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어둠을 밝히는 소망 #ThereIsHOPE

pdf Button소모임 교재

요한계시록 1:15-2:1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관점에서 오늘 우리 나라의 시국을 생각해 본다.  

이 모든 일에서 모든 사람이 심판을 말한다 –> 십자가: 죄에 대해 의로우신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그러나 십자가만 있다면?  그 결론은 진노와 죽음밖에 없다.  그러나  집에서 애들이 잘못할 때 부모가 진노만 하면?

 질문을 던집다: 그 다음엔?  안타까운 것이 있다.  그 다음을 말하는 사람도 없고, 그 다음을 이끌어 나갈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부활이 있어야 해요.  진노와 죽음이 끝이 되면 안된다.  개인의 삶도, 민족의 삶도 그러하다. 공의로 인해 진노와 죽음이 필요하다면, 진노 다음에는 용서를 통한 의롭다 칭함이, 죽음 다음에는 부활이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절망 다음에는 소망이 필요하다.  말을 바꿔서 소망의 인격이 필요하다.

밧모라는 섬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이 말한다.  “밧모라는 섬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환난의 상황이다.  죄인 됨: 사람들이 그를 잘못했다고 말한다.  고난의 상황이다.  어려운 일을 당하고, 고통 당한다.  고립되고 외로운 시간이다.  거절받는 시간이다.  그것은 버림 받은 것을 뜻한다. 사람들이 떠나고, 12제자들은 다 이미 순교했다. 심지어 하나님도 나를 버렸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럴 때 놀라운 말을 한다.  바로 “인내”라는 말이다.  요한은 자기의 상황을 환난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다음이 포기합니다로 나와야하지 않는가? 할 만큼 했습니다.”   “지쳤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아닌가 봅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데그는 인내”를 말한다.  “어렵지요. 죽을 것 같습니다.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견디어 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정도도 놀랄만한데. 한술 더 뜬다  책에 기록하여교회로 보내라”  그 환난 가운데에서 그는 책을 쓴다. 그리고 그것을 아시아 교회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하는 7교회에 보내고, 그래서 아시아 전체에 책을 보낸다그 내용은 소망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인내하게 하고. 식어버린 마음을 뜨겁게 하고. 자기를 타락과 타협에서 지키게 하는 동기를 준다.

도대체 요한이 누구이길래?  그가 무슨 메시지를 주었길래?  한마디로 요한은 “소망의 사람”이다.

 촛불

어두움 가운데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빛이다.  아무리 어두워도 우리는 그 빛을 보게 된다.  요한은 어두움을 비추는 촛불과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빛을 받은 교회도 촛불이 되어, 어둠에서 빛난다.  그 빛을 본 세상 사람들이 그 빛을 향해 온다.

 소망은 시각의 문제이다. 상황을 초월하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 확신.  하나님의 약속에 기반을 둔 것이다.  상황이 당장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이미 소망이 아니다.  그렇다면 소망이 하는 것은 관점의 변화이다. 

소망은 관점의 문제이다. 약속으로 주신 미래가 이미 완성되었다는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소망을 품은 사람의 삶에 임하는 자세와 삶의 방향을 정한다

어느 분이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에게 말 다 안해서 그렇지 힘든 일이 너무 많았다.  하나님이 나를 성장시키려고 그러시나봐요.  그게 복인데요.”  소망은 씨앗과 같다. 그 소망을 품고, 거기에 끊임없이 물을 주는 사람은 결국에 자신의 삶에서, 혹은 당대가 아니면 후대에라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소망은 생명의 씨앗이 퍼저나가듯 퍼저나간다: 소망을 가진 한 사람이 있을 때, 그의 확신에 찬 말과 행동을 통해 주변 사람들도 소망의 사람들이 된다.

 우리가 지금 그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가?   한국 교회가 갖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소망”이다.  소망의 인격이 없다.  그럴 때 그런 사람이 없다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이 소망의 사람을 만드는가?

