는 거에요. 예측이 되지 않아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것이 어떤 결과를, 특별히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지 전문가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통제가 되지 않아서: 메르스를 생각해 보세요. 이 정도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은 거에요

나에게 사건이 일어나요

  •  그것을 우연이라 말하는 사람은: 원망하며 술을 마실 거에요.
  •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포자기하고 다시 일어날 노력을 하지 않아요.
  • 인과응보라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정죄하거나, 주변 사람을 정죄할 것이에요. 혹은 도덕주의에 빠질 거에요.
  • 그러나, 나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가 계시고, 그 분이 선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믿고 말할 수 있는 자. 그는 희망을 가지며, 희망을 전달할 것입니다.

로봇다리 김세진 군

로봇다리 김세진 군을 아십니까? 선천성 무형장애가 있어서, 태어날 때 두 다리가 완성이 안된 채로 태어납니다. 그리고는 버려져서 어린이 집에서 자라요. 그 어린이 집에 자원 봉사하러 갔던 양정숙 씨가 첫눈에 반해서, 김세진 군의 표현대로 “가슴으로 이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가 다리가 없으니까 어릴 때 팔로 기어 다녀요. 그 아이를 걷게 해 주려고 엄마가 업고 병원에 다닙니다. 그러면서 하루는 “세진아, 엄마가 반드시 너를 걷게 할 꺼야”라고 말하더랍니다. 김세진 군이 말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아. 이제 걸을 수 있겠구나.”  그런데 그것이 사실은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것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의족을 하기 위해 4살부터 시작해서 6번의 뼈를 깎는 수술을 합니다. 그야말로 뼈를 깎는 것입니다.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끝납니까? 아니에요. 의족을 했으니 이제는 일어나 걷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그 엄마가, 마루에 이불을 깔고, 사정없이 아이를 밀어서 넘어뜨립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일어나라.”

김세진 군이 그것을 통해서, 두 가지를 배웠다고 합니다.
첫째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배웁니다. 일어나서 걷는 것에 다시 도전합니다.
또 하나는 “도움이 필요할 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배웁니다.

이 김세진 군이 이제는 17세입니다. 그는 장애인 수영선수입니다. 처음에는 재활치료에 좋아서 시작했는데, 그것이 나중에는 선수까지 되게 됩니다. 그 때도 엄마가 수영을 못하는 아이를 번쩍 들어 물에다 집어 던지더래요. 거기서 살아남으려 하다보니, 수영을 배우고, 그러다 보니 선수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죠? 가만히 보니, 젊어서 고생은 이미 늦었어요. 어릴 때 고생 해야 해요. 세진 군이 어릴 때 이런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것을 배울 때, 그는 무서운 체력 뿐 아니라 정신력을 소유한 사람이 됩니다. 수영 선수생활을 하면서 메달이 150개, 그 중에 금 매달이 120개라 합니다. 15세에 뉴욕 허드슨 강에서 10km 수영하는 수영 마라톤에 참가 . 300명 중 150명이 elite 수영 선수. 그 중에 전체 15위로 들어옵니다. 한국 최초이고, 장애인으로서는 1등이라고 합니다.

이 어머니가, 걷지 못하고 간신히 서있는 아이를 넘어 뜨리고, 수영을 못하는 아이를 물에다 던져 넣은 것을 무엇이라 말합니까? 사랑이에요.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이에요.

그 뜻이 이루어 질 때 세진군의 두 다리는 꿈과 희망을 전달하는 메개체가 됩니다. 희망을 전달하는 도구가 됩니다.

철들은 신앙

신앙도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이 있고, 철들은 신앙이 있어요. 신앙도 철 들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를 사정없이 밀어서 넘어뜨리는 일을 겪었어요. 왜 이 일이 일어나는 지 이해도 되지 않고, 상황이 통제가 되지도 않고, 장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도 되지 않아요. 그러나 “아버지가 날 사랑해서 이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고백하는 것이 믿음이에요. 믿음이 있기에 나를 사정없이 물에다 집어 던지는 하나님의 손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오로지 믿음과 희망에서 나를 맡기고 의탁할 수 있어요. 그것을 순종 영어로 submission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을 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건 철든 사람, 믿고 순종하겠다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것은 “이 일이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해서 주신 일입니다.”라고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세울 때 하나님은 그를 철저히 넘어뜨리고, 일어나도록 하십니다.
• 하나님은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대신으로 만들어, 가뭄에서 세상을 구하게 하시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요셉은 자신의 이복 형들의 손에 팔려 이집트에서 노예와 죄수로 13년을 지내야 했어요. 거기서 이집트에 대해 배우고, 일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섭리를 배워요.
• 하나님은 모세를 위대한 영적-정치적 지도자로 삼고, 그를 통해 자기 동족을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게 하는 꿈이 있었어요. 그것을 위해 모세를 광야에서 40년동안 목동으로 살게 해요. 거기서 그에게 온유함을 가르치고, 고집스러운 양 때를 인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해요.
•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실현하려고 했어요. 그것을 위해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의 질투를 피해, 도망자의 생활을 하며 동굴에서 살아야만 했다. 거기서 정의와 의로움에 대해 가르쳐요.

