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어둠을 밝히는 소망 #ThereIsHOPE

pdf Button소모임 교재

요한계시록 1:15-2:1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관점에서 오늘 우리 나라의 시국을 생각해 본다.  

이 모든 일에서 모든 사람이 심판을 말한다 –> 십자가: 죄에 대해 의로우신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그러나 십자가만 있다면?  그 결론은 진노와 죽음밖에 없다.  그러나  집에서 애들이 잘못할 때 부모가 진노만 하면?

 질문을 던집다: 그 다음엔?  안타까운 것이 있다.  그 다음을 말하는 사람도 없고, 그 다음을 이끌어 나갈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부활이 있어야 해요.  진노와 죽음이 끝이 되면 안된다.  개인의 삶도, 민족의 삶도 그러하다. 공의로 인해 진노와 죽음이 필요하다면, 진노 다음에는 용서를 통한 의롭다 칭함이, 죽음 다음에는 부활이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절망 다음에는 소망이 필요하다.  말을 바꿔서 소망의 인격이 필요하다.

밧모라는 섬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이 말한다.  “밧모라는 섬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환난의 상황이다.  죄인 됨: 사람들이 그를 잘못했다고 말한다.  고난의 상황이다.  어려운 일을 당하고, 고통 당한다.  고립되고 외로운 시간이다.  거절받는 시간이다.  그것은 버림 받은 것을 뜻한다. 사람들이 떠나고, 12제자들은 다 이미 순교했다. 심지어 하나님도 나를 버렸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럴 때 놀라운 말을 한다.  바로 “인내”라는 말이다.  요한은 자기의 상황을 환난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다음이 포기합니다로 나와야하지 않는가? 할 만큼 했습니다.”   “지쳤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아닌가 봅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데그는 인내”를 말한다.  “어렵지요. 죽을 것 같습니다.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견디어 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정도도 놀랄만한데. 한술 더 뜬다  책에 기록하여교회로 보내라”  그 환난 가운데에서 그는 책을 쓴다. 그리고 그것을 아시아 교회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하는 7교회에 보내고, 그래서 아시아 전체에 책을 보낸다그 내용은 소망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인내하게 하고. 식어버린 마음을 뜨겁게 하고. 자기를 타락과 타협에서 지키게 하는 동기를 준다.

도대체 요한이 누구이길래?  그가 무슨 메시지를 주었길래?  한마디로 요한은 “소망의 사람”이다.

 촛불

어두움 가운데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빛이다.  아무리 어두워도 우리는 그 빛을 보게 된다.  요한은 어두움을 비추는 촛불과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빛을 받은 교회도 촛불이 되어, 어둠에서 빛난다.  그 빛을 본 세상 사람들이 그 빛을 향해 온다.

 소망은 시각의 문제이다. 상황을 초월하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 확신.  하나님의 약속에 기반을 둔 것이다.  상황이 당장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이미 소망이 아니다.  그렇다면 소망이 하는 것은 관점의 변화이다. 

소망은 관점의 문제이다. 약속으로 주신 미래가 이미 완성되었다는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소망을 품은 사람의 삶에 임하는 자세와 삶의 방향을 정한다

어느 분이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에게 말 다 안해서 그렇지 힘든 일이 너무 많았다.  하나님이 나를 성장시키려고 그러시나봐요.  그게 복인데요.”  소망은 씨앗과 같다. 그 소망을 품고, 거기에 끊임없이 물을 주는 사람은 결국에 자신의 삶에서, 혹은 당대가 아니면 후대에라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소망은 생명의 씨앗이 퍼저나가듯 퍼저나간다: 소망을 가진 한 사람이 있을 때, 그의 확신에 찬 말과 행동을 통해 주변 사람들도 소망의 사람들이 된다.

 우리가 지금 그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가?   한국 교회가 갖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소망”이다.  소망의 인격이 없다.  그럴 때 그런 사람이 없다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이 소망의 사람을 만드는가?

무엇이 소망의 사람을 만드는가?  그럴 때 소망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닌 것, 즉 요한에게 없었던 것이 있다. 건물이나 좋은 시설이 아니었다.  맛있는 밥도 아니였다.  파이프 오르간이나현대식 최고급 음향도 아니였다. 거대한 성가대도 혹은 화려한 찬양팀도 아니였다.

 본문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 하나: “음성”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그리고 교회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들음으로 소망의 사람이 된다. 17절에 소망의 비결이 나온다.  예수님이 죽은 사람과 같이 된 나에게 손을 얹고 그분의 음성을 들려주세요.  두려워하지 말아라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요한은 돈도 없고, 상황을 바꿀 권력도 없는데.  그럴 때 “두려워 하지 말아라”말의 다음 단어에 집중하게 된다.  나는” : 믿는 자가 두려움을 이기는 근거는 요한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다. 