무엇이 소망의 사람을 만드는가?  그럴 때 소망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닌 것, 즉 요한에게 없었던 것이 있다. 건물이나 좋은 시설이 아니었다.  맛있는 밥도 아니였다.  파이프 오르간이나현대식 최고급 음향도 아니였다. 거대한 성가대도 혹은 화려한 찬양팀도 아니였다.

 본문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 하나: “음성”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그리고 교회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들음으로 소망의 사람이 된다. 17절에 소망의 비결이 나온다.  예수님이 죽은 사람과 같이 된 나에게 손을 얹고 그분의 음성을 들려주세요.  두려워하지 말아라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요한은 돈도 없고, 상황을 바꿀 권력도 없는데.  그럴 때 “두려워 하지 말아라”말의 다음 단어에 집중하게 된다.  나는” : 믿는 자가 두려움을 이기는 근거는 요한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다. 

나는”: ego eimi.  스스로 존재하는 야훼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은 나와 절대 타자: 나와 완전히 다른 분이시다.  

첫째 나는 상황을 바꿀 힘이 없는 자: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에요: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고, 역사를 심판하시는 분.  그 분이 시작하심. 그분이 마치심.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그분이 마치실 것이다.

1:6 선한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장래에 대한 불안해하며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불안할 때마다 기도로 하나님께 미래를 맞기고 평화를 얻는 것이다.  

 둘째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죄로 죽을 수 밖에 없고, 지금 현실에서는 박해로 죽음을 직면한 자이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분”: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신 분이시다.  그러니 나도 두려움을 용기로, 절망을 소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이기게 해주신다.

 그 주님이 나에게 손을 얹고 말씀하신다 손을 얹는다는 것은 절대 타자가 지금 나와 함께 하심을 뜻한다.  성찬을 묵상해본다. 성찬은 처음과 나중이시고 살아계신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와 연합하심을 말한다.  그 주님의 말씀이 두려움을 이기고, 새로운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해 주신다 

그럴 때 변화가 일어난다. 말씀을 듣는 자의 어둠이 걷힌다.  다시 소망으로 장래를 바라본다더불어서 말씀을 가진 사람이 세상의 등불되게 하신다: 그래서 교회를 금 촛대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교회는 어둠을 밝히는 촛대이다

이와하시 다케오라는 분이 있다. 그는 와세다 대학 재학중에 시력을 싫어 나이가 20세 때 맹인이 된다심하게 좌절. 자살도 여러 번 시도한다.  신앙이 그를 살린다: 어릴 때 예쁜 그림 카드가 탐나서 주일학교 다님. 그러나 특별한 종교에 대한 기억이 없다.  실명을 하고 어둠 속에서 방황할 때 한번은 그의 가슴을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어릴 때부터 자주 들은 찬송이 들린다 방황하는 자여 돌아오라”  어둠의 밑바닥에 떨어져서,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못 나올 때, 그는 찬송을 듣고, “아 내가 정말 길 잃은 어린양이구나.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가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간사이대학에 다시 편입한다.  여동생이 늘 학교에 같이 다녀주었다.  학교 친구들과 교수님들이 도와준다.  그러나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이라 하루는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 그 아내가 말한다.  당신 곁에는 하나님과 내가 있는데 왜 절망합니까?  내가 당신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겠습니다.”  그가 아내와 함께 영국 에든버러대학에 유학을 간다.  공부를 마치고 간사이대학에 돌아와서 맹인 선교, 맹인 교육, 시각장애자 재활활동을 한다.  자기 집을 열어 일본 라잇하우스를 설립하고 점자 책을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에게 빌려준다.   그는 일본 시각장애자들에게 희망의 등불로 불린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이 모든 일을 말하고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겠는가?  그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지, 내가 오게 하는 것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나에게도 손을 얹고 음성을 들려주실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10. 주님의 날에 내가 성령에 사로잡혀

그는 주일 예배를 드린다.  그것은  홀로 드리는 예배.  교회가 박해를 당하고, 자신은 고립된 상황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찾아와 말씀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예배의 자리에 나간 것이다.