하나님이 나에게 가지고 계신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이 있기에, 지금 내가 겪는 일을 겪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이 있어요. 이 모든 일을 통해, 나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선한 일을 이루실 것이고, 또한 나를 통해 내 이웃에게 선한 일을 이룰 것입니다. 그럼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라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사실은 그것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만 그 일을 당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그 일을 겪게 만드십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를 생각합니다. 이제 좀 있으면 잡혀서, 억울하게 재판당하고, 매질 당하고, 그리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 때가 다가오는 것을 아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기도하신다.
기도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우리 말로 하면, “아버지, 나는 십자가를 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믿고 신뢰하니, 결과는 아버지께 맞기고, 이 길을 가겠습니다.”

하나님게 자신을 의탁하고 순종할 때,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집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인류를 구원합니다.

그러기에 또한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요한 웨슬리의 기도가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뜻하시는 곳에 나를 놓으시고, 당신이 뜻하시는 신분을 나에게 주옵소서. 나로 행하게 하시고, 나로 고통받게 하옵소서. 나를 고용하셔서 당신을 위해 있게 하시고, 나를 따로 때어 당신을 위해 있게 하옵소서. … 나로 가득채우시기도 하시고, 나를 텅비게도 하옵소서. 나로 모든 것을 가지게도 하옵시고, 나로 아무것도 없게 하옵소서. 나는 자유롭게 그리고 마음을 다해 모든 것을 내어드리니,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대로 마음대로 사용하옵소서.
오 영광스럽고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이시여, 이제 당신은 나의 것이며,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내가 이 땅에서 맺은 언약이, 하늘에서 확증되게 하소서. 아멘.

주기도문: 찬미 (동경).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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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주부터 주기도문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에 대해 배우도록 합니다

그걸 제가 화면에 뭐라고 썼나요?

  • 찬미. 영어로 adoration.
  • 괄호로 뭐라고 썼나요? (동경)

찬미가 무엇일까요?

예전에 유행가가 있었어요.  아마도 여러분도 아실꺼에요.  가사를 아시는 분은 같이 불러주세요.

  • “한번 보고 두번보고 …” (그 다음에 “자꾸만 보고 싶네“)
  • “아름다운 그 모습을“ “자꾸만 보고 싶네“
  • “그 누구나 한번 보면“ “자꾸만 보고 있네"

왜?  자꾸만 눈이가요?

  • 미인이기 때문에
  •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게 바로 찬미에요.

찬미에 대해 네 가지를 생각하게 되요

첫째, 사람은 찬미할 대상을 원해요.

  • 아름다운 것, 또 뛰어난 것을 보면, (1) 기분이 좋아져요. (2) 그리고 경이감에 빠져요.
  • 그건 본능적인 거에요
  • Victor Frankle.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그는 수용소에 오랫동안 갇혔습니다.  몸이 망가졌어요: 많이 혹사당하고 제대로 먹지 못해서 제 모습이 아니에요.  정신도 무너졌어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수도 없이 모욕을 받아요. 그리고 수 많은 비인간적인 죽음을 목격하거나, 그것에 대해 들어요.   그 때 마음이 무감각해지는 것을 고백합니다.
  • 그런데, 하루는 밖에 숲에서 노역을 하고 있는데, 동료가 급하게 오더니 자기를 어디로 끌고 가더래요.  어딜 가나 하고 가서 봤더니, 해가 산을 넘어 지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장관이더래요.  둘이서 말을 잊고 한참을 쳐다보는 것을 말해요.  아름다움과 놀라움이라는 것 그건 먹고 살만해야만 되는 게 아니에요. 만일 그렇다면 배고픈 예술가는 없어요.  아니에요 영혼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에요.

