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alogue

Decalogue 5: 꽃보다 부모님

“영혼없는 말”을 아는가?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면 헤어질 때 하는 말, “언제 한번 밥 먹자.”  그러나 진짜로 같이 따로 만나 밥 먹지는 않는다.  오래된 연인이 상대방에게 “사랑해”라고 말하지만, 정작 상대방은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영혼없는 공경”이 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우리는 보통 전통적 효의 개념으로 본다.  그것은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할 도리를 다 하는 것이다.  물질적으로 보태 드리고, 거동이 불편하면 보살펴 드리고, 자주 찾아 뵙는다.  그러나 그것을 너무도 열심히 함에도 불구하고도, 정작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껍데기에 불구한 것이다. 그는 겉으로 보면 대단한 효자 효녀 효부이지만, 막상 그 내면은 냉냉하거나, 심지어 쓴 뿌리, 가슴알이, 저주와 욕설이 가득할 수도 있다.

“공경”이라는 말의 원어는 “무겁다”라는 뜻에서 왔다.  그것은 부모를 중시 여긴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부모를 마음에서부터 중요시 여기는 것을 뜻한다.

온전한 친밀감이 그 중심에 있어야만 참된 부모의 공경이 가능한 것이다.  게리 체프만은 “5가지 사랑의 언어”를 말한다.  의미있는 시간, 긍정의 말, 선물, 봉사, 신체적 접촉이다.  부모님과 함께 마지마으로 이러한 다섯가지를 공유한 것이 언제인가?

신명기 5:6-16
2015년 2월 1일 주일 권혁수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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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alogue 4. 걱정 걱정 걱정 걱정 걱정 걱정 걱정

내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얼마나 아는가?  간단하다.  하루에 걱정은 몇번이나 하는지,  반대로 마음이 편하거나 재미가 있는 일은 몇 번이나 있었는지 그 횟수를 비교해 보면 된다. 당신은 행복한가 불행한가?

마태복음 6:25-34는 유명한 구절이다.

그런데 거기서 예수님이 ‘걱정’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신다.  그래서 몇 번이나 나오는 지 세어 보았다.  7번.  무슨 뜻일까?  이렇게 질문으로 바꿔 보았다.

“하루에 몇 번이나 걱정하는가?”

만일 당신이 하루에 7번 혹은 그 이상 걱정한다면, 당신은 걱정이 반복되고, 걱정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것이다.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이다.  걱정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걱정하고 걱정하다가 “내일 일까지”(34절)—아직 일어날지 아닐지 모르는 미래의 일까지–걱정하면, 거기서부터는 과다 걱정인 것이다.

홀리 해즐렛 스티븐스라는 분이 쓴 걱정에만 올인하는 여자들의 잘못된 믿음이라는 책이 있다.  그 부제가 참 마음에 와 닿는다.  “떨쳐내려고 해도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는 그녀들의 심리”  그런데, 여자들만 걱정에 올인하나?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만성적 걱정이 있다면 몸이 남들보다 더 아파서 병원에 더 자주 들락날락한다.  지속적인 근육긴장, 긴장성 두통, 쉽게 잠들지 못함, 숙면을 취하지 못함이라는 증상이 있다.  그러면 짜증이 많아지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업무 능력과 생산성이 떨어져요.  그리고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한다.

나는 걱정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면서 “빨간 색”으로 칠해봤다.  왜 그런지 알겠는가?  이 쯤해서 눈치가 빠르신 분은 알 것이다.  과다 걱정은 적신호인 것이다.  걱정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회수가 점점 늘어나고, 그리고 미리 당겨서 걱정까지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에는 그건 문제인 것이다.

오늘은 십계명 제4계명: 안식일에 대해 배운다.  안식이라는 단어는 “중단 / 멈충.” 그리고 따라서 “쉼”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아까 말씀드린 걱정의 증상에 몇 개나 공감하는가?  만약에 그것이 나의 이야기라 받아들여지신다면, 이제는 잠시 멈추실 필요가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20:8-10, 마태복음 6:25-34
2015년 1월 25일 주일 권혁수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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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을 해서, 자기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28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32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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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alogue 3: 하나님과 썸만 타려고 하는 사람들

“The Almost Christian 거의 기독교인”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18세기 영국과 미국에 대부흥을 일으킨 George Whitefield 죠지 위트필드가 한 설교 제목이다.  그는 설교 앞 부분에서 거의 기독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의 기독교인인 사람들이란, 하나님에 대한 의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두 개의 의견에서 갈라진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와 세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맘몬, 빛과 어두움, 그리스도와 벨리알을 타협하게 한다. 그가 종교에 대해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얼마나 깊이 들어가는 지에 대해 조심한다. 그의 거짓된 마음은 늘 부르짖는다. 자신을 아끼라.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 그는 실제로 기도한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분적으로 순종하며, 어리석게도 하나님이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일일히 기록하는 극단적인 분이 아니시기를 바란다. 어느 사도가 영감을 받아, “하나의 계명을 어긴 자는 계명 전체를 어긴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주로 겉으로 드러난 규율에 의지하며, 자기 자신을 의롭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다른 어떤 사람만큼이나 신령한 삶과 동떨어져 있다. 다시 말해, 그는 형식을 선호하나, 그의 마음에서 경건의 능력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는 해마다 거듭해서 은혜의 방편[성례전]에 참여하지만, 그러나 바로의 마른 소와 같아서, 더 개선될 여지가 없고, 오히려 더 악화되기만 한다.

An almost Christian, if we consider him in respect to his duty to God, is one that halts between two opinions; that wavers between Christ and the world; that would reconcile God and Mammon, light and darkness, Christ and Belial. It is true, he has an inclination to religion, but then he is very cautious how he goes too far in it: his false heart is always crying out, Spare thyself, do thyself no harm. He prays indeed, that “God’s will may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But notwithstanding, he is very partial in his obedience, and fondly hopes that God will not be extreme to mark every thing that he willfully does amiss; though an inspired apostle has told him, that “he who offends in one point is guilty of all.” But chiefly, he is one that depends much on outward ordinances, and on that account looks upon himself as righteous, and despises others; though at the same time he is as great a stranger to the divine life as any other person whatsoever. In short, he is fond of the form, but never experiences the power of godliness in his heart. He goes on year after year, attending on the means of grace, but then, like Pharaoh’s lean kine [cow?], he is never the better, but rather the worse for them.1

출애굽기 20:1-7

2015년 1월 18일 주일 권혁수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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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Almost Christian.”  from Whitefield, George. Selected Sermons of George Whitefield. Oak Harbor, WA: Logos Research Systems, Inc., 1999.

Decalogue: 1. 하나님이 하신 말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너무나 익숙해져서 별 감흥이 없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면 개인적으로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큰 일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의 삶은 그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인 것이다.

출애굽기 20:1-3

2015년 1월 4일 주일 권혁수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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