 대하16:9 주님께서는 그 눈으로 온 땅을 두루 살피셔서,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이들을 힘있게 해주십니다.

그 기대가 있어서 예배에 임하여 기도한다.  그의 그 기대가. 그의 그 믿음이. 그 사랑이.  그 소망이. 성령을 담는 그릇이 된다.

 한 성도의 이야기이다. 젊어서 그렇게 청년부를 열심히 했는데, 그러면서 열심히 교회생활 하던 선배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무기력해지고 신앙에 흐지부지해지는 것을 보면서 실망했다.  막상 자신이 신앙을 시작하니, 본인도 한주간 오직 일만 시달리니, 주일날도 예배만 드리고 집에 빨리 가고 싶어지는 것을 경헌한다. 그가 수요큐티에 나오기 시작: 어느날 직장 동기가, 뭔가 변했다고 말하면서, 뭔가 정신 무장을 하고 온 사람같다고 칭찬을 받는다.  그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뭐가 변했나? 수요일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말씀을 살피는 것밖에 없다.  거기서 자신을 찾아온 예수님을 만난다.

예수소망의 40일이 시작한다.   지금부터 1월 두번째 주일까지이다.  주님이 나에게 찾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작정을 하자. 

 

#예수소망의40일 #소망

 

 

최후 승리를 바라보는 자

한 영화에서 미국의 특수부대 훈련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교관이 그들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극한으로 밀어붙입니다.
예를 들면 손을 뒤로 묶은 후에 바다에 뛰어들게 합니다.  그리고, 익사하기 직전에 기절해 있는 그들을 끌어냅니다.  훈련병들이 폐에 있는 물을 토해내며 고통스러워 합니다.

재미있는 것이 있어요. 교관들이 그들보고 “고생이 많지?”하고 위로하거나,
“조금만 더 버텨라.”하면서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만두라고 권유한다는 것입니다.  훈련장에 종을 달아놓습니다.  그리고 진흙탕 속에서 구르고 있는 훈련생에게 달콤하게 말합니다.
“그만두고 싶으면 이 종을 쳐라.  그러면 바로 샤워를 할 수 있게 해 주고, 깨끗한 옷과 좋은 음식을 제공해 주겠다.  그리고 집에 가서 쉴 수 있다”
가끔씩 훈련생 중에는 하다 하다 못해서 “이제 그만 두겠습니다.”  종을 땡 치는 사람 있어요.
그러나 많은 자들이 끝까지 그것을 이겨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왜 그 종을 치지 않고 끝까지 버팁니까?

인내가 너무나 소중하지 않습니까?
소중한 일일수록, 값진 일일수록, 바른 일일 수록 인내가 요구됩니다.
농부와 같습니다.  농부는 가을에 추수할 것을 바라보며 봄에 씨앗을 심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결실이 맺어집니까?  아니지요?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길쌈을 매주고, … 아침부터 밤까지 수고해야 해요.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것이 순조롭기만 합니까?
여름에 비가 안와서 마음이 타들어가기도 해요.  가을에 태풍이라도 불면 추수 직전에 누런 벼가 넘어지기도 해요.
그 모든 것을 인내해야만 가을에 추수의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계시록이라는 책을 봅니다.  그 책은 사도 요한이 썼습니다.
계시록의 배경은: 진리의 길, 옳은 길을 가는 자의 고난입니다.

그는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가지고 평생을 바쳐 헌신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체포되어 외딴 곳에 유배되고 격리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합니까?
대중들은 그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그는 고립되었으며, 평생 쌓아 놓은 공동체가, 기업이 허물어질 위기에 빠집니다.