둘째, 경이로움을 볼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말과 행동으로 찬미하게 되어있어요.

  • 예쁜 아기가 있어요. 여인들 그걸 보면 어떻게 반응해요?
  • “어~ 너무 예쁘다. 어~ 무슨 애가 이렇게 코가 높아? 애기가 앞통수, 뒷통수가 예술이네.”
  • (1) 그것은 본능적인 거에요.
  • (2) 칭찬, 긍정. 그리고 존중과 존경을 주는 것이에요.

이 세상에 찬미로 가득해요.

  • 할아버지들 모임에 대해 들었어요. 손주에 대해 서로 자랑해서, 자랑하려면 만원씩 돈 내야 된다고 약속을 했데요.
  • 연인들끼리 서로 찬미해요.
  • 자전거 타시는 분은 그 시골길을 칭찬해요
  • 야구 팬은 자기 팀을 응원해요
  • 날씨를, 좋은 와인을, 주부는 예쁜 그릇을, 관객은 배우를, 자동차를, 대학교를, 애국자는 나라를, 아름다운 꽃을, 학자나 정치가를

중요한 것이 있어요.  겸손한 사람일 수록, 가장 균형 잡히고 능력있는 사람일 수록 상대방을 칭찬하고 감탄하고 높여줘요.

셋째, 찬미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사람도 끌여들여요

  •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는 거에요? 같이 먹는 거에요? “ 같이“  아니 왜 맛있으면 혼자 먹지 그걸 나눠 먹죠?  “맛있지 않냐?” 그러면, 상대방도 “어 그지. 진짜 맛있다.” 맞장구를 쪄춰야 더 맛있는 거에요.  참된 찬미의 대상을 발견하면, 그것의 전도사가 되게 되어있어요.

마지막으로, 행복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 건강한 찬미의 대상이 많은 사람입니다.
  • 생각해 보세요.  아침에 눈을 뜨고 가족을 보는 순간에 칭찬이 입에서 나오는 사람과, 짜증이 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요?  음식을 먹으면서, 그 맛과, 향과, 모양을 보면서 칭찬하는 사람이 행복해요? 아니면 죽지 못해서 먹는 사람이 행복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칭찬해 줄만한 사람이 있는 사람이 행복해요? 아니면 직장에 마주치기도 싫은 사람이 있는 게 행복해요?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찬미할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계십니까?

그러므로 다시 주기도문을 돌아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그걸 다른 말로 찬미라고 하는 거에요.  하나님을 정말로 만나면,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영광과 위험과 아름다움과 사랑에 푹 빠져들게 되거든요.

시편 96:6 주님 앞에는 위엄과 영광이 있고, 주님의 성소에는 권능과 아름다움이 있다.

여러분 안구 정화이라는 말 아세요?

  • “눈 버렸다"라는 말은 아시죠? 추한 것, 하잘것 없는 것을 보면 그 표현을 써요.
  • 안구 정화는? 보통은 여신급의 여인을 볼 때 하는 말이에요.
  •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십시오.”의 뜻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보고, 그 권능과 아름다움을 보니 내 안구가 참되게 정화되었다는 뜻이에요. 그 경이로움을 맛보면,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요  하나님 아버지를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습니다.

그걸 시편기자가 이렇게 표현해요.

시84:1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시84:2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 부릅니다.

이 시를 쓴 사람을 놓고 생각을 해봐요.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과 아름다움을 봤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좋던지, 그것을 사모한데요.  행복한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예배가 즐거웠을까요?

예배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나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에요.  신비롭게도, 그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드러날 때, 나에게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몰려들어요. 그러므로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실은 맨 앞에 하나님을 찬미하는 거에요.

많은 분들이 예배를 한정식 A세트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예배의 앞부분은 애피타이저에요.  메인 코스를 “설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좀 늦어도 메인코스만 먹으면 된다라고 생각해요.  아니에요. 틀렸어요. 맨 앞에 시작이 메인 코스에요.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얼굴을 환하게 비추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그 분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에요.

우리가 선포하잖아요

영원히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모든 은총을 기억하면서

이 시간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나이다.