나는”: ego eimi.  스스로 존재하는 야훼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은 나와 절대 타자: 나와 완전히 다른 분이시다.  

첫째 나는 상황을 바꿀 힘이 없는 자: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에요: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고, 역사를 심판하시는 분.  그 분이 시작하심. 그분이 마치심.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그분이 마치실 것이다.

1:6 선한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장래에 대한 불안해하며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불안할 때마다 기도로 하나님께 미래를 맞기고 평화를 얻는 것이다.  

 둘째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죄로 죽을 수 밖에 없고, 지금 현실에서는 박해로 죽음을 직면한 자이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분”: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신 분이시다.  그러니 나도 두려움을 용기로, 절망을 소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이기게 해주신다.

 그 주님이 나에게 손을 얹고 말씀하신다 손을 얹는다는 것은 절대 타자가 지금 나와 함께 하심을 뜻한다.  성찬을 묵상해본다. 성찬은 처음과 나중이시고 살아계신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와 연합하심을 말한다.  그 주님의 말씀이 두려움을 이기고, 새로운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해 주신다 

그럴 때 변화가 일어난다. 말씀을 듣는 자의 어둠이 걷힌다.  다시 소망으로 장래를 바라본다더불어서 말씀을 가진 사람이 세상의 등불되게 하신다: 그래서 교회를 금 촛대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교회는 어둠을 밝히는 촛대이다

이와하시 다케오라는 분이 있다. 그는 와세다 대학 재학중에 시력을 싫어 나이가 20세 때 맹인이 된다심하게 좌절. 자살도 여러 번 시도한다.  신앙이 그를 살린다: 어릴 때 예쁜 그림 카드가 탐나서 주일학교 다님. 그러나 특별한 종교에 대한 기억이 없다.  실명을 하고 어둠 속에서 방황할 때 한번은 그의 가슴을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어릴 때부터 자주 들은 찬송이 들린다 방황하는 자여 돌아오라”  어둠의 밑바닥에 떨어져서,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못 나올 때, 그는 찬송을 듣고, “아 내가 정말 길 잃은 어린양이구나.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가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간사이대학에 다시 편입한다.  여동생이 늘 학교에 같이 다녀주었다.  학교 친구들과 교수님들이 도와준다.  그러나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이라 하루는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 그 아내가 말한다.  당신 곁에는 하나님과 내가 있는데 왜 절망합니까?  내가 당신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겠습니다.”  그가 아내와 함께 영국 에든버러대학에 유학을 간다.  공부를 마치고 간사이대학에 돌아와서 맹인 선교, 맹인 교육, 시각장애자 재활활동을 한다.  자기 집을 열어 일본 라잇하우스를 설립하고 점자 책을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에게 빌려준다.   그는 일본 시각장애자들에게 희망의 등불로 불린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이 모든 일을 말하고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겠는가?  그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지, 내가 오게 하는 것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나에게도 손을 얹고 음성을 들려주실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10. 주님의 날에 내가 성령에 사로잡혀

그는 주일 예배를 드린다.  그것은  홀로 드리는 예배.  교회가 박해를 당하고, 자신은 고립된 상황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찾아와 말씀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예배의 자리에 나간 것이다.

 대하16:9 주님께서는 그 눈으로 온 땅을 두루 살피셔서,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이들을 힘있게 해주십니다.

그 기대가 있어서 예배에 임하여 기도한다.  그의 그 기대가. 그의 그 믿음이. 그 사랑이.  그 소망이. 성령을 담는 그릇이 된다.

 한 성도의 이야기이다. 젊어서 그렇게 청년부를 열심히 했는데, 그러면서 열심히 교회생활 하던 선배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무기력해지고 신앙에 흐지부지해지는 것을 보면서 실망했다.  막상 자신이 신앙을 시작하니, 본인도 한주간 오직 일만 시달리니, 주일날도 예배만 드리고 집에 빨리 가고 싶어지는 것을 경헌한다. 그가 수요큐티에 나오기 시작: 어느날 직장 동기가, 뭔가 변했다고 말하면서, 뭔가 정신 무장을 하고 온 사람같다고 칭찬을 받는다.  그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뭐가 변했나? 수요일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말씀을 살피는 것밖에 없다.  거기서 자신을 찾아온 예수님을 만난다.

예수소망의 40일이 시작한다.   지금부터 1월 두번째 주일까지이다.  주님이 나에게 찾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작정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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