특별히 자기 혼자만은 그 길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살았다고 하지만,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 중에는 타협하지 않아서 경제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진 사람도 있습니다.  본문대로 예수 믿어서 목 베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악이 흉흉하고 선을 이기는 듯 합니다.

본문에 “아비소스”라는 것이 나옵니다.
개혁개정판에는 “무저갱”이라 번역됩니다.: 밑바닥이 없는 구덩이입니다.
우리 말에 “바닥을 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떨어지더라도 바닥을 치면 올라옵니다.
그러나 밑바닥이 없는 구덩이에 떨어지는 듯한 경험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 때는 어떻게 합니까?

인내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인내하겠습니까?
그가 가는 길을 계속 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을 인내한다고 결론이 좋다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포기하는 것이 낳지 않겠습니까?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이 말씀을 드리고 6절을 읽으며 깜짝 놀라게 됩니다.
6절에서 그들을 놓고 “복이 있고”라 말합니다. 복이라는 것은 “행복” 혹은 “특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거기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Andrew Solomon은 정치, 문화, 그리고 심리학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그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책을 냅니다.
한번은 그는 청소년기에 강제로 성추행을 당한 한 여성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임신을 하게 됩니다.
장례의 계획을 망치게 됩니다.
친밀감을 나누던 관계들도 망가지게 됩니다.
솔로몬이라는 작가가 이 여인이 50세가 될 때에 만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을 성 추행한 그 남자가 자주 생각납니까?”
그녀가 대답합니다.  “전에는 그를 생각하면 분노가 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불쌍히 여길 뿐입니다.”
그는 추측합니다.  그녀가 불쌍히 여긴다고 한 이유는: 그가 진화가 덜 되어서; 그런 끔찍한 일을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리고 묻습니다. “불쌍히 여긴다고요?”
그녀가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아름다운 딸과, 두 명의 아름다운 손주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압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I’m the Lucky One 내가 복받은 사람입니다.”

생명이 참으로 신비하지 않습니까?
악은 파괴적입니다.  생명을 헤치려고 죽음을 휘두릅니다.
그러나 풍성한 생명의 열매가 마지막에 있는 것을 알고 고백할 때에,
그 지나간 삶이 의미 있고 값진 삶이 되요.
그녀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승리자가 됩니다

여러분 너무나 근시안 적으로 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복에 대해 너무 현세적으로 생각해요.  지금 당장 뭐가 되야 할 걸로 생각해요. 현세적인 복을 구하는 사람은, 지금 어려움이 있으면 그게 너무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지금 나의 일이 잘되면 신이 나고 자랑하고, 지금 어려우면 다 끝난 것처럼 다들 풀이 죽고 사람들을 회피합니다

아니에요. 복을 종말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마지막에 승리가 있고, 마지막에 의로워야 하고, 마지막에 생명으로 풍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오늘을 담대하게 살아가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이 있어요.  현재에 있으면서, 내 마지막에 생명의 역사가 풍성하다는 것을 아는 자가 복있는 자입니다.

본문에서 요한은 “보다”라는 단어를 네 번 반복합니다. 여기 주님의 은혜가 있어요. 사실은 요한이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거에요.