이 얼마나 소중한 찬송입니까!  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입니까!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러면서 또 하나를 생각해요.  예배가 소중하고, 그리고 기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경험하고, 그래서 내 입에서 찬미가 흘러나오는 것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제 일순위를 두세요.  그것이 바로 “거룩하게 하는 것이에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Q: 사람에게 제일순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답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크고 변하지 않는 행복을 주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 말할 것이에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아름답고 위엄이 있는 것들을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것들을 보며, 감탄하고, 찬미하고, 그러면서 행복함을 알게 해 주셨어요.

그러나, 그것들은 가장 큰 것도 아니고, 영원한 것도 아니다. 꽃은 시들어요.  여인의 아름다움도 사그라져요.  며칠 전에 집에서 TV를 틀었더니, 우연히 돌아가신 고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가 나와서 들었어요.  그분이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가지고 설교를 하세요.  이 세상에서 부자였던 사람이 죽었어요. 자기는 이 땅에서처럼 죽어서도 천국에 가서 잘 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죽어보니, 자기는 지옥에 가서 고통을 받게 되었어요.  왜 그럴까요? 돈은 죽고 난 다음에는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이에요.

사람마다, “이것만 있으면 내가 행복할 것이다”라구 구하는 것이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죽음 너머로 가져갈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썩어 없어질 것이에요.  하나님은 가장 영화로우시고, 가장 아름다운 존재이시고, 영원히 계신 분이세요.

하나님이 이 땅의 것들을 주신 것은 한편으로는 이 땅에서 그것들을 누리며 행복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은 그림자에 불가해요. 참된 실체는영원한 하나님과 그 분의 나라에요.  그러므로 이 땅의 것들을 주신 것은 그것을 통해,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사모하도록 하신 것이에요.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정말로 주셧다는 거에요.  가장 구체적으로는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어요.  사도 요한이 말하잖아요. “우리가 그를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렇다면,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해야할 일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세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 후에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그 영광중에서 우리의 제사장 역할을 해 주세요.  그러므로 그를 믿을 때 나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존귀와 아름다움을 보며,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우리에게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행복은 빼앗기지 않을 것이에요.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말해요

롬8: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롬8: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행복하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영원토록 빼앗기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해 주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할 수 있어요.  답을 봅시다.

A: 사람의 제일순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그것이 될 때에 사실은 우리는 영원히 빼앗기지 않고, 변하지 않는 행복을 얻는 것이에요

이것의 첫번째 적용점은 예배입니다.  대단히 깊은 이야기에요.  그러나 간단히만 말할께요.  하나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고 말하면, 하나님 밖에 하나님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다고 말함으로, 하나님을 하나님 아니라고 말하는 거에요.  하나님보다 더 즐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 밖에 하나님보다 더 큰 기쁨의 근원이 있다고 말함으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는 것이에요.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는 순간, 하나님 아닌 것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함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우상으로 만든 것이에요.

이 중에 예배를 좋아하지 않는 분은 없을 꺼에요.  그러나 그것이 예배에 대한 헌신과는 다른 거에요.  그러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 여러분은 가장 좋은 것을 빼앗기는 사람이에요.  예배를 가장 중요하고, 가장 소중하고, 가장 우선순위를 두는 결정이 필요해요.  영원토록 할 것이니까.  일상에서 예배를 드리며, 주일에 성도가 함게 모여 드리는 예배가 중요해요.

또 하나 적용점이 있습니다. 기도의 순서 입니다.  기도할 때, 제일먼저 해야할 것은 누구에게 기도하는 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에요: 누구에게 하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여기까지는 잘 한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보통은 바로 “간구"로 뛰어들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찬미“ 부터 하라고 해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하나님”이 될 때야,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가 올바로 잡히기 때문입니다.

간구: 간구라는 것은 나의 세상에 대한 관점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라는 것은 내가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찬미가 간구 앞서지 않으면, 나는 이 세상에서  나의 진짜 필요가 무엇인지에 대해 혼란을 갖게 되요.

가만지 자신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내가 이것만 있으면 만족할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험에 합격하는 것입니까? 물질입니까?  로멘스 입니까?  이성에게 매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이런 것들은 그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지만, 내가 하나님보다 더 필요하다고 하는 순간 나에게 우상이 된다.  그게 내 우상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기도의 일관성을 통해 알 수 있다.  그것이 내 우상이라면, 나는 그것들이 없으면 열심히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있으면 기도를 멈출 것이다.  그리고 제가 예언합니다. 그것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나를 파괴할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때에, 나는 무엇을 구해야할지를 정확히 알고, 온전한 기도와 그 속에서의 평화와 만족을 누리게 된다.

