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예수쾌락 불신지루: 1. What Has Happened to Me

빌립보서 2:12-21
2015년 2월 15일 주일 권혁수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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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갇히고, 쇠사슬에 묶이고, 그래서 하던 사업이 중단되고, 경쟁자들이 그 틈을 노려 나를 이기려 한다면?  그것을 “괴로움”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모든 사연을 이야기하고는 “그렇지만 어떻습니까”(새번역)라고 말한다.  그것은 원어의 뜻을 번역하긴 했지만 뭔가 어감이 와 닿지 않는 번역이다.
바울은 그것을 “ti gar”라고 말한다.
John Ortberg는 그것을 “So What” “Big Deal” “Who Cares” “Whatever”로 표현한다.  내뱉는 듯한 그 어감이 느껴지는가?
나는 “그래서 뭐”라고 번역한다.

감옥에 갇혔다.  —  그래서 뭐!
쇠사슬에 묶였다.  —  그래서 뭐!
사업이 중단됬다 — 그래서 뭐!

내공이 대단하지 않은가?  이정도 되야 예수 잘 믿는 것이다.

여기서 Ti Gar에 대한 오해를 풀 필요가 있다.  이것은 결과적 Ti Gar가 아니다.  과정적 Ti Gar이다.

어떤 분은 이 말을 들으면 스님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번뇌가 많은 속세의 연을 끊고, 산에 들어가 앉아서 “옹~”하고 도 닦는 분.  이와 비슷하게 Stoic 철학에서 그것이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런 것이 아니다.만약에 그러하면 우리들에게는 오히려 종교적 열등감과 소외감만 들 것이다. 또한 바울이 말하는 것은 현실에 대해 외면하고 전혀 그런 일이 안 일어났다고 하거나, 혹은 그것을 잊기 위해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도 아니다.

바울은 오늘 이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그 상황을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상황에 짓눌리고 으깨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황에서 창조적으로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것이다.

이 말을 하고, 나는 “그게 뭐"라는 것을 과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예전에 어머니 친구분 중에 작가가 계셨다.  그분이 쓰신 수필책이 집에 있었다  책 제목이 “예수쟁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어릴 때 읽은 책이라 내용이 잘 기억 안 나는데, 그 중 이야기 하나가 꽤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대충 내용이 이렇다.  작가에게 하루는 전보가 날아온다.  내용이 “친어머니가 소천 하셨으니 빨리 고향집으로 내려오라“ 이 소식을 받고 작가가 급하게 고속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데, 여전히 실감이 안 나더라고 한다.  그런데 버스가 이제 목표지에 도착하고 자기를 마중 나온 자기 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 어머니의 장례를 치루면서 어머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이야를 한다.

심리학자들이 이것을 뭐라고 하나?  큰 일을 겪을 때 제일 먼저 겪는 것은 “부정“의 단계이다.  그 일을 머리로는 알겠지만, 아직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단계가 없을 수는 없다.  그 단계를 거치고 나서, 그 다음에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고,그리고 받아들이는 순간 다시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고, 오히려 과정이 더 중요하기도 하다.

만약에 바울이 결과만 보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열정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누비며 복음을 다니던 사람이 작은 단칸방에 갇혀 있다.  그러면 빌립보서의 내용이 “기뻐하고 기뻐할 것이다"가 아니라, [목 잡고] “으~윽”이 돼었을 것이다.  그의 심정은 “억울하고 분하다” 였을 것이다.  사실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갇힌 걸 보고 그를 더 괴롭게 하려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앞뒤 문맥은 다 잘라먹고, 결과만 보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고, 의미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은 “과정을 지나가는 힘"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걸 알 수 있는 게, 바울은 “story telling"을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자신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삶이 변한 이야기가 세 번이나 나온다.  갈라디아서를 봐도 자신이 예수를 믿은 일대기를 말하면서 자신의 오직 믿음이라는 결론을 말한다.  고린도후서에도 자신이 아시아에서 죽을뻔한 일과 거기서 얻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오늘 빌립보서 본문의 내용은 바울이 자기가 감옥에서 겪는 일을 간단한 이야기로 쓰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말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6.25 전쟁을 겪으신 분들에게  피난간 이야기 해달라고 하면 생생하게 말씀하신다.  남자들은 군대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그것은 삶의 갑작스러운 단절, 자유의 박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건이 내 삶에 일어날 때, 그걸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함으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 짧은 내용이지만, 그것은 바울이 감옥에서 겪은 이야기이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  특이하게, 창조적 능력은 한계가 주어질 때 오히려 극대화 될 수 있다.  그럴 때, 그 작은 곳에서 자신의 삶을 주도할 수 있게 된다.

  1. 그는 자신이 묶인 일을 가지고, 사람들을 복음의 포로로 만드는 기회로 삼는다.

복음의 일로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경비대와 함께 사슬을 메었다  그래서 경비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당시 경비대는 쉽게 말하면 황제의 친위대이다.  그들은 로마의 귀족들이었다.  바울은 이전부터 로마로 가고 싶어했다.  가면 전략적 이유로 그 나라를 움직이는 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나,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이제 그들이 바울을 찾아온다.  그리고 하루 종일 좋으나 싫으나 바울과 함께 있어야 한다.  이제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믿게 된다.

나는 한계의 상황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그것으로 이루신다.

“빌4:22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특히 황제의 집안에 속한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

  1. 보너스로 하나님이 덤으로 하나 더 역사하신다.

전에는 바울이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워낙 뛰어나서 바울같이 복음을 전할 엄두가 안 났다.  이제 바울이 복음에 갇히니 성도들이 복음을 전한다.

  1. 하나님이 이걸 하나씩 하나씩 보여주시면서 바울을 살살 달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이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  바울은 요새 젊은이들과 비슷하다.  아니에요  그 이상 되는 사람이에요.  그는 자기가 너무 좋아해서 다른 걸 다 버리고 복음을 전한다.  이제 그 길이 막히나 싶었더니, 이제는 하나님이 더 잘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바울이 “하나님 왜 나를 여기에 처박아 놓으셨습니까?”라고 했을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하나씩 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던져 놓은 줄 알았더니, 하나님이 감옥에 따라 들어와 같이 계십니다”라고 고백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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