지금은 내가 끝없이 추락하는 듯 하나, 그 때에는 하나님의 천사가 사단을 붙잡아, 쇠사슬에 묶어 무저갱에 가둡니다.  마지막에는 성도가 아니라 악이, 악한 자가 한없이 떨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박해 받아 유배를 왔지만, 그 때에는 보좌에 앉아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이 너무 커서 지금은 주님께서 숨어 계시는 듯 보이지 않으나, 그 때에는 천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그 분은 보일 것입니다.
현재는 죄인이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이며 죽어야 할 자이나, 그 때에는 심판주께서 나를 의롭다 하실 것이고,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믿는 자의 특권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최선은 긍정일 뿐입니다.  미래에 대해 가능성을 보고, 낙관할 뿐이에요.  그것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확실함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는 그 마지막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고,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아마 대부분 요한처럼 환상을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것을 본 요한의 증거가 기록되어 성경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을 한 사람에게 보여주셨어요.  그러나 그 마지막에 대한 약속은, 사도가 기록한 성경을 읽고 그것을 믿는 모든 교회가 함께 받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증거, 성경을 볼 때에 우리는 또한 최후 승리를 바라보며 이기게 됩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와 묵상으로 읽으며,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자 그가 복된 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거룩한 삶, 성도의 삶은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의무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약속의 말씀이 있어서 결론을 보니, 이제는 결론에 서서 오늘을 봅니다.
그럴 때 오늘의 사는 태도가 변하게 되요. 외부자가 보기에는 지금은 고난의 삶이나 정작 본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나의 가는 길이 복된 길이다.  “이 길을 가며 나는 행복하다.”  “이 것이 나의 특권이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이 있기에, 말씀으로 자신을 깨끗게 하고, 말씀에 감격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자, 그가 거룩한 자입니다.

70년대 초반 아직 월남이 공산화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Hien Pham이라는 젊은 기독교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어를 잘해서 미군 통역 뿐 아니라 선교사들의 통역을 도와 그들과 함께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월남이 전쟁에서 질 때, 그는 투옥되어서 미국을 도운 죄로 기소됩니다.  감옥에서 그는 쇄뇌를 당합니다.
영어는 금지되고, 오직 베트남어와 불어만 허락됩니다.
매일같이 마르크스와 엥겔의 책만 읽도록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속아왔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이 안 계실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결심합니다.  “내일 아침부터 하나님께 기도 드리지 않겠다.”

그 다음날 아침에 그는 감옥의 변소 청소로 배정이 됩니다.  그곳은 무척이나 역겨운 장소였습니다.
그가 오물과 휴지로 가득한 휴지통을 비우다가, 그 속에서 영어가 기록된 종이를 발견합니다.  더러운 종이입니다.  그러나 그는 황급히 그것을 물로 닦아서 자기 주머니에 집어 넣습니다.
밤이 되어 그는 모기장 아래에서, 모든 사람이 잠에 들 때, 그는 그 종이를 꺼내어 작은 후레시로 비추고 읽습니다.  종이의 맨 위에 “로마서, 8장”이라고 써져 있었습니다.  그의 몸이 떨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읽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히엔이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며 용서를 구합니다.  “주님 내가 기도 안하기로 결심한 첫날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히엔은 캠프 지휘관을 찾아가서 매일 변소를 청소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그 지휘간은 몇전년에 선교사에게 받은 영어 성경을 가지고 있고, 화장실에서 성경책을 휴지 대신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로마서 전체를 모으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히엔은 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배를 만들어서 다른 52명과 함께 베트남을 탈출하려 합니다.  이제 배가 다 완성되어 떠나려는 날 바로 직전에 베트콩이 그를 찾아와, 그가 이곳을 탈출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진짜냐?”
그가 아니라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납니다.
그러나 히엔은 마음에 가책을 느끼고, 혼자 방에서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님,주님께서 내 삶을 이끄시는 것을 알면서도, 또 제가 또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려 했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만일 베트콩들이 돌아오면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베트콩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네가 탈출하려는 것을 안다.  그렇지 않으냐?”
히엔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합니다.  “사실이다.  이제 어찌하겠는가?  나를 다시 감옥에 넣을 것인가?”
그들이 그를 방으로 데리고 가 문을 닫고 말합니다.  “아니.  우리도 너와 함께 탈출하겠다.”

탈출할 때, 그들은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이 탈출한 네 명의 베트콩들은 알고보니 유능한 선원이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들은 태국에 도착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미국이 문을 열어주어, 미국에 와서 그는 버클리에서 경영을 배우고 자기 사업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로 승리하게 할 것입니다.
말씀에 내 삶에 의미가 있고,
말씀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