두번째로 참회의 고백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관점입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은 내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 없다면,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도 나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내 말고 딴 여자랑 바람 핀 남자가 있습니다.  아내가 그를 받아들였고, 또한 목사님과 상담하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는 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알고 보니, 그는 성에 대해 보수적 성향의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또 자식을 향한 기대가 너무 큰 부모 밑에서 자란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높이 생각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음에도, 여전히 부모님을 실망시킨 것에 대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높인 것을, 하나님 밑으로 내려서게 하지 않을 때까지, 그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높이며 거룩히 여길 때에만, 그는 참된 용서와 자유를 경험할 것이다.

주기도문: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Father-daughter duo in Chatpal, Kashmir, India

Father-daughter duo in Chatpal, Kashmir, India” by sandeepachetan.com // CC by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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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사님이 새로 온 성도의 가정을 심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가 질문을 하더답니다.  “교회를 다니는데, 신앙이 성장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죠?”  그 목사님이 속으로 생각이 들더래요. “아니 당신 신앙에 대해 나에게 물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치만 그렇게 말하면 안되니까, 물었데요. 하루에 기도는 얼마나 하십니까?  그 분이, “식기도 빼고는 안해요”하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대답을 합니다. “기도를 안 하니 신앙이 성장하지 않지요. 기도를 해야지요.” 그랬더니 이 분이 말씀하더래요. “저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요.”  목사님이 찬송가 책을 가져오라 하시고 뒤에 보면 교독문이 있으니 그거 읽으면서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 성도가 그 말씀을 그대로 지켜서 기도를 매일 하면서, 나중에는 기도 대장이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도에 성공하였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즐겨야 할 것은 기도이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가지고,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우도록 합니다.

이방 사람들 vs. 기독교인

기독교인의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를 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오늘 본문에서 대조가 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봅니다. 바로 이방사람들과 기독교인입니다. 이방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 상황에 맞춰 보면, 결국 믿지 않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차이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는 보통은 이방인.. 믿지 않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고, 기독교인들은 기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지 앟습니다.

  • 이방 사람들 기도할 뿐 아니라, “말은 많이 한다"고 말해요. 기도를 많이 하는 거에요.
  • 그리고 기독교인도 기도해요. 어쩌면, 비기독교인 중에 기독교인들 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는 사람도 많아요.
  • 다른 말로 기도는 기독교만의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방인들과 기독교인들의 기도는 비슷한 것인가요?

  • 그렇지 않습니다. 그 기도는 전혀 다른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이 “너희는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 예수님은 그 차이를 “하나님 너희 아버지"라는 말로 말씀하십니다.
  • 그러면서,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나면 질문이 생깁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 대답은 “아닙니다” 입니다.  바로 그 다음 줄에 뭐라 말씀하세요?

  •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기도하지 말라는 거에요 기도하라는 거에요? 기도하라는 거에요
  • 또 몇 줄 아래 가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주시고“ 필요한 것 구하라는 거에요? 아니면 구할 필요가 없다는 거에요? 필요한 것 있으면 구하라는 거에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가?

  • 예수님은 기도할까 안할까에 대해서 대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 “어떻게 기도할까?”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Tim Keller가 이것을 잘 요약해 준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도 기도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 생각하며, 교회에 속했으며, “우리 아버지”를 암송하지만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에게 나가지 않는다.  그들은 이방인들의 기도를 한다.  사실, 그들은, 어떤 면에서, 이방인처럼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열쇠는 당신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는 원인이 무엇인가?이다.  그것이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교회에 다니고, 바쁘고,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 교회에서 열심을 내는 것, 그르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 믿지 않는 사람의 이유와, 믿는 자의 이유가 다른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하숙생과 가족이라는 패러다임을 가지고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재작년에 신촌의 모 대학 앞에서 1994년의 하숙집에서 벌어진 일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히트를 쳤어요.  어느 부부가 집을 큰 걸 사서 자기 대학생 자녀들과 함께 살 뿐 아니라 하숙을 받아서 자식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대학생들과 함께 집에 살았습니다.  집에 대학생들이 우굴거리는 거에요.

평소에는 내 자식들이나 하숙치는 아이들이나, 나이도 비슷하고, 같은 식탁에서 같은 밥 먹어요.  그러나,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어요.

하숙생: 괄호치고 비즈니스 관계라고 했는데,

  • 그들이 내 집에서 사는 이유는 나와 계약을 했기 때문이에요.
  • 그리고 내 집에 계속 머물고, 내 식탁에서 밥을 먹으려면: (1) 매달 하숙비를 내야 해요 다른 말로 내가 무엇인가 제공할 것이 있는 거에요. (2) 그 뿐 아니라 내 집에서 못된 짓 하거나 사고치면 안되요.  기본적으로 규칙을 지켜야 해요.  다른 말로 퍼포먼스를 내야만 집 주인에게 서비스를 받을 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 다른 말로 이건 조건적인 거에요.

그러나 내 친 자식들은 어때요?

  • 그들이 내 집에 사는 이유는 나에게 하숙비를 내서도 아니에요. (오히려 돈을 받아가겟죠)
  • 그들이 공부를 잘해서도 아니에요.
  • 착해서도 아니에요. 어쩌면 가장 말 안 들어요.
  • 그러나 단지 내 자식이라는 이유 때문에, 내가 먹이고 입히고, 내 집에서 재우는 거에요.
  • 언약이라 해요. 먼저 관계가 성립이 되요.
  • 그러면 공부 못해도 되나요? 아니에요. 관계가 있으니까, 내 새끼니까,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거에요
  • 말안듯고 못되게 살아도 되나요?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나와 헌신한 관계니까, 바르게 살고 친밀감을 나눠야 하는 거에요.

이것을 이해해야 해요.

  • 오늘 예수님 기도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쳐줄 때, 주기도문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라고 하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하숙생으로 기도하라는 거에요? 가족으로 기도하라는 거에요?
  • 기도를 많이 하면, 지극 정성으로 하면, 하나님게서 응답하신다는 것은 하숙생의 자세인 거에요.
  • 내 아버지니까,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거에요.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것을 아니까, 기도를 열심히 정성을 다해 하는 거에요.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하실 때 “우리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할 때

  •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신 것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으로 택함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 “우리 왕”이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은 우리 왕이신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 친구라고 하지도 않으셨다: 친구는 비즈니스와 가족의 관계의 혼합형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어느 정도는 얼마나 잘 하느냐—performance–에 달려있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우리 하나님은 바로 “우리 아버지”입니다.

  • 주의할 것: “우리 아버지”는 가족 용어라는 것입니다.  왜? 가족은 현실에서는 그리 이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자매 간에, 말썽 피우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에, 그들과 계속 긴밀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 전히 서로의 삶에 투자하고, 여전히 공공의 목표를 위해 같이 갑니다.
  • 그래도 내 형제-자매입니다.  그래도 내 부모이고, 그래도 내 새끼인 것입니다.  그래도 내 남편-내 아내인 것입니다.
  • 족은 현실에서 낭만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그 어느 관계보다도 강력한 개념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명혹하게 하는 순간에,

  • 우리가 누구인가가 정확해 집니다.  요한복음 1:12절에 이러한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것이 예수 믿는 자의 본질인 것입니다.
  • 이방인에 대해 무엇이라 말해요? 그들은 기도를 계속 해요. 기도를 많이 해요.  그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 순서가 바뀌어야 해요. 기도를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 예수를 영접하고, 예수의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십니다.  그게 예수 믿는 것이다.

입양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입양하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세요. 그 중에 특별히 장애아이를 입양하시는 분들 계세요.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 아이를 놓고 생각해 봅니다. 그 아이가 잘나서 입양되는 것입니까? 아니거든요.  이유 없이, 조건 없이 입양되는 거에요.  입양은 아이가 주체가 아니에요. 아버지가 하는 거에요.  그리고 입양은 행동이나 본성이 바뀌는 것이 아니에요.  아이가 변하는 것은 우선 입양해 놓고, 그 아이를 사랑해주고 가르쳐 주면 변할 꺼에요.  그러나 본질적 변화는 그 아이의 위상이 변하는 것이고, 법적인 변화가 있는 거에요.

요한복음 17장에 예수님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사랑하신 것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입양한 아이에게 못하는 말이 있어요: “너 그 따위로 할꺼면 내 집에서 나가”라는 말은 할 수도 없는 것이고, 해서도 안됩니다.  아니에요. 잘못하던지-잘 하던지, 잘났던지-못났던지, 너는 늘 내 집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권위로 우리가 누구인지가 변했어요. 아무것도 아닌 자에서 소중한 자가 된 것이에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 친자식 사랑하듯이, 내가 너를 사랑하고, 용납하고, 너에게 헌신하겠다.”

어떤 분은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너무 쉬워서 잘 못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쉬운게 말이 됩니까?  그러나 그렇게 말한다면 아직도 하나님 집의 하숙생인 것입니다.  이방 사람과 기독교인의 차이는 기도를 하는가-안 하는 가, 혹은 종교적인가-종교적이지 않은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즈니스의 관계인지, 아니면 가족의 관계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종교와 무관하게 살았던 사람, 즉 기도와 상관 없이 살았던 사람이 기독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종교인이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이전과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이전에는 예수님을 모범으로 봤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서 모방할 대상으로 삼았어요.  그러나 예수를 이제는 믿음의 대상으로 봐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어요.  예수님 분명히 우리에게 어느 정도 모범이 되세요. 그러나 이건 알아야 해요.  그건 예수를 도덕적 관점에서 보는 거에요. 그러나 예수님은 올바르게만 사신게 아니에요. 장님을 눈뜨게 하고, 오천명을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먹이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어요.  그것도 따라할 수 있나요?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가 내 죄의 대가를 치루고 죽어야 하는데, 그 분이 나 대신에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살아야 할 때, 그 분이 나 대신 그 삶을 사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입양이라는 것, 그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그것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자녀들만이 할 수 있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이건 하숙생은 할 수 없는 기도입니다.  하숙생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하숙비를 냈는데?”라는 패라다임인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했으니, 내가 받아야 할 것을 받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감사가 없어요. 받아야 할 것은 받은 것이다.  30분 쯤 기도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하숙생은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이것도 해주시고, 저것도 해주시고” 요구만 하게 된다.  그러나, 30분을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만 하라고 하면… 그는 그것을 할 동기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을못받으면 냉담할 수도 있어요. “내가 제대로 살고, 해야할 일 다했는데, 왜 기도 응답을 안 해주시죠?”  안절부절 못할 수도 있어요. “내가 제대로 안 살아서 그래. 제대로 봉사도 안하고 해서 응답 안해주시는 거야.”  둘다, 자녀가 아니라 하숙생으로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회개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회개해요. 예수를 꼭 믿지 않아도 잘못한 것에 대해 성잘하고 뉘우침이 있어요.  예수 믿는 자의 회개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자들은 자신들의 죄 뿐 아니라, 의로움도 회개해요.  예수 믿는 사람은 자신들의 최선의 행동이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한 행동이 마치 월세를 낸 것과 같은 거에요.  선한 행동을 했으니 모든 일들이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뭐가 잘못되면, 혹은 기도한 것을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으면, 화를 내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선물이고, 하나님의 사랑이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시며라는 기도가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할 수 있는 두 번째 기도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라는 기도이다.

Tim Keller목사님이 중요한 포인트를 말하세요.  “오늘”이 아닌 것이 있어요.  오늘은 “한주에 한번”이 아니에요. 혹은 “한달에 한번”이 아니에요.  오늘은 쉽게 말하면 “매일” 구하는 거에요.  한달에 한번 구하는 것은 직원이에요.  매일 구할 수 있는 것은 자식만 할 수 있는 거에요.

매일 구한다는 뜻이 무엇일가요?  꼬맹이들이 부모에게 때쓰는 것을 생각하시면 되요.

  • 첫번째는 작은 일도 구하라는 거에요. 하찮은 일을 일일히 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할 수없어요. 오직 자식이 부모에게 구하는 것이에요.
  • 두번째는 구할 때 뻔뻔하라는 거에요. 아빠니까. 미안해 하지 말고, 계속 구해도 되요.  언제까지?  줄 때까지

하나님이 내 아버지세요.  아버지께 내가 작은 일까지 늘 간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그것을 응답해 주실 때까지 끊이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해요.

그러면 이 구절이 이해가 되요.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종교생활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사람, 오직 자식만이 할 수 있는 기도에요. 우리 아버지가 되기 위해, 우리를 입양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자기 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내어주셨어요.  그 아들이 죽기까지 내어주었어요.  그러니 이제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있으므로, 아들을 향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나에게도 쏟아짐을 믿고 받아들이세요.  그럴 때, 하나님을 더 깊이 예배하게 되고, 그래야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요.  그럴 때, 주저없이, 부끄럼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날마다, 나의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